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2-05 20:31
[13]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916  

 11. 보편구원론적 경향을 가진다.

열한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보편구원론적 경향을 띤다. 보편구원론이란 신자나 불신자나 결국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는 이단적 사상이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460)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해 모든 인간이, 심지어 가장 쓸데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형제이며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런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461)

씨 에취 다드(C. H. Dodd)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참으로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과 행위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과 같음을 참으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그와의 연합으로 이끄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떠나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462)

후기 서신들에서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왜냐면 내적 필요에 의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를 포함해야 하며 화목된 우주의 중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463)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도 비슷한 사상을 보인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기독교 보편주의가 있다. . . . 그것은 창조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화목된다. 그것은 종말론적 완성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이신 하나님께 복종된다.464)

하나님의 선택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한다.465)

우리는 모든 구원역사가 처음부터 보편주의적 방향을 띤다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는 노선’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 이르며, 그 다음에는 전 세계에 이른다. 비록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도, 구원 역사는 여전히 선택 원리에 따르지만, 이제 선택은 이전보다 더, 단순히 구원을 선택된 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원을 세계에 선포하는 특수 사명을 위한 선택을 의미한다. 그것이 모든 구원 역사의 길이다. 즉 보편주의는 그것의 목표이며 집중(concentration, 선택)은 그것의 실현의 수단이다. 여기에서 그 길은 심지어 비기독교 종교들, 더 잘 표현하면, 성경 밖의(extra-biblical) 종교들에게도 열려 있다. 왜냐한면 유대교는 물론 좁은 의미에서 구원 역사에 속하기 때문이다.466)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죽음에서, 예수는 하나님과의 분리의 결과, 즉 죄에 대한 형벌을 단지 그의 백성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짊어지셨다. 그러나 그를 통해 하나님이 버리신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해 극복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홀로 그리고 소망 없이 죽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그 내용인 새 생명은 이미 예수 안에서 나타났고 그 자신이 그 새 생명에 장차 참여할 것이라는 소망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467)

창조적 사랑은 자유에서 나오며 세상에서의 자유의 긍정과 창조로 향한다. 만일 인류의 통일이--그것이 역사의 목적인데--어느 날 실상이 된다면, 그것은 이 사랑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468)

물론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효과는 이제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제부터는 아무도 더 이상 홀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죽음에서 예수의 죽음과 교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적 죽음과 예수의 죽음 간의 이 교통은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의미의 본질적 내용이다.469)

 <성경적 반박>

그러나 보편구원론은 명백히 비성경적 이단 사상이다. 신구약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궁극적 상태와 처소가 언급되어 있다. 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다(마 7:13-14). 또 어떤 이가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다(눅 13:23-24). 최종적으로 멸망할 자들이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는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또 요한계시록은 회개치 않은 악인들은 장차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을 밝히 증거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20: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12. 사람의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열두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470)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不滅性)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471)

불멸성(不滅性)이라는 상징이 이 유행하는 미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곳에서, 기독교는 그것을 근본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에의 참여는 ‘죽음 너머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의 자연적 특질도 아니다.472)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한다.473)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밝히 증거한다. 사람의 영혼의 불멸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묘사이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전 3:20-21; 12:7). 또 성경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창 15:15; 25:8). 이것은 육체적 죽음 후 영혼의 계속적 존재를 증거한다.

둘째는,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이다. 시편 73:24은 성도가 죽은 후 영광 중에 영접될 것을 말한다. 주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은 후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셨다(눅 23:43). 특히,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증거한다. 16:22-23,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셋째는, 부활에 관한 말씀이다. 성경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증거한다. 사도 바울은 의인들과 악인들의 부활을 믿는다고 증거하였다(행 24:15). 죽은 자들의 부활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는,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1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열셋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 사건 즉 비록 그것이 역사 안에서의(in) 유일한 실제적 사건이지만 역사의(of) 한 실제적 사건이 아닌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들은--물론 그것이 그들의 확신을 파괴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재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474)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더욱 악하게 주장하기를, “기독교 교리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한다.475)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476)

여하튼,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처럼 그[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했다. 그들은 그가 세상의 심판자로서 구원과 저주를 내리려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人子)로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였다.

