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성도들도 ‘짧은 설교’를 좋아합니다.여기서 ‘짧은’이라는 기준은 물리적인 길이가 아닙니다. 겨울철 체감 온도가 중요하듯, 설교에도 체감 길이가 중요합니다. 짧게 ‘느껴지는’ 설교 말입니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무턱대고 짧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전해야 할 메시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 열쇠는 통일성입니다. 선명한 주제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구성된 설교는 물리적인 길이와 상관없이 짧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는 설교는 5분도 50분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선명한 주제를 정하고,그것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대지를 구성하면, 설교의 체감 길이는 한층 짧아집니다.
둘째, 성도들은 ‘먹을 게 있는 설교’를 좋아합니다.
‘들을 게 있는 설교’ 말입니다. 신대원생들이 밥을 내는 목사님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꼭 식판의 밥만은 아닙니다.
‘말씀 그릇’에 담긴 ‘말씀의 밥’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신대원생들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성도들이 일상을 뒤로 하고 교회로 오는 것은 영적인 배고픔 때문입니다. 먹기 위해서 나옵니다.
먹을 게 있는 설교의 열쇠는 묵상이라고 믿습니다. 설교는 주석을 넘어, 묵상의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묵상을 통해 성도들의 내면과 삶을 터치하는 메시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결과물은 선명한주제로 요약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도들은 ‘따뜻한 설교’를 좋아합니다.
‘차가운 설교’ 혹은 ‘치는 설교’가 아니라, ‘따뜻하게 품어주는 설교’입니다. 비판의 말씀이 요긴하고,책망의 말씀도 필요하지만, 설교는 모름지기 따뜻해야 합니다.
신대원생들의 마음을 닫아버리는 설교가 있는데, 교회 전도사를 험담하는 설교입니다. 예를 들면요즘 전도사들은 사명감이 어떻다는 둥, 예의가 어떻다는 둥으로 말이죠.
아무리 설교가 짧고, 아무리 뷔페로 식사를 차려주어도 분위기가 험담으로 살벌하다면 밥맛도 없겠죠. 성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선지자의 예리함을 품되 제사장의 따스함을 잃지 않는 설교가성도의 마음을 엽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우리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실까요. 그러나 마음의 문은 열어야 하고, 열린 만큼 설교가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