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6-11 11:24
인간의 영,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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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186  

인간의 영,혼,육 


살전 5:23의 “영,혼,육”의 세 단어는 삼분설의 근거가 아니다. 

인간삼분설과 전혀 관계없는 살전5:23의 영,혼,육의 세 단어 

구약성서와 바울및 다른 신약성서들은 인간을 물질계로서의 육신과 비물질계로서의 정신영역 차원이 유기적으로 하나가 된 통합체로서의 존재로 본다. 그러면서 다양한 인간존재의 어떤 특성을 염두에 두고 인간존재를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여러 단어들인 [살, 뼈, 혈, 육, 영, 혼, 마음, 뜻] 등의 용어들 중에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골라 사용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들이 서로 틀리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존재를 구조적으로 구분하여 별개의 인간 구성요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존재자체가 다양한 특질들을 나타내는 특수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가지 구성 요소들이 마치 기계의 각 부품들처럼 구조적으로 각각 제기능을 따로 감당하는 조립체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및 바울, 그리고 신약성서의 인간관은 이분법적 통합체

하지만 신구약 성서는 모두 인간존재를 물질계/비물질계의 이원론적이며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므로서 이 커다란 두 개의 부품이 하나로 결합된 존재로 간주하는 것같은 인상을 준다. 성서에 나오는 이분법적 용어들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전도서 12:7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말 성서의 “신”이란 영어로 spirit이다. 즉 육체는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영은 그 영을 주신 하나님께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또, 눅23:46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마친 후 운명하시다’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의 영혼이라는 말 역시 영어로는 spirit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물질계/비물질계의 두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한 개체로서의 인간존재를 형성한다고 보는 것같다. 따라서, 우리들의 손에 들려진 성서는 인간이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인간삼분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교에 너무나 익숙한 바울이 살전 5:23을 통해 인간삼분설을 이야기했을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살전 5:23에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라는 세 개의 단어가 분명히 씌여져 있다고 할지라도 바울 자신이 인간을 삼중구조로 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울의 친서인 데살로니가 전서의 5:23에 나오는 영,혼,육이라는 단어들이 삼중구조의 인간삼분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삼분설을 이단설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론이나 구원론(인간론, 죄론), 혹은 기독론 등을 왜곡하는 이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서와 희랍어 성서의 영,혼,육이라는 단어들 

살전 5:23의 영,혼,육이 인간존재의 삼중구조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먼저, 영과 혼에 해당하는 용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말의 영(靈)에 해당하는 말은 영어로 spirit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서의 단어는 루아흐이고 희랍어 성서의 단어는 프뉴마이다. 우리말의 혼(魂)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soul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네페쉬이고 희랍어 단어는 푸쉬케이다. 이런, 용어들을 도식화 하여 염두에 두고 인간을 삼중구조로 보는 삼분설을 헤아려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제기된다.

영(靈)-루아흐(히브리어)-프뉴마(희랍어)-spirit
혼(魂)-네페쉬(히브리어)-푸쉬케(희랍어)-soul


계란의 삼중구조에 비유되는 인간삼분설

(1)인간삼분설에 의하면 인간존재는 마치 계란이 삼중구조로 구성된 것처럼 인간도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중에 영(루아흐,spirit)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특징적인 영역으로 계란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며 인간의 혼(네페쉬,soul)은 계란의 흰자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의 정신세계 영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계란의 껍질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계란의 사중구조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사분설? 

이런 식으로 성서의 단어들을 갖고 인간을 삼중구조로 조립한다면 인간사분설도 하나의 사견으로서 회자될 수 있어야 한다. 삼분론의 근거로 주장되는 살전 5:23에는 영,혼,육이라는 표현이 신구약 전체를 통해 단 한 번만 나오지만 고전15:50, 엡6:12, 히2:14에는 세 번이나 “혈과 육”이라는 말이 동시에 나온다. 그렇다면, 영-혼-혈-육의 사분설은 왜 이야기되지 않는가? 삶은 계란을 먹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계란의 껍질과 흰자위 사이에 아주 얇은 막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계란도 사중구조로 되어 있는 셈이다. 노른자위, 흰자위, 흰자위와 껍질 사이의 얇은막, 그리고 바깥의 껍질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살전 5:23의 영,혼,육을 근거로 인간삼분설이 회자된다면 혈과 육이라는 표현에 근거한 인간사분설도 회자될 만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런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혈과 육은 인간의 육신을 지칭하는 서로 다른 표현들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영과 혼은 서로 다른 별개의 구성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인간은 삼중구조, 동물은 이중구조? 

