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7 10:54
[2]새신자교육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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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743  

III. 새신자 교육의 역사적 고찰

 


새신자 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고찰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새신자 교육의 역사적 고찰이란 성경적 근거를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기독교 교육은 성경의 비옥한 토양에서 발생하여 그 원리와 방법도 성경에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난 새신자 교육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시대적으로 분류된다.

 

 

 

1. 구약시대의 새신자 교육

 

 

 

구약시대의 새신자 교육이란 유대인들의 새신자 교육을 뜻한다. 기독교는 과거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이미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섭리를 진행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교훈도 구약에 근거하였고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도 신약의 복음서와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유대인의 교육토양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의 교육은 기독교 교육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모태에서부터 야웨의 신앙을 가지고 태어나서 야웨의 신앙전통 의식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새신자와 기성신자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들은 아이를 낳으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행하므로(창세기 17장 12절, 레위기 2장 3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결예식을 행하고 계약의 백성으로 교육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새신자 교육의 효시는 유대인의 어린이 교육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의 어린이 교육은 주로 가정에서 부모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를 참신앙인으로 양육할 책임을 지고 교육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시대적으로 자녀교육의 방법이 다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1) 족장시대의 교육 
족장시대 때에는 특별히 뚜렷한 형식의 교육은 없었다. 그러나 형식적이며 정규적인 교육 대신에 비형식적이며 비정규적인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의식을 통한 교육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러한 제사의식을 보고 하나님을 경배할 책임을 배우고 하나님에 관하여 보다 깊은 이해를 얻고 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의 공동체로서,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들에 관하여 배웠으며 그 언약이 신앙에 의하여 이스라엘 민족 중에 살아 있음을 배웠다. 이러한 배움 속에서 메시야 대망(the Messianic Hope)의 신앙도 필연적으로 있었다고 본다.

 

 

 

2) 광야시대의 교육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로 보내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이것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교육계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이 주어진 이후부터 유대인의 교육의 핵심은 율법이 되었다.
유대민족의 전역사를 통하여 보면 하나님은 그들의 교육의 중심이 되었고 율법은 교육의 바탕이 되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쉐마(shema)로 불리는 교육선언을 하심으로 히브리 민족에게 자녀들에 대한 종교교육의 절대성을 보여주셨던 것이다.(신명기 6장 4-9절)

 

 

 

3) 포로이전 시대의 교육 
Lewis Sherrill은 유대가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기를 기점으로 전기의 교육과 후기의 교육으로 나누고, 전기를 히브리인의 교육이라 하고 후기를 유대인의 교육이라 부르고 있다.    

 

포로기 이전 시대의 교육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첫째, 가정교육이다. 쉐마(Shema)(신명기 6장 4-9절)에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은 최초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가 은 교육의 기본장소이고 부모는 엄격한 교사로서 교육적 책임을 졌다. 그 고 그들의 교육은 율법교육이며 생활교육이며 또한 민족교육이었다.
    

 

둘째, 장년교육인데 포로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들을 통하여 신앙교육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그 직능에 따라 제사장, 예언자, 선지자라고 불리웠으며 이들의 교육은 율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제사장은 제사의식, 회당의식, 절기의식 등을 인도하므로 백성들의 신앙을 교육했고, 예언자는 예언과 책망과 경고를 통해서 백성들의 신앙을 교육했고, 선지자는 율법연구를 통해서 그들을 교육했다.

 

 

 

4) 포로이후 시대의 교육 
이스라엘 민족들은 오랜 포로생활 속에서 그동안 섬겨왔던 야웨의 신앙이 흐트러지는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소위 "남은 자"(Remmant)들의 강한 신앙고수와 교육을 통하여 그들의 종교교육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들은 보다 발전된 양태로 교육을 도모했다. 즉 회당과 학교라는 교육기관을 통해서 교육을 수행했다.
회당에서는 하잔(Hazzan)이라는 회당 전속의 지도 아래 친교와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하여 신앙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학교교육으로는 Beth Hassepher, Beth Talmud, Beth Hammidrash, Academy라는 교육기관을 통하여 교육했는데, 그 중에서 Beth Hassepher는 초등교육기관으로 신앙의 초보자를 지도하는 초신자 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수방법으로는 성경통독, 율법강해, 요절암송, 율법교독, 문답형식, 비유와 상징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이 방안을 위한 선교활동과 함께 개종자들을 위한 종교교육에 있어서 613개조의 계명을 가르쳤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2. 복음시대의 새신자 교육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스런 봉사였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봉사는 전도(Kerygma)와 교육(Didache)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두 가지 사역은 분명히 구별해 낼 수 없도록 서로 얽혀 있다.
    

 

예수님은 위대한 전도자요, 동시에 위대한 교사였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다(마가복음 1장 15절). 또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새신자들을 가르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의 제자로 훈련시키셨다(마태복음 26장 55절).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복음사역의 확장이 훈련받은 제자들의 헌신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알고 그들을 사도라 칭하여 복음전선으로 파송하셨다.

