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03 13:11
예수님 이전에는 ‘양심’으로 구원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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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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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이전에는 ‘양심’으로 구원을 받는가?

 

“이 성막은 현재 곧 이때까지의 모형이었음이라 그 안에서 예물들과 희생예물들을 드렸어도 그런 것들이 섬기는 자를 양심(良心)으로 완전하게 할 수는 없나니...”(히9:9)

본래 세대주의는 양심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로 구분하여 양심시대는 예수님의 보혈이 아닌 양심의 기준으로 구원받고 율법시대는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았으며 은혜시대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세대주의 교리이다.

세대주의는 예수회(제수이트)로부터 조작된 사탄의 교리이며 그것을 미국침례교회에 퍼뜨린 자들은 예수회원 존 다비, 그리고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며 근래에는 예수회 비밀회원인 헬 린세이 등이 퍼뜨렸고 그 본산지는 프리메이슨이 장악하고 있는 남침례교회의 ‘달라스 신학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양심대로 살다가 죽으면 구원을 받는다’ 란 교리인데 그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카톨릭 예수회(제수이트)의 괴악한 누룩인 것이다.

이렇게 복음도 분명치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초신자들을 상담한다고 잘못된 교리를 늘어놓아 초신자들이 복음에 서있지 못하고 흔들릴 수가 있다. 
우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결코 양심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오직 구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결코 이중 구원의 방법이 없다.

 

예수님은 창조 이전부터 우리의 구주이심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게 되고 흠없게 하시려고 그분의 선한 기쁘심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에의하여 자신의 자녀들로 입양하셨으니...”(엡1:4-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그분의 목적과 은혜에 따라 하신 것이니 이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딤후1:9)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히1:1-3) 본래 하나님이시고(딤전3:16)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동등됨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골고다 나무 위에서 고난을 받으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으며 부활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하나님의 권능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요일5:20) 영원한 생명이시고(요일1:1-2)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시작과 끝마침이시며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계1:8)이시기 때문에 아담도 가죽옷(창3:21)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으며 아벨도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았고(창4:4, 히11:4)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 수없이 많은 구약의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그들이 볼 때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뿐 구약의 그 누구도 양심이나 율법으로 구원받은 생명은 결코 없었다.

양심은 처음에 그 역할을 할 때부터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줄 뿐 양심의 기준에 맞게 선(善)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래 ‘양심’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자꾸 죄를 범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죄를 분명히 깨닫게 하게 하시려고 율법을 추가로 주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의 눈 앞에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하여는 죄를 깨닫기 때문이라”(롬3:20) 
“그렇다면 율법의 일은 무엇이냐 그것은 허물들로 인하여 더해진 것으로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라 한 중보자의 손에서 천사들을 통하여 제정된 것이라”(갈3:19)

그러므로 양심으로도 죄인된 사실만 알게될 뿐 양심의 기준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과거에도 없었고 더구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을 육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양심’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율법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사람들, 또 다른 종교인들이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은 양심의 빛 앞에 자신의 죄가 드러나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

결코 양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하신 구주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반드시’ 구원받는 진리 외에 무엇을 더하면 ‘다른 복음 이단’이고 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야 할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에게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요 우리는 반드시 이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느니라”(행4:12)

 

양심(良心)이란 무엇인가?

“이런 이들은 또한 그들의 양심이 증언하며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중에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느니라”(롬2:15)

‘양심’이란 무엇인가? 천하 만상중에 ‘양심’을 소유한 생명체는 사람뿐이다.

자연의 창조물, 나무나 풀, 초목 그리고 날짐승이나 물고기, 동물, 가축들 중 그 어느 피조물도 ‘양심’이란 기능이 없다. 
‘양심’은 그리스어로 쉬네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sunideesis)라고 하는데 ‘함께 안다’는 뜻이 들어있다.

누가 누구와 아는가?

나의 본성과 양심이 알고 내 양심과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뜻인데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양심에 걸리는 죄를 안다는 뜻이다.

이담과 하와는 처음에는 ‘양심’에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의(義)의 기준에 일치했고 또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양심을 알고 계셨는데 걸리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의(義)의 빛을 밝게 비추임 받고 있었던 아담과 하와의 양심은 티끌 하나 없고 맑고 맑은 양심으로 즉 깨끗한 양심으로 거룩하시고 거룩하시고 또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리낌이 없이 교제를 나눌 수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아들(눅3:38)이였다.