(2)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먼저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창2:7) 그 때 인간의 코에 불어 넣으신 생기는 하나님의 숨(네샤마,breath)으로서 이것은 하나님의 영(靈,루아흐,프뉴마,spirit)이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숨으로서의 영이 없기 때문에 인간 이외의 다른 모든 생물들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숨결에 의한 영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영-혼-육의 삼중구조로 된 존재이며 이 하나님의 영이 없는 생물은 혼과 육으로만 이뤄진 이중구조의 존재라는 논리가 선다.


창2:7의 하나님의 생기로서의 하나님의 영 

그러나, 바로 이런 설명은 즉각 다음의 질문을 야기시킨다. 영(루아흐,spirit)이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기(네샤마, breath)를 불어 넣으심으로 인간이 생령(살아있는 영)이 된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서, 영(루아흐)이신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숨(네샤마)을 불어 넣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영(루아흐), spirit이 인간에게 들어와 인간이 살아있는 영(루아흐: living spirit)이 된 것이냐는 물음이다.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의 “생령”은 ‘살아있는 영’이 아니다(living spirit? no!) 

히브리어 성서본문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콧구멍(nostril)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숨(네샤마, breath)을 불어 넣으셨다. 마치 인공호흡하는 것같은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숨(네샤마,breath)인 하나님의 영(루아흐,spirit)이 사람에게로 들어간 것으로 그림이 그려져 우리말 개역성서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생령(살아있는 영)이 되었다”고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 원전은 전혀 딴판이다. 뜻밖에도 “살아있는 혼,네페쉬(푸쉬케): living soul, 생혼(生魂)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2:7) 즉, 하나님이 인간의 콧구멍에 숨(네샤마)을 불어넣으시니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생혼(生魂)으로서 "살아있는 혼(네페쉬):living soul"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숨(네샤마,breath)으로 인간의 몸속에 들어간 하나님의 영(루아흐,spirit)이 인간을 “살아있는 영(루아흐,spirit)”이 되게 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혼(네페쉬,soul)”이 되게 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말 성서의 생령(生靈)은 영어로 living spirit이 아니라 living soul(네페쉬)로서 생혼(生魂)이다. 영역본 KJV는 우리말의 생령을 생혼(生魂, living soul)으로 제대로 옮겼다.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은 생물도 인간과 똑같은 “살아있는 혼”(living soul)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지 않은 동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개체로서의 생물인데 생물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구약에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을 때의 "살아있는 혼(네페쉬): living soul"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어 생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혼, 네페쉬(푸쉬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창2:19, 창1:20비교) 이것을 영역본 성서들은 인간과 생물을 구별하기 위해 인간을 living soul(KJV) 또는 living being(NIV)으로 번역하였고 생물을 living creature로 번역했다. 그러나, 히브리어 구약원전에서는 우리말의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와 살아있는 동물을 가리키는 “생물”이라는 표현 둘 다 똑같이 “살아있는 혼,네페쉬(푸쉬케): living soul, 생혼(生魂)”이라고 하므로서 하나님의 숨결을 받은 인간이나 그렇지 않은 생물이나 구별없이 “살아있는 혼(네페쉬): living soul, 생혼(生魂)”이다. 


생령으로서의 사람=여타의 생물= 살아있는 혼(네페쉬 하야, 창2:7과 19비교) 

그러므로, 구약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여타의 생물들과는 달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수 영역으로서의 “영”을 지닌 영-혼-육의 삼중구조로 된 존재자라는 인간삼분설은 전혀 근거없는 소리가 된다. 하나님의 숨결을 받지 않은 다른 생물도 ‘살아있는 혼(네페쉬): living soul, 생혼(生魂)'인 것과 다를 바 없이 인간도 똑같이 "살아있는 혼(네페쉬): living soul, 생혼(生魂)"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숨을 받았다고 해서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삼중구조의 요소로 구조화된 영-혼-육의 삼분설적 존재인 것이 아니다.


