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7 11:11
경건’은 신앙인의 근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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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0,088  

경건’은 신앙인의 근본 태도  

 경건한 사람은 타인에 대해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 

인간의 종교적·윤리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다 

Ⅰ. 서론

경건이라는 말은 어떤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시간에 필요한, 인간생활에서 지켜야 할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경건이란 신앙적인 의미에 있어서 더욱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에는 경건한 생활, 경건한 신앙, 견경한 신자, 경건의 시간, 경건의 훈련 등이 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기독교의 영성에 대한 엄청난 관심 때문에 경건 또는 경건하다는 말이 경시되고 그 대신 영성이라는 말이 중요시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의 변화에는 기독교 신앙에서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일깨우고 강조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경건을 도외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경건과 영성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구별되어야 하지만,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에 못지않게 경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나아가 경건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경건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경건에 대한 성서의 교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Ⅱ.‘경건’이라는 말의 의미

한글학회가 지은 <우리말 큰 사전>과 민중서림이 펴낸 <엣센스 국어사전>은 ‘경건(敬虔)하다’를 각각 ‘공경하는 마음으로 깊이 삼가는 태도가 있다’ 또는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로 풀이한다.

또한 금성 출판사가 펴낸 <금성판 국어대사전>은 ‘경건(敬虔)하다’를 ‘깊이 공경하여 삼가고 조심하다’로 풀이한다. 

이 말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풀이한다면 하나님을 공경하고 정성스럽게 섬긴다 또는 남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 된다.

 서 비롯된 구체적인 행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인 의미는 ‘경건하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godly, pious, devout에서 잘 드러난다.

의무들을 헌신적으로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는 앞에서 우리말 ‘경건하다’를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풀이한 “하나님을 공경하고 정성스럽게 섬긴다 또는 남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푼다”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Ⅲ. 구약성서에서 경건과 관련되는 낱말들과 본문 및 ‘하시드’의 의미

신약성서에서는 경건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휘가 풍부하고 또 그 개념이 세분화되어 있다.

 또한 이 낱말들은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의 네 가지 품사로 나타난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구약성경에서는 경건과 관련되어 있는 히브리어 낱말들이 빈약하고 대부분형용사로 나오면서 명사적 용법으로 사용된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낱말은 ‘하시드’이다.

 본 논문은 이 단어를 중심으로 구약성서에 나타난 경건의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둘째로, 경건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하네프’라는 단어가 있다.

 이 낱말은 형용사로서 거의 명사로 사용되며 보통 ‘경건하지 않은(못한) 자’ 또는 ‘불경건한 자’로 번역된다.

 

 셋째로, 명사 헤세드(충성, 충실, 친절, 사랑 등)와 엘로힘(하나님)이 특정한 낱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 ‘경건한’이라는 뜻을 가질 수 있다. 

하시드’는 구약성서에서 경건과 관련되는 핵심 단어이다.

 

‘하시드’의 어근은 ‘하사드’이며 동사가 유일하게 히트파엘 형태로 사무엘하 22장 26절(=시편 18편 25절[26절])에 나온다.

 

이 동사의 의미는 “충성스럽다” 또는 “선하다, 친절하다”이며, 히트파엘 형태로서의 의미는 “‘하시드’로 행동하다,”

 

“자비를 나타내다, 자비를 베풀다, 은총, 은혜를 베풀다,” “스스로 충성스러움을 나타내다,”

 

또는 “스스로 친절함을 나타내다” 이다.

 


‘하시드’라는 낱말은 명사 ‘헤세드’에서 파생된 것이며 형용사이지만 명사로 쓰이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 “‘헤세드’를 행하는 사람,”

 

또는 “‘헤세드’를 베푸는 사람”을 뜻하며 여기서 나아가 ‘충실한 사람, 경건한 사람,’ ‘독실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시드’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세드’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헤세드’는 구약성서에서 245번 나오며 시편에서는 그 절반이 넘는 127번 나오는 중요한 단어이다.

 

‘헤세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포함된다.

 

충성, 충실, 친절, 사랑, 자비, 선함, 은혜, 긍휼.

 


‘헤세드’는 원래 세속적인 용법으로 사용된 인간 상호간의 관계 개념이다.

 

따라서 이 ‘헤세드’는 문맥에 따라 위에 열거된 의미들 이외에 효, 자매, 우정, 총애, 의리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다.

