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0-18 09:00
바울의 율법관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948  

바울의 율법관

 

1.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율법

율법이란 헬라어로는 nomos, 영어로는 law 인데 성경적인 의미에서는 <모세로 말미암아 유대인에게 주신 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라는 것은 사도 요한의 하신 말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요1:17)
바울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본래 율법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때에는 ..."(롬2:14)

또 바울은 이방인들은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이란 기원전 1500년 경에 시내산에서 모세가 유대인에게 주신 법을 일컫는 것입니다. 

2.율법의 성격

율법은 그것이 무섭든 어떻든지간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을;
1)의롭고 
2)선하고
3)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12)

예수님은 율법에 대하여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더 쉬우리라"하시면서 율법의 영원성을 말씀하셨습니다.(눅16:17)

그러나 이처럼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율법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질 못하고 오히려 수많은 폐단을 일으키는 점이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율법의 폐해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3.율법의 역할

율법은 인간에게 어떠한 역작용을 하는가? 바울은 다음의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죄를 알게 해준다.
바울은 율법을 알기 전에는 죄를 몰랐었으나 율법을 알고 부터는 오히려 죄를 알게 되어 자신이 죽게 되었노라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7:9-10)

왜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성품은 법을 알게될 때까지는 우리를 안심시키고 가책도 일으키지않고 평안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법을 알게 되면 그 죄성의 정체가 발각이 되어서 마음도 괴롭게 되고 양심의 가책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려야 할 법이 도리어 죽게 만든다는 탄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은 하나의 거울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은 사람이 거울을 보기 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즐겁게 뛰어놀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우연히 거울을 보여주면 자기 얼굴이 더러운 것을 알고 는 부끄러워지고 챙피한 생각이 나서 숨고만 싶어지는 것입니다. 

또 율법은 청진기와도 같습니다. 병자는 자신이 병이 있는 줄을 모를 때는 즐거워하다가 청진기로 진찰한 결과 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더 걱정과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게게 죄성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율법을 통하여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이 탐내지말라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탐심이 죄인줄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7:7) 
누구나 마찬가지 겠지요...탐심쯤이야 무슨 죄이랴 싶지만 율법은 분명히 <탐내지 말라>고 명하고 있으니 탐내는 것 자체는 이미 죄를 지은 것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율법은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죄의 성품을 알게 해 줌으로써 우리를 오히려 슬프게 만들고 탄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뜻보면 인간에게 큰 폐해같지만 알고 보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율법이라는 거울이 없었다면 얼굴에 지저분한 것이 묻은 줄도 모르고 언제까지나 뛰어 놀다가 나중에 큰낭패를 당할 것이고 율법이라는 청진기가 없었다면 건강한 줄 알고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병이 중하여 져서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싫어도 거울을 가끔은 보아야 하고 싫어도 의사의 진단은 받아야 하듯 율법을 알아야 자신의 영적건강 상태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율법은 온 인류를 심판아래 있게 한다.

바울은 율법이 온 인류를 심판아래 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잘못하면 인류를 심판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율법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율법은 전항에서 살펴보았듯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사람이 능히 지키면 살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거울이 문제가 아니라 더러운 것이 묻어있는 사람이 문제이고 청진기가 문제가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있는 곧 의롭고 선하고 거룩한 존재라면 - 율법이 인간에겐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1:9)

비유를 들자면 어느 나라 국민이 아주 선량해서 절대로 남의 것에는 손을 대지 않는 국민이라면 구태여 그들에게 <도적질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량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기에 수많은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법이 필요하도록 되어있는 부패한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3)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율법이 하는 일중에 긍정적인 기능은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찾아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몽학선생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24)

몽학선생이란 아이들의 취학을 준비시켜주는 선생입니다. 말하자면 오늘 날의 유치원 정도의 학교선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치원 선생은 아이들을 정식학교에 들어가서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율법은 몽학선생일까요?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결코 완전한 자가 아니고 심히 무능력한 자임을 깨닫게 되어 자신의 힘으로는 능히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삶을 살 수 없고 오직 구원자가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몽학선생인 것입니다.

율법의 이러한 기능은 거울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거울은 사람의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을 알려주어서 물로 나아가서 씻게 하는 것입니다. 또 청진기로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청진기는 병을 알려주어서 의사를 치료를 받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인간에게 부담만 주는 역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요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순기능도 있는 것입니다.

 


4. 율법의 유효기간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영원하진 않습니다. 물론 율법의 본질적인 정신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써 영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성문율은 영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율법의 유효기간을 말합니다.
"믿음이 오기전에 우리가 율법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갈3:23)
 
이말씀을 보면 믿음이 올때까지가 율법의 유효기간인 것입니다. 믿음이 온 후에는 율법은 더이상 효력이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율법이 언젠가는 변역될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직분도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2)

율법의 변역은 애초에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새겨주신 십계명 돌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언약을 파기하는 것을 보고는 그 돌판을 내어 던져 깨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다시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돌판을 받아 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첫언약의 폐기가 상징적으로 예고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내산의 첫 언약은 흠이 있었으므로 반드시 파기되고 새 언약을 수립했어야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첫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첫것은 낡아지게 하는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8:7-13)

그러면 믿음이 올때까지만 있을 것이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우선 시대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 율법으로 인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가르치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믿음의 때가 오기전에는 율법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전항에서 살펴보았듯히 <정죄의 기능>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속한 사람들에게 죄를 지적해주고 사망을 선고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겐 아직도 율법은 서슬이 퍼런 심판자인 것입니다.

