작성일 : 24-07-21 19:29
정교분리의 역사와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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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55  

정교분리의 역사와 참뜻


김선우 목사(새하늘교회 담임, 합신교단 동성애대책위원회 서기)

언젠가 강의 중에 이렇게 목사님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목사님들, 한국의 보수교단은 정교분리 원칙을 주장하고 지금껏 잘 지켜왔는데,

세속정부가 진리를 파괴하고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사님들은 성도들에게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모두가 조용하고 잠잠했다.

 

이 시대의 많은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교회가 정치를 말하지 않는 것이 정교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정교분리 원칙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함 때문이거나 목사 자신이 고의적인 정치적 의도 때문에 그렇게 교인들을 가르쳐 온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정교분리 원칙의 역사와 정교분리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신학적 관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Ⅰ. 볼세비키 혁명,

세속정부에 의한 정교분리 원칙 파괴

세속정부와 정치가 종교(교회)에 철저히 개입한 예가 볼세비키 혁명이었다. 세속정부는 기독교를 말살시키기 위해 1918년 [혁명동지회]에서 “평등”을 내세워 다음과 같은 법을 만들었다.

(1) 교회재산 몰수 (2) 종교교육 금지 (3) 종교는 인민의 아편.

이렇게 소위 볼세비키식 차별금지법 제정하여서 정치가 교회의 자유를 박탈하고 파괴시켰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등’과 ‘인권’이라는 명분 아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1) 종교인 과세 통과 (2) 차별금지법 제정 지속적 시도 (3)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기독교 학교에 종교교육 금지 강요 (4) 지방 인권조례 제정

마치 구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을 보는 것과 같은 일이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데도 다수의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 오로지 정교분리를 외치며 신앙의 자유가 유린당하고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방임하고 외면하고 있다.

현재 세속정부의 통치자들이 성경의 진리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주장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제적인 진리 파괴 세력 앞에 놓여있는 한국 교회들에게 매우 시급한 신학적인 답변이 필요하다.

 

Ⅱ. 존 칼빈의 저항권 사상,

하나님의 권리를 도적질하려 할 때 그들의 머리에 침을 뱉어라!

칼빈은 요즘 일단의 목회자들이 하는 것처럼 교회에서 정치 얘기하지 않는 것이 정교분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칼빈의 저항권 사상은 신앙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모든 세속 권력들에게 침을 뱉고 강력히 저항권을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자신이 개혁주의자라고 하는 한 목사가 ‘정교분리를 교회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주장하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 칼빈주의자라는 목회자가 칼빈의 저항권 사상을 알고 있다면 결코 그런 모순된 주장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세속권력이 하나님의 권리를 도적질하려 할 때, 그들에게 복종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에 침을 뱉어야 한다.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마땅한 영광과 하나님께 마땅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하는 모든 압제적인 명령에 저항해야 한다.”(존 칼빈)

 

Ⅲ.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사상,

정치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도록 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우리 신앙생활에서 ‘정치는 예외’로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 자신이 네델란드 총리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국가적 영역에서 감당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보았다. 카이퍼는 ‘교회에서 정치 얘기하지 마라’는 이 시대에 남발되는 어리석은 주장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주장했고, '신앙과 삶의 분리가 곧, 세속화'라고 일갈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옳다면, 한국교회의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지금 교인들의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두렵고도 끔찍하다.

목사들은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정치 얘기하지 말라고 주장하기 전에 목사 자신이 이 시대를 끌어안고 함께 기도하고 교인들에게 삶과 신앙의 전인적인 일치를 주장하는 개혁주의의 신앙으로 우리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도록 치열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의 영역주권론 신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들 위에 홀로 주권적이시며,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모든 삶의 개별 영역들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정치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책무이자 의무이다.”

이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신앙의 스승들은 오늘날 목회자들과 얼마나 차원이 다른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 왜 우리는 칼빈주의, 개혁주의 목사라고 하면서 그들을 배우지 않고 따르지 않는가?

 

Ⅳ.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

이제는 지식이 아닌 행함의 열매로 드려야 한다.

지상교회는 죄와 사망의 세력과 싸우는 교회이며 진리를 거역하는 거짓과 불의의 세력과 전투하는 교회이다. 신학교에서 가르친 개혁주의자 스승들은 “모든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라고 가르쳤으나 나는 그분들이 전투 중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들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옳다.

“모든 지상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다.” 그러나 우리는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기는 하였지만 불의의 정치세력과 모든 비 진리에 저항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목사 자신이 가르친 대로 신앙의 본을 보여주었는가?

우리는 이제 우리 주님 앞에서 지식이 아닌 진실한 신앙의 행위의 열매로 드리며 깨달아야 한다. 신앙의 자유와 진리를 파괴하려는 실재하는 악한 정치세력에 저항하는 것을 부인하는 교회는 이미 진리의 사명을 잊어버린 채 진리의 허리띠를 풀고 전투를 잊어버린 세속화된 교회이다.

 

Ⅴ. 한국 교회사의 저항권 사상의 고귀한 역사적 자산,

진리를 붙잡고 타협하지 않았던 그들이 전적으로 옳았다.

감사하게도 한국교회는 존 칼빈의 저항권 사상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 등 옥중 400명의 성도들과 신사참배를 가결한 교단과 교회들을 떠나서 가정교회로 모였던 수많은 교인들이 그러한 역사적 자산이다.

