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교회, 타락한 중세교회 전철 밟고 있다
- 교회의 타락과 분열, 마이너스 성장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종교개혁자 훌다가 그리운 시대
누구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가 본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여기에는 성찰된 용기가 필요하다. 나라가 물질이 풍요하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경은 물질이 풍요해지면서, 죄를 낳고 사망에 이른다고 교육하고 있다. 오늘 북반구 나라들은 물질이 풍요해졌다. 반면 남반구 나라의 국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물질이 풍요는 결국 피조물을 위협하고, 함께 살아야 할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한마디로 북반구의 인간들은 풍족하게 먹다먹다가 남은 것을 인간이 기대어 살아야 할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버린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핵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균열이 생겨 지구온난화로 세계민족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성이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한국교회 아니 세계교회는 국가와 세계를 향해 소리쳐야 한다.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기득권층은 더 부유해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길을 모색한다. 기득권자들이 바라는 것은 변화와 개혁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들을 귀가 없어 “하나님의 심판이 임 한다”는 예언자 훌다의 종교개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변화와 개혁이 없는 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로 한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경쟁사회에서 인간 모두는 출세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교회도 번창해서 좋은 것만을 추구한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교회성장에만 몰두에만 몰두하며, 모두가 큰 은사만을 간구한다. 교회마다 은사를 행하면서, 성령은 감추어지고, 자신, 인간만을 드러낸다. 오늘 대한민국은 대형교회는 많은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 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이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찾아 볼 수 없다.
썩은 인간 냄새만 풀풀 난다. 가난한 교회 1만개가 매년 문을 닫는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이런 아우성 소리를 귀가 막혀 듣지를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데만 몰두한다. 모든 교회가 내 교회, 나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얘기다. 과거 한국교회는 내 교회, 네 교회가 없었다. 교인들은 가난할 때 이웃교회 사경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았다. 쌀과 고추장, 솥단지를 가지고 기도원을 찾았다.
모두 하나가 되어 한국교회 부흥에 힘썼다. 교회가 부자가 되면서, 이런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신앙이기주의, 교회이기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목회자와 교인들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한국교회 역시 영혼을 팔아버린 중세교회의 타락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영혼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역시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쉽게 넘겨서는 안된다. (사진은 특정 기사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위해서 일하는 교회되자
“친교재물로 바치는 살찐 재물도 보기도 싫다. 시끄러운 노랫소리도 집어치우라”
교회의 타락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 또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정부의 잘못된 코로나방역, 또는 신천지를 비롯한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규정한 종파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다. 교회의 타락은 영혼과 성령을 방매하고, 교회가 해야 할 하나님의 복음(기쁜소식), 참사랑을 실현하지 못한데서 왔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교회도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돌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순교자적 신앙을 소유하라
한국교회는 겨자씨에 담긴 생명을 상실했다. 예수그리스도의 버린 자를 향한 참사랑도 상실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자신에게 가치를 둔 결과이다. 그렇다보니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종으로 쓰기에 매우 불편해 하실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인간을 향해 작아지라고 한다. 겸손하라고 한다. 이웃이 나를 대할 때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고, 가장 큰 봉사이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은 큰 봉사를 하고도 욕을 먹는다.
그것은 봉사 대부분이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성장을 위한 봉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인들은 이를 자랑거리로 여긴다. 또는 교인들은 부자교회, 대형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목회자의 크기도, 교회의 사이즈로 평가. 그렇다 보니 작은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더욱더 작아진다. 심지어 이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모두가 작은 종이라는 것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보니 교회 내 갈등은 심화되고, 교회 간, 단체 간, 이웃종교 간의 갈등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요즘 한기총 내부에서 3파로 나누어져 벌이는 세력 간의 다툼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들의 다툼은 신앙과 신학의 차이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사욕 때문에 다툼을 벌이며, 이단의 올무에 가둔다. 연합단체마저 이런 상황인데, 한국교회가 국민과 교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있겠는가.