 

 


마침내 예수께서 지상생애를 모두 마치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장 19-20절)고 명령하심으로 역시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사역처럼 전도와 교육의 사명을 동시에 병행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럴찌라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인상은 랍비(교사)에 더 가까왔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향하여 "랍비여, 우리가 당신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대적한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생 즉 랍비라고 불렀다(요한복음 3장 2절).
마태는 언제나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할 때에 그를 가르치는 분으로 묘사했다(마태복음 9장 11절).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을 선생(Rabbi)이라고 51회나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선생이라고 기록한 것이 5회나 된다. 진 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표현보다도 교사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가르침은 예수님의 사역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교사되신 예수님의 교육방법과 목표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예수님의 새신자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생활의 본을 통한 교육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따르라"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면서 당신의 삶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 가르치셨다(마태복음 4장 19절, 요한복음 13장 15절, 마태복음 11장 29절). 이 방법은 가장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교육방법이다.

 

 

 

2) 생활현장에서 자유롭게 교육했다. 
4복음서 전반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어느 곳에 있든지 교육사역과 깊은 관계를 갖고 계셨다.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공식적이며 정규적인 것보다는 비공식적이며 비정규적인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예수님은 장소를 초월해서 길가에서나, 해변에서나, 광야에서나, 산에서나, 집 안에서, 우물 곁에서 그리고 회당과 성전, 그 어떠한 곳에서도 친밀하게 거닐고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리를 가르쳤다.

 

 

 

3)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교육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형식적이기보다는 비형식적이며 자연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면, 질의 응답을 통해서, 면담과 대화를 통해서, 시청각적인 실물교육을 통해서 알기 쉽게 가르치셨다.

 

 

 

4) 생활에서 부딪치는 경험을 통해서 교육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막연한 이론이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생활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생활에서 부딪쳐오는 시선을 토대로 해서 말씀의 이해와 도움을 얻도록 했다.

 

 

 

5)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 함께 생활하심으로 교육했다.  
예수님은 몸소 제자들의 생활현장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그들과 대화하시고 그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셨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는데 인색하지 않으시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시므로 개인접촉을 통하여 신앙을 지도하셨다.

 

 

 

6) 개인의 영혼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교육이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고려의 대상은 개인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접촉을 강조하셨고 한 영혼에게 관심을 집중시키셨고 한 영혼이 바로 서는 것에 영구한 가치를 두었다.
한 영혼이 하나님의 진리에 바로 서고, 한 영혼이 양심에 따라 행하며, 한 영혼이 하나님의 요구를 총족시키며, 한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가르치셨다.

 

 

 

7) 영적 성숙의 단계에 따라 교육했다. 
예수님은 교육에 있어서 개인차를 인정하고 영적 성숙의 단계를 고려하여 적절하게 교육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설명을 밭에 씨뿌리는 비유로 하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고 대답하셨다(마태복음 13장 10-11절).
이것은 무리가 아직 천국설명을 이해할 만큼 영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는 말씀이다.

 

 

 

8) 개인상담을 통하여 교육했다. 
예수님은 개인의 문제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 가시어서 그들과 상담하심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문제해결을 얻게 했다.
수가성 여인이나 베데스다 못가에 38년된 병자나 세리장 삭개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9) 훈련된 제자들을 통하여 교육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셨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교육 목표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목표도 방향도 없는 교육을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가르치셨다.

 

(1) 예수님의 궁극적인 교육목표는 십자가나 부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었다. 예수님의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유대인의 종교적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 정치적 상황은 로마제국의 통치로 유대인들이 심한 고통과 갈등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가운데는 정치적 해방과 정치적 메시야 사상이 무르익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하고 가르친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원했던 정치적인 해방이나 사회개혁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종말론적 영역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성격 그 자체는 예수님의 교육방향과 목표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2) 예수님의 교육목표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곡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길을 잃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믿음을 잃고, 영적 암흑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자로 가르치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길을 보여주셨고, 인간의 태도, 생각,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를 알았으리라. 이제부터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나를 본 자는 내 아버지를 보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이상으로 우리는 복음시대에 예수님의 새신자 교육의 태도와 방법과 목표를 찾아보았다. 오늘의 새신자 교육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3. 사도시대의 새신자 교육

 

 

 

새신자 양육에 대해서는 신약성경보다 더 폭넓고, 개인적이며, 지속적이며, 전교회적으로 가르치고 설명한 책은 없다. 특별히 사도들의 대부분의 서신들, 즉 바울서신과 베드로서신과 요한서신들은 새로 믿는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한 서신들이다.
빌립보서 1장 23,25절을 보면 사도바울의 삶의 첫째 목표는 새신자를 양육하는 일이었다.

