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7 11:15
[1]성서에 나오는 아홉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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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633  

성서에 나오는 아홉 민족 

 


대홍수 이전에는 우리가 오늘날 대하는 것과 같은 뚜렷하고 독립적인 민족 집단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바벨에서 반역의 탑을 쌓은 이후로 각자의 언어와(아마도 그 후기에 이르러서야 발생된 것이지만) 독특한 문화 및 인종적 특수성을 지닌 민족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수십 개의 민족들 중에서도 아홉개의 민족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의 역사적 영적 발전에 중요한 작용을 한 것 같다.

그 아홉 개의 민족이란 이렇다. 가나안 수메르, 블레셋, 애굽, 앗수르, 바벨로니아, 바사, 헬라및 로마. 위 민족들 중에서 마지막 로마를 제외한 여덟 나라가 이미 역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의 아홉번째 나라인 로마는 아마도 예언적 부분을 떠맡을 것이다(물론 이전에 이미 로마는 역사적 역할도 떠맡은 바 있다). 왜냐하면 로마의 옛 제국은 다시 소생하고 무서운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의 아홉나라

 

가나안

 

1. 쇄

 

1) 가나안 족속이란 말을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에 그곳에 살고 있던 족속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이들 족속 가운데는 베니게, 블레셋, 암몬, 헷, 여부스, 아모리 및 히위 족속이 포함될 것이다.

 

2)이들 족속 대부분은 함의 4대손인 가나안의 후예였다(창 9:22-27창10:6,15-20). 가나안 족속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에게서 유래한듯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땅이 베니게인들에 의해 가나안이라 일컬어졌다고 믿는다. 베니게인들은 뿔고둥(murex)이라는 조개에서 추출된 자주색 염료를 얻기 위해 그곳을 왕래했던 것이다. 이러한 교역은 헬라인들이 그 지역 전체를 가나안이라고 명명하리만치 유명해졌는데, 헬라어로 가나안이란 '피처럼 붉다'는 뜻이다.

 

3) 가나안 족속들이 세운 몇몇 도시들이 있는데, 그 이름을 열거하자면, 게셀, 므깃도, 여리고, 소돔, 고모라 및 예루살렘이다.

 

4) 이 땅이 비옥하다는 것은 기원전 1950년경에 가나안으로 도망했던 시누헤(Sinuhe)라는 한 애굽난민의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의 증언을 들어 보기로하자.

 

  "정말 좋은 땅이었다. 그곳에는 무화과와 포도 나무가 있었다. 물보다는 포도주가 흔했으며, 꿀과 올리브유가 무진장 흔했다. 갖가지 열매가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 있었으며, 끝없는 보리밭이 펼쳐져 있었고, 온갖 종류의 양떼와 소떼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진술은 출애굽기 3:8및 신명기 8:8과 비교할만 하다.

 

5) 아마도 가나안 족속들은 알파벳을 창안해낸 것 같은데, 그 글자들은 모두 31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6) 성서의 역사서 기록된 맨 처음 전쟁은 네명의 메소보다미아 왕들과 다섯 명의 가나안 왕들 사이에 일어난 것이었다(참조, 창14장).

 

2.가나안족속들의 종교

 

1) 가나안의 종교는 고대 역사를 통털어 성적으로 가장 변태적이며, 도덕적으로 가장 부패하고 잔혹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그들의 바로 그러한 문화와 주민과 도시를 멸절하도록 하신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참조, 신 7:1-5;신20:10-15;수 9:24).

 

2) 가나안 족속들의 명백한 방탕을 입증하는 주요한 것 세 가지가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참조, 창 13:13;창15:16;창18:20;창19:1-11 ; 민 25:1-3;삿19:14-25;왕상 14:24;왕상15:12;왕상22:46;왕하 23:7). 이들 구절은 무엇보다 우선 그들의 성적 죄를 언급하고 있다.

 

(2) 비블로스의 필로(Philo of Byblos)의 증언. 이 사람은 기원전 100년경의 시대 상황을 기록한 베니게의 학자인데, 고국에서 고대의 종교적 자료를 수집했다.

