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1-29 08:04
구약의 안식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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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778  

구약의 안식일에 대하여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바른 의미를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안식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로교 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배모범을 보면 주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규정한 항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교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하여 교회가 결의하여 결정한 것은 주일날에 대한 규정이 유일할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우리의 예배모범이 웨스트민스터에서 정했던 예배모범을 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약교회는 구약교회처럼 어느 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규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날에 대한 여러 규례들을 주셔서 지키도록 하셨지만 신약에서는 그런 규례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교회가 주일에 대한 규례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신약교회가 구약의 안식일을 영적으로(알레고리)해석을 해서 주일을 지키는 여러 규례를 갖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결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창조세계가 자신의 뜻대로 지어짐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이러한 기쁨에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6일 창조사역을 완성하셔서 창조된 세계가 자신의 뜻대로 지어짐을 보시고 기뻐하신 기쁨과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아담을 이러한 축제의 날에 초대하셔서 함께 기뻐하고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첫 창조세계의 완성을 기뻐하시는 축제가 제7일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날의 어떠함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의 기뻐하심은 죄가 세상을 지배하는 가운데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7일을 거룩한 안식일로 구별하시고 성소 안으로 백성들의 대표자인 제사장을 부르셔서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 밖에 있는 백성들도 모든 일손을 멈추고 그들의 제사장을 통하여 이러한 자신과의 기쁨의 교제에 동참하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언급되는 안식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제 7일에 쉬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기쁨으로 쉬셨습니다. 그러므로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6일 창조사역 후에 피곤해서 쉬셨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도 피곤하면 쉬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 7일의 안식일을 우주적인 성소의 축제일로 쉬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셔서 자신의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그것들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서 우주적인 성소에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도, 네 모든 종들도 그날에는 다 쉬어라. 왜냐하면 너희는 내 장자고 나와 함께 역사를 경영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일하고 내가 기뻐하는 기쁨에 너희들도 동참하여 함께 기뻐하자.”라고 하나님의 기쁨의 안식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해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제사장은 성소에서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하셨지만 성소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일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이 제사장들의 삶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장들의 성소에서의 삶은 성소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의 소망이었습니다. 성소 밖의 백성들의 소망은 자신들의 머리인 제사장들처럼 보다 가까운 성소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면서 하나님을 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일을 금하고 있는 안식일에 전병을 부치고 제물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소 밖에 있는 백성들은 염소를 잡는다거나 밥을 하려고 나무를 주워서도 안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자기 제자들이 들판에서 밀이삭을 비벼먹은 제자들을 바리새인들의 힐문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변호하셨습니다.(마 12장) 그리고 “너희들은 거룩하게 산다면서 제사장 모델을 모르느냐? 성소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의 안식은 쉬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심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에 대한 개념은 육체적인 휴식을 갖는다는 쉼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우주적인 성소를 경영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누리는 안식은 가나안땅에서의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처음부터 자기와 함께 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세우신 제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안식은 역사의 진행을 따라 완성을 향하여 진행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6일 동안 창조를 완성하시고 제 7일에 주셨던 안식도 완성된 온전한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가운데서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미완성의 안식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우셨던 안식은 죄에도 불구하고 주신 안식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에서의 안식은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여러 가지 규례와 지침들이 구체적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만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언약된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날에 예배할 수 있는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고 기뻐하셔서 지정하신 안식일에만 제사장을 통하여 자신에게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완성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신약백성들은 어느 한 날을 거룩하게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안식일에만 예배하고 다른 날에는 예배할 수 없는 날들의 간격과 구별이 없어진 것입니다. 어느 날에든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지 주의 몸에 참여하는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정된 장소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온 우주에로 하나님의 성소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어디든지 그 곳은 하나님의 얼굴 앞입니다. 이처럼 장소의 간격과 사람의 차별 그리고 먹고 마실 것의 제한도 철폐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믿음 가운데서 식사를 하면 그 식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하나님의 상에서 내어 온 응식을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식탁에서의 식사는 주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식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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