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란 무엇인가?
선택이란 하나님이 창세전에 어떤 사람들을 택하시되 하나님이 미리 아신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한 뜻으로 그들을 택하신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교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선택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
신약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확증하는 것을 봅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여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훗날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기에게로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원 전의 계획과 값없는 은혜 때문입니다.
선택이 의미하는 것
신약성경 기자들이 선택 교리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위로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 두 절에서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음(롬 8:29)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로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셨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8:30) 또한 바울은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님이 언젠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완전하고 영화롭게 된 몸을 주시겠다고 이미 결정하셨다는 점에서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롬 8:30)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선을 염두에 두고 일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선을 위해 일하실 것이라는 위로와 확신의 근거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 때문입니다.(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런 반응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엡 1:12) 우리의 구원과 그에 따른 모든 선한 일을 궁극적으로 책임지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알고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살전 1:2-4)
선택이 의미하지 않는 것
선택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곧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약성경은 구원의 모든 역사를 인격적인 피조물을 깊이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로 표현합니다.(엡 1:5) 하나님의 선택에는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이 스며 있습니다.(요 3;16, 롬:28) 더 나아가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인격적 피조물로 봅니다.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부름 받은 그들은 진정으로 이 초대를 듣고, 자기의 뜻에 따른 결정으로 이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결정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옵니다.(요 3:18) 선택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실제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라고 말 할 때에 하나님은 이들의 구원과 관계된 맥락에서 이들을 “미리”아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알미니안>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각 개인의 믿음의 결정이나 행동을 미리 아신다.’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사실 성경은 결코 믿음을 하나님이 누군가를 택하신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이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비록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실제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때가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격적인 존재를 입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택하게 하신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아래 우리가 인격적으로 설복되어 자원하는 마음을 갖고 선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원인이 되어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선택의 교리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백 번이나 ‘자발적인’ 또는 ‘자기 뜻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호소하거나 명령합니다.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대한 성구들과 우리에게 반응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성경의 모든 계명을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인간의 선택’이라는 의미 속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의 부분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자기 성품에 부합되는 일을 하기로 선택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하기로 선택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선택할 성향을 갖게 된 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작정하심 속에 예정된 구원계획에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보전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청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진실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께 반응하기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 하셨다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충분히 그 내면을 다 이해 하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진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우리는 성경이 모든 면에서 이 사실에 대해 가르치는 대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원하는 선택’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부합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의 말씀대로 만물을 붙드시고,(엡 1:11) 또한 우리의 자원하는 선택을 그 안에 보전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의 결과에 대한 복을 주기도 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마땅한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다.
선택 교리는 우리 자신이 행한 일이나, 앞으로 우리가 행할 일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바른 반응은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바른 반응은 사랑과 겸손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주장할 만한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선택교리를 그런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여러분은 선택교리를 이해하면서 기쁘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문. 하나님의 선택교리에 대하여 우리의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3문.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대하여 말하고, 구원은총과 비교하여 생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