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5-03 21:32
구원의 5대 교리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825  

구원의 5대 교리

 

 

프랑스의 위대한 개혁자 '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교회사(敎會史)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정통기독교리를 체계화시켰다. 그의 성경중심주의와 절대주권사상의 개혁의 물결에 로마 카톨릭은 힘을 잃게 되고, 개혁주의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대의민주제(代議民主制) 아래 제네바를 기점으로 교회는 날로 새로워져갔다.

 

그런데 칼빈이 소천(召天)된 후 40년이 지난 1603년 경 어느 날, 개혁주의 신앙의 본산지인 네델란드에 정부 관리출신인 코른헤르트(Coornhert)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칼빈주의의 '주권', '예정' 등을 반박하는 글을 써서 정부에 올림으로써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칼빈의 수제자 '베자'(Deodore Beza)는 분개하여 이 문제를 수습하려고 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기와 같이 개혁주의를 표방해온 화란신학교 교수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를 불렀다. 그리고 그를 '코른헤르트'를 만나서 진상을 알아보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코른헤르트'의 글을 읽은 '알미니우스'는 반박하기는커녕 그 글에 감동을 받아서 도리어 "절대주권은 잘못되었다. 예정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아주 타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을 보고 선택한다.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산물이다.........."라고 주장하며 칼빈주의를 공격했다. '알미니우스'는 1609년에 죽고, 다음 해인 1610년에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추종하던 무리들(Alminianists)이 이른바 '알미니안주의의 5대 항론(Remonstrance)'을 발표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인간은 완전 타락하지 않았고 자유의지가 남아 있다(자율 구원성).

②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보고 선택하였다(예지예정 및 조건선택).

③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만인 구원).

④ 성령의 은혜는 충분히 저항할 수 있다(자유의지).

⑤ 구원 얻은 사람도 잘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궁극적 구원 실패 가능). 등이다.

 

어처구니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칼빈주의 정통 신앙을 자랑스럽게 지켜오던 화란정부와 교회는 1618년 11월 13일 '돌트'(Dort)에서 세계적인 종교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돌트 총회'(Synod of Dort)이다. 스위스, 영국, 신성로마제국, 독일 등 각지에서 온 27명의 사절과 84명의 교회지도자와 18명의 정부 고위층이 참가한 대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칼빈주의자들은 알미니안주의의 5대 항론(抗論)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했다.

그리고 7개월에 걸쳐 총 154회의 회의를 거듭한 결과 칼빈주의가 승리하였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가장 흉악한 이설(異說)임을 확인했으며 만장일치로 알미니안주의의 5대 항론(抗論)을 기각(棄却)시켰다.

 

그리고 알미니안주의 5대 항론(抗論)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1619년 5월 9일 칼빈주의 5대 강령 (The Five Points)을 채택 발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듯이 이 강령은 칼빈 본인이 작성한 것은 아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 입각한 구원론적 강령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전적(全的) 타락.

② 무조건 선택.

③ 제한 속죄.

④ 불가항력적 은총.

⑤ 성도의 견인(堅忍).

 

구원의 5대 교리(敎理)

 

1.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1)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상태

 

중생 받지 못한 인간은 전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인간의 전적타락을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갈빗대 3개가 부러지고 다리를 다친 상태와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살아있고, 또 상처는 입었으나 의식이 있어서 의사를 부르며 구원을 요청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자율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그 때 하나님은 그를 도와서 구원시켜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인협동(神人協動)에 의해 구원이 이룩된다는 주장이다. 또한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인간을 아직은 죽지 않은 병든 상태 또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죽을 뻔했던 인간이 아니라 죽었던 인간이다. 구원의 요청은커녕 그럴 생각조차 가질 수 없는 인간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4-6)

 

인간은 나무에서 잘려진 가지와 같다. 잘려진 가지는 잠시 푸른 기운을 보이지만 그것은 조만간 말라서 죽어버릴 것이 확실하다. 그 가지는 잠간의 잔존생애(殘存生涯)만 견디고 있을 뿐이다. 즉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 받지 못한 죄인은 전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잘려진 가지를 다시 원 둥치에 접을 붙였으니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가 된 것이다(롬 11:17). 기독교의 구원은 자율이 아니라 타율이다. 전혀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죽은 인간을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 놓은 것이다. 이것이 중생(Regeneration)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따라 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아니하는 자들은 차라리 안 믿는 자보다 더 괘씸한 존재들이다.

 

2) 죄는 오염과 무능력을 가져왔다.

