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2-24 12:35
[5]기독교 교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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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602  

제 7장 은혜의 적용론 (구원론)

 

제1절 교부시대의 구원론

 

*1.초기 3세기 동안의 구원론 - 초대교부들에게서 공통적이이며, 명확하고, 체계화된 구속사역의 적용론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의 표현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불충분하였다. 초대교부들의 신앙관은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기에 탁월한 기구이며 때때로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율법의 일보다 칭의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 관념들은 속사도교부들에 의해 거듭 강조되었다. 이레네우스와 오리겐과 같은 후대 교부들은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견해에 공감하였고, 래틴의 교부들은 인간의전적 부패와 이신칭의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전자들을 더 능가했다.

 

*2.3세기 이후의 구원론

 

⑴펠라기우스의 은혜관 - 펠라기우스는 다른 초대교회 교부들보다 구속의 적용을 표현함에 있어서 성경적 입장에서 탈선하였다. 초대교부들이 신성하게 보았던 성경적 기초를 버리고 이교 철학의 “자아충족원리”를 재주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적으로 생각하였다. 자연의 은혜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으로 보질적이며 필연적인 것이다. 복음의 은혜는 보편적인것도 필요한것도 아니며 다만 인간이 구원을 얻는데 쉬울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은혜가 주어질 때 조명하여 주는 것을 인간이 이해 할 때만 작용하는데 인간은 이 은혜의 역사를 거절 할 수 있다. 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은혜관 - 그는 자연인은 전적으로 부패하여서 영적 선을 전혀 행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또 은혜를 객관적 의미에서 말하고 복음과 세례와 용사(容赦)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예정의 열매인 이 은혜는 하나님의 주관적 선에 따라 대가 없이 주어지며 인간의 어떤 공로에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은혜는 불가항력적이어서 인간을 강제로 반대하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닌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⑶어거스틴의 신앙관 - 그는 신앙이 죄인의 칭의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칭의와 성화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였고 성화를 칭의에 속하게 하였다. 어거스틴의 교리 체계에 있어서 주목할 것은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는 것이다.

 

제2절 스콜라 시대의 구원론

 

1.스콜라 신학의 은혜관 - 스콜라 신학자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견해는 어거스틴주의에 일치하였다. 일반적으로 인간으로서는 충족한 은혜의 도움 없이는 신앙을 자라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2.스콜라 신학의 신앙관 - 스콜라 신학 시대의 일반적인 경향은 신앙을 진리에 대한 단순한 동의인 지식의 한 형식으로서의 신앙과 선행을 하게 하며 영적인 감동으로서의 신앙으로 구별하는 것이었다.

 

3.스콜라 신학의 칭의관과 공로관 - 어거스틴이 칭의와 성화를 혼동한 것은 스콜라 신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그들의 고통적이 사상은 칭의는 하나님께서 성화의 은혜를 인간의 영혼 속에 주입함으로써 발효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칭의를 단순히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콜라 신학자들의 공로관은 무상 은혜의 교리와 함께 칭의의 교리와 관련하여 공로의 교리가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사람은 칭의 후에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으로 당연한 공로를 받을 수 있다.

 

제3절 종교 개혁기와 종교개혁 후기의 구원론

 

1.루터가 본 구원의 순서 - 처음에는 삼요소만으로 되어 있던 루터파의 구원의 순서가 17세기의 루터파의 대신학자들에 의해 다듬어지게 되었다. 소명, 계발, 회심, 중생, 칭의, 정화, 영화 등의 순서로 만들어 졌다. 복음하에 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세례를 받거나 말씀의 선교를 통하여 충만한 은혜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중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개혁파의 구원의 순서 -개혁파신학에 있어서 구원의 순서는 좀 다르다 그것은 칼빈이 일관하게 그의 출발점을 영원한 선택과 구원의 약속에서 설정된 신비적인 연합에다가 두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이 기본적인 입장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축복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회개를 신앙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았지만 이 회개가 필연적으로 신앙으로 인도하지는 못하며 신앙의 본질적인 준비로서도 생각 될 수 없는 법적 회개와 최초의 공포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구원의 순서는 루터파와 다르지만 이신득의의 교리의 성질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다.

 

3.알미니안파의 구원의 순서 - 알미니안파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를 주셨다고 가르쳤는데 이 은혜는 죄인으로 하여금 믿게 하며, 복음을 순종케 하는데 충분하다고 하였다. 쏘우물학파의 견해는 중생과 회심에 있어서 요구되고 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효과적인 계발뿐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에 일하는 성령의 초자연적 공작은 없다는 것이다.

