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03 15:55
부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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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814  

부활의 이해

 

“14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 또한 헛것이라”(고전 15:!4) [한글킹]

 

 

주님의 재림의 나팔 소리에 맞추어 나타나는 굵직한 사건은 첫째 부활과 휴거이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한다. 부활의 이해 없이는 구원도 종말도 모두 헛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고전 15:52, 각주참조)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에 있는 부활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주님과 제자들이 구약성경을 예로 들어 부활을 설명하였기 때문이다.(막 12:24, 外 각주참조) 구약성경에서의 부활에 대한 기록은 이사야 26장 19절, 다니엘 12장 2절 등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부활이 분명한 사실로서 성경의 핵심 진리로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부활의 종류 - 생명의 부활과 저주의 부활

 

“29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한글킹]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개역]

 

부활은 본문의 내용대로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즉 두 번에 걸쳐서 있게 된다. 부활에 대하여 말하는 고린도전서 15장 22~24절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각자가 그 서열대로 될 것인데 그리스도가 첫 열매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즉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대목이다. 이처럼 성경은 부활이 두 번에 걸쳐서 있을 것을 분명히 한다. 첫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이루어지는 본문의 말씀이고 두 번째 부활은 악인들의 부활(심판의 부활, 저주의 부활)로서 백보좌 심판 때 이루어진다.(요 5:29, 外 각주참조)

 

여기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부활이 일어날 때 오직 한 번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무천년설을 취하는 자들의 주장에 대해서이다.(각주참조) 이들의 주장대로 한 번의 부활만 있다면 둘째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의미가 없게 되는데 인간의 주장으로 인하여 성경의 기록이 무시되고 사문화死文化된다면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인데 이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이 구절도 무시되고 의미가 없게 되어 성경이 진리라는 공식이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주장 가운데 지탄을 받아야 마땅한 것은, 논거로 삼을 수 있는 성경의 구절이 유일한 구절일 경우, 즉 성경에 한 구절만 있는 경우에 그것을 근거로 삼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예로 전천년설을 취하는 자들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 별도의 두 번의 부활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요한계시록 20장 4~6절의 내용을 논거로 삼을 때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의 유일한 구절이라는 것을 이유로 무시한다.(각주참조) 이것은 논평할 가치 없이 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른 학문이라면 몰라도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라고 한다면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성경의 신비는 대부분 한 구절만 있는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의 작태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대부분의 성경의 내용은 무시되어야 할 것이다. 반복해서 강조되는 구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에 근거가 있는냐를 묻는 질문에 성경적 근거가 단 한 구절이라도 있다면 그 주장을 가볍게 보지 않는 것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이들은 이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는 자들이다. 유일한 성경 구절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논지는 자신이 스스로 학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유일한 구절인 성경의 내용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논리에 맞추어 그 내용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편의에 따라 성경을 변개한다면 모든 성경의 기록들은 전혀 그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자신들이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공중 재림의 성경 기록을 부정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성경의 기록은 비유나 상징으로 기록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자구적으로 해석을 해야만 진리가 보존되고 하나님의 다림줄에 합하게 되는 것이다.

 

2. 첫째 부활의 요건

 

첫째 부활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첫 번째 논점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요건이다. 어떤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성경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요건이 있음을 암시한다. 단순히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자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낙원에 거하는 자들 중에도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활의 요건에 대해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구절은 요한계시록 20장 6절과 누가복음 20장 35절, 빌립보서 3장 11절이다.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 20:6)

 

“35 저 세상과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자들은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않으며”(눅 20:35) [한글킹]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1)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빌 3:11) [한글킹]

 

본문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요한계시록 20장 6절의 말씀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저 세상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자들”이라고 기록된 누가복음 20장 35절은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지 아니한 자들이 있다는 것으로 반대 해석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고 기록된 빌립보서 3장 11절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 구절들의 함축된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 낙원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다.(고전 15:22~23, 각주참조) 첫째 부활은 의인의 부활로서 낙원에 거하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에 맞추어 있게 되는 부활이다. 악인의 부활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백보좌 심판 때 있는 둘째 부활에 해당되고 첫째 부활은 의인의 부활로서 낙원에 거하는 자들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낙원에 거하는 자들 가운데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인가? 바울은 낙원에 거하는 자이다. 바울이 낙원에 거하지 않는다고 말할 자는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강도도 낙원에 거하는 자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낙원에 거하는 바울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고 말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 첫째 부활에 이르려고 안간힘을 썼는가? 평생 강도짓을 한 십자가의 강도 같은 사람도 천국에 간다면 바울은 당연히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즉, 강도가 천국에 갔다면 바울이 첫째 부활에 이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을 터인데 왜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첫째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까?

 

이 구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성경의 인물들 중 신약성경을 대표하는 인물이 첫째 부활에 참여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고민하였다는 것은 아무나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낙원에 있는 자들 가운데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저 세상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자들”이라고 하신 말씀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부활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이라는 표현은 첫째 부활, 즉 의인의 부활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부활은 악인의 부활인 둘째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낙원에 있는 자들 가운데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고 모세나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낙원에 있는 사람 가운데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사람은 십자가의 강도와 바울이다. 이 둘을 비교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요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종교적인 그리스도인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강도와 같은 사람과 바울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와 같이(눅 13:28, 각주참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은 강도의 경우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강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근거는 성경에 기록된 부활과 휴거의 요건에 있다. 부활과 휴거는 주님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으로서 그 요건이 같은 것으로 본다. 여기서 휴거는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가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휴거의 모델은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간 에녹이다. 에녹의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 외에 특별한 기록이 없다. 즉, 휴거의 요건이 하나님과 동행인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십자가의 강도를 보면 강도는 성경의 인물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십자가의 강도는 낙원에 거하지만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가려졌다. 여기서 돌아보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 성경공부를 통해서 지식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가, 아니면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이다. 만약, 나 자신이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고 의인의 부활인 첫째 부활에 합당하지 않은 자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부활의 실상에서 보아야 할 것은 중간지대인 낙원에 거하는 영혼들 가운데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이 진리가 가려져 있다. 십자가의 강도가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여 구원이 참으로 쉽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성경의 내용과 전혀 다른 구원론을 지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신앙은 성경이 말하는 참 신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거짓신앙을 참 신앙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강도와 같이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을 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계획과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자원을 사용하여 자신이 이루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참 신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생활은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묻고 그 응답을 듣고 살았던, 모세나 선지자가 살았던 방식의 생활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첫째 부활의 요건에 합하지 않기 때문에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없는, 신앙이라고 볼 수 없는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님이 하시는 이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은 둘째 사망을 피해갈 수 없다. 주님께서 “저 세상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바울 사도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을 하는 그 지위를 가진 자들, 즉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은 주님과 동행하며 모세나 선지자가 살았던 방식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 책 11-2-3. 둘째 사망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십자가의 강도는 주님과 동행한 자도 아니고 “영생을 얻는 요건”에 하나도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깊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만, 강도는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공로만으로 낙원에 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지난 후 최후의 심판이 백보좌 심판 때는 둘째 사망을 피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둘째 사망에 대한 경고가 살 떨리는 경고라는 것을 인식하는 자들은 구원의 요건에 대해 철저하게 성령님의 계시에 의하여 재조명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 년의 갑절을 산다고 해도 낙원 생활 이후에 지옥으로 간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전 6:6, 각주참조)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지 낙원에 거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백보좌 심판의 기준에서 벗어난 자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회복시리즈 09. 성경적 종말 中 일부 발췌 / 박찬빈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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