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8-01 11:10
[2]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의미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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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053  

A. 고대 근동의 지리적 입장에서 본 해석    

 


고대 근동지방이란 보다 큰 영역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비옥한 반달형"이라 지칭되는 지역 안에 속하고 있다.2) 근동의 `비옥한 반달형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대 근동지방이 과연 어떠한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지방은 오늘날의 세 대륙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일부를 각각 포함하고 있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한계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에게해에서 아프카니스탄의 힌두쿠쉬 산지까지의 약 3200km에 달하는 지역이 동서간의 한계이고, 흑해와 카스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코카서스 산지에서 아라비아 반도 남서단에 이르는 지역이 남북 간의 한계이다.

 


근동지방의 지리적 특징은 이 지역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세 가지의 장애 요인들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장애요소들은 다른 지역과의 교류나 교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서, 고대 근동사회의 역사 및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세 가지 장애 요인들 중에 첫 번째 요소는 북부지역에 위치한 산지들이다.2) 이러한 산지들은 북쪽으로부터의 외적의 침입과 겨울철 동안 북쪽에서 불어오는 추운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두 번 째 장애 요인은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사막들이다.2) 이들 사막은 건조한 사막 기후의 영향은 근동지방의 대부분 농경지를 잠식하여 경제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지만, 긍정적으로는 북쪽의 산지처럼 외적 침입을 막아주는 자연 방어선 역할을 하였다.

 

 

 

세 번째 장애 요소는 근동지방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바다들이다.2) 이상에서 살펴본 세 가지 지리적 요소들은 육상 교통에 크게 방해가 되는 요인들로서, 근동지방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원할 하지 못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근동지방의 지리적 요인들은 자연스럽게 페르샤 만에서 시작하여 지중해의 동부해안을 따라 가늘고 길게 뻗어있는 비옥한 지역 곧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형성하게 되었다. 비옥한 초승생달 지역은 사면이 자연적인 방벽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고대 문명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문명의 요람지였다.

 

 

 

고대 역사와 문명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성서의 이해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 특히 이곳은 창세기의 족장 역사를 비롯한 성서의 원역사(Proto-History)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당시의 문화 내지 역사 이해는 성서연구에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비옥한 반달형 지역은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으로 대별할 수 있다. 동부 지역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지방이라고 하는데, 페르시아 만에서 시작하여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한 지역을 가리킨다.

 

 

 

서부 지역은 지중해의 해안지역으로서 `레반트'(Levant)지방이라 부른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이 위치하고 있는 지중해 연안지역이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서쪽 지역인 레반트에 속하고 있으며,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중심부가 아닌 서남단의 외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최남단 도시인 브엘세바는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최남단으로서, 이 지역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사람의 거주가 불가능해지는 사막지역이 되고 있다. 성서에서 브엘세바를 이스라엘의 남방 한계선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나, 브엘세바 이남 지역에서 정착된 생활 근거지가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약속의 땅 이스라엘은 분명 비옥한 반달형 지역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위치적으로 이스라엘은 비옥한 반달형 지역의 중심부가 아닌 외곽지역이었다. 여기에서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평가하는 시각을 볼 수가 있다.

 

 

 

비옥한 지역의 중심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환경은 부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인간 거주가 가능한 문명 지역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표현한 것은 현실을 무시한 과장이거나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소망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단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막에 거주하는 자들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입장에서 카수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표현을 사막의 유목민들이 그리는 이상적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2)

 

 

 

그런 점에서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라고 부른 것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현실적 상황에 입각한 객관적 판단에 의한 표현임을 확증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을 사막에서 지냈다는 역사적 정황을 고려하여 볼 때, 그들에게 보인 가나안은 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땅임이 분명하였다.

 


가나안 땅에 대한 이해의 혼동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판단의 기준, 비교의 기준을 잘못 잡은 데에 있다. 가나안의 참모습과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이 생활하였던 사막으로 들어가 그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유대인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되는 초막절 풍습 중 초막 짓기는 사막에서 가나안을 보아야 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레위기에 의하면 초막절 동안 초막을 짓고 그곳에 나가 생활하는 것(레 23:43)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초막에 거하였던 출애굽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적 행동인 것이다.

 

 

 

노트는 이러한 풍습의 의미를 "historical reason"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는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여호와를 기억나게 할 뿐 아니라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2)

 

   

 


B.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입장에서 본 해석     

 


두 번째 관점의 해석은 가나안 땅에 대한 표현인 "젖"과 "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를 가나안의 생활 경제적 측면과 직결시켜 보려는 입장이다. 젖과 꿀은 가나안 땅에서 생산되는 생산품의 대표적 요소로서,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활동이 무엇인가를 규정지어 주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즉 이 두 가지 생산품은 가나안 경제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목축문화와 농경문화를 대변하는 요소이다.