요한에게는 예수의 부활, 오순절, 및 예수의 재림(파루시아)은 한 동일한 사건이며,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의 상징으로 본다.477)


 <성경적 반박>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복된 소망의 진리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주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명백히 증거하였고, 특히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서 그는 매 장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후서 1:7-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였다. 베드로후서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사도 요한은 주 예수의 재림과 그 전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책을 저술하였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또 요한은 자신의 재림을 증거하신 주의 말씀에 간절히 화답하는 말로 그 책을 마쳤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도신경에 고백된 대로 모든 정통적 기독교회가 고백하는 성경적 진리요 복된 소망이다. 주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악한 이단이다.

 


      14.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열넷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물론 몸의 부활이라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말한다.478)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함은, 우리가 또한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 죽은 자의 부활 개념을, 사람의 모든 경험에 감춰진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일종의 초자연적 지식으로 보는 자에게, 그것은 사람의 경험에 낯설은 요소로 계속 남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의 자기 이해에서의 그의 상황의 표현으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비유로서의 그것의 독특한 성격에서일 뿐이다.479)

 <성경적 반박>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은 성경이 말하는 복된 소망이다. 의인들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며 악인들은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분명히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또 그는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을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다(마 22:29).

사도 바울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었다.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논증하였다. 고린도전서 15:12-13, 51-5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15.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열다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마지막 심판과 지옥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기독교 안에 있는 감상적인 도덕 의식이 아마 심판 개념의 중요성을 일소했을 것이다--비록 문자주의적 정통주의가 그 일소를 정당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지만. 기독교인들이 천국의 가구(家具)나 지옥의 온도에 대한 어떤 지식을 주장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480)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定罪)’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말은 신학 용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으로부터 결코 잘려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481)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482)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옥의 개념은, 수많은 심판의 그림들에서 묘사된 독특한 특징에 있어서, 확실히 공상적이다. 이러한 그림들이 지옥의 고통에 관해 말하는 바는 매우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으로 결정적 특징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제외되는 것은 끝없는 구덩이의 전통적인 묘사들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제외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옥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이 어디냐 하는 ‘장소’의 문제는 부적당한, 우리에게 폐지된, 사고 방식에서 나온다.483)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 밝히 증거한다. 주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분명하게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13:39-40,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교리이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특히 마가복음 9:43-48에서 그는 지옥에 대해 밝히 증거하셨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43절). 그 외에 그는 마태복음 25:41, 46에서도 '영영한 불' '영벌'에 대해 증거하셨다. 그러므로 아무도 주께서 말씀하신 지옥 교리를 부정하거나 변경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해설하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증거하였다. 로마서 2:5-6,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또 그는 데살로니가후서 1:9에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였다. 히브리서 6:1-2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독교의 초보적 교훈에 속한 것으로 말하며 그것을 수정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

요한계시록 20:11-15은 마지막 대심판에 대해 증거하며, 또 요한계시록 21:8은 악한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것을 증거하였다. 마지막 심판과 지옥에 대한 교리는 참으로 두려운 교리이지만, 분명히 성경적 교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인쳐진 교리이다. 이 교리를 부정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분명히 이단이다. 
 

 

      16. 성경이 윤리의 규범임을 부정한다.

열여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이 윤리의 규범임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유의 은사에 내재한 명령대로 행동할 때 선을 행한다. 그는 그의 자유에 반대되는 법에 복종할 때 악을 행한다. . . . [그러나] 어떻게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행위에 대해 지침과 기준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자유인은 하나님의 가장 구체적인 명령에 복종한다. 왜냐하면 이 명령을 통해 인간의 자유가 권위적 형태를 취하고 인간이 직면하고 측정되는 바 그 명령이 확고하게 되기 때문이다.484)

선악의 문제는 결코 사람이 일련의 규범들로서 하나님의 권위적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대답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선하고 악한 행위들의 법전(法典),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잣대로서 사람에게 있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부과되지 않는다.485)

디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확립된 규범들의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의 각기 다른 상황마다 새롭고 다른 어떤 것이며, 이 이유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를 늘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486)

