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2-05 20:07
[1]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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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240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김효성 목사

 

머리말

본서는 저자가 이.전에 쓴 현대교회문제(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 개정증보판(옛신앙, 2001), 현대교회문제 자료집(옛신앙, 2004), 및 현대교회문제, 제3판(옛신앙, 2007)에 있는--그 중 일부는 지금은 절판된--자료들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한 목적은 오늘날 교회들 속에 널리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임을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좀더 잘 알리기 위함이다. 저자는 이로써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교인들이 바른 분별력과 지식과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생활을 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본서나, 저자가 쓴 이전의 책들은 현대신학을 학문적으로 논한 것이 아니라,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적이라는 사실을 자료에 근거해서 확증하고 비평하려는 책이다. 저자는 목회자로서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자료들에 인용된 일차적 자료들을 다 확인할 수 없었으나,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자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누가 자유주의 신학이 없다든지 그것이 이단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무지하든지 사실을 은폐하려는 자일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라는 것이 확증되었다면, 저자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현대 교회는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의 포용, 낙태와 동성애의 포용,교리적 분별력 없는 교회연합운동, 우상숭배적 천주교회와의 친교, 잘못된 선교 개념, 심지어 종교다원주의적 경향, 말씀 중심의 옛 길을 벗어난 은사운동, 보수적 신앙을 가졌다는 목사들의 타협적 태도,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의 안수, 세속적인 교회음악과 예배 방식의 도입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현대 교회에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직시하고 교회를 바르게 세우려는 노력이 주의 종들에게 얼마나 있는지 매우 염려된다. 주께서는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편지하게 하시면서 교회들의 문제들을 지적하셨다(계 2-3장). 바른 교회의 건립은 주께서 원하시는 바이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서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셨다"고 증거하였다(엡 5:26-27).

오늘날 교회의 정로(正路)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보수하고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천주교회를 포용치 않는 것이다. 또 참 기독교는 은사 체험을 추구하지 않고 신구약 66권의 성경 말씀으로 만족하며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옛 길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고 옛 길, 바르고 선한 길을 구해야 한다.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오늘날이 엘리야 시대 같고(왕상 18:21-22) 미가야 시대 같고(왕상 22장) 예레미야 시대 같을지라도(렘 5:1),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생각지 말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불변적 말씀인 성경이 무어라 말하는지를 생각하고 바른 길을 구해야 하며, 비록 그 길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고 외롭고 힘든 길일지라도 그 길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신구약성경 66권에, 그리고 오직 거기에만 밝히, 충분히 계시되어 있다.

저자는 이 글들이 오늘 시대에 교회들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여 교회의 정로(正路)를 지키고 참 교회를 보존하고 설립하고 회복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참고와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내용 목차

 1. 비평의 필요, 근원, 분류

 2. 기독교와의 차이

 3. 이단 사상의 예들

 4. 교회에 끼친 영향

 5. 윤리적 부패

 6. 성경적 반박 
 

 

 

1. 비평의 필요, 근원, 분류

현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학의 변질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말한다. 다수의 현대 신학들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고백해온 하나님의 진리들을 버리고 표류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틀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자유주의 신학은 한마디로 이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역사적 대교단들의 신학교들은 이런 자유주의 신학 사상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평의 필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평이 필요한 까닭을 간략히 생각해보자.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회 속에 들어온 가장 무서운 이단적, 적그리스도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마 7:1)은 성도 상호 간에 사사로이 판단하고 비평하지 말라는 뜻이지, 주의 종들이 교리적 이단들을 비판하지 말고 묵인하고 포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였고(마 7:15),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라"고 하였다(요일 4:1).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이단에 대해 명확히 비판하였고, 디모데후서 2:17에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이름을 들며 비판하였다. 유다서 3절은 이단에 대하여 힘써 싸우라고 교훈하였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이단이며 적그리스도적 사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주의자를 포용치 말아야 하고 또한 그를 포용하는 자들도 책망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면 신앙생활이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생활은 연결되어 있다. 경건한 신앙 사상이 부패하면 경건하고 도덕적인 삶도 부패할 것이며 그러면 교인인지 세상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교회는 쇠잔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왜 유럽이나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쇠잔해졌는가 하는 한 이유이다. 교회가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 죄 씻음을 받고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는 감격이 없다면, 사람이 구태여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교회에 진리가 있고 기쁨과 감격과 새 생활이 있어야, 교회에 나올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셋째로,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임을 바로 알아야 우리 주위의 교회들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선택하고자 할 때 아무 교회나 출석하지 않고 바른 교회를 찾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모든 성도는 비교적 순수한 교회에 속할 의무와 특권이 있다. 참 성도는 자유주의적 교회에 속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회협의회(WCC나 NCC)에 속한 교회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나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측) 등에 속한 교회들이 과연 건전한 교회들인가 살펴야 한다. 참된 성도들은 성경적 신앙을 지키는 순수하고 건전한 교회에 속해야 한다.

