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2-16 12:51
내적치유의 본질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747  

내적치유의 본질

 

 

우리의 잘못된 감정이나 삶의 태도 예를 들어 심한 열등감이나 불안, 근심, 초조, 이유 없는 분노, 긴장감, 죄책감, 두려움과 압박감, 심한 경쟁심, 완벽주의, 지나친 집착과 각종 중독적 성향 등은 우리 내면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한 것이며, 이를 치유하는 방법은 의학적인 방법과 심리적인 방법과 영적인 치유방법이 있는데 근본적인 치유는 영적인 치유 즉 하나님께서 직접 치유하시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가? 우리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나의 모든 상처를 그 분 앞에 낱낱이 고하며 맡길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좀 어려운 질문이지요. 갑자기 오래 전 사춘기 시절에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다시금 드리는 것입니다마는, 여러분은 그 때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시금 질문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 때 “나는 김경수입니다”하고 이름을 댑니다. 아니면 자신의 직업을 말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여성분들의 경우 누구의 아내라든지 누구의 엄마라든지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자신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상대적이고 변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그 직업을 잃었을 때 방황하게 됩니다. 평생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들 수발에 모든 것을 바쳤던 주부들이 자녀들이 장성하여 그 품을 떠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어디서나 일등을 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들은 경쟁에서 밀렸을 때 견디지 못해 합니다. 이렇게 세월이나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되는 것은 진정한 나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나는 세월이나 외부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내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나의 가치는 무엇이며 무엇을 하기 위해 현재 존재하는 가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가수 최희준씨가 부른 노래도 있지요.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노래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이러한 인생은 그저 덧없는 삶입니다. 허무한 인생입니다. 불쌍한 인생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많은 현인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고행이나 수양을 통한 몸부림을 쳤지만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행이나 수양이 없이 스스로 알고 계셨습니다. 이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어디서 왔는가? 요8:42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2) 어디로 가는가 요16: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3) 내가 누구인가?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4) 사명이 무엇인가? 요6:39 -4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와 같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너무도 분명히 알고 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는 데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까지도 사명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 질문을 드릴 때 예수님처럼 분명한 대답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 질문을 받을 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러한 질문에 선뜻 대답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입니다. 가족 부양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가족부양입니다. 전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영혼구원인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나의 사명에 적합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나의 사명에 적합한 정체성이 분명히 서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왜 상처를 받으면서 그 상처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습니까?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내 안에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함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이 주변의 상황이나 판단에 좌우되는 삶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긍심을 가지던 아니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 사람도 사실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 채 이 땅에 태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를 만드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비추어야 만이 진정한 나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채 태어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주변사람들과 세상적인 시각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주변사람이나 환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까요?

 

무엇보다도 육신의 부모와 형제자매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 TV나 인터넷, 언론매체 그리고 사람과 환경 뒤에서 역사하는 사단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살아가면서 서서히 형성되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불변하는 진리인양 받아들이게 되고 그 영향 하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나 선생님의 생각 없는 말 한마디가 그의 내면을 결박시켜 평생을 정신적 불구인생을 살아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처를 주는 비난의 말은 단 한마디라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반면에 칭찬의 말은 쉽게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특히 행동에 대한 비난보다는 인격에 관한 비난에 더욱 깊은 상처를 입는다고 합니다.

 

흔히 부모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지만 평생 자녀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넌 왜 늘 하는 일이 그 모양이니?’ ‘넌 어째 그렇게 바보 같니?’ ‘한번이라도 머리 좀 써봐라’ ‘너는 왜 네 형이나 언니 같지 않니?’ ‘너 앞으로 어떻게 되려고 그러니? 생각하면 끔찍하다’ ‘너 하는 걸 보니 꼭 누구처럼 밖에 안 되겠구나’‘너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를 힘들게 했어’ ‘태어난 날 이후로 속을 썩여보지 않은 날이 없다니까’ ‘어쩌자고 내가 너 같은 자식을 낳아가지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무슨 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있니?’ ‘저러니 좋아해주는 친구가 주위에 아무도 없지’ 사실 이런 말들을 할 때 부모가 그 자녀가 미워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저 잘되라고 경계하는 뜻에서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자녀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연못에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그 돌에 맞은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격의 성숙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말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뛰어나다고 해도 성숙된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도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315 사울이 신접한 자에게 물음 웹섬김이 03-03 2739
2314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웹섬김이 02-27 3362
2313 창세기 1장의 구문론적 특징 웹섬김이 02-27 3049
2312 영적인 사람의 7가지 습관 웹섬김이 02-16 2705
2311 내적치유의 본질 웹섬김이 02-16 2748
2310 도표로 보는 가톨릭의 배교 역사 웹섬김이 02-16 3187
2309 올바른 성관계 웹섬김이 02-16 2979
2308 우리는 제대로 예배하고 있는가? 웹섬김이 02-08 2381
2307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웹섬김이 02-08 3033
2306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치유하셨는가? 웹섬김이 02-08 3186
2305 질병이 치유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신학적 입장 웹섬김이 02-08 3154
2304 무저갱은 어떤 곳입니까? 웹섬김이 02-08 3846
2303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 웹섬김이 02-08 2769
2302 영적인 (Spiritual Life) 삶이란 웹섬김이 01-29 2923
2301 시한부 종말론은 왜 이단일까? 웹섬김이 01-29 2541
2300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분별은? 웹섬김이 01-29 2741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