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5-30 12:21
백보좌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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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399  

백 보좌 심판

 

 

(계 20:11-15)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오늘 읽은 본문은 이제까지 모든 내용을 총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악의 세력이 진멸되는 최후의 대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간략합니다. 먼저 백 보좌에 심판자가 나타나고, 하늘과 땅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책이 펼쳐지는데, 하나는 행위를 기록한 책이고 또 하나는 생명책입니다. 악을 따른 자는 영원한 벌과 그리스도를 따른 자는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 땅에 살았던 모든 인간이 부활을 하여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둘째 사망에 처하여 집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현 우주는 완전히 살아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설명합니다.

 

11절에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봅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살아집니다. 12절에 땅위에서 ‘죽은 모든 자들이 그 앞에 섭니다. 그리고 책들이 펴 있습니다. 행위가 기록된 책과 생명책입니다. 13절에 바다가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들을 내어 줍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육체로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을 보여줍니다. 14절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집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과는 달리 오직 불신자들만이 겪는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6절) 15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는 불 못에 들어갑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다시 기회는 없습니다.

 

1. 모든 것이 들어 납니다.

 

지난 14일 오후에 경남 통영 수월 방파제 앞 바다에서 준설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이 세피아 승용차를 건저 내었습니다. 이 안에 남녀가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승용차는 다 썩어서 번호판도 없습니다. 이 해골은 통영 병원에 안치하고, 해경은 유골의 DNA 검사로 이들의 신원 확인 및 사고 경위 조사에 나섰다. 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선과 악이 그 앞에서 다 들어 난다는 것입니다. 속이거나, 감추거나, 부인할 수 가 없는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해야 하고, 그 때가 오기 전에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고, 용서를 받을 것은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흰옷을 입는 것이고 그 흰옷을 입고 그 심판대 앞에서 서는 것입니다. 이 옷은 주님의 피로 산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큰 건물을 지을 때 비상구나 비상문을 설치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험이 닥치면 생명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제라도 위험을 당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심판을 피할 수없는 위험한 시간이라고 누구나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로마서 14:10)

 

그런데 이 심판을 피하는 비상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요 5:24) 예수를 믿는 자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벌을 이미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사53:6)

 

천상병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인생은 마치 소풍과도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소풍입니다. 그러나 소풍은 돌아가면 끝이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가면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어떤 집사가 세상을 떠나 심판대 앞에 서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선하게 살았는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그대는 의로웠는가." 역시 “아닙니다.” “그대는 깨끗했는가” 역시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전신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보니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사를 안고 보좌를 올려다보면서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고 못했고, 의롭지도 못했고, 깨끗하지도 못했으나, 세상에서 이 사람은 항상 저의 편에 있었으니, 지금 이 곳에서는 제가 이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는 심판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 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다시 말하면 성도들을 심판할 때에는 구원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판결은 이미 믿을 때 났고, 여기서는 살아온 업적에 따라, 상급에 관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 "아빠 문이 안 열려요. 구해 주세요." 절규하는 사람 가운데 그날이 자신의 죽음의 날이라는 것을 인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다가 문득 죽음이 찾아오면 당황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준비된 인생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춘천에 몇 분 목사님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우두교회 김영원목사, 순복음 교회 김주환 목사)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나,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간문제입니다. 우리에게도 그 시간이 곧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하면 무엇보다, 먼저 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를 말할 때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해야합니다. 죄의 해답이 바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죄 있는 세상을 사는 인간은 은혜를 받기까지는 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먼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시인하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고부인 합니다. 죄라는 말 대신 연약함이다, 실수이다, 약점이다, 판단착오이다. 라고 변명합니다.

 

구원 받는 사람은, 자기 죄를 시인하고, 부끄러워하며, 심판자 되신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고백하고, 기도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용서를 전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용서는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많은 사람이 지금 지옥에 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사람들이 회개하지 못하게 역사합니다. 사탄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때가 이르다고 말합니다, 그런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안심시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모든 것이 다 들어 난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그때 다 들어 납니다. 무슨 짓을 하고 살아 왔는지, 영상의 화면처럼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이 입혀주신 흰 세마포를 입고 하나님의 백 보좌 앞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그 구원을, 그 사랑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거부한 강퍅한 사람, 차차로 믿겠다던 사람,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던 사람은, 펼쳐진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 후회도, 통곡의 눈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때는 늦었고, 긍휼은 끝났으며, 시간은 종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들이 '이를 갈며 운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펼쳐진 책은 무엇입니까.

 

2. 책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12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다 심판대 앞에 섭니다. 여기는 믿는 자, 안 믿는 자가다 포함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믿는 사람은 심판대에 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책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행위의 책에 내용에 따라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⑴ 생명책

 

대한민국에서는 만 17세가 되는 다음 달이 되면 주민등록증이 나옵니다. 투표권이 있습니다. 신체가 이상이 없으면 군인이 됩니다. 생활 능력이 있고, 한 사람을 책임 질 수 있으면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먹을 것, 입을 것, 집, 직장, 친구 등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왔다가, 하나님이 부르면 가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면 왜 내가 이 세상에 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피조물은 스스로 삶의 목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정해주신 목적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소명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지으면 인간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육이 되고, 저주를 받습니다. 둘째, 그 죄는 좋은 것을 다 막아버립니다. 셋째,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에 던져집니다. 넷째,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고 세례를 받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돼야 합니다. 죄는 영혼을 파괴하고, 하나님과 단절시키고, 파멸로 몰아갑니다. 죄는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오면, 예수님의 피로 죄의 독, 사망의 독을 없애주십니다. 예수님은 죄의 중병으로 죽어가는 인생들을 고치는 의사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13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수렁이 있고, 어디에 위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고 구원을 받으면, 성령이 인도를 하십니다. 구원을 받아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됩니다. 자신이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구원을 받아야할 사람인지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① 첫째는 복음 듣는 것입니다.