[하나님의 계명은] 역사적이며 시간적인 것과 대조된 보편타당하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487)

 <성경적 반박>

그러나 성경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하고 유일한 규범이라는 것은 모든 개신교회의 기본적, 공통적 신념이다. 모세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성경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정확무오한 규범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들의 기본적, 공통적 신념이다. 이것이 신구약성경을 사람들에게, 특히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주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18-19). 그는 계명이 우리의 행위 기준이 됨을 증거하셨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고 말했다(딤후 3:16-17). 또 그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우리의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들을 지키라"(원문 직역)고 교회에 편지하였다(살후 2:15).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의 윤리적 규범성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17. 낙태와 안락사를 용납한다.

열일곱째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는 교회들은 낙태와 안락사를 용납한다. 그것은 신학적 변질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1972년 미 연합감리교회(UMC)는 총회에서 발표한 사회신조를 통해 낙태가 더 이상 범죄가 아니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것을 범죄 목록에서 제거하였다.488)

미 연합그리스도교회(UCC)는 공식적으로 낙태를 지지한다. 또 그 교단은 1991년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하고 자살을 허용하는 최초의 대교단이 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489)

1986년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총회는 낙태에 관하여 281대 266으로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pro-choice)는 입장을 재선언했다.490)

<성경적 반박>

그러나 낙태는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범하는 죄, 즉 살인죄이다. 출산 이전의 인간 태아는 인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 태아는 ‘아이’라고 불린다. 누가복음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브레포스 βρέφος, child)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2) 또 태아를 가리킬 때 인칭대명사가 사용된다.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491) (3) 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출생하기 전에 그를 택하시고 부르신다. 갈라디아서 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4) 특히, 출애굽기 21:22-25은 명백히 낙태가 살인임을 증거한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 . 갚을지니라.

본문에서 ‘낙태케 하였다’는 원어(웨야체우 옐라데하)는 ‘그 여자의 아이들이 나온다’는 뜻이다(KJV). 이것은 유산(流産) (NASB)이 아니고 조산(早産)(NIV)을 의미한다. 낙태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쉭켈 (유산[流産]하다)과 네펠 (유산, 낙태)이다. 그러므로 ‘다른 해가 없으면’이라는 구절은 엄마에게나 아기에게나 다 적용된다.492) 다시 말해, 만일 조산된 아기가 죽었으면 살인죄가 적용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태아는 인간 생명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낙태는 분명히 살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도, 인간 생명이 임신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의학자들의 일반적 신념이다.493) 유전학적으로도, 수정란은 정상적 인간의 특징을 가진다.494)

그러므로 낙태는 성경적으로나 의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태아 살해의 죄악이다. 시작된 생명을 죽일 권한은 어머니나 의사나 누구에게도 없다. 낙태는 살인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낙태를 용납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잘못된 일이며 배교의 증거이다.

 

      18. 동성애를 용납한다.

열여덟째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는 교회들은 동성애를 용납한다. 이것도 신학적 변질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1968년, 미국에서 메트로폴리탄 공동체교회 세계협회라고 불리는 한 교단이 활동적 동성애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오늘날 그 교단은 330교회들에 30,000명 이상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997년 2월, 주로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이 협회는 남캘리포니아 에큐메니칼 협의회에 가입되었다.495)

1972년, 미 연합그리스도교회는 윌리암 존슨(William Johnson)의 안수를 허락했는데, 그는 대교단에 의해 안수받은 첫 번째의 공공연한 동성애자이다.496)

1980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회(UUC)는 공공연히 동성애적이고 양성애적인 인물들을 지도적 지위들에 채용하기로 결의했다.497)

1980년 미 연합그리스도교회는 현행적 남녀 동성애자들이 목사로 사역하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한 최초의 대교단이 되었다.498)

1984년 유니테리안 보편구원교단(UUF)은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을 인정한 최초의 주요 교단이 되었다.499)

1985년, 2년마다 모이는 미 연합그리스도교회 총회는 동성애자들을 목사로 허락하는 것을 압도적 표수로 결정하였다.500)

1988년, 캐나다 연합교회는 캐나다에서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를 합법화한 최초의 교단이 되었다.501)

