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22 10:54
[2]신약신학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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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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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스 콘젤만


콘젤만의 {신약신학의 개요}는 1967년에 출판되었다. 서론; 신약신학의 문제, 헬라적 환경과 유대적 환경의 문제를 취급한다.- 1부; 원시 공동체와 헬라적 공동체의 케리그마. 2부; 공관복음서의 케리그마. 3부; 바울의 신학. 4부; 바울이후의 발전과 요한 신학.그의 구조는 뚜렷한 방법론적 중요성을 지닌 주요한 세 변화를 나타낸다. 1. 예수의 메시지의 완전한 생략 - 그의 신약신학의 기초적인 문제는 선포자인 나사렛 예수가 어떻게 선포된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인 주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더우기 그것은 부활현현 이후 신앙이 왜 승천한 자를 나사렛 예수와 일치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2.초기 교회를 향한 움직임이 퇴보라는 가치 판단을 피하고 바울문헌을 바울 이후 문헌과 바울학파의 존재에 특별히 연결시키며 사도시대와 사도이후의 시대는 신약신학의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이유로 콘젤만은 그의 신약신학을 일관성있게 하려고 마지막 부분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3.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신약신학개념의 부분으로 포함함으로서 가장 분명하게 불트만을 극복하였다. 이것은 복음서 연구에서 이루어진 편집 비판 연구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콘젤만 자신이 그 선구자이다.

콘젤만은 전승사의 방법을 근거로 신앙의 원전, 신조의 가장 오래된 형식을 재구성하려고 추구한다. 또한 초대 기독교의 신조를 추정하나 그것은 그를 불트만파에게로 돌아오게 한다.전체적으로 볼 때 콘젤만에게 있어서도 신학은 하나님과 세계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신앙은 새로은 자기 - 이해를 초래한다. 콘젤만은 재구성과 해석의 상관성에서 하나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변화는 규범적이라기 보다는 역사적인 재구성을 향한 변화이다. 오늘날에는 "역사적인 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향한 새로운 경향성"이 존재한다. 콘젤만은 역사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지향하는 이 경향성을 "해석", 이를테면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매개를 통하여 해석되는대로 재구성이 현대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을 강조한 불트만에 반대하는 방법에 의하여 상쇄하려고 한다. 콘젤만은 "역사적 재구성, 즉 그 시대적 제한성을 지닌 신약의 사상 세계를 제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불트만파에 있어서의 이 변화는 실존주의 해석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조차 신약신학이 유동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불트만과 콘첼만의 실존주의적 연구 방법이 신약의 전 견해들을 대변치 못하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불트만과 콘첼만의 실존주의적 연구 방법은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과 같은 신약 문서들을 주목할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이것은 실존주의 연구 방법의 타당성에 관한 다른 질문들을 제기한다.

3. 역사적 연구 방법

1)베르너 큄멜

큄멜은 불트만 학파에 속하지 않는 대신, 현대의 역사적 연구 방향을 대표하며 콘첼만이 생각하는 신약신학의 기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한 그것, 즉 "선포자 나사렛 예수와 선포된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주가 된"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그의 방대한 저서 {신약신학}(1969)은 각 문서가 전하는 선포형태에 나타난 통일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1장; 첫 세 복음서들에 따른 예수의 선포로 의식적으로 예수의 메시지를 배치한다. 2장; 부활사건때문에 새로운 빛에서 사물들을 보는 원시기독교 공동채의 신앙을 다룬다. 3장; 바울의 신앙이 팔레스틴 사도적 공동체로부터 그 이후의 이방 기독교 공동체에로의 전환점에 위치한다.큄멜은 바울이 예수에 대한 건전한 증인이며 해석자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핵심적으로 볼 때 그 차이가 단지 지엽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4장; 네째 복음서와 서신들에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요한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취급된다. 요한은 예수라는 인물뿐 아니라 예수에 의해 도래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구원행위와 결부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와 이 구원을 종말론적 구원의 사건으로 선포한다. 5장; 예수 - 바울 - 요한 : 신약의 심장이란 제목으로 예수, 바울, 요한의 메시지의 통일성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 사이에 사상의 발전이 있으며 직선적인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신약의 주요 증언들이 그들로부터 나온다고 큄멜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약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약의 통일성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불트만이나 콘첼만에게는 해석은 재구성과 분리되어 실존주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는 반면에 큄멜은 재구성과 해석을 결합시킴으로서 해석이 재구성과 관련된다. 큄멜은 쿨만의 입장에 때때로 접근하며 해석을 대체로 포기하는 온건한 비판적 재구성을 제공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관심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2)요아킴 예레미아스

예레미아스는 "실증적 - 역사적"연구 방향을 가장 잘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케리그마 신학"으로 만든 불트만의 연구 방법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비판가 중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역사적 반비평주의"를 전개하였다.그는 역사적인 진리를 제공하고 가현적인 증발로부터 말씀을 보호하려고 한다.