 

신율법주의의 견해는 그리스도는 온 인류릐 죄를 속하였는데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케 하였으며 그들을 구원 얻을 수 있는 상대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웨슬레파의 견해는 율법의 가르침으로 죄인을 넘어뜨려 절망의 벼랑으로 몰고가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다가 갑자기 영광스런 구속의 복음 앞으로 인도해 내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도록 호소한다는 것이다.

 

4.군소파들의 구원의 순서의 개념 - 신앙지상론자들은 구원적 은혜의 축복을 얻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것을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우리가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파들의 구원론은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기 전에 먼저 율법의 공포 밑에 들어가서 영적고투를 하며 가슴을 찢는 통회가 있어야 하며 처절한 고통을 체험하여야 한다. 그들은 어떤 성령의 특별한 보증이 없이는 믿음을 허락 받지를 못한다.

 

제 8장 교회론과 성례론

 

제1절 교회론

 

1.교부시대의 교회론

 

⑴초대교부의 교회론 - 교회론도 그 근거를 초대교회의 문헌에다 두고 있다.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교회를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단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교회의 외적인 특징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그 결과 교회는 사도들의 직접 계승자인 감독이 다스리는 유형적인 조직체요, 참 전통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교회들은 개별적 단위로 생각지 않고 감독제도 아래 있는 보편적 교회의 부분들로 생각되었다. 지교회들은 전체로서의 공동교회에 충성하며, 예속되는 한에 있어서 참된 교회라고 생각되었다.

 

⑵여러 분파의 교회론 - 2세기 중엽의 몬타누스주의와 3세기 중엽의 노바티안주의, 그리고 4세기 초의 도나티스트주의에세는 참된 교회의 표지는 교회원 성(聖)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분파들의 교회의 세속화와 부패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몬타누스주의는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 비난 하면서 금욕생활의 고행을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다. 도나티스트파들도 엄격한 교회적 훈련과 순수한 교회원의 자격을 주장하고 무가치한 교직자들을 거절하였으며, 종교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 반항하였으며, 동시에 황제의 총애를 얻고자 애를 썼다.

 

⑶키푸리아누스의 교회론 - 교부들는 모든 분파들과 논쟁하였으며, 교호의 감독제도를 강조하였다. 터툴리인의 제자인 키푸리아누스는 감독교회의 교리를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감독을 주님께서 친히 택하신 사도들의 참된 계승자라고 생각하였다. 성직자의 실제적 사제직을 제사 행위와 결부시켰으며, 교회의 통일성을 감독의 통일체에다 두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더욱이 성령을 받은 지도자-다만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은 자- 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커닝함이 말한 “교회의 오류와 부패를 조장케 한 키푸리아누스의 대역할” 이었다.

 

⑷어거스틴의 교회론 - 어거스틴이 교회의 본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된 것은 도나티스트파와 투쟁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선택자들의 단체라고 생각하는 예정론자였다. 이 단체를 통하여 죄가 사해지며, 성도의 연합이 교회의 연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것을 무형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참된 교회는 공동교회인데 사도적 권위는 감독의 계승에 의해 계속 유지된다.

 

2.중세기의 교회론

 

⑴교황 사상의 발전 -4세기와 5세기에는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다른 사도들을 지배할 수 있는 우월권을 주었으며, 그리하여 베드로가 로마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는 사상이 신임을 얻었다. 더구나 이 우월권은 로마시의 감독들인 그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었다. 대 그레고리는 세계적 감독이라는 칭호를 거절하였으나 그의 제자인 보니훼이스는 그 칭호를 받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로마의 감독을 계승하는 그 영적 우월권은 동방에서는 강하게 반대를 받았으나 서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⑵로마교회의 교회관 -종교개혁 후까지도 로마 캐톨릭의 교회관은 공적으로 형성되지 못하였다. 캐톨릭의 교회관을 명확하게 정립한 벨라민 추기경은 “같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성례를 받으며, 합법적인 지도자와 그리스도의 지상 대행자인 로마교황의 지배 아래있는 모든 자들의 일단”이라고 하였다. 로마 캐톨릭의 교회관은 교회의 유형적인 것을 강조하였다.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였다는데 있다. 이 말씀은 인간들 사이에 오셔서 지금은 유형적인 인간을 통해서 그 사역을 이루고 계신다. 교회에 대한 중요한 구별이 이루어 졌는데 가르치는 교회와 가르침을 받는 교회로서의 구별이다. 전자는 교황을 머리로 하여 전 성직자로 구성되었으며, 후자는 합법적인 성직자의 권위를 존경하는 성도들로 이루어졌다. 교회도 사람처럼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졌다. 교회의 영혼이란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부름을 받아 초자연적인 은사와 은혜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단체”를 의미한다.