 

(3) 옛 우가리트의 라스 샤므라 문헌. 1927년에 발견됨.

 

3) 가나안 종교의 으뜸 가는 신은 엘(El)이었다. 엘의 처는 아세라(Asherah)이다. 그는 또한 자기의 세 누이와 결혼했는데, 그 세 누이 중의 하나가 바로 아스다롯(Astarte)이다(삿 10:6참조). 엘에게는 70인의 자녀가 있었으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이가 바알(Baal)이다. 엘은 자기의 형제를 죽였을 뿐 아니라 자기의 아들까지도 몇 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딸의 목을 치고, 그의 아버지를 거세했으며, 자기 자신도 거세하고 또 한 그의 일당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했다.

 

4) 바알의 누이(엘의 딸)는 아낫(Anat)이었다. 그녀는 격정과 전쟁과 폭력의 비열하고 악의에 찬 여신이 되었다. 그녀는 바알의 원수들과 싸웠다. 우가리트의 바알 서사시는 그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녀가 막강한 권세로 도시 주민들을 쓰러뜨리고, 해안 거주자들을 때려눕혔으며, 동쪽의 사람들을 멸하였도다. 그녀는 사람들을 그녀의 신전에 몰아넣고 아무도 달아날 수 없도록 문을 닫았도다. 그리고 젊은이들한테는 의자를 집어던지고, 전사들에게는 탁상을, 강한 자들에게는 발등상을 집어던졌느니라, 그녀의 무릎에까지, 목에까지 피가 찼구나. 사람의 머리가 그녀의 발아래 나딩굴고, 인간의 손들이 메뚜기처럼 그녀 위로 날았도다. 그녀는 그 희생자들의 머리를 장식물처럼 그녀의 등에 매달았고, 그들의 손을 그녀의 허리 띠에 달았나니라. 그녀의 오장은 웃음으로, 그녀의 육부는 기쁨으로 가득 찼노라. 이윽고 성에 차면 피의 강에서 손을 씻고,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몸을 돌렸노라."

 

5) 가나안 암몬 족속의 민족 신은 몰렉이었다(참조, 왕하 11:5,7), 몰렉 숭배에 있어서 중요한 의식은 아이를 번제의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다. 유다의 두 왕 아하스와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들의 아이를 이 살인귀몰렉에게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왕하 16:3;왕하21:6). 이리하여 어린아이를 살해하여 희생으로 삼는 일이 가나안 종교의 흔한 관습이 되어갔다(참조, 겔 16:20-21;겔33:37). 마갈리스터라는 이름의 한 고고학자는 게셀 지역의 발굴 당시에 폐허가 된 가나안의 한 신전을 발견했다.

 

그는 그 안에서 어린아이의 뼈가 담긴 수백개의 항아리를 찾아냈는데, 그 뼈의 주인공들은 네 살에서 열 두 살에 이르는 아이들이었으며, 산 채로 불에 태움을 당해 죽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와 같은 유형의 다른 끔찍한 관습은 "터를 위한 제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집을 지을 때 드리는 희생제물을 가리킨다. 그 아이의 시체는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기 위해 벽밑에 매장되곤 했다.

 

6) 우리는 앞에서 가나안 족속들의 성적 변태를 약간 언급한바 있다. 가나안의 제사장들은 흔히 악명높은 동성애를 자행하는 자들이고, 여사제는 보통 매춘부였다. 이들 비교의 크고 작은 우상 및 다른 숭배의 대상물들이 하나하나 발굴되고 있는데, 그 중의 약간은 인간의 성기를 돌이나 나무에 새긴 것들이다.

 

 

수메르 족속

 

1. 메소보다미아의 도시들 및 민족들의 기원

 

1)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발생한 것은 기원전 3000년 이전으로 추측된다. 함의 자손 니므롯은 바벨 탑을 쌓음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주도하였다.

 

2) 갈래갈래의 언어로 갈라지고 난 후에 갖가지 집단들이 중동 각지에 정착했다.

