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7 11:06
신사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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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011  
교회에 암 처럼 퍼져가는 신사도운동이 대체 어떤것인가를
우리가 명확히 알고 그것에 대한 경계와 또한 우리안에 있는
신사도적인 성향을 제거하기 위함 이다
신사도운동을 논하기전에 먼저 초대교회의 사도에대한 정의 와
사도의 권위를  알아야할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도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일컷는것이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에 세운 사도와 바울과 같이
그 이후에 사도의 권위를 인정받은 사도로 나뉘어져 있는데
가롯유다를 제외한 11제자와 나중에 새로 뽑은 맛디아 와 
그리고 제자의 반열에 들지는 않았지만 
12제자들 모두가 사도로 인정한 바울을 합해서
13명의 사도가 있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의 권위란
구약의 대선지자들에 버금가는 권위가 주어졌다해도
결코 무리라고 할수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이다
사도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하던 이들 부부는
베드로의 엄한 책망과 함께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엘리사 선지자를 놀리던 아이들을 암콤이 죽임으로
하나님께서 세운 선지자를 경멸하는 것에 대해 징벌을 통해 
선지자 엘리사의 권위를 세우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권한중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의 
중차대한 역활을 감당한것 처럼
아직 신약의 말씀이 완성되지 않을 시기이기 때문에
사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은 현재에도 사도나 선지자의 직분이 있느냐 이다
지금은 사도나 선지자는 없다 다만
목사와 교사는 있다고 볼수 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그의 교회론에서 교회의 직분에 대해 논하면서 
목사가 교사의 직무도 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 직무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당시의 교사는 신앙적으로 철저히 훈련된 사람이었으며 
오늘날의 신학교수와 같이 신학적으로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대리목자의 권한을 위임받은 직분은 누구냐이다
그것은 당연히 사도들에게 한정되있는 직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양들에게 먹이는 역활과
권위는 오직 사도들에게만 있었던 고유권한 이였다

사도베드로는 여러 사도들에게
그의 서신인 벧전 5장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맡기운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가르치는것을 보게된다
사도바울도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내세움보다
섬김의 직분을 내세움을 본다
특히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운교회가 크게 성장하더라도 미련없이
선교여행을 떠남을 볼수 있다
바울이 아마도 큰 교회에 지도자로 눌러 앉았다면
하나님께 이렇게 크게 쓰임받지 못했으리라 필자는 추측한다

사도란 하나님께서 구약의 대선지자들 처럼 사용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이 분명하다 할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여전히 사도의 직분을 받은것처럼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온통 혼란에 빠뜨리고 미혹하는 이들을 보고
"신사도운동" 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신사도의 역사적 뿌리는 20세기 후반의 미국 은사주의 교회로 
거슬러올라가며, 이같은 명칭의 초기 사용은 피터 와그너가 
언론인들에게 자신을 사실상의 창립자 겸 
지도자로 인식하도록 하려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비은사주의 및 오순절 신학 전통에서 이 운동은 적은 주목을 받았다. 
와그너는 "제 2차 사도 시대가 2001년의 해에 시작되었다"며, 
이는 "예언자"와 "사도"의 잃어버린 직위들이 
이 시대에 회복되는 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교회뿐 아니라, 이미 한국 교회 안에도 알파코스, 뜨레스디아스와 같은 
영성 프로그램들과 대형교회 집회 등을 통해 신사도 운동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신비적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직통계시, 예언등을 하는사람들만이
신사도운동 이냐에는 그렇지는 않다라고 본다
교회에서 자신의 직분의 권위를 내세우고 주장하며
사도의 권위를 주장하는 모든 무리들을 총칭 한다고 해야할것이다
요즘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도들 처럼 대언하지는 않으며
다만 말씀을  봉독하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할뿐이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대언자의 권위를 내세우는것은
참으로 위험한 행태라고 볼수 있다

이 글은 목사나 그 밖의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함보다
목사와 장로이기전  한 영혼이 귀하기 때문이다
쓰임을 받고 버림을 받는자가 아닌
쓰임 받고 하나님의 취함을 받았으면 하는
필자의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싶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과 사도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도 일수는 없을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과대망상"은  그 당사자에게는
감당할수없는 재앙이 될수있음을 우리는 가슴깊이 새겨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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