 

3.종교개혁기와 그 후의 교회론

 

⑴루터파의 교회관 -루터는 교회의 무오성, 특별사제직, 또는 마술적으로 행해지는 성례의 개념을 거절하고 신자는 누구나 다 사제직의 의무가 있다는 성경적 입장을 정당한 위치에 부활시켰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영적 집단을 교회라고 하였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세워지며, 그리스도에 의하여 유지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령으로 교회를 모으시되 말씀과 성례 등의 선택 된 방법으로 이루신다. 악스벍 신앙고백서는 유형교회를 정의하기를 교회는 “복음을 올바르게 가르치며, 성례를 바르게 행하는 성도들의 회중”이라고 하였다.

 

⑵재세례파의 견해 - 재세례파는 로마 캐톨릭교회의 형식주의를 극단적으로 반대하였으며, 그들은 신자만으로 구성된 교회를 주장하였다. 어린아이는 신약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신앙을 고백하거나 표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정치는 절대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극단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공무원이 될 수 없으며 전쟁에도 참가해선 안된다고 하였다.

 

⑶개혁파의 견해 - 몇가지 중요한 점에서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루터파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참 본질을 영적 실재로서 무형교회에서 찾는다. 개혁파들 중에는 구원의 가능성은 유형교회의 테두리 밖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성령은 절대로 평범한 은혜의 방법을 쓰지 않고 그가 원하시는 때와 방법을 따라 역사하시며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개혁파는 교회의 무형성을 몇 가지 의미에서 설명하였는데 교회를 장소나 시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편적 교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참된 표지는 말씀과 성례전을 진정으로 행해야 하며 교회의 규율을 성실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제 2절 성례론

 

1.성례 개관

 

⑴초대교회 성례론 - 싸크라멘트라는 말이 초대교회에서는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해 준다. 신성하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무엇이든지 이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터툴리안은 이 말을 창조주의 사역과 성육신한 성자의 사역, 특히 성자의 죽음에 적용하였다.

 

⑵스콜라시대의 성례관 - 그들은 대체로 어거스틴의 성례관을 따라 성례를 무형적 은혜의 유형적 표시요 매개라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때때로 성례의 작용은 성례를 받는 자의 신앙에 달려 있으므로 외형적 성례란 인간 영혼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에 불과할 뿐이라 말했다. 스콜라 신학은 성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그 효과를 발한다고 말한다.

 

⑶트렌트 회의의 성례관:

 

①성례는 구원에 필요하니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성례를 받아야 하며 그러나 성례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②성례는 은혜를 내포하고 있으니 객관적 시행이나 완전한 행동을 통하여서 죄나 마음에 거리낌이 나타나지 않는 자에 대해서 은혜를 주신다. ③사제는 교회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며 치명적인 죄가 있어서는 안된다. ④세례, 견신례, 성직임명의 성례는 수령자의 영혼 속에 지워버릴 수 없는 특징을 남겨 놓기 때문에 그것들은 다시 반복 될 수 없다. ⑤사제만이 성례의 합법적인 시행자이다. 견신례와 성직임명은 감독이 할 수 있고 세례는 때에 따라 평신도가 할 수 있다.

 

2.세례

 

⑴초대교회의 세례관 - 세례는 성례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서 입교의 첫 의식이다. 우리는 속사도 교부들에게서도 세례가 사죄를 가져오며 중생의 신생활을 가져다주는 기관이라는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초대교부들은 세례에서 중생을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다. 세례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이었으나, 이단자들이 행한 세례에 대해서도 유효하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없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사람을 다시 세례를 주지 않기로 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세례관 - 어거스틴은 신앙과 회개를 성인의 경우에는 세례의 필요 조건이라고 말했다. 유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세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그 효과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듯 하다. 일반적으로 세례는 필요하다고 생각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보아 유아 세례가 일반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⑶스콜라 신학자의 세례관 - 그들은 세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효과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주관적 상태의 중요성을 경시하게 되었다. 세례는 중생과 신회원이 되는 성례인 것이다. 이 세례는 은혜를 포함하고 있다.