 

3) 기원전 3000년경에 두 집단의 족속들이 메소보다미아에 정착했다. 메소보다미아란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인데, 두 강은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강이다. 이 강들은 모두 남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간다.

 

4) 한 족속은 아카드인들로 윗 계곡에 살았으며, 다른 족속은 수메르인들로 아랫 계곡에 살았다. 이것은 수메르의 땅으로 알려졌다.

 

2. 두 계곡의 정치적 역사

 

1) 수메르인들이 살았던 남부의 중요한 도시들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에?, 기스, 라가쉬, 라르사, 닙푸르, 움마, 우르 및 우륵.

 

2) 기원전 2500-2300년 사이에 우르의 왕들은 전 수메르를 지배하는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들은 북부의 아카드인들을 침략했다.

 

3) 기원전 2300년 직후, 이야기는 뒤바뀌어 오히려 수메르인들이 아카드인의 강력한 지배자 사르곤에게 정복당했다.

 

4) 전승에 따르면 사르곤은 유아기에 바구니에 담겨 유브라데 강에 죽도록 버려졌다. 그러나 한 정원사의 눈에 띄어, 그의 보호를 받아 군사가 되었다.

 

5) 사르곤은 뛰어난 군사적 지도자요, 조직가이자 행정가였다. 그는 유사 이래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였고, 메소보다미아의 전 지역을 통일하였다.

 

6) 그의 사령부는 바벨론에 있었다. 그는 56년 간 지배하였다. 사르곤은 위대한 입법가였다.

 

7)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들은 그의 강력한 지배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수메르는 북쪽 산지의 야만인들(구티 족속)의 침입을 받아 그들에게 복속당했다. 그들은 백년 가량 지배하였다(기원전 2170-2079년).

 

8) 이번에는 수메르인들이 세력을 회복하여 구티인들을 쫓아냈다. 새로운 수도는 페르시아만 연안에 있는 번영 일로의 항구도시 우르였다. 이 시기의 가장 위대한 지배자는 덩기(Dungi)라는 사람이다. 그는 유명한 행정가로 덩기법전을 편찬하였는데, 이 법전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 가량 앞선 것이다.

 

9) 이 수메르인의 국가는 엘람 족속이라는 동방의 유랑민족으로부터 침입을 받아 기원전 2000년 경에 멸망했다.

 

3. 메소보다미아인들의 업적

 

1) 수메르인들은 훌륭한 건축가들이자 건설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우르 시에는 거대한 계단과 기둥과 패널을 댄 벽으로 치장된 웅대한 왕궁이 있었다. 이들 벽에는 인간과 동물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다. 귀족들은 왕궁 주위에 세워진 2층 집에 거주했다. 그들은 둥근 천장(vault)과 아아치와 돔(dome)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알고 있었다. 건용한 방법으로, 후에 애굽인들이 피라미슬 만들때 이것을 모방했다. 지구랏 신전은 탑 모양의 신전으로 한 단층 위에 그보다 작은 단층을 계속 포개는 건축 방식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바벨탑의 모양을 흉내낸 것 같다.

 

2) 그들은 금과 은을 사용했으며, 합금, 주물, 성형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이 덕분에 훌륭한 금속세공과 보석류가 나올 수 있었다.

 

3) 각 학교에서는 천문학, 수학, 점성술, 지도 제작 및 외과수술을 교과목으로 가르쳐졌다.

 

4) 수메르인들에게는 무수한 시가 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천지창조'와 '길가메쉬의 서사시'이다.

 

5) 수메르인들은 육진법에 토대를 둔 숫자체계를 창안하는 등, 수학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룩했다. 그들은 곱셈, 나눗셈 및 분수를 활용하고, 1년이 354일로 이루어진 태음력을 사용했다.

 

6) 고대 수메르의 왕들은 전차를 이용했다. 그들의 군대는 잘 조직되어 있었고, 밀집대형을 이루어 행진했다. 그들은 구리로 만든 투구를 쓰고, 역시 구리로 만든 창을 사용했다.