 

(롬 10: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 암았느니라."

 

② 둘째는 믿는 것입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③ 셋째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④ 넷째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롬10:10절-"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 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⑤ 다섯째는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 죄를 받으리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습니다.(행 2:37-38절)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제는 열매를 맺는 생활이 있습니다.

 

⑵ 행위의 책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12절)

 

스토우 부인은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발표해서, 노예해방 여론으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문은 바로 이 스토 부인 작품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스물두 살 때 신시내티의 신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이사한 후 거기서 계속 살았습니다. 그의 형제자매 11명 중 일곱 명이 목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이해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웃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흑인 노예 학대였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단지 검은 색이라는 이유로 사람들 손에 의해 차별과 학대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물다섯에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목화밭에서 벌어지는 흑인 노예에 대한 끔찍한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틈틈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집필했습니다. 워싱턴 주의 신문 ‘내셔널 이어리’를 통해서 연재합니다. 이것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입니다. 여자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신앙양심에 반하는 현실에 한자 한자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우리가 상을 받는다 했을 때 바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회복시켜준 신앙인의 선한 행동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그 믿음이 머리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실재적인 생활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도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상이 없고,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있습니다.

 

안산교회 안수집사가 교인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가 파산했습니다. 어떤 교인이 목사님에게 원망과 항의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안수집사로 세운 교회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유구무언입니다. 그런데 권사님 한 분이 안수집사 가족에게 차원 높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집도 없고, 갈 곳도 없으니 당분간 우리 집 지하방에서 지내세요. 내게 빌려간 돈은 탕감해드립니다. 그 대신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들의 빚은 갚으세요.” 안수집사와 축호전도 짝이었던 권사님은 빚을 모두 탕감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그의 고난이 곧 자신의 고난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차원이 높은 사랑입니다. 들으면 좋고, 잘했다고 생각이 되지만 행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행위를 한 사람은 자신이 이미 행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행위의 책에 이런 것을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서 이런 것을 찾아서 상급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큰 상급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고, 복음을 위해서 순교를 한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그러나 다 순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한 행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무심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가지고 위로를 하고,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한 평생 예수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교회에서 직분도 받습니다. 그런데 신앙친구도 없고, 간증할만한 일이 없습니다. 이유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나, 사람을 위해서 특별하게 한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은 책에 기록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위의 책입니다.

 

3. 오늘에서 결정 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3)

 

중국 진나라 시대에 양흠에 주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모는 어려서 잃고 세상에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을 다하며,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의 얼굴을 보는데 자기만 보면, 하나 같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봅니다. 사람들은 마을에 세 가지 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남산에 있는 호랑이와 두 번째는 장교 강에 이무기와 세 번째로 바로 주처였으나,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을의 악을 없애려고, 먼저 남산의 호랑이를 결국 호랑이를 때려눕히고, 다시 장교의 강에 이무기를 잡으러 강물에 들어갔습니다.

 

사흘 동안 이무기와 싸우며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무기를 죽였습니다. 그때 마을에는 이무기 잡으려간 그 삼일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습니다. 주처가 영영히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였으면 하였으나, 주처는 돌아 왔습니다. 당연히 반갑게 환영할 줄 알았던, 마을 사람들을 본 주처는 자신이 착하게 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대학자 육운과 육기 형제를 찾아가서, 자기의 과거와 마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였는데 육기라는 대학자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야 새사람이 된다." 라고 합니다. 그는 10년 동안 생각 없이 살던 길에서, 자신을 고쳐 이름을 떨치는 대학자가 되었다는 것이 바로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유래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백 보좌 심판은 마지막 사건이요. 이후는 더 이상 기록할 것이 없는 역사의 끝에 관한 이야기요. 사건입니다. 세상에서는 실수나 잘못 혹은 심지어 살인을 한 사람도 비상한 마음을 먹으면, 개과천선하거나, 죽기 전에 기회가 한번은 주어집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은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은 오늘에서 결정됩니다. 지금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잘한 것이나, 좋았던 것을 자랑하는 것을 들어 보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앞으로 자녀들 시집, 장가를 보내 놓고, 손자 손녀 크고 나면, 일을 손에 놓고, 그때 충성을 한다, 전도를 한다, 선교를 간다. 라고 합니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고 미래가 아닙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에게 “너희 집에 성경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요, 언니 성경도 있고, 엄마 성경도 있어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 성경 속에 뭐가 있는 줄 아니?” 이 아이는 자신 있게 “다 알지요. 언니 성경에는 애인 사진하고 꽃잎이 들어 있고요, 엄마 성경에는 오천 원 하고, 회비봉투가 들어있어요”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여러분의 성경책에 무엇이 있습니까. 영생이 있고, 주님이 있습니다. 과연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습니까.

 

지는 장미를 보며 / 정연복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뻘건 불덩이였던 것

머잖아 종착역에 닿을

지상에서의 짧은 생

온몸 사랑의

불덩이 되어야 할 때

그 활활 타던 불길이

어느새 사그라졌다.

 

언젠가는 작별할

이 땅에서의 짧은 사랑.

아직은 나의 장미

지지 않았으니.

 

나의 목숨

나의 사랑도 그러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뜨겁게 살아야 할 때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조영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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