 

⑷루터파의 세례관 - 루터파 신학자들은 유아신앙의 교리를 지지하였다. 성례는 객관적 시행에 의하여 역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례는 중생을 일으키며 죄책과 죄의 세력을 몰아내지만 죄의 오염을 전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3.주의 성찬

 

⑴초대교회의 성찬론 - 처음에 성찬식은 보통의 식물로 시행되었으며, 성찬을 위해서 사람들은 필요한 식물을 가지고 왔다. 성찬 자체는 사제에 의해 행해지는 희생의 성격을 띠었다. 이것이 나중에는 성찬의 합일체를 표현하게 하였다. 성찬의 상징적이며 영적인 개념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바실, 나지안제의 그레고리와 기타 인사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성례에서 어떤 방법으로 빵과 포도주와 연합되었다는 교리로 대신하였으며, 이것은 다시 화체설로 변하였다.

 

⑵어거스틴의 성찬론 - 서방교회에서의 성찬교리의 발전은 늦었으나 그 결과는 동일하였다. 성찬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경적 용어에서는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말한 것은 어거스틴은 받아들였다. 동시에 그는 표징과 상징하는 사물과를 명백히 구별하였으며 떡과 포도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다고 주장하였다.

 

⑶루터의 성찬관 - 개혁자들은 모두 성찬 희생설과 중세기의 화체설을 부정하였다. 루터는 공재설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떡과 포도주로 먹고 마시도록 재정되었으며, 또 주어졌다. 불신자라도 성례에 참여하면 받을 수 있으나 그것은 오히려 그를 정죄하에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⑷쯔빙글리의 성찬관 - 성찬의 말씀들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성례 자체는 한 기념의 행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성찬은 기념(記念)이외에는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의미가 그 속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의 입장이 분명치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⑸칼빈의 성찬관 - 칼빈은 중간적 입장을 취하였다. 칼빈은 성례에서 하나님의 은사보다 신장의 행위를 더 강조하여 성찬을 일방적으로 신앙고백의 행위로 보았고,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다는 것은 그의 이름과 그의 죽으심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일 외에는 아무 뜻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제9장 종말에 관한 교리

 

제1절 중간상태 - 종말에 관한 교리는 관심의 중심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상세한 논의를 필로로 하지 않는다. 그 주요 요소들은 확고하여 미래사에 관한 교회의 전교의(全敎義)를 실제적으로 구성하였던 것이다.

 

1.중간상태(中間狀態)에 관한 사상적 발전-속사도 교부들은 아직 중간상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일반적인 견해에 의해 경건한 사람은 죽은 즉시 하늘의 영광을 상속받으나 악인은 죽음과 동시에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하여 중간상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어거스틴과 같은 후대교부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죽은 사람이 음부에 내려가서 심판 날까지 그들이 충분히 정화 될 때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리겐은 그리스도는 모든 전 시대의 의인들을 음부로부터 낙원으로 옮겨 오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낙원은 세상을 떠난 모든 성도들의 거처가 되었다고 명백히 가르쳤다. 후기의 희랍 교부들와 라틴교부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중간상태에 연옥의 불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2.연옥설의 발전 - 연옥 사상은 특히 서방교회에서 발전하였다. 대그레고리는 이것을 의심없이 믿어야 하는 사실이라고 강조하였다. "가벼운 죄를 받는데는 심판 전에 연옥의 불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중세기의 스콜라 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연옥을 분명하게 묘사하였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연옥의 불을 실제적인 불이라고 생각하였다. 연옥의 위치는 지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음부의 구역이라고 간주되었다. ‘낙원’이나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부르는 림보가 있는데 이곳을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시기까지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였다. 연옥교리는 1546년 트랜트회의에서 결정되었는데 이 교리와 관련하여 속죄표가 판매되는 악습이 교회 안에서 자라나게 되었던 것이다.

 

3.연옥설에 대한 반대-중세말기에 위클리후나, 후스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이 언옥설을 반대하였다. 루터는 이 교리와 관련해 교회 안에서 자라난 악습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하였으며, 개혁자들은 이 연옥설이 성경에 위배 된다고 하여 반대하였다.

 

제2절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소망 - 1초대교회의 천년왕국설(千年王國設)-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초대교부들은 계시록 20:1-6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구분하였으며, 그 사이에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이 몇세기가 흐르고 교회에 대한 박해도 사라지자 초대교회의 천년왕국설은 힘을 잃게 되었다. 어거스틴의 강력한 영향으로 교회와 신국을 동일시함으로써 교회의 사상을 미래에서 현실로 돌이키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천년왕국을 현기독교시대에서 찾으라고 가르쳤다.