1971년에 예레미아스는 {신약신학 :예수의 선포}를 영어와 독일어로 동시에 출판하였다. 1장; 예수의 말씀에 대한 전승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 이것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문제에의 관심을 말한다. 예레미아스의 관심은 우리의 자료들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예수의 선포의 근본적인 사상을 끌어내기에 충분한지를 조사하는데 있다. 그 가능성이란 부활이전 전승에 대한 역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 성취 방법은 1. 일차적으로 비유사성의 척도를 채택하는 비교 방법 - 이것을 근거로 어떤 말이나 또는 주제가 유대교로부터 왔는가 혹은 초대교회로부터 유래하였는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2. 언어와 양식에 대한 검토이다. 이 두 방법은 상당히 분명한 결과를 주며 예수의 말 자체를 재구성하게 한다. 2장; 예수의 선교로 예수와 세례 요한, 예수의 소명, 계시의 진수,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서의 아바, 선교에 대한 긍정이란 부제들을 가지고 있다. 3장; 구속 시기의 시작, 4장; 은혜의 시기, 5장; 끊임없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의 마지막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형성하도록 하는 예수의 메시지의 인간적 매력을 기술한다. 6장; 자신의 선교에 대한 예수의 증언에서 그의 방법론이 드러난다. - 독일어 제목은 예수의 통치권 자각으로 예수가 자신을 구원을 가져오는 자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준다.또한 인자로서, 고난받는 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미리 선포한 예수를 말하고 있다. 예수의 고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어급들은 성레전적인 말들이라고 한다. 7장; 최초의 전승과 최초의 해석에서 예레미아스는 예수의 선포를 부활절에 관련시키려고 함으로서 예수의 선포를 넘어서고 있다. 독일어 2판에서는 교회의 증언과 예수 선포의 관련성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다중적인 교회의 증언, 세상 앞에서 그를 고백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수많은 입들의 합창은 부르심에 대하여 성령이 역사한 응답이다...부르심은 응답위에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주시며 주(主)는 그의 사자(使者) 위에 있기 때문이다. 위에 계신 주는 기독교의 모든 신학의 시작이며 끝이고 중심이며 척도이다".부활절 이후의 교회는 예수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그러나 이교회는 역사적 예수와 교회의 케리그마 사이의 연관성 또는 어떤 연관성도 실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활절 이후의 교회들에 부가하는 그런 종류의 창조 활동에 관여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와 교회의 선포 사이의 연결을 증명하려고 한 고펠트는 예레미아스의 비교 방법에 의하여 유대의 환경에 관한 유비의 원칙이 예수를 순수하게 유대적인 현상으로 만든다고 통탄한다.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페린으로부터 예레미아스가 채택한 "비유사성의 표준"은 그 자체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보다 기본적인 방법론적 문제는 예레미아스가 예수의 선포를 신약신학의 한 부분으로 제시하는데 대한 정당화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는데 있다. 예수의 선포가 신약신학의 기초와 토대를 구성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자명한가?

