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8-25 16:23
[1]한국 개신교 이단의 발생과 교리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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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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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이단의 발생과 교리 특징

민웅기 소장


역사적으로 한국 개신교 이단들의 발생 과정과 교주들이 말한 핵심교리를 알면, 이단들의 포교 방식과 허술한 신앙 체계가 보인다. 오랫동안 이단연구와 신앙상담에 매진하고 있는 임웅기 소장이 10회에 걸쳐 한국 개신교 이단의 역사와 그들의 핵심 교리를 밝힌다.<편집자 주>


1. 이단 발생과 현상

 

반세기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교주의 맥없는 죽음과 비윤리적 활동이 스스로 멸망 불러

 

 
 
 

개신교계 신흥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김성도의 새주파, 백남주의 원산 예수교회, 황국주의 새 예루살렘 순례단을 통해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과 정득은의 삼각산 기도원으로 연결되고, 다시 문선명의 통일교와 박태선의 천부교(전도관)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의 이만희까지 연결된다.

 

메시야 사상과 연결된 한국 개신교계 신흥종교는 대부분 반세기를 넘지 못하고 단체의 간판을 내리게 된다. 신흥종교의 창교주는 자신이 성경에 예언된 말세의 메시야를 뜻하는 구원자로 가르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현세의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기 위해 추종자가 되었으나, 호언장담했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창교주는 맥없이 생을 마감했다. 창교주의 죽음은 더 이상 신흥종교 단체가 존재할 명분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창교주의 죽음과 함께 신흥종교들의 비윤리적인 활동도 스스로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특히 개신교 계통의 경우 신흥종교들의 비윤리적인 특성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메시야 운동과 연관된 한국 개신교계 신흥종교들은 ‘인류의 죄악이 음란에서 비롯되었다’라는 성적 모티브와 연결된 교리를 주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실낙원과 복락원의 과정을 ‘성’과 연관시켜 실현시킨 인물로는 원산 예수교회의 백남주, 새 예루살렘 순례단의 황국주, 그리고 삼각산 기도원의 정득은, 통일교 문선명, 전도관의 박태선,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정명석 등이 있다.

이들은 성서에 기록된 인간 타락의 과정을 루시퍼(사탄)와 하와(해와)의 성적인 관계로 해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창교주와의 성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의 죄를 해결 받아 구원과 영생을 누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며, 신도들과 성관계를 맺는 비윤리적인 행태를 보였다. 한국의 전통윤리 및 사회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의 행태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우며,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게 된다. 결국 전교활동을 접거나 ‘성관계를 통하여 유토피아를 실현 한다’는 교리를 교묘하게 수정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신흥종교에 심취한 신도들의 가출과 이혼, 그리고 가정불화는 또 다른 형태의 비윤리적인 문제이다.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은 이혼과 가출 그리고 가정불화의 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이는 신흥종교 단체들은 하나같이 헌법에 명기되어 있는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 속에 숨어 활동하고 있다. 신흥종교도 하나의 종교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신흥종교도 ‘종교의 자유’라는 법의 보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가출이나 이혼 그리고 가정불화를 암암리에 조장하거나 발생시키는 신흥종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단체 중의 하나가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은 가족들이 가출한 가족을 찾으러 오거나, 이혼과 가정불화의 문제로 항의하러 왔을 때 ‘종교의 자유’라는 법을 적용하여,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도리어 가족구성원들을 법적으로 고소하거나, 반대활동을 하고 있는 피해자들까지도 무더기로 고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사회·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성경에 토대하고 있는 정의와 사랑을 기본적인 윤리덕목으로 삼아 왔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인간은 선한 존재가 되며, 성직과 세속직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소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모든 직업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 사회개혁에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공의와 평화, 그리고 사랑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개신교 신흥종교들의 교주들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라고 자칭하지만, 참 메시야의 속성인 정의, 용서, 사랑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십자가상에서 반대자들을 용서하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은 구원자 예수의 모습과는 달리 거짓과 고소를 통해 반대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하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신흥종교 신도들이 반대자와 가족들을 폭행, 납치, 협박 등의 비윤리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억압하려다 법의 심판을 받은 사례가 많이 있다. 또한 신도들의 가출, 이혼, 폭행, 가정불화, 학업포기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2. 이단 발생 원인과 계보              

 

