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2-24 12:30
[2]기독교 교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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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662  

3. 교회의 개혁운동들

 

1) 마르시온과 그의 개혁운동

 

a. 그의 인물됨과 목적 - 마르시온은 교회를 개혁하고자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자 추종자들을 모아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펼쳐서 분파를 형성했다. 그는 영지주의자가 아니라 구원론에 집중했다. 순수한 복음과 믿음을 강조했고, 율법주의화 되는 당시의 기독교회를 바울의 참된 복음에 의해 개혁하고자 했다.

 

b. 그의 주된 가르침들 - 마르시온은 복음이 율법과 섞이면서 부패되었다고 보고 율법과 복음을 분리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루터가 한 것과 유사하다.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 아니며, 창조주이지만 완전한 신이 아니라고 했다. 여호와는 가혹함과 공의로 통치하고 분노로 가득차 있으며 은혜라는 것을 도무지 모르는 신이다.

 

*반박: 출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신이다. 반면에 구약도 하나님의 계시라고 인정했다. 신약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다. 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다. 그리스도는 구속주에 관한 선지자들의 묘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구약의 메시야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선하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오셨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고 겉보기에 몸 같이 보이는 것을 입었을 뿐이다(가현설). 그는 데미우르게의 모든 일들을 폐하였고 처형을 당하셨지만 실체가 없는 몸을 입었기에 전혀 해를 입지 않았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심으로 지하세계에 있는 악인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마르시온은 바울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한 유일한 사도였다고 믿었다. 누가복음과 바울이 쓴 열편의 서신만을 신약의 정경으로 인정했다.

 

2) 몬타누스주의자들의 개혁

 

a. 몬타누스주의의 기원 - 몬타누스는 주후 150년 경에 브루기아에서 나타났다. 두 명의 여 선지자 브리스가와 막시밀라와 함께 행동했다. 요한복음을 계시의 최종적이고 가장 높은 단계가 도래되었다고 보았다. 보혜사 성령이 몬타누스를 통해서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율법적인 금욕주의였다.

 

b. 주된 가르침들 - 자신의 시대를 보혜사의 시대며, 영적인 은사들, 예언의 시대라고 했다. 두 여선지자들은 새로운 계시를 전하는 마지막 선지자들로 여긴다. 전체적으로는 정통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종말이 가까웠음을 강조했다. 독신생활, 금식, 엄격한 도덕생활, 순교를 강조했고, 통상적인 직분자들을 무시하고 특별한 은사들과 은사자들을 숭상했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을 중시했다.

 

c. 교회의 평가 - 영지주의자들을 대적한 것, 종말에 대한 강조, 성령의 은사의 강조, 성결함을 강조한 것은 좋아했으나, 열광적인 것과 신약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계시를 주장해서 거부했다.

4. 변증가들과 교회신학의 출현

 

1) 변증가들의 과제

 

a. 목표

 

*진리를 분명하게 진술하고 변호함 - 저스틴, 타티안, 아테나고라스, 데오빌루스 등. 이들은 기독교를 가장 고상하고 확실한 철학으로 묘사했고, 자연 종교의 위대한 진리들, 즉 하나님, 미덕, 불멸을 강조하였고, 기독교가 유대교와 헬레니즘에서 발견되는 모든 진리를 완성시켰다고 했다.

 

b. 세가지 과제

 

첫째, 변호하는 것- 기독교인들이 혐오스러운 일들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품성과 삶에 있어서 순결하다.

 

둘째, 공격- 유대인들은 율법의 그림자와 모형의 성격을 보지 못하고 율법의 잠정적인 요소들을 영속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다.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이므로 율법의 성취임을 그들은 모른다. 이교사상은 터무니없으며 부도덕하다. 타티안은 헬라철학에는 거의 선한 것이 없다고 했으며, 저스틴은 로고스 덕분에 헬라철학에도 일말의 진리가 있다고 했다.

 

셋째, 기독교의 성격을 정립- 계시의 실재를 입증하기 위해 예언에 의거한 논증에 의존하였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자들의 성품과 삶이 변화된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함.

 

2) 진리를 적극적으로 구성함

 

a. 철학과 계시에 대한 견해 -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항상 분명하게 구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든 참된 철학자들이 연구하는 질문에 만족스런 대답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기독교를 철학으로 보았고, 기독교가 초자연적인 계시로부터 유래하였기 때문에 철학과는 정반대된다고도 했다.

 

b. 하나님과 로고스에 대한 개념 -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고 변함이 없으며 영원한 존재이자 세계의 제 일 원인으로 보았다.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자다. 성자는 로고스이다. 관심은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 높아진 그리스도에 있었고, 인간 예수에게 있지 않았다. 로고스는 단지 신적인 이성으로 인식했다. 신적 이성으로서 그는 세계를 창조할 때와 구약에서만이 아니라 이교 세계의 지혜로운 자들 속에서도 활동하였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로고스와는 달리 독립적인 위격이 있었다.