4. 구속사적 연구 방법

1) 오스카 쿨만

쿨만은 초기 연구에서 초기 기독교의 신간 이해를 재구성하고, "이미"와 "아직"의 긴장 안에 있는 충만한 시간으로 그것을 해석함으로서 신약의 구속사의 기본적인 개요를 제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구속사 연구 방법은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는 것"만을 의미한다. 우리는 쿨만이 구속사의 작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묻기 전에 그의 {역사 안에서의 구원}의 내용을 간단히 개관하고자 한다. 1부: "프롤레고메나" 와 2세기의 영지주의, 20세기의 종말론, 구속사와 관련되는 해석학에 대한 연구의 개관과 구속사의 정의. 2부: "구속사적 연구 방법의 기원" - 사건과 해석, 성서 증언들의 신앙, 불변성과 가변성 및 신약에 있는 구속사적인 인용의 통합. 3부: "현상학적인 특징들" - 역사와 신화, 구속사와 역사, 그리고 "이미"와 "아직"의 긴장을 강조. 4부: 구속사에 대한 "신약의 주요 유형들" - 예수와 함께 구속사의 시작. 구속사의 중간 시기, 요한복음, 그리고 구속사를 다룸. 5부: "조직신학과 교리사의 개관으로 구속사와 성서 - 이후의 시기" - 이 개관은 쿨만이 구속사를 신약 증언들의 본질적인 틀로 옹호하면서 불트만과 그의 추종자들이 명시한 바와 같이 신약신학을 실존주의적으로 연구하는데 대하여 도전하려함을 드러내고 있다. 쿨만은 "구속사는 역사 안에서 펼쳐지고 이런 의미에서 역사에 속한다. 성서적 구속사의 통합적인 측면은 역사적으로 취급 가능한 몇가지 사건들이 역사적 연구에 개방되며 한정된 관련성 안에 있는 세속사에 속하는 사건들은 역사 자체에 의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그는 세개의 뚜렷한 측면들을 강조하며 요약한다. 1) 예언자는 목격자가 되어야 하며, 비신앙인들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으나 그 안에서 어떤 계시를 볼 수는 없는, 사건 자체 : 2)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동조하는 예언자에게 그 사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이 계시되는 것: 3) 이 계시들을 재해석하면서 다른 예언자들에게 부여된 이전의 구속사적 계시와의 관련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이런 점으로 보아 쿨만은 사건과 해석에 있어서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폰라드는 "구속사적 관점이 시작된 과정은 구약의 모든 곳에서 더 이상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첫째로 가장 오래된 전승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적 계기들을 항상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특히 제사적 고백 형식으로 쓰여진 구두 전승이나 구두 케리그마가 포함되었을 때 그렇다. 단지 위대한 역사적 개념들에서만 구속사적 해석과 재해석의 기원을 우리는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한다.쿨만은 그의 전승사적 방법에 의존하여 그 방법을 이른바 "사건 그 자체"에 대한 변함없는 해석과 "구속사 전승"에 대한 후기의 재해석을 가지고 그의 구속사적 연구 방법에 재활용한다. 이로서 "구속사로부토 역사를 구분하는 것은 구속사 안에서 즉 사건들과 사실을 경험하는 가운데서 그 기사들을 적용하고 신앙을 통해서 그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계시가 행하는 역할이다. 여기서 사건들은 하나님의 계시로 경험이 되며, 마찬가지로 기사들과 해석도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된다"고 쿨만은 강력하게 지적한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구원 과정은 원시역사와 종말론적 역사를 포함한 모든 역사의 중심"이며 유형론은 "구속사적 관점을 전제"하며 "성서의 틀 안에서의 성취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구속사와 관련된다."그의 공은 "신약의 메시지의 본질을 대표하는 것으로 구속사의 관점"을 주의깊게 숙고하여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쿨만은 "해석", 즉 구속사에 대한 신약의 종교적인 이해를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틀로 변형하거나 해석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불트만과 더불어 하나의 결단이 신약에 의해 촉구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신약 케리그마의 풍부함을 여기와 지금에서의 "점진적인 종말론"으로 붕괴시킴으로써 종말론을 실존적으로 재해석하는 불트만의 비신화화와는 대조적으로 쿨만은 "이미"와 "아직"의 구속사적인 긴장이 신약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된다고 주장한다."예수의 가르침을 포함한 신약의 전 신학은 이 긴장으로 특징짓는다". 쿨만은 "구속사적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와의 관계성"이라고 상기시키고 신약의 구속사를 실존주의, 플라톤 주의나 어떤 다른 체계에 의해서 현재에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2)조지 라드