 

로마의 사형법에 산 사람을 벌거벗긴 채 죽은 시체와 마주 묶어서 광야에 내버리는 형벌이 있었다고 한다. 시체에 함께 묶인 산 사람은 시체와 함께 썩어가는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죽어버린다. 죄에 물든 인간이 마치 이와 같다. 그러므로 산사람 때문에 시체가 살아나는 법이 없고 시체 때문에 산 사람이 죽어가듯이 인간은 자신의 생존성(生存性)을 가지고 사망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죄는 인간을 오염 타락 그리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도 선이나 의를 행할 수 없다. 완전타락(total depravity) 완전무능력(total inability)한 상태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상대적 선(善)이라는 것이 있다. 즉 불신자가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돌트신조는 이러한 불신자의 선행을 "구원과는 관계 없는 선(善)"이라고 한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하셨으니 불신자의 선(善)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중생한 자가 믿음으로 하는 선행만이 참되며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1) 선택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우연히 되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든 것을 계획하셨는데 이것을 총칭하여 하나님의 작정(foreordination)이라고 한다. 작정은 전 우주에 미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다. 그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 가장 핵심은 인간의 구원 문제이다. 성경은 인간의 장래를 크게 두 가지로 말하는데 어떤 자는 천국이고 어떤 자는 지옥이다. 그것을 "선택"과 "유기(遺棄)"라고 한다. 즉 선택된 자는 천국이요, 유기된(버려진) 자는 지옥이다. 이처럼 구원(선택)이냐 아니냐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작정을 특별히 이름하여 "예정(Predestination)" 이라고 한다. 예정은 구원에 관한 용어로서 예정은 하나님의 작정의 일부이며 그것은 선택과 유기로 나눈다. 이외의 총체적인 하나님의 섭리는 "작정"이라고 한다. 선택이란 골라서 뽑는 일이다. 누구를 골라서 뽑는가? 예정된 자만 골라 뽑는 것이다(마 22:14, 마 13:47-49, 24:). 그러므로 선택은 곧 예정이다. 하나님은 어떤 조건으로 선택하시는가? 무조건(Uncondition)이다.

 

2) 무조건의 의미

 

하나님은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되 인간의 조건(Condition) 즉 상태, 신분, 지위, 사정, 자격, 공로 등등을 따라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이다. 선택이란 말은 조건을 따라 고른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예정된 자를 찾아 뽑아내는(pick up) 것을 말한다. "잃은" 양을 찾으며,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것이다(눅 15:1-). 하나님의 예정, 선택은 인간편의 조건에 아무 관계 없이 "무조건 예정"이며 "무조건 선택"이다.

즉 "절대적 예정"이요 "절대적 선택"이다. 인간의 상대적 평가와는 관계 없는 하나님 자신의 일방적인 계획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의 의미는 구원(선택)을 인간편의 공로에 돌리지 않고, 인간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아무 조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왜 무조건이어야 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때문이다. 만약 선택의 조건이 인간에게 있다고 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사역(主權使役)이 아니라, 인간과의 공동사역(共同使役)이 되어버린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른 바 "예지예정"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에게 "예수를 믿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어서 그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그 믿음이란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이 말씀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믿을 가능성을 보고서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 인간 사회에서는 그들의 논리가 통할 수 있다. 사람들이 상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 그 물건의 조건(상태)을 보고서 고른다. 그러나 믿음은 무조건적인 선물이다. 그러므로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절대예정, 절대선택을 송두리째 거부하려는 불효한 자녀들이다. 그리고 이 무조건 선택(예정)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4) 무조건 선택이 주는 결과

 

율법 613가지 중 하나만 범해도 죄인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이 율법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인간 중에서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자가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알미니안주의 교회들이 행하는 심령부흥회는 구원에 대한 감격이라기보다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신앙의 고행행위일 뿐이다. 미친 듯이 부르짖고, 울고, 군중심리에 휩쓸려 황홀지경에 빠진 다음 성령충만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이 버려지지 않는 한 그들의 신앙은 불안하며, 유대인의 제사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집회는 교인들에게 무속신앙의 열정만 더해줄 뿐이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고 전적무능을 절감하는 진정한 신앙인은 선택은 나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무조건 해주시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게는 선택받을 만한 조건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무조건 선택이 주는 결과는 "절대 안심"이다.

 

3.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1) 제한속죄는 특별한 구속(救贖)이다.

 

타락한 죄인은 하나님의 무조건 선택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림은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는가? 그것은 선택된 자에게만 해당되는 희생이다. 이것을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라고 부른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은 특별한 구속(救贖)인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 자체가 제한이요 특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택된 특별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이다. 그것은 오직 무조건 선택과 피 흘림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선택 자체가 제한이요 특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택된 특별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이다. 그것은 오직 무조건 선택과 피 흘림의 은혜이다.

 

2) 제한 속죄를 말하는 성경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 중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 1:3-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

 

예수님이 염소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은 제한 속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속죄의 무제한 즉 "만인속죄설"을 주장한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은 다음과 같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딤전 2:4-6)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은즉“(고후 5:14-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위의 "모든" 또는 "세상"을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모든 인류"로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every)의 의미는 "모든 인류"가 아니라 "택한 자 모두"의 의미이다.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라는 말씀에서 "다"라는 말은 앞의 "너희"를 의미한다. 즉 "택한 자 너희 모두 다"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 안에서(in Jesus)"의 구원이다. 기독교의 "모든 이"는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이"를 말한다. "믿는 자마다(Whoever believes in Him)" 구원을 받는다.