 


"젖"이란, 성서에서 직접적인 증거들을 얻을 수 있듯이, 목축을 지적하는 표현이다. 목축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경제적 수단이었다. 믿음의 조상들을 비롯한 욥,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성서적 인물들은 목축업에 종사하였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사막에 인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목축은 이스라엘 여건에 적합한 경제수단이 되었다.

 

 

 

목축경제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동물이었던 양들은 이스라엘 제사제도에서 가장 중요시 여겼었던 제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젖이 흐른다'는 표현 속의 `젖'은 목축의 주종을 이루는 양젖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목축에서 양을 키우는 일차적인 목적은 양을 잡아 고기를 얻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젖을 생산하여 그 젖으로 다른 유제품을 만드는데 있었다. 성경에서 여러 종류의 유제품들이 거명되는 것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양들은 일 년에 평균 30-150 리터의 젖을 생산하며, 젖이 집중적으로 짜게 되는 시기는 2-3월  경에 시작하여 3-4개월 간 계속된다.

 


이스라엘의 꿀은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 종류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벌들에 의하여 채집되는 꿀인 `드바쉬'이다. 구약에서 언급되는 꿀은 대부분이 야생 꿀이다(신 32:13; 삿 14:8; 삼상 14:25-29, 43). 시편 기자는 반석에서 나오는 자연의 꿀로 만족할 것을 노래하기도 하였다(시 81:16). 그러나 이러한 `드바쉬'로서의 꿀 이외에도 과일나무의 열매에서 얻어지는 즙으로서의 꿀이 있다.2)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과일 즙 형태의 꿀을 `아시스'라고 부르는데, 주로 포도, 무화과, 종려나무의 열매 등에서 얻어진다.3)

 


이스라엘은 과일나무가 잘 자라는 토양이며, 자연적인 입지조건도 과일나무 재배에 적합하다. 산과 산 사이에 비가 올 때마다 씻겨 내려가 쌓이는 충적토는 밭농사에도 좋은 토양이 되지만, 경사진 산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를 심어 기르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표현에 등장하는 `꿀'을 벌에게서 얻어지는 꿀인 `드바쉬'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나안의 경제적 입장을 고려할 때에는 그것은 오히려 과일나무에서 얻어지는 즙으로서의 꿀인 `아시스'로 보는 것이 보다 더 타당하다 하겠다.

 

 

 

같은 입장에서 카수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젖을 생산하는 가축들을 위한 초지와 과실을 생산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땅이라고 해석하였다.4) 모세에 의하여 파송된 열 두 정탐꾼들이 그 땅의 비옥함을 증거 하기 위하여 세 종류의 과일-포도, 무화과, 석류-을 가져왔을 때에도, 그 과일들은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있는 증거임을 밝히고 있다(민 13:27).

 


가나안 땅을 표현하는 "젖과 꿀"은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 땅에 적합한 목축과 과일생산을 유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은 이스라엘 땅의 비옥함을 과장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보다는 그 땅에 허락되어 있는 생산의 가능성들에 대한 진솔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재해석해 볼 때, 그것들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나님의 가능성, 곧 각양의 은사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게 될 때 신앙의 활력을 얻듯이, 가나안의 가능성들인 젖과 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될 때 가나안에게 주어진 축복성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C.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고백적 입장에서 본 해석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지시하셨고, 또한 그 땅을 그와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이삭, 야곱을 통하여 거듭 확인된 내용들로서 모세를 통하여 시작된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로 부각이 된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 속에 깊이 축적된 거룩한 약속이며 하나님에 의하여 보증된 영원한 유산이다. 성서에서 이 땅은 이스라엘에게 선택의 여지나 조건들이 허락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제시된 땅이다.

 

 

 

다시 말하여,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민족이 창조주로 믿고 있는 하나님에 의하여 절대적으로 약속되어진 하나님의 땅이다. 그런 점에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신앙고백 속에서 이 가나안 땅은 이미 비교의 대상을 허용치 않는 절대의 땅, 지고의 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가나안 땅을 설명하면서 그 땅의 외형적 가치를 과장시켜 평가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외관적인 조건으로는 다른 지역에 뒤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그런 외형적 조건이나 여건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열조에게 맹세하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설명하고 있는 신명기 11장은 가나안을 애굽과 비교하여 그 땅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신 11:10-12).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가 얻게 될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같지 않음이 전제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애굽은 나일강의 풍부한 수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진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을 흡수하는 척박한 땅임이 명시되어 있다.

 

 

 

비록 자연 환경의 측면에서는 풍부한 급수원을 가지고 있는 애굽이 하늘의 비만을 의존하고 있는 가나안 땅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애굽은 인간의 노력에 의존하여 사는 인간 중심의 지역인 반면, 가나안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거룩한 땅이라는 것이다.