 

c. 그리스도와 구원에 관한 견해 - 로고스는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인간본성을 입음으로 신인이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한분 하나님, 미덕의 삶을 요구하는 새로운 법, 영생, 상벌이 수반되는 부활이다. 사람은 자유롭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은혜는 오직 가르침이나 법을 계시한 것이지 성령의 감화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구약의 성취일 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은 펠라기우스의 주장과 같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죄와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난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d. 새 생명, 교회, 내세에 대해 - 변증가들은 새 생명이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달려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세례는 새 생명의 시작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참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낳은 세대로 구성되고 엄격한 도덕성, 거룩한 사랑,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고난을 당하고자 하는 태도를 특징으로 한다. 타티안과 데오빌로는 영생을 의인들에 대한 상급이자 악인들에 대한 징벌로 보았다. 저스틴은 장래의 삶에 관한 묘사에서 천년왕국이 종종 나타난다.

 

3) 교리사에 있어서 변증가들의 의의

 

a. 변증가들에 대한 하르낙의 평가 - 하르낙과 루프스는 변증가들이 기독교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했다고 보았다. 로고스론을 통해 기독교에 지적 성격을 부여한 것은 믿음을 교리로 변질시킴으로써 복음을 헬레니즘화 시켰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부당하다.

 

b. 신학 발전에 있어서 변증가들의 의의 - 교부들은 기독교의 진리들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그 진리들의 합리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단점은 철학과 신학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았고, 로고스에 대한 설명은 헬라철학사상이 다소 섞였다는 것이다. 변증가들의 저서는 기독교 신학의 시작을 보여준 것이다.

 

5. 반 영지주의적 교부들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등이 있다. 터툴리안은 헬라철학이 이단의 온상임을 드러내었고 철학을 철저히 반대했으며 말년에는 몬타누스를 받아들였다. 이단자를 만나면 자리를 뜨라고 했다.

 

1) 하나님, 인간, 구속사에 관한 가르침

 

a. 신론 - 구약의 창조주와 신약의 구속주는 한분 하나님이라고 주장함. 이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고, 복음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다. 세 위격과 한 본질로 이뤄졌다. 터툴리안은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다(시험). 그러나 그는 한 위격이 다른 두 위격에 종속되어 있다고 이해하였으므로 적절한 삼위일체적 진술에 도달하지 못했다.

 

b. 인간론 - 악이 물질에 내재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순종을 통해서 불멸에 이를 수 있었다. 죄는 불순종으로서 죽음을 가져온다. 온 인류는 아담 안에서 죽음에 종속되었다. 우리의 죄와 아담의 죄 사이의 관계는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았다. 아담이후 인간은 날 때부터 악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온 인류에게 대물림 된다. 최초의 원죄론이라고 할 수 있다.

 

c. 구속사 -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이 인간을 낙원에서 쫓아낸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해악이 영원토록 지속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세 가지 언약을 주장했는데 첫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진 법이다. 족장들은 이 법을 충족해서 의인이라 인정받았다. 둘째 언약은 십계명이다. 이스라엘의 죄악된 속성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위해 의식법이 더해졌다. 바리새인들은 이 의식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을 빼버림으로 그 법을 무력화 시켰다. 셋째 언약에서 그리스도는 원래의 법인 사랑의 법을 회복하셨다. 이 언약은 자유를 준다. 앞의 두 언약의 종의 관계다. 이 언약은 성부와 성자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 범위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선다. 그리스도인은 더 엄격한 법을 받았고, 믿을 것도 더 많고 받을 은혜도 더 많다. 터툴리안은 여기에 성령의 시대를 추가했다.

 

3)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가르침

 

a. 이레니우스의 기독론 - 로고스는 영원 전부터 존재했고, 성부하나님을 계시하는 도구가 되었다. 기독론의 진정한 출발점은 역사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하나님과 연합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중심적인 요소는 아담의 불순종을 무효화시키는 그의 순종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언급되기는 하지만 강조되지는 않는다.

 

b. 터툴리안의 기독론 - 로고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실재적 존재이자 독립적인 위격이다. 로고스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성부하나님과 동일본질이지만 구별되는 위격으로서의 존재 양식에 잇어서 성부와 다르다. 성부는 본질 전체지만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왔기에 단지 그 본질 전체의 일부다. 이런 면에서는 성부에 대한 성자 종속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본질과 위격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로고스는 원래 하나님 안에 있던 비인격적이던 이성이었다가 창조 때에 인격이 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해서 두 본성을 분명하게 구별하되 각각의 본성이 고유한 속성들을 유지한다고 했다. 두 본성은 서로 혼합(fusion)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합(conjunction)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극히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형벌적 대속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고 단지 죄인 편에서의 회개의 필요성만을 강조했다. 응보적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한다. 세례 이후에 범한 죄들을 회개나 고백을 통해서 속죄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죄인은 금식이나 고행을 통해서 영원한 형벌을 면할 수 있다고 함으로 카톨릭의 고해성사의 기초를 놓았다.

