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8-13 17:29
탈무드의 역사적 내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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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28  

탈무드의 역사적 내력들

 

 
주전 586년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겨진 모든 것을 대표했던 유다왕국은 호된 경험을 맛보았다.

성전은 파괴된 채로 남겨지고, 그에 따른 제사는 끝났으며 나라의 가장 좋은 것은 노획물로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비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왕하 25:12).

절망적인 울부짖음에 대한 비통한 애곡이 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애 1:1).
한 세기 반전, 722년에 10지파로 구성된 북 왕국이 앗수르의 군대에 의하여 괴멸되고 그들이 정복했던 대부분의 지역에서 추방된 주민들이 흡수되는 상황들은 국가적 존망의 위기를 고조 시켰다. 만일 유다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면 나라 전체가 말살되고 이스라엘의 이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생각은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했고 생존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이 절명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독특성은 성전을 중심으로 집중된 종교에 언제나 의존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성전이 파괴되고 외국 땅에 살고 있는 이 백성들이 외국의 매력적인 영향에 노출되어있는 지금 어떻게 그 독특성을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수단을 그들 자신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에는 그 기간을 다룬 자세한 자료들의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헌들을 통하여 그 시대의 정황이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포로로 끌려간 공동체의 눈에 띄는 인물은 선지자 에스겔 이었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보존되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고 지도해 나갔다.

성경 에스더에서 그는 ‘유대의 장로들’이 그의 집(에스겔 8:1, 14:1, 20:1)에 모였을 때에 세 가지 주제들에 대하여 말한다.

아마 그들의 모임에서는 당시의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들에 대하여 토의되었을 것이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즉 토라에 요약되어졌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법(law)’으로 잘못 번역된 이 히브리어는 ‘가르침, 지시’를 의미한다. 포로생활 이전의 세대로부터 전해왔던 기록과 구전, 교리의 체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모세오경의 기원과 연대를 학문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하나나 혹은 다른 형태로 모세의 계시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은 역시 몇몇 선지서의 작품들과 시편들을 가졌었다.

그들의 이전 국가적 삶의 이러한 유품들은 추방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국을 다시 회복할 때까지 이방의 환경에서 안전하게 살 것에 대한 토대를 세웠다.

이러한 성경들은 그들이 관심을 갖게하고 그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바벨론에 있었지만 바벨론 사람이 아닌 거룩한 임무가 주어진 독특한 백성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을 기억했을 것이다.


회당의 제도는 포로의 생활했던 시기의 장소에서 기원한다고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의 히브리어 Beth Hakeneseth(베트 하크네셋트; 모임의 집)는 최초의 목적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것은 조국이 없는 국가의 뭉치는 중심지였고 그 모임에서 성경은 읽혀지고 설명되었다.

그 시간 동안에 기도들이 포함되었고, 그래서 회당은 예배의 장소로 발전되었다. 이 모임의 영향은 히브리어 작품들을 연구하도록 일깨웠다.

필연적으로 대중들이 지식에 대한 욕구로 인하여 교사들로서 활동할 자격이 있는 학식을 겸비

한 사람들이 요청되었다.

이러한 교사들은 작가들이 아닌 ‘글의 사람들’이란 의미의 Sopherim(서기관)로서 알려졌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의심할 것도 없이 에스라 8:16절에 ‘교사들’과 느헤미야 8:7절에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 사람들로서 기록된 명단에 언급된다.


이러한 교사의 계층에 제일 앞선 자는 ‘모세의 율법에 능한 자’(에스라 7:6)로 특징지어진 에스라였다.

즉 전문적인 Sopher(서기관)였다.

탈무드는 모세에 의해 완성된 것과 그가 백성들을 위하여 했던 그 저작을 당당하게 비교하고 있다.

 그 위대한 율법 수여자는 토라를 그들에게 가져옴으로 노예에서 해방하여 한 국가를 창조한 것처럼 에스라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토라를 회복함으로서 바벨론과 유대에서 죽어가는 공동체에 소생할 수 있는 새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 랍비는 에스라의 업적을 이렇게 칭송하였다: ‘만일 모세가 그를 앞지르지 않았다면 토라는 그의 손에 의해서 이스라엘에 주어져야할 가치가 에스라에게 있다’(Sanh. 21:2),

그리고 ‘토라가 이스라엘에 잊혀졌을 때 에스라가 바벨론으로부터 가져왔고 그것을 다시 세웠다’Suk 20:1).


유대인은 이방인으로부터 계속적으로 구별하고 그가 유대인의 종족과 믿음의 한 일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새기기 위하여 종교를 가져야 한다.

유대인은 신조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양식에서 그들의 이웃들과 분리되어야 했다.