라드는 북미대륙에서 잘 알려진 복음적인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신약신학}은 구속사적 연구 방법에 속한다. 라드는 차일드가 전개한 것 처럼 성서신학과 신약신학을 구별하지 않는다. "성서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 계시와 인간의 구원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계시와 구원에 관한 바로 그 사상은 성서의 모든 곳에 내재해 있고 때로는 명시적인 몇가지 전제들을 포함한다. 이 전제들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죄"라고 그는 말한다. 역사의 특유한 사건들 안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은 구속사의 일부분이다.라드가 "구속사" 또는 "거룩한 역사"라고 지칭하는 구원사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은 그 사건들 외에는 자신을 계시하지 않는다. 기독교 선포의 본질은 이같이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위를 암송"하는 것이다. 그는 "성서신학은 성서에 담긴 신학을 그 자체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그 자체의 형식, 범주, 그리고 사상 형태에서 설명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즉 신약신학은 일차적으로 기술적인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적인" 과제는 라드에게 있어서는 동시에 해석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드의 신약신학은 여섯개의 중요한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공관복음서들"을 다루어 신약신학의 역사와 성격에 대한 계발적인 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8장으로 나누어 예수가 설교한 왕국의 측면들을 다루고 5장에 걸쳐서 기독론적인 개념의 측면들을 다루면서 주제적인 단면을 제공한다. 2부: "네째 복음서"를 다루면서 이것이 어느 정도 공관복음서와 유사하거나 또는 유사하지 않은지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3부: "원시교회"라는 제목 아래 사도행전의 신학에 관심을 둔다. 부활, 종말론적 케리그마, 교회에 관한 장들로 사도행전의 신학을 요약한다. 4부: "바울신학"을 다룬다. 라드는 바울신학의 중심을 데이비스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한 도래하는 구속의 새 시대의 실현"으로 간주한다. 그는 바울 신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경전에 있는 13개의 바울 서신 모두를 사용하여 바울 신학을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5부: "일반서신들"이란 제목으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유다서와 요한 서신들의 신학을 요약하고 있다. 6부: "묵시록". 5,6부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라드의 구속사 연구방법은 몇가지 방법론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연구 방법은 실현되지 않은 개념적인 통일성에 치우치고 있으며 그의 관심은 모든 신약의 문서에 미치고 있다. 말하자면 광범위한 어휘연구에 의해서 표현된 대로 중요한 성서적 개념을 취급하였으며 그 연구는 구속사에 통합되어 구속사를 표현하고 있다.

3)레온하르트 고펠트

고펠트는 그의 {신약신학}에서 현재까지 서술한 모든 신약신학에 관한 "연구의 역사와 문제점"이라는 단원을 쓰면서 특별히 약 1900년 이래의 다양한 입장들을 개괄하고 그 자신이 폰라드와 쿨만의 광범위한 구속사 연구 방법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쿨만의 입장을 반대하면서 신약은 "구속사를 보편적인 역사의 계획으로 이해하지 않고 약속과 성취의 상관성만을 안다고 지적한다." 그는 구속사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일차적으로 약속과 성취의 틀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 비판적 방법을 배제하면서 구속사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성서연구, 즉 비평주의, 유비, 상관성과 같은 역사적 - 비첥 방법의 원칙들이 신약의 자기 이해와 비판적인 대화를 하도록" 추구한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볼 때 "비판적인 대화"는 역사적인 연관, 말하자면 전승사적인 연관, 종교사적인 연관과 구속사적인 연관을 진지하게 다룬다. 고펠트는 신약신학의 목표를 "신약의 단일 문서나 문서군들로부터 예수의 사역이나 초대 교회의 선포와 가르침에 대한 모습들을 자료적으로 정리하고 연결시키도록" 시도하는 것으로 본다. "신약과 오늘날의 인간은 둘 다 서로 비판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인 대화가 해석에 대한 학문적인 다양한 시도들과 그 시도들의 전제들을 제시하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연구의 대화에 참여하여 그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저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1권>은 예수의 활동과 신학적인 의미라는 부제를 달고 그 제목이 지적하는 대로의 내용에 전적으로 전념한다. 1장에서 신약신학의 출발점에 대한 문제에 관련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성들을 논한다. 신약성서의 기반은 예수의 지상활동에 관한 보도였으며 따라서 신약신학은 그 자체의 구도를 근거로 지상의 예수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신약자체의 구조를 떠나서는 예수의 지속적인 영향에 대한 유비들이 당시의 인물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사실이 예수의 활동과 길로써 신약신학의 진술을 시작하는 것을 적절하게 만드는 역사적 이유를 제공한다. 예수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틀"과 세례 요한의 구속사적 출발점에 대하여 간단히 논한 후 고펠트는 8개의 장에 걸쳐서 예수의 선포를 논한다. 2장은 "하나님의 통치의 도래"로 시작하는데 복음서 안에 있는 용어 개념과 그 관련어들을 간단히 기술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배경을 구약, 유대교, 헬레니즘에서 간단히 개괄하면서 연구의 역사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른 견해들과 대조되든가 또는 일치되는 신약의 자료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힌다. 3,4장에서는 예수의 요구로서 그리고 신적 통치권의 선물로서의 "회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5장은 "종말론적 갱신의 표현으로서 예수의 구원활동"으로 예수 활동의 한부분으로서의 이적을 관심하고 있다. 6장은 메시야적 자의식이 주제로 "예수의 자기 이해"를 다루고 있다. 7장은 "예수의 교회"에 대한 예수의 활동의 목표를 다루고 있다. 8장에서는 수난,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포함한 "예수의 최후"를 관심한다. <2권>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증언의 다양성과 통일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2부의 "초대교회"는 "교회로서의 예수의 제자직"과 "기독론의 시작"이라는 장들을 포함한다. 거기에 작용하는 신학적인 원칙은 "초대교회의 선포와 설교에 있어서 예수 - 전승의 형성과 부활절 - 케리그마에 대한 해설과의 사이의 대화적인 상관성"이다. 3부는 "바울의 헬라적 기독교"로서 헬라적 기독교의 문제에 대한 서론과 바울 신학의전제에 대한 장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바울신학, 특히 기독론, 선포의 사건, 의, 그리고 교회에 중심을 두고 있다. 4부의 "바울 - 이후 문서들의 신학"은 구조적으로 불완전하다. 첫째 장은 "베드로전서에 의한 사회안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베드로전서의 신학을 다루며, 또한 "요한 계시록에 의한 마지막 때의 기독교 - 이후 사회에서의 기독교인들"이란 제목으로 계시록의 신학을 다룬다. 둘째장은 야고보의 신학, 즉 제국의 신학과 "마태복음에서 예수 출현의 의미"라는 제목아래서의 마태 신학을 함께 다룬다. 3장은 구속사 신학자인 누가가 따르는 히브리서의 신학에 집중한다. 누가복음서의 신학을 사도행전의 신학과 분리해서 취급하는 것이 독특하다. 결론장은 요한신학에 대한 것인데 충분히 전개되지 않았다.결국 그의 책은 마가의 신학, 에베소서를 포함하여 이른바 제 2바울 서신들, 목회서신들, 그리고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 관해서도 취급하지 못한 채 끝마쳐졌다.