 

7) 그들은 농업에 아주 익숙했으며, 곡물, 채소, 대추 야자를 엄청나게 수확하곤 했다. 또한 소, 양, 염소와 같은 가축을 길렀다. 밭을 가는 데는 황소를 이용하는 한편, 짐수레와 전차를 끈 데는 당나귀를 이용했다. 그리고 낙농없이 번성했다.

 

8) 수메르인들은 문자를 사용했다는 기록을 갖고 있는 최초의 족속들이다. 그들은 상형문자를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문자를 간편한 기호로 단순화하여 부드러운 점토판에 끝이 날카로운 철필로 썼다. 이 철필은 삼각형의 촉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점토판을 긁으면 쐐기 꼴이 새겨졌다. 이 글자는 후에 설형문자, 즉 "쐐기 꼴"의 문자로 일컬어지게 된다.

 

4. 메소보다미아의 종교

 

1) 고대의 다른 문명권에서도 그러하였듯이, 종교가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했다.

 

2) 각 도시와 마을에는 각각의 신들이 있었으며, 그 신들의 성격은 각각 달랐다. 얽히고 설킨 복잡한 신화가 발전하였다.

(1) 어머니 신 이스타르는 사랑과 다산의 여신이었다.

 

(2) 사랑하는 아들 신 담무스는 봄의 신이자 꽃과 곡물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는 또한 저승의 신이었으며, 일년 중 반년 기간 동안 저승에 살다가 매년 봄마다 이승으로 돌아오곤 했다.

 

(3) 바벨론 왕조가 통치하던 기간 중에, 담무스는 그와 비슷한 신 아모리 족속의 마르둑으로 대치되었다.

 

3) 바벨론인들은 천체를 숭상했는데, 이 결과 천문학과 점성술이 성하게 되었다.

 

4) 그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류를 희생제물로 바쳤다.

 

5) 사제들이 주관하는 성전, 제단 및 학교가 있었다.

 

6) 징조, 신탁, 마법이 종교에서 중요한 역항을 수행했다.

(1) 꿈이 중요시되었으며,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

(2) 희생제물로 구입한 양의 간장 위에 나타난 핏줄을 읽음으로써 미래를 예언하곤 했다.

 

 

블레셋

 

1. 소개

 

1) 이 해안 족속은 그레데 섬에서부터 이동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1200년경에 팔레스틴에 정착하였다(참조, 신 2:23;렘 47:4;암 9:7). 그들은 함의 계보에서 나온 족속이었으며, 그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의 후손이었다(대하 1:12). 이 때문에 그들은 애굽인들과 먼 친척이 되었다.

 

2) 아마도 그들은 팔레스틴으로 가는 도중에 헷 족속과 거대한 옛 수리아 도시 우가리트를 멸망시킨 것 같다. 기원전 1190년에 그들은 애굽을 침략하려 했으나 애굽의 바로인 람세스 3세에 의해 격퇴 당했다. 이 후에 그들은 연안 상류에 정착하였으며 팔레스틴에 자기네 족속의 이름을 붙였다.

 

3) 블레셋인들은 5개 도시 연맹을 결성했다. 이 다섯 도시는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및 갓이다. 각 도시는 방백이 다스렸다.

 

4) 블레셋인들은 아주 종교적이었으며, 다곤(곡물의 신), 아스다롯(번식의 신) 및 바알세붑(주거의 신)을 섬겼다(참조, 삼상 5:4;삼상31:10;왕하 1:2). 바알세붑은 후에 "귀신의 왕"이란 뜻의 바알 세불로 알려지게 되었다(마 12:24). 블레셋인들은 자기네들이 섬기는 신당에서 승리를 축하했으며(삼상 31:9), 곧잘 자기네들의 우상을 전장으로 모시고 다녔다(삼하 5:21).

 

5) 처음에 그들이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당시의 "원자탄"이라 할 수 있는 철기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들은 철기제작을 헷 족속(힛타이트)으로부터 배운듯 한데, 헷 족속은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 맨 처음 이 기술을 발견한 족속이다(참조, 삼상 13:5,19-22).