세대주의 종말론에 빠져 있었다

교주 출생지역 이북에 집중… ‘재림 시대 또 다른 구원’ 주장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과 신흥종교 단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왜 한국 사회는 유독 자신을 재림주 또는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한국은 1885년 경 장로교의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와 본격적으로 전도가 시작됐다. 기독교 복음이 한반도에 전파된 이후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부흥되었지만 한쪽에서는 신흥종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정도교, 남방여인, 한에녹 등의 인물들이 자신을 이 시대의 구원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1930년대 평안북도 철산에서 활동한 김성도(1882년 7월 1일 출생)의 ‘새주파’, 원산에서 활동한 백남주(1901년 1월 3일 함남 갑산군 출생)의 ‘원산 신학산’, 황국주(1909년 황해도 장연군 출생)의 ‘새 예루살렘 순례단’을 한국에서 발생한 재림주 신흥종교 단체들의 뿌리로 이해한다.

1940년대는 백남주와 김성도의 영향을 받은 김백문(1917년 경북 칠곡 출생)의 ‘이스라엘 수도원’, 그리고 ‘삼각산 기도원’ 원장이었던 황국주의 제자 정득은(1897년 출생)이 있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 유명한 문선명이 있다. 1920년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군 덕이면 상사리에서 출생한 문선명은 이용도의 ‘예수교회’ 출신이며 김백문과 정득은의 제자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세웠다. 그리고 1917년 11월 22일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한 박태선의 ‘전도관’(천부교)으로 그 계보가 이어져 내려온다.

그 후에 성폭력과 강간혐의로 10년형을 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 교주(1945년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출생)가 나타났다. 그는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강사 출신으로 통일교의 영향을 받아 1970년 후반에 독립했다.

박태선의 ‘전도관’ 영향을 받은 곳으로 1990년대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신도살해 암매장 사건’을 일으킨 조희성 교주의 ‘영생교’가 있다. 또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 출신으로 박태선 ‘전도관’을 거쳐 유재열의 ‘장막성전’과 백만봉의 ‘재창조교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만희 교주의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이 있다. 이만희 교주의 ‘신천지 증거장막 성전’은 그 후에 문선명 교주의 통일교에서 영향을 받은 진진화의 ‘생령교회’ 출신 김건남과 김병희의 영향까지 받았다. 그렇기에 신천지 교리 가운데 통일교 교리와 유사한 부분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단과 신흥종교 단체들은 지금까지 맥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흘러 갈 것이다. 그렇다면 신흥종교 단체의 발생 원인에 대해 영향을 미친 사상이 무엇이었을까?

위의 이단과 신흥종교 교주들의 출생지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바로 교주들의 출생지역이 이북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한국에서 활동한 초기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팽배한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북 지역에 신학교를 세우고 목회자들을 양성했다. 세대주의를 신봉하는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 이북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한국 전역에 퍼져 선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이 선교사들로부터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대주의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스코필드의 7세대 체계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스코필드(C.I. Scofield)는 세대 정의를 ‘하나님의 뜻이 어떤 특수한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주어지고 인간의 순종이 시험되는 일정한 기간’으로 주장하였다. 그가 말한 세대는 7세대로 무죄세대(타락 이전), 양심세대(타락부터 노아까지), 인간통치세대(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언약세대(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율법세대(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 은혜세대(교회 시대), 왕국시대(천년왕국)로 구분한다. 왕국시대(천년왕국)이 끝나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자신을 재림주 또는 구원자로 내세우는 신흥종교 단체의 교주들은 이 시대 구분을 도용하여 “구원의 완성이 예수그리스도에서 멈추지 않고 재림의 시대에 또 다른 구원이 있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구원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을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모방하고 변형하여, 아담시대-노아시대-아브라함시대-모세시대-초림예수-재림구원-천년왕국을 통한 구원과 육체영생의 시대로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박해 속에서 해방을 갈망하는 종말론의 사상은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교주들은 자신의 집단을 통해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며, 자기들이 새 예루살렘 교회이며 핍박과 환난 속에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방주라고 속였다.

 

 

3. 재림주 이단의 뿌리를 찾아서 


철산 김성도의 새주파

여인 김성도를 재림예수로 추종

‘재림주, 한반도에 온다’ 미혹…이후 이단 교리에 큰 영향

 

 
 

 

 

새주파와 교주 김성도

 

‘새주파’는 ‘새로운 주님을 믿는 교파’ 또는 ‘분파’라는 뜻으로, 김성도라는 여인을 ‘구세주’(메시야) 또는 ‘재림예수’로 추종하던 사람들을 지칭하여 불렀던 이름이다. 새주파의 창교주 김성도(金聖道, 여)는 1882년 7월 1일(음력)에 태어나 만 17세가 되던 해 자신보다 23세 많은 정항준(鄭恒俊, 40세)과 결혼했다. 그러나 33세쯤 김성도는 아들 정석천을 낳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평안북도 철산군을 전도 순례하던 노권사(이름은 불명)는 김성도를 보고 ‘예수를 믿어야 낫는 병이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김성도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약 3개월 정도 지나 정신이상 증세가 치료됐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뒤에는 아들 정석천이 병을 앓게 되자 김성도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아들의 병이 치료되는 경험을 한 후 기독교회에 정식으로 입교(入敎)하게 된다.

