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8-13 18:37
이스라엘 정치사. 구속사 속의 블레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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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529  

이스라엘의 채찍 블레셋 (3)

강력한 철기 문화로 이스라엘 발전 가로막은 존재
지파별로 살다 블레셋 대응 위해 중앙집권 국가로
모든 우상 제거하고 하나님 말씀 순종해야 강해져
대부분 말씀에 불순종하다 주변 국가들 압제 당해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가 1607년 경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가 1607년 경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4. 성경에 나타난 블레셋

1) 사사 시대 이전

블레셋의 존재는 창세기 10장 노아의 족보에서 보이는 것처럼 함의 4대 손자(함-미스라임-가슬루힘-블레셋)로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의 존재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가나안에 가뭄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은 블레셋 족속인 그랄 왕 아비멜렉과 거래를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창 20-21장, 26장).

블레셋의 작은 도시 그랄의 왕이었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공정하게 대해준 것으로 보아, 당시 블레셋은 평화스럽고 질서가 있는 곳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넘게 지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가나안으로 가는 최단 코스인 해안길로 가지 않고 홍해 광야 길로 돌아갑니다. 그 이유는 해안길을 통하여 가나안으로 가려면 반드시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것을 반길 리 없기 때문에 길을 막을 것이고,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전쟁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돌아갈까 봐 광야길로 돌아가게 합니다(출 13: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가나안에 들어가 정복 전쟁을 하였을 때도 블레셋과 전투를 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아마 블레셋이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늙어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완수하지 못하고 땅을 분배했을 때, 블레셋 지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수 13:2-3). 이후 블레셋은 다윗 때까지 이스라엘에 정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조공을 부과하는 가나안 지역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됩니다.

2) 사사 시대

다윗 전까지 가나안의 맹주로 군림하던 블레셋 5개 도시 국가는 가나안 족속, 시돈 족속, 히위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알게 하려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됩니다(삿 3:2-3).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화에 젖어 하나님을 잊게 되면, 하나님은 이들을 동원하여 다시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만드는 이스라엘의 채찍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 동안 이 사이클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이에 대한 징계로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에 가득 찬 소리로 구원을 요청할 때, 하나님은 이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사들을 보내어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평화가 찾아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이방의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런 사이클이 사사 시대 내내 이스라엘에게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 중에서도 블레셋의 다섯 군주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강력한 위협이 되었는데, 특히 사사 시대 말기(B.C. 1150-1000) 내내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 하에 신음하였음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 블레셋과의 첫 충돌은 사사 삼갈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 성경은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여 명을 소 모는 막대기로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삿 3:31).

▲2019년 개봉한 영화 <삼손> 중 블레셋 군대에 잡혀 눈이 뽑힌 삼손의 모습.

▲2019년 개봉한 영화 <삼손> 중 블레셋 군대에 잡혀 눈이 뽑힌 삼손의 모습.

그러나 이로서 블레셋의 압제가 끝난 것은 아니고, 블레셋의 위협은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신을 섬기기도 하였고(삿 10:6-7), 그들과 혼인을 맺기도 하였습니다(삿 14:1-2).

삼손이 활약했던 시기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사사 시대 말기로,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산 위에 있는 헤브론 산 꼭대기로 도망간 것을 볼 때, 유대 산지와 에브라임 산지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정도 블레셋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삿 15:11, 16:3).

철기를 쓰는 이들은 전투에서는 매우 강하였지만, 점령하여 통치하는 식민지를 건설하기에는 인구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무거운 조공을 요구하였고, 조공을 거부할 경우에는 전쟁을 벌이는 패턴을 반복하였습니다.

사사 시대 말기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 가장 큰 전쟁은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 선지자 때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은 아벡에서 법궤를 빼앗고 또 실로를 불태웁니다(삼상 4장). 그러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유다와 에브라임 산지를 회복하고, 나아가 에그론과 가드까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많은 영토를 도로 찾게 됩니다(삼상 7장). 이후 사무엘이 사는 동안 블레셋은 감히 이스라엘을 쳐들어오지 못하게 됩니다.

3) 사울 시대

사무엘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의 지속적 위협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에 대한 요구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요구였지만,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갖게 되면 블레셋의 압제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이 제도가 조직적으로 블레셋을 포함한 외부의 적에게 대항하려는 목적을 어느 정도는 달성할 수 있었겠지만, 100%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의 경고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왕들이 이스라엘에 계속 출현함으로 말미암아, B.C. 586년 이스라엘 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제사장이 통치하는 제사장 국가가 됩니다.