특히 한국교회는 교회 내부에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 한마디로 겨자씨에 담긴 생명의 비밀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서 주류의 계보에 의지하지 않고, 요시아 왕 시대에 종교개혁의 주역인 여성 예언자 훌다가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교회 개혁과 변혁을 과감하게 말 할 수 있는 예언자 훌다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겨자씨에 담긴 생명과 사랑 실종
한때 한국교회 안에서 신천지를 향한 비판운동이 크게 일었다. 교회당 출입구마다 “신천지교인 출입금지” 스티커가 유행처럼 붙여 있었다. 교회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신천지 교인이 침투해서 분란을 일으켰다”, “교회 누구의 누나, 또는 친인척이 신천지 교인이다”, “목회자가 신천지에 빠졌다” 등등을 내세워, 교회분열의 원인을 신천지 등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지적한 타종파, 이웃교회 교인들에게 돌리는 일이 유행처럼 된 적이 있다.
중세의 교회는 한마디로 암흑시대였다.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났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것이 종교에 예속되어 있었다. 모든 삶이 천상의 삶을 위해서 있었다. 지상의 삶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성직자들은 이를 철저하게 악용했다. 중세교회의 교회당은 호화롭게 돌로 건축됐다. 하지만 중세교회는 다툼과 분열이 끊이지를 않았다. 이런 분열과 다툼이 이단종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며, 이들 종파의 신도들을 화형시켰다. 하지만 화형된 신도들은 순교로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당시 이러한 신앙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평신도가 중심이 된 이신론자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성직자들은 교파간의 갈등과 분열을 일삼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교파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평신도들이 나섰다는 애기다. 이신론자들은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원종교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뿌리를 찾다가보면, 마지막에 모두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찾아냈다.
돌로 호화롭게 건축된 중세교회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또는 영혼이 없는 중세교회는 몰락해, 술집 또는 타종교로 넘어가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도 많은 교회가 이웃교회와 통폐합되거나, 문을 닫고 있는 것은 영혼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기원전 8세기 유다나라는 크게 번영했다. 모든 백성은 가난했던 시설, 이웃나라의 종살이 했던 과거를 잃어버렸다.
모두가 바알의 영향을 받아 물질의 풍요를 마음껏 누렸다. 하나님은 “너희가 바치는 번 재물과 곡식재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재물로 바치는 살찐 재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우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공동번역성서 아모스 5장 22-23절)고 경고하셨다.
영혼까지 팔아먹는 친일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정의와 공의에서 벗어나면, 토라지신다. 그렇다가도 금방 돌아서서 어르신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고 하신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참사랑, 복음이다. 아모스는 하나님께 “주의 날이 임하게 해 달라”고 간청을 드렸다. 아모스가 바란 것은 “주님의 날”이었다. 하나님은 아모스 5장 24절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 서로 위하는 마음이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요한계시록 2장 8-11절은 유대인 기득권자들로부터 박해받는 서머나교회 교인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너는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처음이자 마지막인 분, 곧 전에 죽어 계시다가, 지금 살아 계신 분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신다/내가 네 행위들과, 환난과, 궁핍을 안다. (그러나 네가 부유하다.) 그리고 스스로 유대인이라 말하나, 유대인이 아니며, 오히려 사탄의 무리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안다/너는 네가 장차 당할 다음 것들 중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곧 보라, 내가 마귀로 하여금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어, 너희를 시험하게 허락하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로 하여금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게 허락하겠다. 그러므로 너는 죽기까지 믿음을 가져라. 그렇게 할 때에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겠다/귀 있는 자야, [성령]이 교회들에게, ‘내가 이기는 자로 하여금 두 번째 죽음의 해를 입지 않게 하겠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라’. 라고 말씀하신다고 써라”
서머나교회를 박해한 자는 기득권을 가진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뒤에서는 이방인들과 타협한다. 그러고 앞에서는 이방인을 업신여겼다. 이들은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사망보다도 둘째 사망인 영혼의 사망을 더 두려워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육체는 죽을망정, 영혼은 살아 있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마지막까지 독립운동을 벌인 독립 운동가들은 영혼만큼은 살아 있었다. 친일파들은 영혼이 죽은 자들이었다. 민족의 해방을 간절히 염원한 그리스도인들은 일경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이들은 신앙을 지켰다. 해방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공산당에 의해, 좌익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지켰다. 끝까지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은, 육신은 죽었을망정, 영혼은 살아 있었다. 헌데 오늘날 인간을 존중하고, 존엄성을 지켜야 할 교회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에 의해 적그리스도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 이제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영혼까지 팔아먹는 정치·종교지도자
큰교회, 부자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장엄한 예배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 시킨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는 이렇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성령을 방매한다. 영혼이 죽어 생명을 잃어버렸다. 영혼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은 일본식민지 아래서 고난을 당한 이 땅의 노동자,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수모를 당한 이 땅의 소녀들, 강제로 일본군으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된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동정은커녕,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네덜란드, 미국,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여러 번에 걸쳐 사과하고, 모두 보상했다. 특히 적대국가인 중국에 대해서도 여러 번 사과하고 보상했다. 헌데 미쓰비시중공업은 한국 강제노동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정한다. 이것이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악이다. 이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없다. 용서 할 수도 없다.