1923년 4월 2일(음력) 김성도는 기도 중에 입신(入神)을 한 후 처음 예수를 만나 예수로부터 “인류의 죄가 음란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람들의 불신으로 예수자신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제거하라는 당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4월 12일(음력) 예수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재림주는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성도 계시는 이단들의 교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죄의 뿌리는 선악과를 따 먹은 것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남녀 관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났다. 즉 음란이 타락의 동기가 됐다. ②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돌아가시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했다. ③ 하나님께서 2대 슬픔을 갖고 계시는데 그 첫째가 아담이 타락하는 순간을 아시면서도 간섭하시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으셨던 슬픔이고, 둘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어야 함에도 인간의 불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을 보시는 슬픔이었다. ④재림주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몸을 통해 오신다. ⑤재림주는 한국으로 오시며 만인이 한국을 신앙의 종주국으로 알고 찾아오게 된다.

그녀는 계시내용과 신비체험들을 교우들에게 알렸고 많은 사람들이 김성도의 집에 출입하게 되자, 장로교단에서는 1925년경에 김성도를 징계하였고 소속교회에서도 그녀를 출교시켰다.


새주파의 창립

출교당한 김성도는 자신의 집을 집회소로 만들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1931년 2월에는 딸 정석현에게 “새 주님이 오셨으니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계시에 따라 온 가족이 사흘 동안 금식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계시를 통해 받은 ‘감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새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을 찬양하였다. 당시 일제 총독부는 한반도에서 자생한 유사종교를 끊임없이 탄압했다. 새주파는 1943년 가을 김성도와 두 아들 정석천과 정석진, 신도 10여 명이 함께 구속되었다. 김성도는 심한 고문과 육체적 고통을 당한 뒤 3개월 만에 풀려났다.


성주교 등록과 김성도의 죽음

김성도 새주파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1935년 10월경에 조선총독부의 종무과로부터 ‘성주교(聖主敎)’라는 이름으로 종교단체 등록을 허락받았으며 대표자는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 이름으로 했다. 그러나 김성도는 투옥기간 중의 고문으로 1944년 4월 만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성도는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구원자를 보내 뜻을 이룰 것이며, 이 구원자는 음란집단으로 오해를 받아 핍박을 당하고 옥고를 치를 것이니 이 교회를 찾아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후 새주파의 행적

6.25전쟁이 발발하자 평안북도 철산에 거주하고 있던 새주파 사람들은 거의 남한으로 내려왔다. 김성도의 아들 정석천은 1944년에 경북 칠곡군에서 광산업에 손을 댄 후 대구에서 그의 가족들과 생활터전을 마련하고, 모친의 유언을 간직 한 채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구원자’를 기다리던 김성도의 큰아들 정석천과 셋째아들 정석진 그리고 월남하여 부산에서 살고 있었던 맏딸 정석온은 일간신문에 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어머니의 유언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1955년 6월 25일에 통일교에 입교하게 된다. 정석진은 자신의 집(대구 봉산동 22번지)을 통일교 대구 집회소로 제공할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문선명의 첫째 부인 최선길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 결국 모친 김성도가 남긴 유언이 통일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통일교를 떠나 거처를 제주도로 옮겼다.

 

 

 원산 백남주의 예수교회

이단 제명 후 새벽에 교회 설립

새벽기도 명목 하에 처녀와 ‘천국결혼’ 예습 논란 빚기도 

 

 
 
 

 

백남주는 함경남도 갑산군 출신으로 1901년 1월 3일 출생했다. 1월 3일은 김성도의 성주교회, 백남주의 원산교회,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 문선명의 통일교에서 예수의 탄생일로 지키는 날짜다. 백남주의 생일과 일치한다고 하니 논란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남주는 26세에 장로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 뒤인 1930년 3월 12일에 동기 22명과 함께 제25회 졸업생이 된다. 신학교를 졸업한 백남주는 함경남도 원산으로 가서 ‘루씨여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한다. 루씨여학교는 중등교육을 담당한 개신교 미션학교로 의료시설 등도 갖추고 있었다. 백남주와 한준명은 처남매부지간으로 한준명의 누이 한인자가 백남주의 부인이었다.