5. 결론적인 언급

신약신학의 네 개의 주요 연구방법에 대하여 우리는 방법론적 문제에 있어서 지도적인 신약신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추려 보았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주제적인 연구방법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주요 주제들을 종적으로 취급하는 단면적인 방법과 병존한다. 그러므로 이 방법의 주관성은 선택의 문제로 드러난다. 선택의 원칙은 신약학자로 하여금 언약 또는 하나님의 왕국, 기독론적인 원칙 등과 같은 신약이나 혹은 신약과 구약의 중요 주제를 선택하도록 한다. 이런 뚜렷한 제한성 - 선택의 원칙은 어디에 그객관적인 근거를 두는가 / 동질성의 원칙은 선택된 주요 주제나 주제들에 관해서만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 선택의 원칙이 주요 주제에 관련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주관적인 근거 외의 어떤 다른 근거에 의해서 어떤 주제들은 포함되며 어떤 것들은 생략될 수 있는가 - 은 중요하게 취급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서 자료의 풍부한 다양성은 그 자료에 상응하는 연구 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 신약신학의 주요 방법론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신약신학 안에서 차지하는 예수의 위치에 대한 질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실제로 예수 자신에게로 소급되는가 또는 그것이 초대 교회의 산물인가? 이 물음은 앞으로 얼마동안 신약신학자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3) 방법론적인 문제성은 신약신학과 같은 그런것이 존재하는가의 여부, 또는 신약과 신약의 세계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오히려 "원시 기독교 종교사"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의 여부에 관심을 둔다. 1970년대의 특징은 신학으로부터 종교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 문제의 중요한 측면은 신약신학이 경전적인 문서에 제한되느냐에 관한 질문이다. 신약신학은 기술적 연구냐 또는 신학적 연구냐? 이질문으로 인해서 우리는 중심적인 방법론적 문제의 최종의 문제성에 도달하게 된다.