 

6) 블레셋인들은 엄청난 양의 맥주를 소비하는 "폭주가"들이었다.

 

2. 성서와 블레셋

 

1) 삼갈과 삼손은 블레셋 족속과 싸웠다(삿 3:31;삿13:1;삿15:20).

2)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그들을 격파했다(삼상 14:1-47).

3) 그들은 결국 사무엘에 의하여 바닷가로 밀려났다(삼상 7:12-14).

4) 사울은 그들에게 패하여 전장에서 죽었다(삼상 31장).

5)다윗은그들과 싸웠다(삼상 17장;삼하5장).

6)그들은 솔로몬 치세 때에 완전히 복속당했다(왕상 4:21).

 

 

애굽인들

 

1. 소개

 

1) 메소보다미아와 마찬가지로 애굽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민족이다. 애굽은 주위를 둘러싼 천연 방벽의 보호를 받았다. 북쪽에는 바다, 남쪽, 동쪽, 서쪽에는 사막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은 침략해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2) 애굽 문명은 진실로 나일강의 선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이 강(4037마일)은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호에서 시작하여 북으로 흘러 지중해로 들어간다.

 

3) 또한 바람 때문에 강의 왕복 항해가 용이하였다. 북쪽으로 가려는 배들은 흐르는 물을 타고 쉽게 항해할 수 있었고, 남쪽으로 가려는 배들은 바람을 이용하여 쉽게 상류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었다.

 

4) 지리적 위치 때문에 나일강 상류의 애굽은 남쪽에 위치한 반면 나일강 하류의 애굽은 북쪽 나일 강의 삼각주에 위치했다. 삼각주에 이르러 나일 강은 7개의 지류로 나뉘어 지중해로 들어갔다.

 

5) 윗 애굽(Upper Egypt: 남쪽 애굽)의 지배자들은 흰 왕관을 썼고, 아래 애굽(북쪽 애굽)의 지배자들은 붉은 왕관을 썼다.

 

2. 애굽의 왕조들

 

기원전 3300년에서 시작하여 알렉산더 대왕의 치세(기원전 330년)에 이르는 시기는-기원전 3세기경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의 분류에 따르자면- 정치적으로 30개의 왕조로 나뉜다.

 

3. 애굽 역사의 기본적 윤곽

 

1) 기초 왕조의 시대-기원전 3000-2700년. 제 1,2왕조, 수도는 멤피스(성서적 표현을 따르자면 '놉' ; 참조, 사 19:13;렘 2:16;렘46:14,19;겔 30:13,16).

주 : 메네라는 이름의 지배자가 30개 왕조의 초대왕이었으며, 아마도 이 사람은 창세기  10:6에 나오는 미스라임이었던듯 하다. 미스라임은 함의 둘째 아들이었다.

 

2) 고 왕국 - 기원전 2700-2200년, 제 3왕조부터 제 6왕조까지임. 이 시기에 거대한 피라밋이 건축되었다.

 

3) 제 1 중간기 - 기원전 2200-2000년, 제 7왕조부터 제 10왕조까지임.

 

4) 중 왕국-기원전 2000-1800년, 제 11왕조부터 제 12왕조까지임. 수도를 더베(성서적 표현을 따르자면 '노'  ; 참조, 렘 46:25;겔 30:14-16)로 옮김, 이 시대는 무덤을 예술적으로 꾸미던 때였다.

 

5) 제 2 중간기- 기원전 1800-1600년. 제 13왕조부터 제 17왕조까지임. 힉소스왕조(아시아의 방백들)가 기원전 1674년에서 1567년까지(제15-17조) 통치함.

 

6) 신 왕국 - 기원전 1600-1100년. 제 18왕조부터 제 20왕조까지임. 애굽의 국력과 부가 절정에 이른 시대. 이 때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 있었으며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다.

 

7) 제국 이후의 시기 - 기원전 1100-300년. 제 21왕조부터 제 30왕조까지임. 이 기간 중에 22명의 시삭이 지배했다(왕상 11:40;렘14:25-27;대하 12:2-12). 제 26왕조때에 느고가 통치하였다(왕하 23:28-30,33-35;대상 35:20-24;대상36:4;렘 46:2).

