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6-04 18:26
[2]성령 훼방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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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630  

히브리서6:6절을 보면“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모든 것을 다 체험해 본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다 체험해보고 십자가를 부인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체험해보지 못하고 십자가를 부인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체험해보고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는 사람은 돌아올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구원받을 길이 없냐면 가서 복음을 말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체험한 것이 너무 크니까 복음을 말해도 어리석은 소리한다고 오히려 핀잔을 줍니다. 나도 다 해보았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병도 고쳐보고 그것 쓸 때 없는 거야 그러면서 거절합니다. 체험을 많이 해본 사람은 복음을 말해도 웃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서 말해도 시시하기 때문에 듣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 체험을 해보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다가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고 병도 고치고 다 해보고 나서 결국에 가서는 예수는 우리를 구원할 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5:16절을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에 대해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용서를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는 구하라 하지 않겠노라 말씀 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무슨 죄입니까? 율법적인 죄입니다. 율법적인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적인 죄는 회개하면 용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회개하라고 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도 안 믿는데 회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구하라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없어야 되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그 사람이 회개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씀입니다. 구하라 하지 않겠노라고 말씀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은 회개하라고 할 필요성이 없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믿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믿는 것부터 해야지 믿지 않는 사람이 믿지 않는 상태에서 밤낮 회개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회개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죄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망에 이르는 죄요 하나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일서5:17절을 보면“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어떤 죄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입니까? 율법을 범한 죄입니다. 율법을 범한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이 사망은 둘 째 사망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왜 둘째 사망을 말씀 하느냐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한번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라는 말씀은 두 번째 죽음 입니다. 두 번째 죽음은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을 말씀 합니다.

 

 

 

요한계시록20:14-15절을 보면“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둘 째 사망을 당합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생명책에 기록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예수를 안 믿는 죄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짓는 죄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 성령 훼방, 성령 거절, 성령 거역, 이런 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은사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사를 공격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를 세우려고 목사님이 기도하는데 성령이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모 집사님에게 교회 세우는데 필요한 자금을 부탁하라 진짜로 성령이 역사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집사님에게 내가 기도하는데 성령이 역사해서 전합니다. 기도하면서 전해 주었는데 그것을 거절합니다.

 

 

 

 이것도 성령이 말했기 때문에 성령을 거절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사함 받지 못하는 성령 거절, 성령 모독은 구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해당되는 것이지 그냥 일반적인 훼방 거역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전해 받은 말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거역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말씀한 것을 거역할 지라도 지옥가는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성령이 말씀하는 것을 거역해서 지옥 간다면 지옥 안갈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럽니까? 죄를 범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믿는 자들이 죄를 범할 때는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것 하면 안 된다! 그것 하면 안 된다!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성령이 역사하는데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이 역사해서 죄를 범할지라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입니다. 율법적인 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데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한다 할지라도 사함 받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사함 받지 못하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훼방하는 것이 곧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닌 율법에 해당하는 것에서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는 아닙니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나 한번 비췸을 받았다가 다시 타락하는 죄나 이런 죄들은 십자가의 구속을 거절하는 죄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죄도 사망에 이르는 죄는 없습니다. 오직 믿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복음16:8-9절을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죄 지은 것은 용서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적으로는 떳떳하게 살았지만 용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나에게 과실이 있는 형제를 얼마나 용서해 줍니까 하고 물으니까 일흔 번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죄 용서는 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용서가 끝이 없다 말씀 하시고 일반적인 성령 훼방을 한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말이 안 맞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죄가 아니고 복음을 거절하는 죄를 말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는 어떤 죄라도 용서 못 받을 죄가 없습니다. 성령 감동으로 전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안 듣고 하는 것과 이 세상에서 용서 못 받을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예수 믿지 않는 것은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모독한 것입니다. 예수를 거절하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는 십자가를 거절하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거절했던 사람들은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거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똑 같이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 하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 집을 압니까? 모릅니까? 탕자는 아버지 집을 압니다. 아버지 집을 알면서도 집에 안 들어가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집에 안 들어가니까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헤어져 있는 죄에 대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타국에서 눈물 흘리며 회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개하면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죄는 아무리 울면서 회개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탕자가 밖에서 회개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은 집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들이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은 집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와서 율법을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 들어오면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끊어졌습니다. 우리가 율법적인 어떤 죄라도 용서 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 앞에 들어가지 않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들어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갈 수 없습니다. 다른 길로는 갈 수 없는데 십자가를 부인하면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몸으로 구속을 이루시고 그것을 전도로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은 무엇을 하십니까? 성령도 구속을 가르치시고 전도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똑같이 구속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 성령의 구속의 사역, 우리가 하는 구속의 사역이 똑같은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하는 이 사역을 거절하면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것이 성령 거역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의 복음 자체를 훼방하는 것 그 복음 틀렸다 잘못됐다 이렇게 훼방하는 것은 나를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 사역을 전하는 그 사람의 구원 사역을 훼방하고 구원 사역을 거절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전하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구원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 구원 사역을 거절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을 거절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병 고치는 것이나 방언 하는 것이나 예언 하는 것 등을 보면서 예언이 틀렸어 저 방언 마귀 방언이야 이렇게 훼방해도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 사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 해도 훼방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는 그것을 훼방하는 사람은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성령 훼방 죄요, 성령 거역이요, 성령 모독이므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거절했다가 베드로의 말씀을 거절하고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거절한 사람들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 받아서 외치는 사람들을 거절하면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복음가진 사람들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복음 가진 사람을 멸시하고 훼방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혹 어떤 사람이 어떤 생활 때문에 복음 가진 사람을 훼방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제가 복음을 강하게 주장하는데 제 생활이 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생활이 좋지 않은 것 때문에 저 사람 말 듣지 마 이렇게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1-3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말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이 말씀은 진리에 자리에 앉아서 진리를 전하기 때문에 그 말은 받아들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도 말로는 잘하는데 행동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행동 때문에 그 사람 하는 말까지 잘못 되었다 해버리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행동은 잘못될 수 있으나 확실한 복음이라면 잘못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 행동과 그 사람 복음을 같이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분별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 행동이 나쁘면 복음도 나쁩니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말씀하니까 행동이 나쁘면 복음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동이 나쁘면 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저 사람 말하는 것은 가짜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열매에 대한 설교를 참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행위가 좋아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혹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다 보면 혹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 좋아야 하고 다 깨끗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정말 정직해야 하지만 혹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그의 행동이 나쁘다 해서 그가 전하는 복음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의 행동을 봅니다.