 


나아가 ‘헤세드’는 종교적인 용법으로 보다 빈번하게 사용된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사람 상호 간의 관계 개념이 문제가 된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헤세드’는 사랑, (또는 인애, 자애, 인자) 자비, 선함, 긍휼, 은혜(또는 은총), 신실함을 뜻하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헤세드는 충성, 충실(또는 신실함), 경건, 헌신, 사랑을 뜻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전자에서의 ‘사랑’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에서 맺은 사랑, 즉 계약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한결같은/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시드’ 또는 그 복수형인 ‘하시딤’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어떤 번역어가 적절한지 논의하기로 한다.

 위에서 ‘하시드’가 명사로 쓰이는 경우 기본적으로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헤세드’를 행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첫째로,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의 전제조건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헤세드’를 받거나 경험하는 것은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요 그러한 사람을 ‘하시드’로 볼 수는 없다. 

둘째로,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란 “헤세드(신실한 사랑)에 의해서 자극을 받아 헌신과 충실로써 응답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 “신실하게 헌신되어 있는”사람을 가리킨다.

특히 ‘하시드’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뜻한다. 

또한 ‘하시드’는 다른 사람들에게 ‘헤세드’를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경우 ‘헤세드’를 베푸는 것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요 자선 또는 구제를 베푸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볼 때 ‘하시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헤세드’와 다른 사람에 대한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의 종교적 의무와 윤리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다. 

 

Ⅳ. 경건의 근본

구약성서에서 경건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다.

 ‘하시드’는 단 세 번 밖에 안 되는 드문 일이지만 하나님에 대해 신학적으로 사용된다.

 

하나님은 다음 세 구절에서 ‘하시드’로 불리운다: 예레미야 3:12, 시편 145:13, 17. 예레미야 3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시대에 이미 백여 년 전에 하나님에 대한 배반으로 멸망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시고 노를 거두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하시드’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경우 ‘하시드’는 ‘긍휼이 있는’, ‘자비로운’(「표준새번역 개정판」) 또는 ‘은혜로운’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시편 145편 13절과 17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선하심이 어떠한 것인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편 145편 13절,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말씀에 신실하시며 그 모든 일에 ‘사랑을 베푸시는도다’(‘하시드’).](복구된 13절 하반절에 대한 필자의 사역). 

이 시편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곧 사랑과 긍휼을 강조한다.

 고통당하는 약자들을 도와주시고 모든 생물에게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부각된다.

 14절 하반절과 17절 하반절은 똑같이 하나님이 “그 모든 일에 ‘하시드’하다”고 말한다.

 17절에서는 ‘하시드’가 ‘의롭다’(‘차디크’)라는 말과 나란히 쓰인다.

 

여기서 ‘하시드’는 “은혜로우시도다”(개역개정판)로 옮길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표준새번역 개정판》과 《공동번역》의 번역과 비슷하게 “사랑을 베푸시도다”로 옮기는 것이 더 낫겠다.

 하나님이 “그 모든 일에 ‘하시드’하다”는 선언은 경건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이러한 점은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헤세드’라는 사실에 의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시편 145편은 하나님이 ‘하시드’한 분이라고 밝히면서도 8절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함(‘헤세드’)이 크시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시드’가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헤세드’를 받고 경험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이 ‘헤세드’를 “원래 주신 분”이 되시며 따라서 경건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Ⅴ. 경건의 기초 
경건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주장에 이어서 우리가 살펴야 할 문제는 경건의 기초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하시딤’이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때 경건의 기초는 바로 이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하시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된다.

 

1. 하시드 뒤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접미어의 사용 
형용사 ‘하시드’가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로 쓰이는 30번 가운데 19번은 그 뒤에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접미어가 붙여 쓰인다.

 이것은 ‘하시드’가 하나님께 소속된 존재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2. ‘하시딤’의 정체성 
하나님에 대한 ‘하시딤’의 특별한 관계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 및 하나님의 종이라는 ‘하시딤’의 정체성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첫째로 시편의 말씀들에서(85:8, 148:14, 79:2. 149:1;5;9, 50:5) ‘하시딤’은 하나님의 백성, 자기의 백성, 내 백성의 의미로 사용된다. 
둘째로 ‘하시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시딤’이 하나님의 백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경우를 앞서 언급한 시편 50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셋째로, ‘하시드’/‘하시딤’은 하나님의 종이다.