비록 흙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 생령을 부어넣으셨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양심에 걸리는 사건이 있었으니 ‘먹지 말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양심에 걸리게 하는) 나무의 것을 먹었을 때 그들의 양심은 즉시 걸려버렸고 부끄러움, 수치,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 앞에 부끄러운가?

바로 하나님 앞이였다.

누구 앞에 수치스러운가?

바로 하나님 앞이였다!

누구 앞에 두려운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였다!

무엇이 그렇게 하였는가?

말씀을 어긴 죄와 그들의 ‘양심’이 그렇게 하였다.

양심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양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의의 빛에서만 그 역할을 한다. 양심은 죄의 어둠에서는 찔리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 앞에 서지 아니하면 참으로 자기가 완전히 걸리는 죄인인지를 알 수가 없다.

상황윤리는 양심을 걸리게 하기도 하고 걸리지 않게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일단 서게 되면, 그분의 찬란하고 거룩하신 공의의 빛 앞에 걸리지 않는 ‘양심’은 없다.

그래서 그 양심이 하나님의 거룩을 피해 어두움으로 도망을 치게되는데 그것이 곧 지옥까지 도망을 치게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내어쫓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의의 빛에 견딜 수 없어 거룩이 없는 어둠 즉 지옥으로 숨어버리는데 마치 부엌의 어둠 속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뛰놀던 바퀴벌레들이 갑자기 전등을 켰을 때 그 빛을 피해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달려가 숨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빛을 싫어하는 생물들을 보라. 박쥐, 두더지, 굼뱅이같이 양심은 빛 앞에 설 때 자기의 죄를 알게되고 하나님을 피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아니한 지옥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그날의 서늘할 때에 동산에서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주 하나님의 면전을 피하여 동산의 나무들 가운데 숨으매...”(창3:8)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그 빛으로 오지 아니함은 자기의 행위가 책망을 받을까 염려함이라”(요3:20)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자기 양심에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맨 나중까지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떠나가니 예수님만 홀로 남으시고 그 여자는 한가운데 서 있더라”(요8:9)

위의 말씀에서 아담이 스스로 하나님을 피해 숨었고 악을 행하는 자가 빛을 미워하며 율법 바리새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주님을 떠나버렸다.

주 예수님을 떠나버리면 지옥이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구원이다.

무엇이 그렇게 하였는가? ‘양심’이였다. 양심이 왜 그렇게 하였는가?

양심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만 그 기능을 완전 가동하고 그때에 비로소 사람이 더럽고 추한 죄인임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즉 소위 ‘양심시대’에서는 걸리지 않는 사람도 그 양심시대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양심은 찔리고(행2:37) 괴로워서 유다같이 죽어서라도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깨끗해진 구원받은 양심

“하물며 더욱더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하여 자신을 흠없이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그 피가 어찌 죽은 행위들로부터 너희 양심을 정결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히10:22) 
“오직 선한 양심(깨끗해진 구원받은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응답하는 것이라”(벧전3:21)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우리가 아담 후손으로 태어났더라면 양심에 걸릴 죄가 없이 양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이 이미 범죄한 이후에 출생한 아담의 후손으로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였다(롬5:12)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양심에 죄가 걸리지 않아 주님 앞에 설 수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양심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들 죄까지 즉 세상 죄를 지셨기 때문에(요1:29)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선악을 알게되고 책임연령이 되었을 때 양심으로 죄를 알게 되고 그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만 용서받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양심은 깨끗하게 되는가? 양심이란 단지 판단만 해주고 자유의지는 없다.

양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영’과 ‘양심’은 하나다.

‘영’이 하나님께 가고 싶어도 ‘양심’에 죄가 걸리면 지옥으로 피하는 법인데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양심에 걸리는 죄 그것이 크던 작던 기억에 남던 없던 ‘죄’라고 붙은 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서 처리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깨달을 때 양심은 하나님 앞에 걸리지 않게되고 동시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품에 달려가는 것이 구원이요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 현재 천국에 있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죄인이 죄 없다고 믿으시며 죄인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피를 보고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여기시는 말씀을 믿어 두 믿음(하나님과 성도의 믿음)이 일치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결론으로

어느 시대이든 예수님의 피없이 양심으로 구원받는 때는 결코 없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해준 것 외에 너희에게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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