4)신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적 문제들 중의 하나는 역사적인 재구성과 신학적인 해석의 문제이다. 역사적 재구성의 문제는 스텐달이 "의미했던 것"과 "의미하는 것" 사이를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기술의 방법"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의미했던 것"에 대한 역사적이고 기술적인 연구 방법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이고 분석적인 연구 방법과 관련되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탐구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의미하였던 것을 결정하려고 하는 기술적인 방법은 의미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의미했던 것이 해독되고 조직적으로 번역되고 설명될 수 있는 전제와 사상등을 포함하며 이 설명들이 "의미하는 것"이 된다고 본다. 세째 "의미했던 것"은 그 시대와 그 시대의 문화에 의존하는 고대적 표현 방식인데 같은 현상에 대하여 현대적인 표현 방법으로 재기술될 필요가 있으며 이 재기술이 "의미하는 것"이 된다. 네째 그것이 "의미하였던 것둁"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성서 본문을 사용했던 방법에 대히 언급하며,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이것이 현대인들에 의해 사용된 방법이다."의미했던 것"과 "의미하는 것", 즉 재구성과 또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것과 신학적이고 규범적인 것을 구별하는데 대하여 몇몇 사람들이 비판을 하였다. 챠일드는 기술적인 방법을 그 방법의 제한성 때문에 반대한다.듈스는 "성서가 의미했던 것과 그것이 의미하는 것 사이의 철저한 분리에 있어서의 불안"을 언급하면서 성서가 의미했던 것도 규범적인 가치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켄지, 스삐끄, 드 보가도 유사한 점, 제한된 역사적 강조점을 지닌 비규범적인 기술적 방법에 의하여 어떻게 성서 안의 실재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서의 실재의 성격을 미리 정의 하는 일 없이 성서 본문의 성격을 그 본문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으로 또 그 의도와 시대를 통한 지능에 대하여 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성서신학의 과제 중 하나겠는가? 

III. 신약신학의 중심과 통일성 

1. 문제 제기

신약 연구에 있어서 중요시되는 것은 신약의 중심과 통일성에 대한 문제이다. 이 질문은 많은 점에서 신약신학의 성격에 대한 현대의 논의 가운데 핵심에 속한다. 궁극적인 질문은 만일 신약신학을 찾아낼 수 있느냐 또는 신약성서에는 어떤 통일성도 식별해 낼 수 없는 다중적이고 다양한 신학을 제공하느냐의 문제이다.

가블러는 1787년에 이미 자신의 기준을 근거로 "상이한 저자들과 그들의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각각 사용한 독특한 언어 형태들을 구별하는 과제를 촉구"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각 저자들의 개념들을 주의 깊게 수집하여 그들의 장소에 따라 개념들을 정리하는 연구 방법은 오늘날 성행하는 논의의 전면에 나타나 있는 "내용비판"을 요구한다. 이것은 두 전제를 포함한다. 1) 성서의 권위는 계시의 실저적인 근원으로서의 이성에 의해 대치되었다. 2) 어떤 교의학적인 권위없이 절충적인 종합으로 끌고 가는 개별적 저자들의 "개념들"을 묻는 것이 적절하다. 스토그는 신약에 있는 갈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이 역사적 비판주의의 방법론적인 경항성의 결과라고 상기시킨다. 다양성의 문제는 성서 자체가 경전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것을 근거로 이 비판주의에 대한 성서의 저항으로 인해 특별히 날카롭게 된다. 신약의 중심 문제에 있어서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통합하는 측면으로 나타나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문제, 또 신약신학을 위한 조직 원리로서 그리고 여러 형태로 경전 안의 경전을 확언하는 내용 비판의 기준으로서의 중심에 관한 물음으로 이중적인 구별이 가능하다. 내용비판의 기준은 권위: 분열, 전체:선택, 객관성:주관성과 같은 대립 개념을 의미한다.신약신학의 조직과 구성에 있어서 어떤 중심도 "다른 가능성에 대항하는 배타적인 권리를 필수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신약신학의 가장 적합한 중심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신약신학을 제시하는데 하나의 중심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가 된다.

2.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

1) 인간론
신약신학을 진술하는 과제는 불트만에게는 "신앙적 자기 - 이해를 케리그마와 관련하여 명백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명백히 하는 이 과제는 바울과 요한 신학을 분석하는데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불트만은 하나님에 관한 모든 주장은 동시에 인간에 관한 주장이고 그 역도 성립하므로 바울의 신학은 동시에 인간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약의 중심으로서 케리그마적 인간학은 너무 제한되고, 너무 협소한 것은 아닌지, 또 그 자체의 방법으로 "경전 안의 경전"으로 이끄는 미리 정해진 수단이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불트만의 제자 브라운은 신약의 다양성을 완전히 극단적인 불일치까지 밀어붙인 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로 다른 교훈들과 다양한 층들이 신약의 전체가 아니라면, "본질적인 부분들이 파악될 수 있는 내적 중심점"을 부정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신약저자들의 "상호 모순"이 브라운의 관점에서는 신학적 인간론을 통하여 극복된다. 그러므로 브라운이 말하는 신약의 "내적 중심"은 신학적 인간론이다. 브라운의 신학적 인간론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하는 일 없이 기독교의 성격을 정의하려고 한다. "신앙의 자기 이해라는 상수는 인간론이 아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 즉 기독론적인 케리그마를 향하고 이 케리그마를 자신의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이다""케리그마적 인간론"(불트만)과 "신학적 인간론"(브라운)은 둘 다 그것이 신약의 중심에 관한 물음에 부딪칠 때 부족하다는 것이 발견된다.