바사의 지배 - 기원전 525-332년, 프톨레미의 시기-기원전 300-30년, 알렉산더 대왕- 기원전 332-323년, 프톨레미 1-12세-기원전 304-51년. 클레오파트라-기원전 51-30년, 이들 일곱시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시기에 일어난다.

 

4. 중요한 사건들의 간략한 역사

 

1) 고 왕국(기원전 2700-2200년). 제 3왕조부터 제 6왕조까지의 왕국.

(1) 맨 처음의 피라밋이 바로 조세르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아마도 이 건축물은 메소보다미아의 지구랏을 모방하여 개량한 것이라 생각된다. 조세르는 제 3왕조의 왕이었다.

 

(2) 제 4왕조의 쿠프(Khufu 혹 Cheops)는 대피라밋의 건설을 명령했다. 헬라인들은 이 피라밋을 세계 불가사이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완성하는데는 20년에 걸쳐 10만 명이 동원되었다. 피라밋의 저변은 755피트이다. 하나에 2.5톤이나 되는 석회석을 쌓아 지은 것이다.

 

(3) 같은 제 4왕조의 바로인 카프르(쿠프 왕의 아들)를 위해서 거대한 스핑크스가 건축되었다. 그것의 모양을 보자면, 몸은 사자이고 머리는 바로였다. 그 몸의 길이는 240피트, 높이는 66피트, 얼굴의 너비는 13피트이다.

 

(4) 제 6왕조의 페피 2세는 고왕국의 바로 중 최후로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 그는 90년 이상 동안 권좌에 있었다. 그가 죽은 직후에 고 왕국은 멸망했다.

  이후 200년간(기원전2200-2000년) 애굽에는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었다. 줄곧 침략자들이 사막을 건너 쳐들어왔으며, 나라의 존립을 위협하였다. 야심을 품고 있는 세 일가가 정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통에 수리 계획 및 건축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내란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때때로 봉건시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제 7왕조부터 제 10왕조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족장 아브라함은 이 시기에, 즉 기원전 2084년경에 애굽을 방문하였다(창 12:10-20).

 

2) 중왕국(기원전 2000-1800년). 제 11,12 왕조가 이에 해당한다.

(1) 제 11왕조의 아멘호텝 1세는 다시 애굽을 통일했다. 그와 후계자들은 국가를 재건하고 세계 무역을 활성화시켰다.

 

(2)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것도 중왕국의 마지막 때인 기원전 1897년경이었으며(창 37장)그의아버지야곱이 애굽으로 옮겨간 것도 대략이 시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1875년경이었다(창 46장).

 

고왕국말기를점철하였던 바와 같은 격동과 전쟁의 상황이 다시 중왕국 말기에 만연하였다. 기원전 1700년 직후 힉소스 왕조로 불리는 일단의 침입자들이 수리아와 아시아에서 나일강 델타 지역으로 옮겨와 북 애굽(아랫 애굽)을 정복하였다.

 

힉소스 족은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있었다. 그들은 양쪽날이 있는 단검과 칼을 사용했다. 활의 몸체는 두 겹으로 되어 있어 강력하고 화살촉은 놋이었다. 훈련 및 무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애굽인들로서는 그들의 대적이 될 수 없었다. 힉소스 족은 피라밋과 관계된 모든 일을 중지시키고, 새로운 신들을 소개했으며, 애굽어를 단순화시키려고 했다.

 

이 두번째 중간기 전체는 제 13부터 제17왕조까지 기원전 1800-1600년 간의 시대이다. 전체는 아니지만 약간의 사람들은 이 시기, 즉 기원전 1730년경에 히브리인들의 탄압이 애굽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출 1장).기원전1580년에애굽의 한 병사 아모스(Ahmose) 1세가 반란을 일으켜 가증스런 힉소스의 침입자들을 모아 내는데 성공했다.