 

 

 

신명기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라고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집중되어 있는 땅이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이다.5)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져 각자의 거주 지역을 선택하는 내용을 보여주는 창세기 13장은 가나안 땅의 평가 기준이 외형적 조건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요단 들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었다(창 13:10).

 

 

 

반면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선호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간지역의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겼다. 아브라함의 그러한 선택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두고 있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 13:14).

 

 

 

이 두 본문에서는`눈을 들어 본다'라는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롯의 경우는 자신의 판단 기준에 의한 것이었고, 아브람의 경우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롯이 선택한 요단 들은 외형적으로 물이 넉넉하여 살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의 지역임을 성경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창 13:13).

 

 

 

그에 비하여, 아브람이 차지한 지역은 비록 생활에 불편한 산간지역이었지만 자손 번성의 축복과 더불어 그 땅이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확인되는 땅이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을 세계의 중심지로 보면서 이스라엘 땅을 땅의 일반적 용어인 히브리어 "에레츠"에 정관사를 붙여 "하아레츠", 곧 절대적 땅(the Land)이라고 이해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어느 다른 나라나 땅과 결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표현인 것이다. 절대자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점에서 외형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상대적 땅이 아님을 강력히 표현한 것이다.

 

 

 

앞부분에서 살펴 본 것처럼, 히브리어 "에레츠"는 `아다마'와 달리 토양의 비옥성과 관계없이 의미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땅에 대한 표현이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땅이 곧 "에레츠"이다. 이와 같은 절대적 의미의 땅 개념은 성서시대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유랑민족으로 흩어져 살았던 과거 이 천년 동안에도 그 명맥을 꾸준히 유지하여 왔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시온주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이민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당시, 이스라엘의 대부분 땅들은 버려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늪지대로 바뀌어 있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이러한 불모지의 땅에 뛰어들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개척하였다.

 

 

 

그러한 개척적인 용기는 이스라엘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거룩한 땅임을 받아들이는 신앙적 차원을 떠나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비록 외적으로는 황폐한 땅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신앙적 확신을 갖고 피와 땀과 눈물을 뿌렸을 때, 땅 밑에 감추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참 모습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을 가리켜 사막에 꽃을 피운 기적의 나라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여 그것은 숨겨져 있었던 가나안의 의미를 민족적 신앙과 땅에 대한 확신으로 도전하여 본래의 것을 되찾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헤르첼을 비롯한 초기의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의 본토를 아르헨티나나 우간다로 정하려 했던 시도는 땅에 대한 성서 신학적 통찰력이 부족했던 것임이 사실이며, 그러한 제안과 시도를 거절하고 팔레스타인 본토를 고수하였던 유대인들의 정서는 수천 년을 내려왔던 민족적 신앙 전승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IV.  결론    

 


   이스라엘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되거나 아니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시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성서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는 `땅의 신학'의 신학을 기초로 놓고 볼 때, 이스라엘은 결코 자신의 땅에 대하여 과장되거나 현실을 무시한 이상향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관점을 달리하는 세 가지 입장에서 본 해석은 구약 성서신학을 비롯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약속된 땅으로서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소유로 현실화된 거룩한 땅이다. 그 땅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점에서 축복의 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축복성은 땅의 풍요로움이라는 외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앙적 관계성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땅(신 11:12)이기 때문에 축복된 땅이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쉼이 있는 곳(신 12:9-10)이기 때문에 축복의 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땅을 소유하여 자신들이 즐기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특별한 생활양식을 요구받는 땅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땅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자신의 신앙과 삶을 고백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2.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현대 비평적 입장에서는 구약성서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나 실제 역사 경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에 그 기원이 있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 역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유목민들의 상징적 언어와 신화적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가나안에 대한 그러한 표현은 신앙 고백적 요소를 강조한 내용이긴 하여도 고대 근동지방의 지리적 여건이나 가나안의 생활 경제적 상황에 근거를 둔 객관적 고백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허구 속에서 하나님을 찾거나 신앙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곧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시고 만나주셨던 구원의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다.

 

 

 


  3. 오늘을 살고 있는 기독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해석이 갖고 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가나안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약속과 성취의 복지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도 그 땅은 같은 질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삶은 곧 축복으로 주어진 가나안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살펴 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해석적 입장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들 삶의 신앙적 원리를 조명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가나안 땅의 의미에 관한 세 가지 방향의 해석이 보여주듯이, 가나안의 축복됨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신앙적 수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앙고백 위에 사막이라는 출발점에 서서 자신의 삶을 조명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젖과 꿀이라는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오늘의 삶 속에서 주어진 가나안 뿐 아니라 종말에 이루어질 영원한 가나안의 축복을 소망 중에 바라는 것도 중요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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