 시편을 쓴 시인들은 ‘하시드’ 본문들에서 스스로를 주의 종이라고 부른다.

 

3. 하나님이 ‘하시딤’에 베푸시는 은혜 
‘하시딤’이 유지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는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시딤’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 경우 특별한 관계는 친밀한 관계와 다름없다.

 경건한 자들이 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여러 형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하시드’)를 선택하신다. 

2) 하나님은 그의 경건한 자들(‘하시딤’)에게 환상 중에 말씀하시거나(시 89:19) 경건한 시인에게 훈계하신다(시 16:7). 
3) 하나님은 죄를 고백할 때 그 죄를 용서하신다. 
4)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고 간청을 이루게 하신다(시 116:1-2, 3-6; 145:19). 
5) 하나님은 그의 자비하심(혹은 신실하심[《표준새번역 개정판」], ‘헤세드’)을 보여주시고(삼하 22:26=시 18:25) 한결같은 사랑(《표준새번역 개정판》; 《개역개정판》에는 인자하심, ‘헤세드’)을 넘치게 하신다(시 32:10). 
6) 하나님은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시 4:7; 16:9, 11; 97:11) 삶의 평안과 안전을 주시며(시 4:8) 후대하신다(시 116:7). 
7) 하나님은 보호하신다(삼상 2:9; 시 31:23; 37:28; 86:2; 97:10; 116:6; 145:20; 148:14; 잠 2:8). 
8) 하나님은 병을 치유하신다(시 30:2). 
9) 하나님은 죽음에서 구원하신다(시 16:10; 30:3; 86:13; 116:8, 15). 

Ⅵ. 경건의 성격 
경건의 기초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관계라고 하는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이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시인 개인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때는 이스라엘 공동체로 나타나기도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경건의 성격을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으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1. 개인의 경건 
형용사 ‘하시드’가 사람에 대해 쓰이는 30번 가운데 단수로 쓰이는 경우는 10번(신 33:8; 삼하 22:26; 시 4:3; 12:1; 16:10; 18:25; 32: 6; 43:1; 86:2; 미 7:2)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가 7장 2절에서 “경건한 자(‘하시드’)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다”고 탄식한 예언자 미가가 7장 7절에 표현된 하나님 신뢰의 고백을 통해서 스스로 홀로 남은 경건한 자임을 암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건한 자가 모두 시편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경건의 개인적인 성격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절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시편 86편 2절이다.

 “나는 경건하오니(‘하시드’)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개인적인 경건을 표현하는 다른 좋은 예를 우리는 시편 16편 10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말씀에서 시인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기쁨이 넘친다.

 시인은 이러한 기쁨의 태도가 개인 경건의 또 다른 요소임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서 예로 든 시편 86편 2절과 16편 9-11절에서 분명하게 되는 사실은, 당연한 말이지만 경건이 개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개인을 떠나서는 경건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공동체의 경건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형용사 ‘하시드’가 사람에 대해 쓰이는 30번 가운데 복수로 쓰이는 경우는 20번이며 여기에 해당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사무엘상 2:9; 역대하 6:41; 시편 30:4; 31:23; 37:28; 50:5; 52:9; 79:2; 85:8; 89:19; 97:10; 116:15; 132:9, 16; 145:10; 148:14; 149:1, 5, 9; 잠언 2:8. 
이제 여기에 열거된 본문들을 토대로 경건한 공동체로 언급되는 대상들이 누구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넓은 범위에서 ‘하시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다.

 시편 148편 14절에서는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하시딤),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으실 이로다. 할렐루야”라고 말함으로써 ‘하시딤’이 곧 이스라엘 백성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하시딤’은 예배 공동체이다.

 이 예배 공동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의무를 다하는 것을 부각시킨다.

 시편 149편 1절은 이렇게 말한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하시딤)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할지어다.”

 또한 시편 50편 2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성도들(하시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여기서 ‘하시딤’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통해 언약을 맺고 언약의식을 통해 새로이 다짐하는 하나님의 백성(4,7절) 이스라엘(7절)의 예배 공동체인 것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정리할 점은 경건이 예배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예배 공동체를 통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경건은 ‘제의적 경건’으로 일컬을 수 있다. 