예배에 대한 그의 태도가 달라야 하며; 그의 가정이 다르고; 심지어는 그의 일상 생활에서 조차 그가 유대교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 할 수 있는 구별된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의 매일의 삶은 토라에 의해서 좌우되고, 즉 모세의 법과 백성의 공동 생활에서 그들이 바뀌어진 환경 때문에 요구된 변화로서 발전시켜 쓰여진 규정들에 의해서 살았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오늘날에도 유대교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랍비들의 정신 - 그들의 활동의 성향과 그들의 성경 주석의 방법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탈무드가 자라도록한 씨앗이다.

바로 이와 같은 것은 에스라의 저작의 중요성에서 분명히 언급되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에스라 7:10).

이 문장에서 사용한 히브리어 동사 ‘연구하다’, darash(다라쉬)는 탈무드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이 말의 실제적인 의미는 본문을 깊이 연구하여 해명할 수 있는 이상들을 ‘추론, 해석하는 것’ 이다.

이러한 추론에 대한 과정을 미드라쉬(Midrash, 그 말은 ‘주해’라고 번역되어 열왕기 하 24:27에 나온다)라 불려지는데, 이것은 랍비 문학을 통하여 종사했던 해석의 제도이다.

이런 방법으로 인하여 성서의 한 구절은 표면상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었다.

그 거룩한 말씀들은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의 풍부한 보물들을 캐내어 생산하여 무진장한 정신이 되게 했다.


하나님의 뜻은 토라에 계시되어 있다는 자명한 이치로부터 출발하여, 에스라는 유대인의 매일의 생활이 그의 교훈에 의하여 규정되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토라는 삶을 완벽하게 인도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모든 환경에 대한 그의 유용한 안내에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토라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었다.

그 계명들을 준행하기를 바라기 전에 백성들은 그것들을 교육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대중들이 그 내용에 익숙하게 하기 위하여 모세오경을 공개적으로 읽는 것을 유다에 소개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했다’(느헤미야 8:8).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에스라는 Keneseth Hagedolah(대회의), 그 당시에 보존되어 왔던 교리를 집대성한 것을 전수받은 교사들의 회의를 세웠고, 그들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조건들에 적당하게 채택하여 발전시켜 탈무드 랍비들의 선구자들에게 전수했다.

이러한 권위의 고리를 언급한 것을 보면: ‘모세는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아 여호수아에게 전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장로들에게; 장로들은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선지자들은 그것을 대회의의 회원들에게 전해주었다’(Adboth 1.1).


그러한 회의가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현대 학자들에 의해서 의문시되어지는 데 그것은 에스라가 활동했던 이후 2세기 반 기간은 불분명하고 역사적 자료를 이용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공식적인 체제가 그 기간 동안에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의심의 나위가 없다.

에스라 같은 놀라운 대학자가 자신과 같이 열정적인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했던 정책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은 다음에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가르침을 받도록 할 권위있는 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은 그에게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주전 2세기 초반에 유대인의 종교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저항했던 증거가 있지 않는가?

하스모니아사람들은 오늘날 시리아에 머물렀던 헬라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왜냐하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토라를 잊어버리게 하거나 그 율법을 변경하게 하는 명령을(마카비 1서 1:49) 내렸기 때문이다.

봉기의 중심에 섰었던 마타디아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토라에 열심인자, 그 언약을 계속 지키려는 자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라’(2:27); 그리고 그의 죽음 직전에 그의 아들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토라를 위하여 너의 자신들을 용감한 자로 사람들에게 증거하라’(64절).


이러한 사실에서 2세기 초에 토라는 적어도 유대인의 집단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겠다.

만일 중간의 연결이 없었다면 에스라가 살았을 때인 5세기부터 토라의 지식이 어떻게 그들에게 전달되어 하스모니아 사람들이 특징이었던 불변의 열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에 알려진 사실들은 ‘대회의’로 명명된 것과 같은 교사들의 체제를 분명하게 가정할 수 있다.

만일 그러한 것이 있었다면, 그 가능성은 주로 그의 멤버들에 의해서 이끌려왔을 것이고, 만일 전혀 아니라면, 서기관들(Sopherim)에 의해서 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가장 잘 열심히 이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임은 대략 120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이 모임에 중요한 지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재판에 신중하라, 많은 제자들을 세워라, 토라의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어라’(Aboth 1.1). 이 대표적인 세 가지 원칙들이 그들의 활동들의 동기부여를 했다.

재판은 심사숙고 하여야만 한다.

토라의 법칙을 결정해야할 질문들은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하고, 제안되었던 것 가운데 자장 세밀하고 명확하게 연구되어진 것이 결정되었다.

이것이 탈무드 랍비들이 왜 그렇게 성경 본문에 대하여 정확하게 연구해야했던 이유였다.

표면상의 입장은 신속하게 재판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판에 신중을 기한다면 철저한 연구는 본질적이었다.

