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1-11 17:39
[2]벌코프의 기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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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725  

제 3 부 그리스도의 직분

 

기독론의 마지막인 3부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인 선지자직, 제사장직, 왕직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역에 대한 핵심을 이야기 하는 부분으로 기독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강조한 사람은 칼빈이였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는 이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많이 비판을 당한다. 현대 신학에서는 그리스도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고, 그의 사역을 타인에 대한 사랑 정도로 보기에 그를 직분적 인물(offisial character)로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1, 선지자직(The Prophetic Office)

 

그리스도의 직분 중 제일 먼저 강조되는 것은 선지자직이다. 선지자의 히브리어는 나비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에게 전하는 의미이고, 다른 히브리어인 로에, 호제는 하나님의 사자, 주의 사자라는 의미이다.  헬라어는 '프로페테스'이다. 이 단어들의 뜻은 '말을 발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선지자의 역할을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그가 선지자보다 위대한 것은 그의 가르침은 단순히 언어적인 것을 넘어서 성육신, 속죄의 죽음, 부활, 승천 등 실제적이며, 구약의 여러 가지 예표를 이루는 완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신학은 이런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인격의 위대성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 역시 그의 위대한 인성에서 나왔다고 본다. 결국 현대 신학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위대한 선생으로 본다. 저자는 바르트의 신학에서도 현대 신학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바르트가 성육신을 화해의 측면에서만 강조하여 계시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로만 보고 있다고 말한다.

 

 

2. 제사장직(The Priestly Office)

 

선지자와 제사장은 모두 하나님께 임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여 백성에게 이야기 하는 반면,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는 역할을 한다. 즉 선지자가 윤리적, 영적인 의무, 책임, 특권을 강조했음에 비해, 제사장은 하나님께 올바로 나아가기 위한 요건인 의식의 준행을 강조했다.

 

예수님 역시 인간의 연약함을 감당하기 위해 대제사장직을 감당하였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제사장이라고 이야기 한다.(히5:6) 이 제사장의 직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저자는 속죄와 대속의 측면을 강조한다. 구약의 제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가장 성경적인 것은 제사 때 드려지는 예물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 속죄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표적인 것이고, 그리스도에게 와서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요1:29),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1:19), 유월절 어린양(고전5:7)으로 묘사한다.

 

현대신학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부정하지만 특히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부정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대속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 속죄의 원인과 필요성

 

현대신학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무자비한 신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속죄에 대한 여러 가지 역사적 견해들을 제시한다. 중세 신학, 특히 둔스 스코트에 의하면 속죄는 하나님의 전횡적인 것으로 본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없이도 하나님이 구속사역을 하실 수 있다고 본다. 현대신학 역시 속죄를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신비설과 도덕 감화설의 견해로 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결합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분이시다. 그러기에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체가 공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으로서 인간을 용서하려 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속죄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신적 의와 거룩함으로 인해 그의 무한한 위엄에 대한 도전을 단순히 묵과할 수 없고 죄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자명한 교훈으로 여겨진다.

 

둘째, 하나님의 본성 속에 내재된 신적 율법의 위엄과 절대적 불변성으로 인해 그는 죄인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율법의 위반에는 필연적으로 형벌이 주어진다. 그것은 소지니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자유 의지의 소산이 아니고 그의 본성 자체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어길 수 없는 법칙이다.

 

셋째, 속죄의 필요성은 또한 진리의 신이시며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정직성에서 기인한다.

 

넷째, 죄는 단순히 인간의 연약성이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하나님의 대항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다섯째, 구약 성경은 제사와 희생제물의 모형을 통해서 속죄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2) 속죄의 성질

 

그렇다면 이 속죄의 성질은 무엇인가? 저자는 속죄를 객관적(objective)인 것으로 본다. 속죄가 객관적이라는 것은 속죄가 단순히 죄인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주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의 화해가 되었다는 객관적인 측면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 주신다. 따라서 우리가 의인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를 의인으로 선포하시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속죄를 대리적인 것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해 세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즉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대리적 변재가 가능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대리적 형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대리적 속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1)죄 지은 측이 형벌을 끝까지 받으므로 의로운 결말을 가져올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을 때, 2)형벌의 이전의 무고한 제삼자의 권리와 특원의 침해하거나 그들에게 고통과 결핍을 주지 않을 때, 3)대신 형벌 받는 당사자가 이미 법에 저촉된 상태가 아니고, 그의 모든 봉사가 정부에 신세를 진일이 없을 때, 4)범죄자측이 자기 죄를 인식하고, 대리인이 자기를 위해 대신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마지막으로 저자는 속죄가 그리스도의 능동적이고 수동적 순종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죄를 벌하시는 분으로, 그리스도는 그 죄를 묵묵히 감당하는 희생양으로만 본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수동적인 순종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속죄가 성부 하나님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역은 그의 능동적인 순종이었다는 것이다.