 

3) 신 왕국(기원전 1600-1100년). 제 18-22왕조가 이에 해당한다.

(1) 아모스 1세와 후계자들은 애굽을 재건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격렬한 민족주의 정신이 곳곳에 충만했다. 애굽의 히브리인 탄압이 시작된 것은 이 시기며, 바로 이와 같은 이유(값싼 노동력과 모든 외국인들에 대한 의심)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는다. 따라서 출애굽기에 언급된 모든 바로는 이 유명한 제 18왕조로부터 기인한다. 다음 구절을 생각해 보자.

① 출애굽기 1:8의 "요셉을 알지 못했다"는 "새왕"은 아마도 투트모스(Thutmose) 1세인듯 하다(기원전 1539-1520년 경) 모세는 기원전 1525년에 태어났다.

 

② 출애굽기 2:5의 "바로의 딸"이란 핫셉수트를 가리킨다. 그녀는 모세를 길러 그녀의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가 애굽의 왕위를 모세에게 넘겨주었다.

 

③ 출애굽기 2:15의 모세를 죽이려 했던 바로는 핫셉수트의 의붓아들 투트모스 3세였으며, 그는 왕후를 지독히도 미워한 나머지 그녀를 폐위시켰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핫셉수트의 한 친구였던 모세는 또한 투트모스 3세는 노여움을 자연히 받게 되었다.

 

④ 출애굽기 5:1의 열 가지 재앙이 기세를 떨치던 시기의 바로는 아멘호텝 2세이다. 이 바로의 무덤은 결코 완성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출애굽기 14:8-13에서 설명하고 있는 듯한데, 여기서 우리는 바로와 그의 군대가 홍해를 건너려다 그 중간에서 수장되고 말았다는 기록을 보게 된다. 게다가 그의 아들조차 애굽을 다스리지 못했다. 아마도 출애굽기 12:29은 이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으며, 여기서 우리는 바로가 유월절에 내린 죽음의 재앙에서 아들을 잃었다는 기록을 대하게 된다.

 

(2) 이 시기의 더욱 중요한 지배자들은 유명한 제 18왕조에 속한다. 얼마쯤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신 왕국 시대의 몇몇 왕들은 다음과 같다.

① 아모스 1세. 제 18왕조의 첫번째 지도자. 힉소스 왕조를 쫓아내는데 힘썼으며, 다시 애굽을 통일했다.

 

② 핫셉수트. 모세를 기른 장본인이자 애굽의 왕위와 더불어 여신의 지위에 오른 최초의 여왕. 그녀는 두개의 면류관을 썼으며, 거짓 수염을 길렀다.

 

③ 투트모스 3세. 핫셉수트의 의붓아들로 그녀를 격렬히 증오한 나머지 폐위시켰다. 투트모스 3세는 애굽의 모든 바로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바로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애굽의 알렉산더 대왕, 혹은 애굽의 나폴레옹이라 불리웠다. 그의 제국은 수단에서부터 북부 수리아에 뻗쳐 있었다. 그는 모세가 40세에 애굽을 탈출했을 때 애굽을 다스리던 왕이었다. 그는 나라를 지극히 안정되게 하고 죽었기 때문에 애굽은 당시 수십년동안 여전히 매우 강대한 채로 남아있었다.

 

④ 아멘호텝 2세. 열 가지 재앙 당시의 애굽 왕.

 

⑤ 아멘호텝 3세. 그의 치세 때에 애굽 제국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대제 아멘호텝 3세라고 불리기도 한다.

 

⑥ 아멘호텝 4세. 그는 아크나혼이란 이름으로 더욱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애굽의 다신교를 태양신 아톤만을 섬기는 유일신교로 뜯어 고치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열 가지 재앙 당시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참된 권세에 영향을 입은 듯하다.