만약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무조건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든가, 교회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면 그들은 순교자 주기철, 손양원 목사와 옥중 400명의 성도들의 신사참배 저항 신앙을 부인하는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교회사를 살펴보면 다수의 목회자들과 한국의 교단들이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소수의 분들을 장로교단이 면직하고 제명시켰던 이 사건은 하나님과 진리 앞에 저지른 명백한 한국교회의 역사적 죄악의 오점이다. 한국교회사는 당시에 소수의 신사참배에 저항했던 목사들과 성도들이 온갖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타협했던 다수의 목사들과 한국교단들보다 전적으로 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 제37회 제1차 임시노회에서 주 목사를 면직 파면했고 산정현교회까지 폐쇄시켰다. 주 목사는 사랑했던 교단의 버림을 받은 채로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다. “당시 평양노회 회의록에는 ‘권징조례 19조’에 의하여 산정현교회 시무를 권고 사직시키다.”라고 되어있다.

진리를 붙잡고 절대로 타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언제든지 세속정권과 타협이 가능한 무리들에 의해 언제나 고난받았다.

이는 세계 교회사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세속정부와 타협했던 영국 국교회에 의한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의 커다란 순교의 환난이 있었고, 영국 청교도들의 재산몰수와 추방령은 그들에게는 진리로 인해 겪었던 내부의 시련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앙리 2세의 개신교 박멸정책으로 인해 진리를 지키다가 죽임당한 7만 명의 위그노들이 있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이들의 이름이 기독 교회사 가운데 가장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나 당시에 이들은 그저 핍박과 멸시, 조소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참 교회의 실체였다.

 

Ⅵ. 일제의 정교분리 주장에 미혹되지 않은 이들,

삼일운동을 주도했고,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신사참배에 저항했다.

과거 일제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기독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강력하게 금하고 반대했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어찌 된 일인지 이 일제 강점기의 정교분리 원칙을 그대로 따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지혜롭고 믿음 있던 우리 민족의 교회들은 모두는 아닐지라도 소수들은 일제의 정교분리 주장에 미혹되지 않고, 삼일운동을 주도했고,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신사참배에 저항했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대한민국 역사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는 영광스럽고 위대한 자산이 아니던가? 그들은 타협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리를 붙들고 세속권력에 저항하는 자들이었다.

 

Ⅶ. 미국의 정교분리의 역사,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교분리 원칙 최초 주장은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에서 비롯되었다. “종교와 정치는 양자 간에 엄격한(분리의)벽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종교를 정치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헌법을 만들었다.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세 가지 세속정부의 정교분리 원칙을 규정했다. 이 미국 헌법의 규정의 목적은 세속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1) 정치는 교회의 활동을 관여하지 말 것. (2) 정치는 교회에 해가 되는 법을 만들지 말 것. (3) 정치는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지 말 것.

후에 존스 대통령이 하위 법조항에 수정조항을 만들었다.

“성직자와 교회 등 종교단체가 특정 공직후보자나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며 이를 위법 시에는 면세혜택을 박탈하는 하위 법조항을 제정하였다.”

현재의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의 하위규정인 이 존스 조항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행정명령으로 완화시켰다.

“교회는 자유롭게 정치인 선거운동 후원하고 교회헌금을 통해 면세혜택을 받도록 하였다.” 교회 선거운동도 일종의 종교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Ⅷ. 대한민국의 정교분리의 역사,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제사장 직, 선지자 직, 왕 직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정교분리 원칙을 비로소 바르게 적용했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 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 20조 2항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되어있다.

이는 국가와 정치의 종교에 대한 중립성을 의미한다. 즉, 종교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의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후 민주화 정국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또다시 “교회의 정치참여는 정교분리 원칙 위반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일제와 동일한 정교분리원칙을 주장했었다.

 

Ⅸ. 로마서 13장 1~7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의 해석

모든 권력자는 선과 악에 대해서 정당하게 처리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권력자의 권세는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즉, 그 권세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면 그 권세는 벌을 받아야 한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고 했는데, 호세아 선지자는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한다.

“그들이 왕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호8:4)

성경을 보면 수많은 왕들이 세워지고 명멸할 때에 이 땅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왕들이 훨씬 더 많았다. 로마서의 권세는 문맥을 보면 하나님의 보편적인 진리인 선악에 따라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권세를 말한다.

사도 바울의 로마서 13장 1절 말씀에서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은 문맥을 보면 세워진 권력자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통치권의 정당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모든 권력자는 선과 악에 대해서 정당하게 처리해야 하며 그러한 선을 증진하고 악을 징계하는 권력자에게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3장 4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한 모든 권세에 복종해야만 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 권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즉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선한 일을 칭찬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일을 충실히 이행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권세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섬기는 종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권세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는 것이므로, 그 권세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상위법인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여야 하고, 그 권세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는 한 우리는 그 권세에 굴복할 의무가 있다.… 국가가 상전이 되고 폭군이 되는 순간 국가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이므로 그 국가 자체가 벌을 받아야 한다. 그 형벌의 형태는 정부가 전복되고, 로마서 13장 1-7절의 교훈에 따라 존재하려고 예비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저항이 악한 정부의 징벌이 되게 하자.

로마서 13장 1-7절의 교훈에 따라 존재하려고 예비된 정부가 아니라면 우리 교회는 저항하고 불복종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악한 세속정권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되는 것이며, 믿는 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그러한 정부를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2:26)

세계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를 숙고하면서 영국의 청교도, 스코틀랜드의 언약도, 프랑스의 위그노, 그리고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신사참배 반대파 목회자들이 일제에게 핍박을 받기 전에 세속정권과 타협한 교단 내부의 목사들에게 먼저 더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다는 슬픈 사실이 이 악하고 음란한 시대를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진리 따라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받으리라고 우리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시고 계신다. 진리 앞에 타협이 불가한 모든 참된 성도들은 이 믿음의 앞선 참된 선진들을 따라 좁은 문, 좁은 길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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