1988년, 미 감독교회 감독 죤 쉘비 스퐁은 죄 가운데 삶이라는 책 (198쪽)에서 ‘나는 남녀 동성연애자들의 짝들에 대한 교회의 축복은 불가피하고 옳으며 분명한 선(善)이라고 간주한다’고 썼다.502)

죤 스퐁 감독은 1990년 미국에서 최초로 공공연한 ‘남자 동성애자’ 신부의 임직식을 거행하였다.503)

1992년 5월, 캐나다 연합교회의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회는 공공연한 동성애자 팀 스티븐슨을 목사로 안수하였고, “그리스도인의 상호간의 위탁의 진정한 표현들로서 동성간의 언약들의 타당성을 선언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504)

1993년,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The Disciples of Christ) 총회는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목사를 대표자로 선출했다.505)

1993년 국내 및 국제 종교 보도(NIRR)에 의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감독교인들의 75퍼센트는 현행적 동성애자들이 여전히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506)

1996년 7월, 유니테리안 및 보편구원 회중협회(UUAC)는 동성 결혼의 합법적 인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507)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현행적 동성애자들의 안수를 요청한 최고위급 성공회 교인이며 동성애자를 거절하는 것이 “거의 근본적 신성모독”이라고 경고했다.508)

1997년 7월, 영국의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는 ‘실제적 동성애자들’을 그들이 청빙된 교회들의 목사로 받아들이기로 동의하였다.509)

1998년, 미 연합감리교회 재판국은 동성애 결혼식을 집례한 일로 고소된 지미 크리치 목사의 재판에서 13명 배심원 중 8명은 크리치 목사의 유죄를 인정했으나 최소한 9명이 유죄를 인정해야 유죄평결을 내릴 수 있는 교회법에 따라 크리치 목사의 장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렸다.510)

1998년 초, 240명의 연합감리교 목사들이 그들이 요청을 받는다면 동성의 결합들을 집례하겠다고 말하는 성명서들에 서명하였다.511)

1999년 1월 16일, 한 여성 동성애 부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1500명의 사람들 앞에서 95명의 연합감리교단 목사들에 의해서 ‘축복’을 받았다.512)

1999년, 미국 침례교회에는 동성애자들의 참여를 격려하는 ‘환영하고 찬성하는 침례교인 협회’에 속하는 37개 교회들이 있다.513)

2000년 2월 12일 미국 감독교회의 올림피아 교구의 세인트 마크 대성당에서는 공공연한 동성애자 로버트 테일러 주교를 수석주교로 임명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 의식에는 200명에 달하는 교구 대표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수백 명의 성직자,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투투 대주교도 참석했다.514)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 상설재판국은 2000년 5월 동북부 대회 상설재판국의 판결에 불복해 올라온 상소 사건을 다루면서 목사의 동성애자 ‘결합식’(union) 주례를 인정하며 동성애자 목사후보생을 인정하는 대회 상설재판국의 판결을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515)

2001년 1월, 캐나다의 토론토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에서 두 쌍의 동성 짝이 1,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합법적으로 결합식을 올렸다.516) 합법적 동성 ‘결혼식’이 행해진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한다.517)

2001년 3월,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동성 커플을 위한 축복 의식을 금하는 헌의안을 기각하였고, 성직자들은 그런 의식들이 결혼식과 혼동되지 않는 한 그것들을 자유로이 집례할 수 있게 되었다.518)

2001년, 동성애 교단인 세계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협회의 에큐메니칼 임원인 그윈 깃보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교회협의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519)

2001년, 미국 콜로라도 교회협의회는 동성애적인 메트로폴리탄 커뮤니티 교회 세계협의회(UFMCC)를 받아들였다. 이 교단을 받아들인 주(州) 협의회는 다섯 개라고 한다.520)

캐나다 성공회 뉴웨스트민스터 관구는 2001년 6월 1일 밴쿠버 카플리아노 대학에서 열린 대회에서 2,226명의 총대들 중 56.5%의 찬성으로 교회 안에서 동성애 결합을 축복할 것을 결의했다. 이 관구는 동성애 결합을 인정하는 캐나다의 첫 번째 관구가 되었다.521)