교회 소속 문제만 아니라, 교회연합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성경적 보수 교회들이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교회들과 함께 주의 일을 할 수 있는가? 주께서 그런 일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외국 교회들과의 교류나 해외 선교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보수적 교회들은 보수적 교회들이나 단체들과만 협력해야지,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단체들과 협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활동들은 조만간 부패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왜 처음에는 건전하게 시작되었던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점점 변질되었는가 하는 주요한 한 이유이다.

사탄은 교회들로 하여금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은근히 받아들이게 하고 또 목사들의 사상을 변질시켜 마침내 교회 전체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는 사탄의 이러한 교묘하고 치밀한 배교(背敎) 운동을 분별하고 물리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이단적이며 적그리스도적 사상인가를 잘 분별하고 비판해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대처해야 한다.

 

 근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비평적 연구 방식에서 나왔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했었다. 그러나 중세가 무너지고 개인의 자유와 인간 이성의 권위를 발견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비평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성경의 문학적, 역사적 비평, 즉 소위 '고등비평'이라 불리는 성경의 잘못된 연구방식이다. 또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철학자 칸트의 사상은 지성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과학의 발달이나 촬스 다윈의 진화론 등의 사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의심과 불신앙의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고 성장하였다. 
 

 

  분류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의 쉴라이엘마허와 릿츨과 하르낙 등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던 불신앙적인 신학 사상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밥죤스 대학교의 스튜어트 카스터(Stewart Custer)는 그것들을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는 본서에 인용된 인물들임.)

1. 구(舊)자유주의--*Adolf Harnack, *Harry E. Fosdick, Henry P. Van Dusen, L. Harold DeWolf, Nels F. S. Ferre

2. 후(後)불트만 학파--*Rudolf Bultmann, Hans Conzelmann, Erich Dinkler, Ernst Käsemann, Günther  Bornkamm,  Ernst Haenchen, Reginald H. Fuller

3. 해석학파--Gerhard Ebeling, Ernst Fuchs, James M. Robinson

4. 불트만 급진 좌파--Herbert Braun, Manfred Mezger

5. 편집 비평학파--Willie Marxsen

6. 급진파--*Dietrich Bonhoeffer

7. 과정 신학--Schubert Ogden, John Cobb, Charles Hartshorne, Norman Pittenger

8. 세속화 신학--Paul van Buren, Harvey Cox, John A. T. Robinson

9. 신 죽음의 신학--Thomas J. J. Altizer, William Hamilton

10. 진화론 신학--*Pierre Teihard de Chardin

11. 신정통주의--*Karl Barth, Emil Brunner, Karl Heim,

    [영국] *C. H. Dodd, Peter T. Forsyth, [미국] *Reinhold Niebuhr, Richard Niebuhr, William Hordern, *Paul Tillich,  [스칸디나비아] Anders Nygren, Gustave Aulen,

12. 독립파--Helmut Thielicke, Ethelbert Stauffer, *Joachim Jeremias, Jürgen Moltmann

13. 판넨베르크 학파--*Wolfhardt Pannenberg, Rolf Rendtorff, Trutz Rendtorff, Ulrich Wilckens, Klaus Koch, Martin  Elze, Dietrich Rössler

14. 구속사 학파--*Oscar Cullmann, W. D. Davies, Werner Kümmel, Otto A. Piper, Eduard Schweizer, Alan Richardson, A. M. Hunter

15. 신(新)자유주의--Millar Burrows, Floyd V. Filson, George E. Wright, Carl E. Braaten, Paul Minear, *Krister Stendahl, Charles C. Anderson, Hugh Anderson

 


 

2. 기독교와의 차이

성경적 기독교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본질적 이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이것은 1920년대에 미국에서의 소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 간의 신학적 논쟁’에서 잘 드러났다. 미국 북장로교회의 보수적 지도자이었던 메이천은 당시의 논쟁을 이렇게 표현했다.

특히 종교의 영역에서 현대는 싸움의 시대이다. 항상 기독교로 알려져 왔던 저 위대한 속죄적 종교가 전혀 다른 형태의 종교 신앙과 싸우고 있는데, 이 종교 신앙은 전통적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더욱 파괴적일 뿐이다. 현대의 이 비(非)속죄적 종교는 ‘현대주의’ 혹은 ‘자유주의’라고 불린다.1)


자유주의 잡지인 크리스챤 센츄리 1924년 1월 3일자 사설은 두 파의 차이를 더욱 인상적이게 이렇게 말했다.