 

2. 중세기의 천년왕국설 - 중세기에는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설을 이단으로 보았다. 10세기에는 세계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스도교 예술은 종말론에서 자주 그 주제를 채택하였다.

 

3. 종교개혁시대의 천년왕국설 - 이 시대의 천년왕국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반대를 받았으나 광신적인 재세례파나 제5왕국설자들과 같은 종파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루터는 심판 날에 앞서 그리스도의 지상왕국이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배척하였다. 악스버 신앙고백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기 전에 경건한 자들이 세상의 나라를 차지하고 악인은 어디서든지 억압은 당한다는 유대사상을 퍼트리는 자는 정죄되었다.

 

4. 17세기의 천년왕국설과 후천년기설 - 17세기에 와서 다른 형태의 천년왕국설이 거론되었다. 천년왕국의 영적개념을 옹호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전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교회에 임재하시는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에 성도들은 비상한 체험을 하게 되며, 세계적으로 종교적 각성이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 후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초기의 형식이었다.

 

5. 18. 19세기의 천년왕국설 - 18. 19세기에 들어와서 어떤 계층들에 의해서 천년왕국설은 다시 환영을 받게 되었다. 벵겔학파와 에어랑겐학파의 옹호를 받았다. 그리스도의 재림후 일시적인 지상 통치가 있으리라는 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으나 신학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후천년기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까지 천년왕국설은 어느 한 신앙고백에서도 구체적으로 표현 된 적이 없으니 이것을 교회의 교의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3절 부활

 

1. 교부시대의 부활론 - 대부분의 초대교부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었으나 내세의 육체와 현세의 육체를 동일시하였다. 대체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보다 부활을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였던 것으로 보여 진다.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시대에 경건한 사람들이 부활하고 마지막에는 악인이 부활한다고 하는 이중 부활설을 주장하였다.

 

2. 스콜라 신학의 부활론 -스콜라 신학자들은 그들이 통상적인 방법에 따라 부활체를 생각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먼저 죽어서 이미 죽은 자들과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하였다.

 

3. 종교개혁 이후의 부활론 - 종교개혁시대의 신학자들은 부활한 몸이 현세와 똑같을 것이라는 견해에 일치하였다. 이 교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의 표준으로 구체화 되었다.

 

 

 

4절 최후심판과 최후보상

 

1.교부들의 최후 심판관(最後 審判官)-대부분의 교부들은 성도들이 지상에서 행한 선에 맞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후대의 교부들은 세계의 종말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천국의 축복과 지옥의 고통은 둘 다 영원한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2. 스콜라 신학자들의 천당관과 지옥관 - 스콜라 신학자들은 천당을 3부분으로 나누었다. 1)보이는 천당 2)영적 천당 성도들과 천사들이 거하는 곳 3)지적(知的)천당, 축복받은 자들은 여기서 하나님을 직접 뵙는 즐거움을 누린다.

 

3. 종교개혁 후기의 심판관 -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리라는 단순한 성경적 교리를 단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세상 끝에 있을 일반적 심판과 각 개인이 죽을 때 받는 특수한 심판을 신중히 구별하였다. 전자의 목적은 하나님의 공의를 널리 입증하려는데 있다. 천국의 영원한 축복과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공통적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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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5 주기도문의 '대개'의 뜻 웹섬김이 02-26 9568
2374 성경을 가르쳐야 교회가 산다 웹섬김이 03-04 5714
2373 [1]사단과 귀신에 관한 성경의 기록 웹섬김이 03-06 7674
2372 [2]사단과 귀신에 관한 성경의 기록 웹섬김이 03-06 7628
2371 디모데 전.후서에 나타난 목회학 웹섬김이 03-06 7667
2370 [1]성경에 기록된 과학적 사실들 웹섬김이 03-06 6206
2369 [2]성경에 기록된 과학적 사실들 웹섬김이 03-06 6486
2368 [3]성경에 기록된 과학적 사실들 웹섬김이 03-06 6744
2367 [1]프리메이슨의 인물들 명단 웹섬김이 03-27 11253
2366 [2]프리메이슨의 인물들 명단 웹섬김이 03-27 9985
2365 [3]프리메이슨의 인물들 명단 웹섬김이 03-27 9522
2364 [4]프리메이슨의 인물들 명단 웹섬김이 03-27 10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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