 

 

3) 속죄의 제반 이론들

 

(1) 초대 교회의 제 이론

초대 교회에서는 사탄속죄설과 초괄 갱신설이 유행하였다. 전자는 속죄가 인간의 죄에 대한 사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속죄가 우리 인류를 하나님과 아담의 처음 관계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저자를 기묘하고, 통속적인 이론이라고 보고, 후자의 경우는 심오한 이론으로 본다.

 

(2) 안셀름의 속죄 만족설(Satisfaction Theory, Commercial Theory)

안셀름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하나님의 공의에 두는 대신 벌충이나 보상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명예에 두고 있다. 저자는 이 속죄 만족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죄는 피조물이 하나님께 마땅히 돌리지 않는데 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도둑질 당했고, 따라서 이를 요구할 필요가 발생했다. 이는 다음 둘 중의 한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즉, 형벌에 의하거나 만족(보상)에 의해서, 하나님은 자비로 인해 만족의 방편을 추구하셨는데, 그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아들을 선물로 내어주심으로써 이루어졌다. 그것이 유일한 방도였음은 요구되는 만족이 무한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P626-627)"

 

(3) 도덕감화설(The Moral Influence Thoery)

안셀름의 속죄 만족설에 반대되는 것이 아벨라르의 도덕 감화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속죄를 요구하기 보다는 속죄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이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4) 모범설 (The Example Theory)

이 이론은 종교개혁의 속죄론에 대항하여  소지니주의자들이 주장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속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참된 모범을 보이사 그들도 이 같은 삶을 살도록 감화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신다고 주장하엿다.

 

(5) 통치설 (The Governmental Theory)

이 이론은 종교개혁의 속죄론과 소지니주의의 모범설의 타협점으로 제시되었다. 이 이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지탱하기 위하여, 죄에 대한 그 분의 거룩한 불쾌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였다는 것이다.

 

(6) 신비설 (The Mystical Theory)

이 이론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이 우리의 영혼에 신비로운 작용을 하여 인간의 타락성을 근절시키고 하나님과 재결합시키게 했다는 주장이다.

 

(7) 대리회개설 (The Theory of Vicarious Reoentance)

이 이론은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대신 완전한 회개를 드렸다는 이론이다.

 

 

5) 속죄의 목적과 범위

 

 이 부분에서 저자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제한속죄론'에 대해서 언급한다. 제한속죄론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택한 자만을 위하여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논쟁에서 먼저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속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의 의도가 과연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인가?' 아니면 '택한 받은 사람을 위하여 인가?'라는 부분이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먼저 개혁신학에서 주장되고 있는 '제한 속죄론을 증명한다. 우선 저자는 하나님의 계획은 확실히 유호하며 인간의 어떠한 행위에도 좌절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또한 성경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택한 받은 자를 위하여 죽으심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제한 속죄론의 반대자들은 '세상'이라는 단어를 통해 성경에도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상이란 말이 신약성경에서는 비유대인과 그들에게 전파되는 복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온 세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6)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언자라고 묘사한다. 이 말은 헬라어의 팍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일차적인 의미로는 타인의 곁에 부름받은 자를 의미하고 이차적으로는 그에게 조언하거나 조력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로서 우리를 중보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구약의 대제사장의 역할에 비유한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온전한 희생 제사와 함께 지성소로 들어가서 이를 하나님께 드린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의 온전하고 흠없고, 충족한 희생과 함께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를 아버지께 드렸다.

 

또한 이 중보는 법적인 요소 역시 포함한다. 그는 우리의 속전을 드림으로서 우리 인간에 대한 어떤 정죄에도 불가능하게 하셨다.

마지막으로 중보 사역은 지금도 우리의 도덕적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에도 부족하고 지금도 우리를 중보하시어 우리를 성화의 단계로 이끌고 있다.

 

 

3. 왕직


그리스도의 마지막 직분은 왕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피조물의 통치자임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성육신 이후 그리스도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 땅을 다스린다.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믿는 자들을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고 있으며, 영적인 왕국이다. 이 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땅에 먼저 시작되어 있고, 지금도 진행단계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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