많은 제자들을 세우는 것은 토라의 지식이 다음세대로 전수되어져야 했다면 교사에 대한 관심을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식을 전파하려는 이상을 실현하고 토라의 학생과 교사들에게 주어진 과제로서의 최고점은 탈무드의 완성에 있었다. ‘토라의 주변에 울타리를 만드는 것’은 그것의 교훈에 따라 살려는 욕구의 당연한 결과였다.

만일 사람이 너무 가까워서 그 문자대로 정확히 지킬 수 없다면 그는 부지중에 그것을 범할 지도 모른다.

개발된 울타리 법들은 부주의하여 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율법 둘레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라의 거룩한 영역이 부지중이라도 침범되는 것을 피하기를 목적으로 하여 예방책으로 부과된 것이다.

따라서 위대한 회합의 멤버들이 했던 목적들은 후대의 교사들이 따라 할 수 있는 연구의 방법들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결국 그들은 방대한 탈무드라는 결실을 생산해 내었다.


역사적 자료에 중요한 구절이 발견되었다: ‘대회의의 마지막 생존자들 가운데 한사람은 의의의 시몬이었다’(Aboth 1.2).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불확실성 때문에 그의 가치는 최소화되었다.

요세푸스는 그를 대제사장으로 언급했다. ‘시몬이 의로운 자라 불려진 것은 하나님에 향한 그의 경건심과 그의 나라의 배성들에 향한 친절함 때문이었다.’9Antiq. 12.2.5).

그는 약 B.C. 270년 경에 죽었다.

또 다른 대제사장은 그의 손자인 시몬인데 역시 역사가들에 의해서 언급되는데(12.2.10) 199년 경에 죽었다.

할아버지를 대회의의 마지막 생존자로 간주하는 것은 그가 실제적으로 요세푸스에 의해서 ‘의인’으로 불려진 사실에 있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찮은데 만일 그 회의 가 270년경 말까지 내려온다면 역대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봇트 편(The Tractate Aboth)에 보면 Socho의 안티고노스가 의로운 시몬의 제자였고, ‘요세 b. 예젤(Jose b. Joezer)과 요세 b. 요하난(Jose b. Jochanan)은 그들에게서 토라를 받았다’(1.4)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학자들은 약 160년 경에 죽었다.

만일 그들이 Tlahes과 안티고노스의 제자들이었다면 그 시대가 너무 길게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그들로부터’는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교사들로부터 전수되어 왔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왔다.


그러나 이것은 대회의가 3세기 중반이나 말에 그 존재가 중지되고 유다에서 공동체의 사건들을 책임 맡던 산해드린으로 알려진 조직체에 의하여 전달되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후에 안티오쿠스 3세부터 프톨레미 까지 그것은 ‘의회’로 불려졌다(Antiq. 12.3.3).

유대인의 전통은 힐렐과 샴마이(약 A.D 10년경에 사망)로 끝난 연속된 랍비의 5주곳트(Zugoth; 주곳이란 쌍(pairs)이란 뜻이다)'과 관계한다.
현대의 역사적 연구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 냈다. 산해드린은 대제사장에 의해서 총괄되는 제사장들과 일반인들의 구성체였다는 것이다.

그 기간동안 일어났던 논쟁에서 분열이 일어나 두 개의 다른 파당이 결국 형성되었다.

제사장들은 토라에 완벽한 충성을 하는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라사상과 타협하는 정책을 선호했다.

그들과 반대의 반열에서는 에스라와 서기관(신약성경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같이 언급했다)의 직접적인 상속인들인 일반인들 이었다.

그들은 토라의 율법에 전심으로 지켜야할 것을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을 채택했다.

그들의 지도자는 주곳트로 알려진 랍비들이었다.


두 파당사이의 갈등은 적과 싸우는 마카비의 항쟁동안에 수그러졌다.

그러나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 135-105 B.C.)가 왕위에 올랐을 때부터 더 깊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두 파당은 점점 더 벌어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으로 불려졌다.

그들을 나누어놓은 차이점들은 유대교 발달에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요세푸스는 이러한 말로 언급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씌여 있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계승된 많은 규칙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그같은 이유 때문에 사두개인들은 그것들을 거부하고 쓰여진 말씀만을 지켜야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조상들로부터 전수되어 온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일들과 관련하여 논쟁과 차이가 발생했다’(무샵. 13.10.6).
구전 토라의 정당성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성경 본문의 새로운 연구에 자극을 주었다.

바리새인들은 구전 토라는 쓰여진 토라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한 직물의 씨줄과 날줄 이었다; 사두개인들에 의해서 거부된 전통들은 모세5경의 말씀들에 포함해서 이전의 해석 방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로부터 토라의 해석은 새로운 양상으로 돌입하고 탈무드의 창조에 직접적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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