2) 구속사 
구속사에 가장 폭 넓게 관여한 학자는 쿨만이다. 구속사를 부상시키려는 쿨만의 시도는 신약의 "역사가 '구속의 역사'이다"라고 말하는 그랜트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랜트는 다양성 안에 있는 통일성을 인식하고 구원사를 확증하는 한편, 구원사를 신약의 통일적인 중심으로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다은 사람들이 한 것처럼 쿨만과는 구별된다. 클만에서 있어서 그리스도는 시간의 중심이지 신약의 중심은 아니다. 쿨만의 {역사 안에서의 구원}에서 그는 구속사에 대한 신약의 주요 유형은 예수, 원시 기독교, 바울, 그리고 네째 복음서에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것은 "구속사적 관점"이 초대 기독교의 신앙, 사상, 그리고 활동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쿨만의 사상에서 "구속사"는 구약과 신약의 경전이 의존하는 근거라는 것을 주지하여야 한다. "성서 자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둁운 "구속사"이며 따라서 경전의 사상과 그 사상의 구현 방법이 모두 성서의 구속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쿨만은 "경전 안의 경전"에 관한 문제, 즉 자료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성서 안의 규범이나 표준의 문제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는 성서의 전 경전성을 진지하게 취급한 데 대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 쿨만은 신약과 구약의 전 성서를 하나로 묶는 주제를 찾기 위하여 시도했던 드물게 보는 유럽 대륙의 신약학자이다. 그는 구속 사관 개념이 어떻게 생각나게 되었느냐는 질문과는 별도로 구속사가 중요한 성서적 개념이라는 것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구속사가 정말 통합하는 주제인가"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3) 계약, 사랑, 그리고 기타 제안들 
성서의 계약 개념이 최근의 성서 연구의 전면에 나타났다. (로레츠, 펜샴 등) 사실은 신약의 전 분야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게약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게약 개념은 기껏해야 신약신학을 단면적으로 연구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신약의 증언들은 단일적인 방법에 의해서 즉 그 방법이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과 인간의 교통, 부활, 또는 약속과 같은 그런 주제, 개념, 또는 소재들을 통한 것이든지 간에 단일적인 방법에 의해서 정당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4) 그리스도론 
라이케는 "그리스도 사건 안에 신약의 실질적인 통일성이 있다"고 시사한다. 로버트슨은 "그리스도론적인 주제"안에서 "신약신학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요소를 본다. 무어는 구속사를 신약의 기본 개념으로 강력하게 주장하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으로부터 구속사의 선이 계약을 거쳐 창조 너머에로까지 소급되며, 교회와 교회의 선교를 통하여 재림 이후로까지 뻗쳐간다"는 것을 강조한다. 라드는 단일 주직 원리의 관점에서 쓰여진 신약신학은 커다란 손실을 근거로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약에는 희생되어서는 안될 풍부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쉬라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의 중심을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멈추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라고 말한다. 헹엘 역시 그리스도론적인 중심을 긍정하나 그것을 서술할 수 있는 공식은 '그리스도로만', '은혜로만', '죄인의 의인'과 같이 다양하다고 시사한다. 리젠펠트는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였다고 여기는 예수라는 인물을 어떤 점에서 언급한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 분모가 되는 신약 안에 있는 믿음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렇게 놀랄만한 짧은 시간 동안에 수집이 되고, 통합되며, 동질적으로 고려된 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또한 바일너는 역사적인 예수가 어떻게 고양된 그리스도로 선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신약신학의 과제라고 시사한다. 바일너와 그의 동료인 쉘클레에게 있어서 이것은 신약의 통일성은 하나의 교회를 근거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스너는 신약에 의해 복음의 중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동터오는 종말론적 구원의 때에 관한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큄멜은 "처음부터 신약신학에 대한 관심은 신약의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제와 부닥치게 된다"는 것을 주지한다. 미리 결정된 어떤 중심도 신약신학을 기술하는데 조직 원리로 작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주장은 1)공관복음서의 최초의 전승에서 감지될 수 있는 예수의 메시지와 그 인물, 2)공동체의 선포, 3) 이 선포에 대한 최초의 신학적 성찰인 마음의 성찰에서 신약의 중심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 세개의 집단을 근거로 큄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다음의 이중적인 측면이 신약의 중심을 구성한다고 시사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종말을 위하여 약속하신 그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게 하였으며, 이 그리스도 사건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났으며, 이 세상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려고 추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하시며 살아있는 사람을 위하여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큄멜은 루터교 신학자로서 "경전안의 경전"이라는 실질적인 원리에 전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준 선택을 정당화 하지 못했다. 로제는 루터의 원칙인 "그리스도를 명시하는 것"을 따르며 "신약의 증언의 신학이 그리스도론에서만 나올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론이 그리스도론을 통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신약에 있는 다양한 표현의 중심과 통일성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명시되었던 십자가 위의 일회적인 그리스도 사건에서 발견된다. 케제만은 죄인의 의인에 관한 메시지를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보려고 할 뿐 아니라, "경전 안의 경전" 원칙을 지지하면서 그것이 신약 전체의 중심이라고 시사한다. 신약과 심지어 성서 전체의 중심으로서의 죄인의 의인화라는 "신학적 공식"에 관한 간접적인 반응을 루츠에게서 발견한다. 그는 "십자가의 신학"을 신약의 중심으로 주장한다. 신약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이 그리스도 중심성은 상호 연관되는 다양한 측면을 소유한다. 다양한 측면들이 상호 관계 속에서 주의깊게 연구되고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사실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약의 중심을 추구하려는 목적 중의 하나는 신약의 통일성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것이며, 신약신학의 구조나 체계적인 진술에 근거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이 반복하여 주지되어 왔다. 이 전제들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상당히 풍부한 신약의 자료들이 신약의 중심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돈되고 배열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틀, 공시그 개념, 소재, 또는 사상 중 어떤 형식으로든지 가장 주의깊게 고안된 중심조차도 결국에는 일방적이고 부적절하며 불충분하다는 것이 드러나며, 따라서 그것은 신약의 다양성, 다중성, 그리고 풍부성에 관하여 불가피한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약의 중심에 관한 질문의 합법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한 신약의 어떤 중심도 그것이 조직 원리로 사용되는 데 있어서 신약의 전 경전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게 넓고, 깊고, 광범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의 역동적이고 통합적인 중심이다. 신약의 그리스도 중심성은 신약신학이 쓰여지는 근거가 되는 구조로 변형되어서는 안된다.