지난 3년 동안 대한민국은 일본 아베의 경제침략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다. 고 전 아베 총리는 집권 8년 동안 대한민국에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1급 전범자이다. 1957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는 아베의 룰 모델이었다. 일본은 침략국가였다는 사실조차 부정한다. 그는 1960년 일본 의회서 미일안보조약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일본은 대한민국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나라라는데 안타깝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아베신조 전 일본 총리 국내 분향소가 설치된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을 찾아 조문했다. 윤 대통령은 조문록에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님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유족과 일본 국민에게도 깊은 위로를 표한다”고 적었다. 일제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을 당한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의 이 같은 조문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에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조문사절단을 일본에 보낸다고 한다. 야당 국회의장인 김진표 의원도 아베신조 장례식에 참석한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SNS에 아베 전 총리를 애도하는 글에서 “일본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아베”라고 썼다. 정부는 현직 총리도 아니고, 전직총리 장례식에 대한민국 현직 총리를 보낸다는 것에 일부 국민은 국격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을 쏟아낸다. 대한민국 여야 정치인, 전·현대통령 모두 영혼이 없는 것인가. 여기에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하청업체 다루듯이 아무렇게나 대한다.
예루살렘 성전 돌 하나 남지 않았다
해방의 달, 광복의 달, 민족구원의 달을 앞두고, 국민 다수는 정치인들의 이런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여당과 정부는 북한을 넘어온 북한동포의 인권은 말하면서, 미쓰비시 강제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이 땅의 소녀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저자세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불신의 벽을 높였고, 영혼이 없는 여야 정치인과 정부의 고위직, 전·현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 왜 여야 정치인과 정부 고위직 관료, 전·현 대통령은 영혼을 팔면서, 우리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일본에 대해서 저자세의 모습을 보여주는지 국민들은 이해 할 수 없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천왕을 신으로 섬기는 일본은 망한다”는 성서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사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원시국가였다. 6.25전쟁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국민들은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슬기롭게 대처해 왔고, 대처하고 있다. 오늘 여야 정치인과 정부 인사들은 국민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머리를 조아린다.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할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성서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 나오실 때에 제자 한 사람이 "선생님, 저것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만합니까?" 하고 말하였다./예수께서는 "지금은 저 웅장한 건물들이 보이겠지만 그러나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예수께서 성전 건너편 올리브산에 앉아 성전을 바라보고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찾아 와서/"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다 이루어질 무렵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중략)…/"정신을 바짝 차려라. 너희는 법정에 끌려 갈 것이며 회당에서 매를 맞고 또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우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그리고 사람들이 너희를 붙잡아 법정에 끌고 갈 때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그 시간에 일러 주실 것이니 그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제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들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공동번역성경 마가복음 13장1-13절)
성경은 정치지도자들에게 짐승취급을 받더라도, 말하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교육한다. 오늘을 곤궁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은 하늘의 뜻에 맡기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 힘없는 백성들은 그렇게 살아 왔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돌로 잘 건축했다. 헤롯도 솔로몬이 건축한 교회보다 두 배 크게 건축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돌 하나 남겨놓지 않겠다고 경고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수가 된 무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탄압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돌아보라고 교육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순교를 각오로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최소한도 권력 앞에, 총칼 앞에서 예수님을 배신하는 배신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설교를 잘하는 목사치고,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들의 입에서는 복음(기쁜소식), 하나님의 참사랑 대신 돈!돈!돈! 맘몬의 소리만 외친다. 세상권력에 취해, 정치권력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권력과 맘몬에 열심을 낸다. 성직자나, 정치 권력자나, 사회기득권자나 모두가 영혼이 없다. 영혼을 지키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신앙을 위해 영혼만은 팔지 말자. 순교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기쁜소식), 하나님의 참사랑을 남북한민족, 세계민족과 함께 이 땅에서 실현하는 예수 그리스도인의 제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