근본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요, 현대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다른 한 종교이다. 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가는 오는 세대들을 위해 우리 세대에 의해 아마 해결될 문제이다. . . . 근본주의자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현대주의자의 하나님은 다른 한 하나님이다. 근본주의자의 그리스도는 한 그리스도요, 현대주의자의 그리스도는 다른 한 그리스도이다. 근본주의의 성경은 한 성경이요, 현대주의의 성경은 다른 한 성경이다. 교회, 하나님의 나라, 만물의 종말--이것들이 근본주의자들에게와 현대주의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어느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어느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그리스도인가, 어느 성경이 기독교의 성경인가, 어느 교회, 어느 하나님의 나라, 어느 구원, 어느 종말이 기독교의 교회,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 기독교의 구원, 기독교의 종말인가? 미래가 말해 줄 것이다.2)

 

   자유주의에 의한 기독교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한 경험 혹은 생활이며, 교리는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을 한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리는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교리를 경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로부터 볼 수 있는 태도이었다. 19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쉴라이엘마허는 말하기를, 종교는 감정이나 직관에 근거하며, 종교의 핵심은 이성적 증명과 토론이 아니고 감정이며 항상 그러하였고, 종교인에게 하나님은 하나의 경험,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라고 했다. 19세기 중엽, 릿츨도 좀 다른 각도에서이긴 하지만 말하기를, 종교는 이론적이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은 사람의 가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이며, 구원받는다는 것은 새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19세기 말, 하르낙도 주장하기를, 사람이 스스로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라고 했다.3) 하르낙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했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4)

이들은 모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와 별개의 경험 혹은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들에 의하면, 기독교 교리, 더 정확히 말하여 전통적 교리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고 현대의 철학적, 과학적 도전 앞에 변경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윌리암 호던은 자유주의 신학의 기본적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주의의 방식은 기독교 신학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함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기독교계의 초기 신조들이 작성되었던 이후 세계는 급격히 변해 왔고 그래서 그 신조들은 현대인에게 낡고 비실제적이게 들린다고 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현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사고 방식들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해리 E. 포스딕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 즉 ‘영속적 경험들’을 표현해야 하고, 이것들을 과거에 표현되었던 ‘변하는 범주들’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예를 들어 기독교의 영속적 경험은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으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악을 파괴하고 선을 세우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범주로 묘사되어 왔고, 우리는 더 이상 이 낡아빠진 범주[재림]를 보존할 수 없지만 여전히 이 고대의 사고 방식이 표현하려고 했던 진리를 믿을 수 있다고 했다.5)

메이천은 자유주의 신학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현대 자유주의가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다. 기독교의 특수한 점들, 즉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기독교 교리들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救贖)의 교리들에 대해 과학적 반론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는 이 특수한 점들을 단지 종교의 어떤 일반 원리들의 시대적 상징들로 생각하며, 그 일반 원리들을 건지려고 하고, 또한 그것들을 ‘기독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6)

 

 성경에 의한 기독교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어떤 경험이나 생활이 아니고 교리에 근거한 경험 혹은 생활이며, 또한 기독교 교리는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기독교는 교리(敎理, doctrine)에 근거함

기독교는 어떤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교리는 기독교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여기에서 교리란 단순히 진리의 진술을 의미한다.

기독교가 어떤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기원을 고찰함으로써 확인된다. 최초의 기독교 전파자들은 단순히 어떤 신비적 경험이나 하나의 생활 교훈을 전하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전했는데, 이 사실들의 설명이 곧 교리이다.

예를 들어,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2-23에서 그가 전파한 내용을 표현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했고, 고린도전서 15:3, 4에서 복음의 요지를 언급할 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속죄의 교리인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그 시초로부터 교리적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교리가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다.

교리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은 바른 교리를 보수하고 이단을 배격하라는 성경의 교훈에서도 확인된다. 로마서 16:17, "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원문 직역). 디모데후서 1:13,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의 본을 굳게 붙들라"(원문 직역). 요한일서 4:2, 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고백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원문 직역). 성경의 이러한 교훈들은 바른 교리가 본질적임을 전제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임

더욱이 기독교 교리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이 사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불변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거짓말과 거짓 증거를 미워하시고 정죄하신다. 출애굽기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잠언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또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시편 102:26-27,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기독교 교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들에서도 확증된다. 첫째로,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에 기초하였다. 고린도전서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러므로, 만일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면, 그것들은 확실하고 불변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로,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의 기적들로 확증되었다. 사도행전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표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확증하는 표임을 보인다.

셋째로, 기독교 복음은 목격한 증인들의 증거들에 의해 확증되었다. 요한복음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순교의 피는 그들의 목격자적 증거들의 최후 확증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진리와 교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은 기독교 복음의 기본적 성격들에 의해서 확증된다.

덧붙여, 성경에는 기독교 진리의 확실성과 불변성이 분명한 말로 선언되어 있다. 갈라디아서 1:8-9,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 즉 사도 시대의 교회들이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기독교 복음은 명확하고 고정된 내용이다. 아무도 그 내용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그 고정된 내용을 바르게 파악하고 확신하고 후시대에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성경적 기독교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에 대한 본질적 개념에 있어서 서로 다른 대답을 하고 있다. 두 사상 체계의 차이는 실로 심각하다. 성경적 기독교는 교리를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들을 경시하고 쉽게 부정하거나 재해석한다. 여기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異端性)이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것이나 그러한 포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대단히 큰 실수요 불성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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