3.신약의 중심과 경전 안의 경전

신약의 중심에 관한 현재의 논의는 경전 비판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루터파의 고백에 속하는 현대의 학자들은 모두 역사 - 비평 방법을 사용하여, 겅전 안의 경전 원칙에도 똑같이 관심하지만, 그들은 신약의 이 중심이 "경전 안의 경전"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통일성의 기준에 대한 어떤 선택도 주관적이며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 큉은 "경전 안의 경전"에 대한 계획에 반대하는데 그 계획은 성서보다 더 성서적인 것, 신약보다 더 신약적인 것, 복음서보다 더 복음서적인 것, 그리고 심지어 바울보다 더 바울적인 것을 요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전이해가 신약에 근거하지 않고 루터파의 전통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내용 비판과 경전 비판의 목적으로 채택된 "경전 안의 경전"으로 쓰이는 중심에 관한 또 다른 비난은 그것이 불가피한 감소주의라는 것이다. 큉은 신약경전의 전체성으로부터의 선택이 종파의 증가와 이단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신약의 경전을 그 전체서 안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에만 하나의 교회를 기대할 수 있다.에벨링은 시사하기를 신약의 다양성과 다수성 때문에 어떤 단일한 전승도 "전수되어야 할 전승으로 지적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수되어야 할 전승이 바로 복음서에 권위를 부여하는 성육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라는 인간 자체이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신약의 전체성을 적절하게 대변하는 신약신학의 연구 방법은 임의성(큉, 에벨링, 디임), 주관성(쿨만, 마이어), 감소주의(큉)를 허용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성서(전승) 밖에서부터 또는 성서 안으로부터 중심의 형태로 선별 원칙을 택하는데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근거로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성서의 내용에 관한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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