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2-30 12:41
[2]목회자가 계속 성령충만 받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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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513  

Ⅳ. 성령의 세대

성삼위의 세대를 구분해 보면, 성부의 세대는 주님 오시기 전 세대를 말한다.

성자의 세대는 주님 오신 때이며, 성령 세대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 다시 재강림하실 때까지를 가리킨다.

이 세대는 은혜의 세대이기도 하고 말세이기도 하다.

성부는 대설계, 즉 구속의 대업을 설계하시던 중 그 독생자를 보내시어 구속의 대업을 다 이루셨다.

성경에 보면 다 이루어졌다가 네번 나와 이를 사대성사(四大成事)라 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심이 그대로 되니라(창1 장)를 한문으로 쓰면 성료(成了)가 된다.

이것이 첫번째 성사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1:14)는 중국어로 道成了肉身으로 표기되는데 이것이 두번째 성사이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는 세번째 성사 이다.

마지막으로 주님 재림하실 때 이루었도다(계21:6)가 네번째 성사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대업, 즉 하나님의 설계를 자신의 희생하심으로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모든이에게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

그에게 속한 자도 다같이 영체로 변한다(빌3:21). 이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그가 영으로 세상 끝날까지 육체와 함께 하시게(마28:20) 조처하신 것이다.

성령은 주님의 보내 심을 받아 예수께서 그리스도되심을 바로 인식하게 하시는 일을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신다.

말세, 즉 성령의 세대에는 성령의 역사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는 없다.

성소에서 물이 스며나와 큰 강을 만들듯이 성령께서 개개인에게 조용하게 역사하시어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주홍같은 붉은 죄를 흰눈같이 깨끗하게 하신다(사1:18, 요 1:9).

이렇게 구원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셔서 그를 전적으로 주장하신다.

성부의 구속의 뜻을 더 깊이 터득하여 친히 체험하게 하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구원받은 자를 주장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소나 말처럼 코를 꿰거나 입에 자갈을 물려서 억지로 굴종시키지는 않으신다.

사마리아교회에 있던 시몬은 베드로가 받은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혼이 났다(행8:18-19).

오늘날 종종 자기 지능으로, 자기 학문으로 자기의 어떤 특기로 성령의 은사를 대신하려는 행위는 바로 시몬과 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성령의 세대에 사는 우리들은 부분적으로 순종하는 것 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전적으로 그 지배 아래 살아야 한다.

성령은 나를 완전 지배하시려 하신다.

그 역사에 나는 순종할 뿐이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삶이다.

 

Ⅴ. 성령충만을 지속해서 받으려면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일시적으로는 순종하다가도 내가 살아서 성령의 역사가 명멸적(明滅的)으로 깜박깜박 하는 예가 허다하다.

성령충만한 삶이 지속되어야 성령을 근심시키지(엡4:30) 않을텐데, 순종하다가 순종하지 아니하는 것은 깜박이는 불과도 같다.

성령의 역사가 나에게 나타날 때 인망이 높아지고 인기가 생긴다.

육적 어린아이는 이것을 좋아한다.

바울도 이 때문에 애를 먹었다.

성령의 뜻 대로 살려고 하면 또 육신의 욕심이 앞선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육과 영의 틈바구니에서 갈등을 겪는다.

사단은 이 육신의 자아를 잘 이용한다.

성령은 굴종시키시는 일은 하지 않으신다.

순종하게 하실 뿐이다.

사단은 이러한 순종도 굴종이라고, 자유가 속박되었다고 속이려 한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나를 온전히 지배하실 때 사단은 감히 접근을 못한다.

목회하면서도 다른 교회보다 교인수도 예산도 더하고 자하는 명예심이 나올 때, 사단은 이를 이용한다.

다윗의 신앙이 그토록 훌륭했었지만 천하가 태평해지니 자기 권위를 나타내고자 요압에게 호구조사를 시키고 재촉까지 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엇다.

후에 징계를 받고 후회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윗도성령의 충만이 깜 박거리듯이 흥했다 쇠했다. 하였다.
 성령의 충만은 삶에 있어서 성령이 깜박거림없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이렇듯 성령충만을 지속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골방에 사는 일이다.

골방에 들어가 육신의 자아가 살아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일조차 성령의 지배에 순종함에 달려있다 하겠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내가 온전히 이루 었다고 할 수 없고 얻었다고도 못한다(빌3:13-14).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골방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골방에서 기도함으로 육신의 자아가 제거되어야 한다.

바울도 내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으되, 주 안에서는 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롬8:1).

주 안에 산다함은 나를 버리는 일이다(마 16:24).

성령이 완전히 나를 지배할 때 육신의 자아는 소멸된다.

물이 발목과 무릎에, 허리까지차서 내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함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일이다.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영으로 감화 감동하심이다.

그 감 화 감동을 소멸시켜서는 안된다.
 골방에 있을 때 성령충만은 지속된다.

더욱 목회자로선 설교 한편을 준비하기 위해서 골방에 들어가야 한다.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서, 구상 및 대소대지의 구조와 서론, 결론 등이 짜임새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골방에 들어가 재가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설교는 나의 말일 뿐이다.

나의 강의요, 웅변이요, 사상의 표현일 뿐이다.

물론 설교준비하는 일에는 나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성령의 인침을 받아야 영으로 주시는 능력의 말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성령의 지배가 없으면 말만 번드레하고 조리있는 강연은 될 수 있지만 설교 는 될 수 없다.

성령의 충만함과 그의 지배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교실의 강의도 아니고 강당의 웅변도 아닌 단상 의 말씀선포는 성령의 지배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달변도 표현의 기술도 필요없다. 

 오직 성령의 지배 아래서 설교가 행해져야 하며, 그밖의 다른 활동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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