 


빌립보서 1장 23,25절을 보면 사도바울의 삶의 첫째 목표는 새신자를 양육하는 일이었다. 사 바울은 아직도 연약하고 초보적인 신앙단계에 머물러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 좀더 살아서 역사해야 하겠다고 자신의 삶의 이유를 밝힌다.  여기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라는 말은 아직도 어린 상태에 있는 빌립보 교회 신자들의 믿음을 성장시켜서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려는 것으로 새신자 양육의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역이나 교회 전반에 있어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교사의 직분을 사도와 예언자와 목사의 직분과 함께 인정하였다.
    

 

바울은 교사의 직분을 고린도전서 12장 38절에서는 예언자 다음에 두었고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는 전도자와 목사의 다음에 두었다. 이것은 교회의 기능에 있어서 교사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시켜 주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교역자들은 누구나 다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만 새신자 훈련 같은 특정한 일은 교사들에게 맡겨 교육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면 사도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초대교회는 말씀에 대한 봉사로써 전도와 교육을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었다. 전도는 믿지 아니하는 이들을 상대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다. 즉 죄와 불신앙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고 외치는 일이었고, 교육은 주로 이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로서 아직 불신앙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하여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는 전도와 함께 신자들을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1)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도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는 것과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진실로 사도들의 선교와 교육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었다.
    

 

사도들은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보다 견고한 기독교적 신앙을 심어주려고 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은 대부분 유대교에서 개종한 개종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절대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은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가 구약성서에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했다.

 

 

 

2) 새신자들의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새신자 양육이란 전도의 열매를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번식시키는 것이다. 교육이 없이는 교회로 들어온 신자들을 계속적으로 교회에 머무르도록 할 수 없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복음명령을 따라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다. 이리하여 교회는 날로 숫자적으로 팽창하여 나갔다. 실로 초대교회의 부흥은 놀라운 것이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때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제자의 수가 3천명이나 되었다(행 4:37-41).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교회로 몰려든 새신자들을 계속적으로 교회에 머무르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사도들은 적극적으로 새신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나타난 사실들이다.

 


"저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이러한 일은 새신자들로 하여금 계속 교회에 머물러서 양육과 훈련을 받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던 조치였던 것이다.

 

 

 

3) 새신자들로 하여금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의 새신자 양육을 위한 강렬한 욕망과 훌륭한 모범이 나타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박해가 심해지자 바울의 전도단은 박해를 피하여 그곳을 떠나야 했다. 루스드라에 도착한 그들은 어떤 병자를 고치므로 신으로 대접받는 소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돌로 쳐 죽이게 했다. 여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바울은 지난날 그토록 박해를 당했던 더베를 거쳐 루스드라와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 이유는 박해를 받고 있는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제 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믿음에 거하도록 권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리아 안디옥에 사는 헬라인들에게도 전파되어 많은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를 보내 격려토록 하니 바나바는 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박해 중에서도 굳은 믿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다(행 11:19-24).
이처럼 사도들은 새신자들로 하여금 박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믿음을 권하고 교육했다.

 

 

 

4) 새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도바울의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존 칼빈은 그 아들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자로 삼으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그의 맏아들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니도록 결정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본받아야 할, 영원히 살아 있어 두드러진 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13-14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역시 존 칼빈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란 나이가 늙은 것을 뜻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영적 생명의 활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완전히 장성한 분량이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후에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새신자 교육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이루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5) 새신자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온 이방인들이 증가하게 되었는데, 교회는 이러한 개종자들에게 기독교의 바른 교리를 가르쳐야만 했다. 또  교회가 급성장함에 따라 교회 안에 잘못된 이단사상이 강하게 침투해 들어왔다.
    

 

초대교회에 침투에 들어온 이단사상은 주로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였다. 그리고 이 두 이단사상은 초대교회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율법주의란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율법을 지킴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기본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의 대부분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자기들의 사상과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순수한 신앙을 가진 신자들까지도 이러한 사상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사도들은 이러한 율법주의 이단을 경계하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같은 서신들을 써서 교회에 보냄으로 율법주의와 같은 이단에 미혹되지 않도록 신자들을 교육했다.
    

 

또한 영지주의란 당시 희랍 사상의 이원론적 영향을 받은 이단으로서, 대체로 기독교를 일종의 고차원적인 지식(Gnosis)으로 해석하려는 철학적인 종교였다. 그들의 사상은 창조론이나, 기독론이나, 인간론에 있어서 기독교의 기본 사상을 부정한다. 그들은 지식이라는 우상에 빠져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 단순하고 평이하기 때문에 좀더 고차원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이단에 현혹되지 말 것을 성도들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사도들도 앞을 다투어 골로새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1,2서, 유다서를 써서 이 무서운 영지주의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쳤다.

 

 

 

6) 새신자를 제자화하기 위해서였다. 
디모데후서 2장 1-2절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한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존 칼빈은 여기 [부탁하라]는 말을 [전달하라], [가르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서 들은 것은 몸소 가르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의 가르침을 공포케 하라." 다  말해 신자들을 제자화해서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사명을 감당케 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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