Ⅶ. 경건의 실천 
구약성서에 나타난 경건은 ‘하시드’의 원래 의미인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실천의 문제요 행위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경건을 인간의 어떠한 관계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관계에서의 경건과 인간관계에서의 경건으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종교적인 경건, 후자는 윤리적인 경건으로 부를 수 있겠다.

 

1. 하나님에 대한 관계에서의 경건 
김정준에 의하면 그는 시편 시인들이 사용한 여러 가지 말들에서 경건은 신자가 그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 표현이요 신앙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김정준은 이러한 말들을 경건의 용어 또는 경건어라고 간주한다. 

김정준은 이 중에서 히브리 신앙의 정수를 알리는 대표적인 말 하나가 “의지한다”는 말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하시딤’의 태도 표현에서 보다 근본적인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혹은 경외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이어네스(Dyrness)는 구약의 경건의 신학적 특성을 다루면서 “주를 두려워함”을 그 첫 번째 요소로 꼽는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함”을 각각 그 두 번째 요소와 세 번째 요소로 생각하고, 나아가 구약의 경건의 특징적 표현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함”, “기도” 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있다고 주장한다.

 

2. 인간관계에서의 경건 
하지만 구약 신자들의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경건 곧 종교적인 경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그들의 응답은 “삶 전체를 포함하는 능동적인 응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의 경건은 인간관계에서의 경건 곧 윤리적인 경건도 논점이 된다. 

‘하시드’는 미가 7장 2절 이하와 시편 12편 1절 이하에서 공동체에 대한 그의 의무를 다하는 정직하고 충실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미가 7장 2-3절에서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2절: 경건한 자(하시드)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야샤르)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절: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여기서 ‘하시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온갖 부패한 도덕적 행위를 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경건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인간관계에서 충실함을 나타내는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Ⅷ. 결론 
구약성서의 경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구약성서에서 경건과 관련된 중심 낱말은 대표적 의미로 ‘경건한’을 뜻하는 ‘하시드’이다. 
둘째, ‘하시드’의 원래 의미는 “‘헤세드’를 실천하는 사람”이므로 경건은 처음부터 실천이 문제가 된다. 
셋째, 경건은 ‘헤세드’와의 관련성 때문에 충실, 충성, 헌신, 사랑, 선함, 은혜의 의미를 함축한다. 
넷째, 경건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다. 
다섯째, 경건의 기초는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는 특히 ‘하시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 및 하나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딤’에게 베푸는 여러 가지 은혜를 통해서 나타난다. 

여섯째, 경건은 개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및 예배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경건은 예배 공동체를 통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일곱째,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태도를 표현하되, 특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경건의 중요한 내용으로 나타난다.

 

또한 경건의 실천은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다하기 위해 윤리적인 차원에서 선행과 정직과 정의를 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경건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헤세드’ 곧 한결같은 사랑/ 인자하심/ 은혜를 경험하고 이에 감격하여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식하고 살아가면서, 개인 생활과 신앙 공동체 생활면에서, 특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그의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동시에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하되 그가 속한 공동체(가족, 교회, 직장, 사회, 국가, 세계 등)가 유지되고 발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랑과 선행, 정직과 정의를 행함으로써 윤리적인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경건(敬虔)한 사람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건, 虔) 사람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경건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신약성서가 말하는 경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구약성서가 보여주는 경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오늘의 ‘하시드’와 오늘의 ‘하시딤’이 되어야 한다.

 경건은 이제 더 이상 조심하고 삼가고 엄숙한 분위기만 연상시키는 단어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은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실천의 문제이다. 영성이 중요하다.

 동시에 이 영성과 함께 그에 못지않게 경건도 중요하다.

 경건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증가할 때 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교가 더욱 활발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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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9 [3]성서에 나오는 아홉 민족 웹섬김이 03-27 6338
2338 코란과 이슬람의 경전들 웹섬김이 03-27 9753
2337 성경에 나타난 지혜서에 대해서 웹섬김이 03-27 8407
2336 고난주간에 관하여 웹섬김이 04-12 14035
2335 종려주간 웹섬김이 04-12 18756
2334 부활절 웹섬김이 04-12 8377
2333 바울 신학으로 본 부활 웹섬김이 04-12 7469
2332 세대주의의 기본 원칙 웹섬김이 04-17 6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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