물론 율법을 받은 적이 없는 이방인들은 율법의 대행자라할 수 있는 <양심>에 의해 그런 정죄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율법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5. 율법요구의 완수

율법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의 준수이고 또 하나는 비준수자의 죽음입니다.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사람은 죄인이 되는 것이므로 당연히 죄의 값인 죽음의 형벌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자라 하였음이라.(갈3:10)

한마디로 인류는 율법의 저주아래서 죽음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비참한 신세였던 것입니다. 오직 살길이 있다면 그 저주를 풀어주는 것 밖에는 없으나 인류중 누가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일이란 율법의 요구인 죽음을 대신 당해줄 일인데 사람은 모두 죄인인지라 그 일을 할 만한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죄와 흠이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만이 이 일을 할 적격자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구약의 성문율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케 하시겠다는 말씀이고 구약의 성문율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루시겠다는 말씀은 완수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완수하시겠다는 뜻일까요? 그 요구를 말입니다. 곧 율법의 요구인 죽음을 죽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실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19:30)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과연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짐을 대신 지시고 율법의 심판을 대신 받아 죽으심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바울이 하는 말은 율법의 요구인 죽음을 죽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셔야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율법의 심판을 대신받아 죽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은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요구는 완수 되어진 것>입니다.

 


6.신자와 율법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해 요구가 완전하게 지불되었으므로 신자에 대한  정죄,저주,심판의 기능이 소멸되었습니다. 율법이 죄인을 향해 쏜 화살은 죄인 앞으로 대신 뛰어든 예수 그리스도를 맞혀서 죽게 말았으므로 더이상 죄인을 향한 여분의 화살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

이렇게 된 원리는 율법이 이제는 신자에게 있어서는 죽은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2:19) 율법에 대하여 죽어야 하나님께 대하여 산다는 논리는 참으로 놀라운 진술입니다.

바울은 또한 신자는 율법에서 벗어났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7:6)

신자와 율법의 관계에 대하여 또한 바울은 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남편의 법에 매여 살지만 그 남편이 죽으면 그법에서 벗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7:2-3) 
신자는 율법이라는 남편에게 매여 살았지만 그 남편이 죽은 이상 이제는 그 법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라는 새 남편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폐해진 율법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하지 말라고 엄명하고 있으며 계속 율법아래 있고자 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다시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갈2:18)
 
"율법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심지어 율법적인 날과 달과 절기의 준수도 금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
 
그리스도인은 바울의 다음 고백처럼 이미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요구를 이미 이루어드렸기 때문에 다시는 율법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7.이제는 성령의 법!!!

바울은 지금까지 율법이 이미 지나간 법임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신자들은 이상한 의문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법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찌될 것인가? 무법천지가 되는건 아닐까? 이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율법폐기론이다, 도덕률폐기론이다 하며 지레 걱정들을 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어졌다고 염려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행위를 규제하는 법이었지만 그 보다 더 강력한 인간의 마음을 규제하는 새로운 법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일컬어서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케 하려고>오셨다고 했는데 바로 성령의 법이야 말로 <온전해진 율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 3장에서 율법과 성령의 법을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습니다.
ㄱ.돌비에 새겨짐....심비에 새겨짐.
ㄴ.먹으로 쓴 것.....영으로 쓴 것.
ㄷ.죽이는 것......살리는 것.
ㄹ.정죄의 직분....의의 직분.
ㅁ.없어질 영광....길이 있을 영광.
ㅂ.모세로 인해 주어진 것....그리스도로인해 주어진 것.
ㅅ.덮여진 수건....벗겨진 수건.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 성령의 법이 주어지는 시대를 예고하면서 말하기를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렘31:33)

이 외에도 율법과 성령의 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ㄱ.타율적인 법...자율적인 법.
ㄴ.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법....교회에게 주어진 법.
ㄷ.자기 노력으로 지키는 법...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켜지는 법.
ㄹ.자기를 위한 법...하나님과 이웃사랑을 위한 법.

성령의 법은 <그리스도의 법>이라 불리우기도하고 <사랑의 법>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법을 지키면 기존의 모든 율법은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피차 사랑의 빚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그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8-10)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5: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육체의 종 혹 죄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종 사랑의 종이 되어 자신을 더욱 깨끗케할 뿐만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45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24 안식년, 희년 웹섬김이 10-29 4356
2223 성도의 견인의 교리 웹섬김이 10-29 3414
2222 문 닫는 교회의 유형 15가지 웹섬김이 10-18 2979
2221 성경 해석의 다섯가지 원칙 웹섬김이 10-18 4606
2220 ‘설교 잘하는 방법’ 웹섬김이 10-18 2806
2219 바울의 율법관 웹섬김이 10-18 3949
2218 바울의 회심후 아라비아의 행적 웹섬김이 10-18 5789
2217 십자군 전쟁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교훈 웹섬김이 10-18 3762
2216 십자군 전쟁 웹섬김이 10-18 4907
2215 [3]목회적 시각으로 본 삼위일체 웹섬김이 10-18 2953
2214 [2]목회적 시각으로 본 삼위일체 웹섬김이 10-18 3116
2213 [1]목회적 시각으로 본 삼위일체 웹섬김이 10-18 3252
2212 원죄의 본질과 정의 웹섬김이 10-18 2902
2211 십계명 비교(기독교, 천주교, 유대교) 웹섬김이 09-30 3363
2210 심판의 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웹섬김이 09-30 2890
2209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진짜 이유 웹섬김이 09-30 3073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