 

 

 

 그 행동이 틀리면 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했지 않았냐 보나 마나야 들어 보나 마나야 그렇게 말합니다. 아마 제가 복음을 강하게 전하면서 그런 행동이 여러분에게 보이면 그런 말 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아마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아이고 저 사람 말 들어 볼 필요도 없어 그 사람 순 사기꾼이야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육적으로는 사기 칠지라도 말씀 적으로는 사기 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바로 전하니까요. 육신의 잘못을 가지고 복음 자체를 잘못 되었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 자체가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 육신적인 문제는 육신적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목사님이 죄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구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들어 나느냐 안 들어 나으냐의 차이지 행동을 가지고 복음과 연결시키려 한다면 이 세상에 과연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것으로 오해하면 오히려 복음을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 하는 것 복음을 전하는데 거절하는 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반대할 때 그 사람이 복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율법주의의 폐해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복음적이지 못한 것은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사실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는 율법을 세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이 조금 잘못하는 것은 사실 그 부분만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고쳐지지를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 두 가지 사상입니다. 복음이냐 율법이냐 입니다. 다 그 안에 속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종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또한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종말이 오니까 이런 문제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준비하느냐면 예를 들어서 새벽기도 잘 안 나오는 사람이 새벽기도를 하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되었으니까 준비하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준비는 율법적으로 잘 행하는 준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은 복음이 없기 때문에 더 행위적인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는 사람은 사실 종말론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종말론이 중요하다면 자기가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서 준비 하도록 전도 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죽으면 자기 자신이 두려운 것입니다. 구원 받을지 모르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그들은 잠을 못 잔다고 말씀합니다. 아직 다 하지 못했으니까 잠을 편히 잘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족할 만큼 다 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잠도 못자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상관없이 율법으로 짓는 죄는 사함 받을 수 있는 죄요, 복음을 거절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한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거절한 것을 말씀한 것이지 지금 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함 받지 못하는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자기가 깨끗하지도 못하면서도 깨끗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깨끗해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목욕해서 깨끗해지려고 하는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교회 들어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서도 율법주의는 고치기가 참 힘듭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율법주의 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하늘에 별을 따는 것과 같이 힘이듭니다. 기적입니다. 수천 명 가운데서 1명 나오기가 힘드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안 믿는 사람을 구원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사상이 돌아선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은 다시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성령 훼방, 성령 모독, 성령 거절 이것은 곧 복음을 거절하는 죄 입니다. 은사가 성령의 선물이지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셔서 아직도 사망에 이르는 죄 그런 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돌이켜서 율법주의 사상에서 복음주의 사상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헌신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성령께서 예수의 날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은혜와 평강!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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