원산 예수교회의 탄생

원산에서 백남주와 한준명이 스베덴보리(Swedenberg)의 저서를 읽고 여러 해를 기도하던 중 신(神)이 유명화에게 친히 임(臨)하여 대언하기를 “백남주와 한준명 그리고 박승걸이 1933년에 새 교회를 세울 것을 명(命)하셨다”고 한다. 유명화의 예언에 따라 백남주와 한준명이 먼저 나서서 기성교회와는 구별되는 새 교회를 창립하자는 움직임을 일으켰다. 그 뒤를 이어 이호빈 이용도 이종현이 합류했다. 1932년에는 한준명이 이용도의 소개장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였고, 동행했던 여인 이유신을 집회에 세워 강신행사를 하였다. 평양교계에서는 이 행사를 부정적으로 봤고, 1932년 11월 28일 임시회의를 열어 한준명 백남주 황국주를 소속 노회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한준명을 소개시켜 준 이용도 목사도 감리회 경성지방회에서 조사하기로 결의를 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기성교단에서 이단으로 결의되어 제명됐다.

그러나 이들은 유명화를 필두로 기도모임을 계속했고, 모든 신도들에게 1933년 1월 3일 새벽 흰옷을 입고 백남주 자택으로 모이라는 전갈을 내렸다. 그 날 새벽 3시쯤에 50~60명의 신도가 모인 가운데 예배가 시작됐다. 백남주는 설교가 끝날 즈음에 유명화를 통해 영계(靈界)의 심판을 눈에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교회’의 설립을 공표했다.

또한 백남주 한준명 박승걸의 이름으로 <새 생명의 길>이란 제목의 선언문도 발표했다. <새 생명의 길>의 핵심 내용은 구원의 과정을 ‘삼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제1시대는 구약시대, 제2시대는 신약시대, 제3시대는 새 생명의 길이라는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이어 1933년 6월 3일 이용도 백남주 이종현의 이름으로 <새 교회 창립 선언서>가 발표된다. 6월 6~8일까지 평양교회에서 ‘예수교회의 창립공의회’로 모였다. 이 자리에는 116명이 참석했는데 여기서 총회장격인 선도감(宣道監)에 이용도를 선출하고, 예수교회 헌장 및 그 세칙의 기초위원으로 이용도 이호빈 백남주를 선출했다.


원산(元山) 신학산(神學山) 설립과 백남주의 천국 결혼잔치

예수교회가 설립 된 후 1933년 9월 9일 전후로 백남주를 책임자로 부설 수도원인 ‘원산(元山) 신학산(神學山)’이 세워졌다. 그리고 1933년 11월 1일 중앙선도원(中央宣道院)을 평양에 세우고, ‘예수교회 설립 선포식’을 거행한다. 백남주는 1934년 1월에 창간되는 기관지 <예수>의 편집책임을 맡게 된다.

1934년 백남주는 매일 새벽 2~3시가 되면 새벽기도를 한다는 명목 하에 여(女)신학생 방에 들어가서 날이 밝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934년 겨울에 백남주는 처녀와 새벽 3시에 눈길을 걸으며 천국결혼을 미리 연습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3~4개월 후 처녀는 임신을 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예수교회 교직자들은 천국결혼잔치 사건의 장본인인 백남주와 처녀 조필을 치리하기로 결정했고, 백남주는 원산을 떠나게 된다. 이 때 따라나선 이가 초원 김백문이다.


김성도 ‘새주파’와 백남주

원산(元山) 신학산(神學山)을 떠난 백남주와 처녀 조필, 김백문은 1935년 봄 김성도의 ‘새주파’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으로 갔다. 백남주는 김백문과 함께 새주파의 지교회를 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강사가 되었으며, 일제 탄압으로 곤혹을 치르던 ‘새주파’를 조선총독부 종무과에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등록시키는 일에 앞장을 섰다. 하지만 성주교는 1944년 4월경 김성도의 사망으로 흩어지게 됐다. 백남주는 원산의 루씨 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만난 유증소(柳曾韶)의 도움으로 충남 공주의 공주사범학교에서 백상조(白祥朝)로 이름을 바꾸고 교편을 잡게 된다. 백남주는 1949년이 끝나갈 무렵 어린 아들만을 남겨 둔 채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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