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22 18:47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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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8,440  
한국교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복음주의 신학'의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다. 여러 가지 신학유형들을 포괄한다. 개혁주의, 근본주의, 오순절주의, 보수주의, 신복음주의 등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합바지 신학'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복음주의라는 말이 독일에서는 개신교를 뜻하고 영국에서는 요한 웨슬레와 궤를 같이하는 잦들을 말하며, 미국에서는 풀러신학교, 트리니티에반젤리칼, 고든콘웰신학교 등이 지향하는 신학을 지칭한다. 미국의 상황에서는 대체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현대주의 신학이나 성경비평학을 수용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복음주의 안에는 자유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가진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한국교회는 신정통주의를  "신신학"(new theology)로도 일컫어 왔다. 바르트주의라고도 한다.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가 주창한 것으로, 복음주의라는 넒은 테두리 안에 속하면서도 자유주의와 축을 같이한다.

박형룡, 박윤선 박사를 포함한 한국의 보수계 장로교회 신학자들은 신정통주의를 '자유주의 신학'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장로교 통합, 기장 등 진보계 장로교회는 그 신학을 수용하고 따르며 충실하려고 애를 쓴다. 

복음주의자들이 보는 신정통주의는 무엇인가? 서울신학대학교 목창균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자(편집자)


신정통주의는 신자유주의인가  

현대 복음주의는 ‘분열된 제국’으로 비유될 만큼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 한 쪽 끝에 근본주의가 있다면, 다른 한 쪽 끝에 신정통주의가 있다. 전자가 우파 복음주의라면, 후자는 좌파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양자 모두 자유주의에 대한 항거운동이었으며, 미국에서 일어난 것이 근본주의인데 반해, 유럽에서 일어난 것이 신정통주의였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신학의 한계를 체감한 일단의 젊은 학자들에 의해 태동되어, 서구신학의 흐름과 판도를 정통주의 쪽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20세기 전반부의 신학을 주도했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신학의 도도한 흐름을 차단하고 그것을 붕괴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 내부에서 태동되어 그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또한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신학에 의해 변두리로 밀려났던 하나님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개신교 신학의 중심부로 원상 복귀시켰다. 

자유주의신학이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신학적 토대와 출발점으로 삼았던데 반해, 신정통주의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신학의 유일한 근거로 삼았으며, 성서적 기독교, 성경에 토대를 둔 개신교 정통주의의 부흥을 이룩했다.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회복시켰다. 자유주의신학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고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와의 연속성을 주장하여 인간중심주의 신학이 되었다. 반면,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은 세상과 전혀 다른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내재성 속에 매몰된 하나님의 초월성을 재발견했다.

한편, 신정통주의가 자유주의신학 내부에서 태동된 것이라는 사실은 신정통주의의 한계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통주의 창건자들은 자유주의신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성경과 정통주의에서 신학의 활로를 찾았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자유주의신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속에는 자유주의의 잔재들이 남아있었다. 성경을 계시나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지 않고 계시에 대한 증언으로 본다던가 성경 무오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 비평학을 수용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신정통주의 신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신정통주의와 복음주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신정통주의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평가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나, 대략 세 갈래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신정통주의를 현대 복음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부정적 견해다. 그것은 신정통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비판하는 보수적 복음주의 또는 근본주의의 관점이다. 

둘째, 그것을 정통주의로 인정하는 긍정적 견해다. 버나드 램, 블로쉬 등 바르트 신학에 호의적인 학자들이 이를 대변한다. 램은 바르트의 신학을 “현대인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학을 재 진술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그것을 “복음주의적 신정통주의”라고 불렀다. 

셋째, 사안에 따라 신정통주의를 비판하기도 하고 용납하기 하는 중도적 견해로, 브로밀리, 벌카우어 등이 이를 대변한다.

한편,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신학이 개신교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신정통주의의 비판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신정통주의신학에 의해 복구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정통주의를 복음주의의 한 지류로 분류하는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근본주의자들은 신정통주의자들을 전우나 동지로 대하지 않고, 적대시하기조차 한다. 그렇다면, 왜 신정통주의는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신자유주의, 또는 새로운 현대주의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가? 

첫째, 신정통주의는 역사 비평적 연구를 수용하고 있다. 신정통주의는 성경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나 성경을 무오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따라서 성서 비평의 수용문제는 복음주의와 자유주의를 가르는 분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적 복음주의 혹은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신정통주의를 위장된 정통주의로 간주하는 것은 역사 비평문제 때문이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의 기본적 주장에 도전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주의의 전형적 성서연구 방법인 역사 비평을 수용하고 있다. 반틸(Van Til)은 신정통주의가 역사 비평과 문학 비평적 성서연구에 개방적이며 성서에 신화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 때문에, 그것을 신 현대주의로 비난하고, 자유주의 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옛 프린스톤 칼빈주의자들인 하지와 와필드와 바빙크로 이어지는 엄격한 정통주의 노선을 따르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 입장이다. 

둘째, 신정통주의는 성경을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믿지 않고, 계시에 대한 증언으로 간주한다. 복음주의자들이 신정통주의를 복음주의로 분류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성경관 때문이다. 신정통주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역사적 기독교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로 믿지 않고, 계시에 대한 증언으로,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언으로 해석한다. 또한 성경 저자들의 영감만 말하고 그 말씀들의 영감을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셋째, 신정통주의는 정통적 진리를 주장하지만, “인격적 뜨거움과 살아 있는 신앙”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복음주의는 경건주의 전통을 계승하여 정통 교리와 더불어 인격적이며 살아 있는 신앙을 강조한다. 

기독교 정통 교리를 주장하거나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 복음주의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주의 신학을 독특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정통주의, 성서적 권위 또는 크리스천 경험에 대한 독점적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복음의 본질적 요소로, 신앙 고백으로 그리고 전도와 세계 선교에 대한 명령으로 표현하는 열정적 관심이다. 종교 개혁적 신학개념과 갱신 및 회심의 정신이 결합되어야 복음주의적이 되는 것이다. 

신정통주의는 인간 중심적 자유주의 신학의 해악을 중화하기 위해 필요한 해독제였으나, 그 정량을 조절하지 못하고 과다하게 투약하여 오히려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개혁주의 신학에서 보면 과다하게 투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투약하여 자유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편집자 주).

목창균 교수 /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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