 

3) 만인구원설의 모순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셨다면 결과적으로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실패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실패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이단설이다. 만인구원이라면 믿음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구태여 의롭게 살려고 발버둥칠 것도 없다. 그러나 제한속죄 즉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특별히 선택하시고 또한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다는 사실은 우리를 감격하게 한다. 감사하게 한다.

 

4.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ible Grace)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1) 반항할 수 없는 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요 6:37)

 

선택된 자만이 주께로 올 수 있으며 선택된 자는 모두 실패하지 않고 주께로 오게 된다. 불가항력(不可抗力)이란 말 그대로 저항(반항)이 불가(不可)한 힘을 말한다. 성령께서 구원을 실시하시는 그 힘은 크고 완전한 효과가 있어서 누구도 거부하거나 그것에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이것을 유효적 소명(有效的 召命)이라고 한다. 그물에 선택된 고기가 반항할 수 없이 끌려오듯이 하나님께 선택된 성도는 기어코 그 품 안에 들어오고야 만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와 믿음을 주시는 일련의 역사는 우리에게 은혜(Grace)이다.

 

2) 은혜의 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고전 5:14)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이 거부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간이 가진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서 구원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이 먼저 회개하고 믿어야 그 다음에 그것을 보신 하나님이 중생을 시켜준다."는 잘못된 구원관을 만들어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엡 2:8-9)이라고 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는 믿음을 "사람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주장이다. 중생도 성령의 단독 역사(役事)이다. 중생과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협력이 아니라. 성령의 단독사역이다.

인간은 믿게 해야 믿을 수 있고, 회개의 영을 주셔야 회개할 수 있다. 즉 중생된 자만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칼빈주의 신앙이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내가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한번 선택된 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일단 성도(聖徒)로 부름 받은 자는 성령께 붙잡힌바 되어 기필코 천국에 들어가고야 만다. 이런 원칙을 "성도(聖徒)의 견인(堅忍)" "궁극적 구원(Ultimate Salvation)이라고 부른다.

 

1) 견인(堅忍)

 

견인(堅忍)이란 "견고하게 붙든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인내에 근거를 둔 표현이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는 아이는 자기가 아버지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상은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더욱 굳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성도의 견인은 그래서 안심이다. 하나님은 일단 선택한 성도는 놓았다 붙들었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도를 끝 날까지 계속해서 붙잡고, 믿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그 눈이 불 꽃 같고“(계 1:14, 19:12)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출 13:21-22),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신다(시 23:4).

 

2) 영원한 보전(保全)

 

이는 궁극적으로 닿는 구원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실수나 실패가 없다. 영원한 보전(保全)이요, 궁극적 구원이다. 성도는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힘이 나를 붙들어주지 않으면 자력(自力)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은 하나님께 절대 의지하는 신앙이다. 알미니안주의는 중생된 자도 지옥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믿었다가 낙심하고, 구원을 받았다가 다시 잃기도 하며,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녀였다가 다시 마귀의 자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교리이다.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택한 성도를 붙들고 가실 것이므로 구원의 실패는 없는 것이다. 전적타락, 무조건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총, 성도의 견인 등 이러한 구원의 5대 교리는 하나님의 주권(主權) 위에 세워진 한 고리에 메어진 동일한 사상이다.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떼어내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379 목회서신 3 웹섬김이 05-12 2391
2378 목회서신 2 웹섬김이 05-12 2721
2377 목회서신 1 웹섬김이 05-12 2817
2376 베드로서의 난해 구절 웹섬김이 05-12 2926
2375 요한 계시록의 열쇠 웹섬김이 05-12 3105
2374 미래 계시/ 계 4∼22 -2 웹섬김이 05-12 2446
2373 미래 계시/ 계 4∼22 -1 웹섬김이 05-12 2782
2372 현재 계시/ 계시록 2,3 장 웹섬김이 05-12 2793
2371 과거 계시/ 계시록 1장 웹섬김이 05-12 3659
2370 노아가 방주를 120년 동안 지었다? 길어야 40년 웹섬김이 05-09 4399
2369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정말 120년인가? 웹섬김이 05-09 2824
2368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몇 년? 웹섬김이 05-09 2586
2367 목회자들이 목회를 빨리 그만두는 진짜 이유 … 웹섬김이 05-09 2925
2366 성막의 기구 7가지와 그 의미 웹섬김이 05-03 3230
2365 구원의 5대 교리 웹섬김이 05-03 2826
2364 이스라엘의 애굽 종살이 기간 웹섬김이 05-03 4125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