2003년 5월 4일, 미국 미네소타주 성바울시의 글로리아 데이 루터교회는 그 교회 목사들이 ‘동성 결합식’을 축복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표결하였다.522)

2003년 6월 7일, 미국 뉴햄프셔주 관구는 미국의 감독교회 역사상 최초로 공공연한 동성연애자 브이 진 로빈손(V. Gene Robinson)을 주교로 선출하였다.523) 2003년 11월 2일 동성애자 진 로빈손의 보좌주교 서품식이 미국 더햄 뉴햄프셔 대학교 휘트모어 센터에서 거행하였다. 서품식은 54명의 주교를 포함한 3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었다.524)

2003년 7월 호주연합교회 총회525)는 이틀 동안의 격렬한 토론 후 총대 265명의 약 80퍼센트의 찬성으로 동성애자를 목사로 임직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526)

 <성경적 반박>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 안에 동성애를 용납하는 경향은 현대교회의 배교의 한 증거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가증한 죄로 여기신다. 그것은 다른 큰 죄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오직 철저히 회개해야 할 죄이다.

성경에서 맨 처음 동성애를 말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이야기에서이다(창 19장). 소돔성의 사람들은 그 날 저녁에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들과 성관계를 갖기를 원하였다. '상관한다'는 말(야다)은 성경에서 17번 이런 의미로 쓰였다(BDB). 사사 시대에도 소돔성의 일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기브아의 이야기이다(삿 19장). 기브아의 불량배들은 거기 살던 노인의 집에 유숙하기 위해 들어온 레위인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며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고 말했다(삿 19:22). 그들이 동성애 관계를 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큰 죄악이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연합케 하신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또한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위반하는 음란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악하고 음란했던 소돔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셨다. 또 사사 시대에 심히 음란했던 기브아와 베냐민 지파 전체는 거의 전멸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었다.

율법은 부부 관계를 벗어난 성행위, 즉 결혼 전 혹은 결혼 외의 성행위를 정죄하며, 특히 동성간 성행위를 가증한 죄악으로 간주한다.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신명기 23:17,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美童, 카데쉬, 동성애자)이 있지 못할지니." 열왕 시대에도 남색(男色, 동성애)은 큰 죄악으로 정죄되었다(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 동성애 죄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다. 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신약성경도 동성애를 큰 죄로 간주하며 그 죄를 짓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였다. 로마서 1: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매춘, 동성애),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디모데전서 1:10, (불법한 죄의 예들)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탐색하는 자'(말라코스)는 남색의 상대자를 가리키고, '남색하는 자'(아르세노코이테스)는 '남자 동성애자'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것은 신구약성경에서 너무나 명백하다.

또한 오늘날 동성애를 통해 에이즈 전염병(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많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징벌로 받아들여야 한다. 1985년의 한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에이즈 환자 12,067명 중에 남성이 92%인데, 그 중 78%가 동성애자라고 한다.527) 유엔 에이즈 계획(UNAIDS)에 의하면, 2002년 7월 현재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자수는 세계적으로 4천여만명이며, 향후 20년간 약 7천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528)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시대적 재앙이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동성애를 용납하는 것은 배교(背敎)의 한 증거이다. 참된 교회들은 이 죄로부터 성별되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과 교회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46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63 구약성서에 대한 다섯가지 물음 웹섬김이 12-07 4006
2262 오해하기 쉬운 예정론 웹섬김이 12-07 4208
2261 [7] 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3646
2260 [6] 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3094
2259 [5] 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3132
2258 [4]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2950
2257 [3]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3294
2256 [2]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2908
2255 [1]칼빈주의 예정론 연구 웹섬김이 12-07 3324
2254 [2]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 단계별 특징 웹섬김이 12-05 2927
2253 [1]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 단계별 특징 웹섬김이 12-05 3204
2252 [14]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웹섬김이 12-05 3492
2251 [13]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웹섬김이 12-05 2917
2250 [12]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웹섬김이 12-05 3082
2249 [11]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웹섬김이 12-05 3115
2248 [10]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 웹섬김이 12-05 3185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