▲덴마크 화가 칼 블로흐(Carl Bloch, 1834–1890)가 1863년 그린 ‘삼손과 블레셋인들(Samson and the Philistines)’.

▲덴마크 화가 칼 블로흐(Carl Bloch, 1834–1890)가 1863년 그린 ‘삼손과 블레셋인들(Samson and the Philistines)’.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철공소 설립을 제한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칼이나 창과 같은 철로 만든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막습니다(삼상 13:19-22). 따라서 괭이, 삽, 쇠스랑, 도끼 등 농기구를 벼리려면 철공소가 있는 블레셋까지 가야 했습니다.

최초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이 믹마스에서 블레셋과 전투를 할 때, 이스라엘 군대 중 칼을 가진 자는 사울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이런 불리한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요나단의 용감한 행동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삼상 14장).

그러나 머지않아 블레셋은 다시 쳐들어왔고, 엘라 골짜기에서 맞선 이스라엘 진영은 골리앗의 등장으로 사기가 죽어 있었으나, 다윗이 골리앗을 죽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블레셋을 또다시 패퇴시킬 수 있었습니다(삼상 17-18장).

이때 골리앗이 썼던 창의 날이 육백세겔이나 되는 철로 만들어진 것으로 볼 때, 당시 블레셋에서는 철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후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받아 쫓기는 몸이 되어, 결국 블레셋 지역인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삼상 27장).

블레셋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하는데, 길보아 산에서 사울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때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불신으로 사울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통하여 사무엘의 도움까지 청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이 전투에서 세 아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프랑스 판화가·삽화가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e, 1832-1883)의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David Slays Goliath)’.

▲프랑스 판화가·삽화가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e, 1832-1883)의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David Slays Goliath)’.

4) 다윗-솔로몬 시대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갔던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 다시 유다로 돌아옵니다. 이어 유다 족속의 왕이 된 유다는 당분간 블레셋과 평화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7년 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또 여부스족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되자, 이를 두려워한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12지파를 통합한 다윗 왕국에게 이제 블레셋은 너무 쉬운 상대였습니다. 다윗은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들을 격퇴하고 빼앗긴 영토까지 회복합니다(삼하 5장).

심각한 손실을 입은 블레셋은 이후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왕국 건설을 마무리한 다음, 그동안 미뤄두었던 정복 전쟁을 시작합니다. 다윗은 가장 먼저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아내고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도록 만듭니다(삼하 8:1).

5) 솔로몬 이후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약해질 때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국경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나, 사분오열된 블레셋은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못하였습니다(왕상 15:27, 16:15-17, 대하 26:6-7, 28:18).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이 강성해지자, 이들은 이 지역을 중시하여 블레셋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었습니다. 마침내 B.C. 604년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블레셋이라는 도시 국가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블레셋은 그 이름으로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데, 로마 제국은 가나안 대신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지명은 블레셋(Philistines)에서 유래된 것으로, 로마 제국이 제2차 유대-로마 전쟁(A.D. 132-135) 후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시키며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가나안 땅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블레셋이 원래의 주인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책략이었습니다.

5. 마치는 말

1) 정치사에서 블레셋의 역할

블레셋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규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왔으며 B.C. 1150-1000년(사사 시대 후기-사울) 사이가 가장 흥성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애굽과 메소포타미아가 암흑기를 맞이했던 시기로, 가나안 지역이 비로소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발전을 가로막았으나, 이들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지파별로 뿔뿔이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 왕국을 건설하는 중앙집권적 국가 형태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중앙집권적 형태를 갖추자 블레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대 부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비록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나뉘지만, 이스라엘의 부흥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신왕국이 출현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포로의 생가죽을 벗기는 앗수르 군인들 벽화.

▲포로의 생가죽을 벗기는 앗수르 군인들 벽화.

2) 구속사에서 블레셋의 역할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점령한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땅도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처럼 비옥하지 않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물을 댈 수 있는 큰 강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만 의존하여야 했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늘 기근을 걱정해야 하는 매우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려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이웃 국가들을 압도할 정도로 국가의 힘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 같은 초강대국 그리고 블레셋 같은 가나안 지역의 패권 국가를 약하게 만드셔서 이스라엘의 위상을 국제 정치에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은 많은 무역과 조공을 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부강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시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오래지 않았으며 대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의 압제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힘든 삶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한 이스라엘은 마침내 B.C. 586년 바빌로니아 왕국에게 망하였고,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다시는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속박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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