삼분설에서 볼 때 난감해지는 전3:21(인생의 혼은 위로...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3)인간은 영-혼-육의 삼중구조이고 여타의 생물체들은 혼-육의 이중구조로 이뤄진 존재라면 전도서 3:21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난감해진다. 구원받은 인간의 혼은 위에 있는 천국으로 올라가고 구원과는 상관없는 짐승의 혼은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간다는 뜻인가?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에게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수영역으로서의 영이 없으니 짐승의 혼은 구원받지 못해 땅(지옥?)으로 내려 간다고 하자. 그렇다면, 히브리어 원전은 혼에 해당하는 어휘로 네페쉬를 써야 한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네페쉬가 아니라 루아흐가 사용되었다. 본절에 씌인 우리말의 “혼”에 해당하는 단어는 둘 다 똑같이 네페쉬가 아니라 영(靈)으로 번역되는 루아흐(프뉴마, spirit)이다! 그렇다면, 영어권 사람들의 머리에는 사람의 영(루아흐,spirit)은 위로, 짐승의 영(루아흐,spirit)은 아래로 간다는 의미가 그려진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영어성경 본문만 봐도 인간이 영-혼-육의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이런 구도는 완전히 엉터리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인간삼분설에 의하면 짐승에게는 영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 여기서 느닷없이 짐승의 영(루아흐,프뉴마, spirit)이 땅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요삼 2절의 ‘네 영혼이 잘 됨같이에서의 영혼’은? 

(4)요한삼서 2절은 모 목사의 목회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러면,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요삼2절)에서 사용된 영혼이란 말은 영(프뉴마,spirit)일까, 혼(푸쉬케,soul)일까, 아니면 둘다 함께 사용된 합성어일까? 굳이 영어로 교육받은 유학파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흔하디 흔한 영어성경 한 번 보면 여기에 spirit이 아닌 soul이 씌였다는 것을 즉각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개념에서 볼 때 하나님과의 교제영역인 접촉점으로서의 영이 잘되야 혼이 관장하는 영역으로서의 범사가 잘되고 육신도 건강해진다는 논리가 되는 것일 텐데 우리 손에 쥐어진 성서본문에 의하면 영은 어디로 가고 혼(푸쉬케, soul)이 그 자리에 나와 앉아 있다. 따라서, 요삼 2절은 이렇게 된다. “네 혼(soul,푸쉬케)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삼분론에 의하면 혼(soul,푸쉬케)은 짐승에게도 있는 영역이 아니던가?


성서는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라고 있는 자료가 아니다.

성서의 원래의 뜻이 무엇인지는 생각지도 않고 성서를 보는 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서의 문자를 그 근거로 갖다 댄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일 수 있는지그 한가지의 경우를 그리스도교 인간관의 정설처럼 되어 있는 삼분설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살전 5:23의 영,혼,육이라는 단어 세 개를 갖고 그 단어들이 인간삼분설의 근거라고 우기는 것은 매우 가당찮은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혀 의미가 다른 구절을 갖다 대면서, 특히 인간삼분설에 대해서는 인식도 하고 있지 않은 바울의 글을 갖다 대면서 단어와 어휘가 이렇게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히며 자기의 생각을 우겨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그 원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의 생각이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짓일 뿐이다. 


성서신학적 사고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

이런 아집을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에서의 비도덕과 비윤리및 비인격적 행태들을 변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를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성서의 권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알라딘의 요술램프 사용하듯이 성서를 이용하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1)성서가 원래 뜻했던 의미가 무엇이냐를 밝힌 후 (2)오늘날의 상황속에서 그 의미를 깊이 논리적으로 새김질해보고 (3)그 결과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줄 아는, (1)성서신학적 사고-(2)조직신학적 사고-(3)실천신학적 사고가 입체적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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