아멘 호텝 4세는 네페르티티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다. 이 한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하여 옛날부터 허다한 그림과 조각이 제작되었다. 아래 내용의 고대 기록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엘 아마르나 서판이 발견된 것은 기원후 1880년이다). 여기에는 하비루라고 하는 침략 족속을 내쫓기 위해 애굽의 도움을 구하는 팔레스틴의 가나안 왕들로부터 애굽 왕 아멘호텝 4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비루 족속아 사실상 여호수아가 이끄는 히브리인이라고 생각한다(그렇지만 이 설은 다수의 주장은 아니다).

 

⑦ 투탄카톤. 그는 아멘호텝 4세이 양자였다. 기원후 1922년에 그의 무덤이 금만 해도 10만달러어치 이상을 소장하고 있었다. 투탄카톤의 미이라는 세개의 금곽 안쪽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카다란 석관에 누워 있었다. 시체는 또한 네개의 나무입힌 외곽에 둘러쌓여 있었다. 그는 기원전 1361년, 열 살에 등극하여 19세에 사망했다.

 

⑧ 람세스 2세. 그는 최후의 강력한 바로 였으며, 67년간 재위한 가장 자부심 강한 왕들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역사기록상 가장 오래된 협정을 헷 족속과 맺은 사람이기도 했다(기원전 1250년 경).

 

⑨ 람세스 3세. 그는 기원전 1190년에 일어난 유명한 해전에서 블레셋을 격파한 것으로 기억되는 왕이다.

이 후부터 애굽은 줄곧 내리막길로 치달린다. 이외의 성서 역사에 나오는 중요한 바로를 들자면, 제 26 왕조의 느고 2세 즉 느고왕을 들 수 있다. 그는 경건한 유다 왕 요시야를 살해했으며(왕하 23:29), 기원전 605년에 일어난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로니아인들에게 참패당했다(참조, 렘46:2).

 

 

바빌로니아인들

 

1. 소개

 

1) 기원전 2000-1800년 사이에 메소보다미아는 엘람 족속이라 불리는 일단의 동방인들에게 지배를 받았다(참조, 창 10:22;창14:1,9). 엘람 족속이란 오늘날 흔히 페르시아(바사)인들로 일컬어 지는 사람들이다.

 

2) 기원전 1760년에 엘람 족속들은 유브라데 강 서쪽에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들에 의해 메소보다미아에서 쫓겨났다. 이 침입을 주도한 승승장구의 아모리 장군을 함무라비였다. 이 인물로 더불어 고 바빌로니아 왕국이 시작했다. 그가 죽자 그의 제국을 분열하며 근 100년 동안이나 지리멸렬한 상태로 있다가 느부갓네살이란 이름의 갈대아 군인에 의해 신(즉 두번째)바벨론 왕국이 수립된다.

 

2. 고 바벨로니아 왕국

 

1) 기원전 1760년 함무라비는 티그리스-유브라데 계곡을 점령하고, 유브라데 강가에 수도 바벨론을 세웠다.

 

2) 바벨론의 대신은 마르둑이었다. 함무라비는 마르둑의 지상 사자임을 주장하여 통치권의 신성성을 수립하였다.

 

3) 그는 바벨론 제국의 창설자일 뿐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의 편찬자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 법전은 바빌로니아의 생활 중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부면을 규제하는 약 300조항의법률집이다.그러나 함무라비가 이 법률을 입안한 것은 아니며 그보다 약 300년전의입법자였던수메르의 덩기가 이미 입안했던 것을 함무라비가 법률화하여 요약한 것이다.

 

4) 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그의 치세 기간 중에 번성일로를 걸었다. 결국 그는 42년 동안의 치세를 끝으로 죽었다. 기원전 1708년 그가 죽은 직후에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일단의 전사들인 헷족속이 메소보아미아를 점령하자 고 바빌로니아 왕국은 멸망했다. 헷 족속은 헷의 후예이다(참조, 창 10:15;창23:3-20;창27:46).

 

5) 대략 170년 동안 헷 족속이 바빌로니아 영토를 지배했으나, 기원전 1530년 메소보다미아 북부에 살고 있던 캇사이트 족에게 복속당했다(참조, 창 2:13;창10:8). 그들은 이 지역을 근 400년 동안 지배했으며, 앗수르와 엘람인들에게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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