 

c. 구속론에 대한 이레니우스의 견해 - 그는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선을 자원해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간다. 그리스도는 그가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지식을 인간에게 가져다 줌으로 인간의 자유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둘째, 로고스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 속에서 인성과 하나가 되어, 인성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서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로고스는 자신 안에서 인류를 재현하여, 인류가 첫째 아담의 타락 이후로 걸어온 길을 다시 반전시킨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누룩을 인류전체에게 전한다. 이것은 성육신에서 시작되어서 인간의 신격화를 가져온 신비적인 과정에 의한 속죄를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 요한의 저작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그리스도와 백성의 연합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신 순종을 드렸다거나,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함으로써 우리가 진 빚을 갚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속했다고 한다.

 

4)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a. 이레니우스의 구원론 - 세례를 받기 위해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믿음은 영혼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서 사람은 중생하고 죄는 씻어지고 새 생명이 탄생한다. 믿음은 필연저그로 계명들의 준수로 이어져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한다. 성령은 새 생명을 수여하고 선한 행실을 통해 의의 열매를 맺게 한다. 카톨릭의 믿음과 선행을 통한 의인화와 비슷하다.

 

b. 터툴리안의 구원론 - 죄인은 회개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재판장으로서 범조에 대해 배상을 요구한다. 세례 이후에 범해진 죄들은 회개의 배상이 요구된다. 배상이 이루어지면 형벌은 피해진다. 고해성사의 기초가 되었다.

 

c. 교회론 - 교부들은 영적모임이 교회라는 개념을 외적인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이것은 유대교의 입장이며 카톨릭의 견해가 되었다. 구원의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만 한다. 무형교회와 유형교회가 같다고 본다. 사도직을 머리로 하는 교회를 떠나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으로 본다.

 

d. 종말론 - 육체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옹호했다.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내주다. 마귀가 배교자의 무리를 적그리스도에게 넘겨줄 때에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첫째 부활이 오며, 천년왕국이 오고 신자들은 중동에서 풍요롭게 살 것이다. 천 년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다. 신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예비된 집에서 서열을 따라 살게 될 것이다.

 

6.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

 

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 클레멘스는 이레니우스나 터툴리안처럼 정통이 아니었다. 철학을 기독교 전승과 결합시키려고 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원천을 성경과 이성에서 찾았는데 이성을 지나치게 높였고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을 했다. 헬라철학을 부분계시라고 하거나 히브리 선지자들을 표절했다고도 했다.

 

2)오리겐 -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금욕생활을 함. 클레멘스의 뒤를 이어 요리문답 교사가 되었다. “원리들에 관하여”라는 책은 명확하고 균형잡힌 신학체계를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표준을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다. 성경에 어긋난 것은 아무 것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3) 신론 - 오리겐은 하나님은 해아릴 수 없고, 평가할 수 없음,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분이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고 했다. 선한 신과 데미우르게를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하다. 모든 일의 원인은 하나님이다. 창조는 영원히 계속된다고 보았다.

 

4)로고스론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로고스의 위격적 실존, 성부 하나님과 하나됨, 영원한 발생을 강조하지만 로고스를 신적인 이성으로서 성부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하나님의 진정한 로고스를 육체로 나타난 성자 로고스와 구별한다. 로고스는 태초부터 창조 사역에 하나님의 지혜를 각인하고 사람들에게 이성의 빛을 나눠주며 진리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매개한다. 로고스의 빛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좀 더 온전한 빛으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오리겐은 한 분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성부 하나님이지만,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하고 위격이며 한 번의 영원한 행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에게서 낳음을 입은 로고스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일하신다. 성자의 온전한 신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종속설을 보여주는 일부 표현들을 사용한다. 영원한 발생이란 말을 성부 하나님께 대한 성장의 경륜상의 종속만이 아니라 본질상의 종속을 의미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종종 성자를 이류신이라고 부른다. 선재했을 때 순전하였던 로고스는 성육신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과 연합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두 본성은 계속해서 구별되어 있지만 로고스는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그의 인성을 신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루터의 두 본성의 교류, 즉 인성의 신성화라는 주장과 유사하다. 개혁신학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변화되어서 다소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보지만 신성화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여전히 사람의 본성을 갖고 있다. 비록 벽을 통과하지만 뼈와 살이 있는 존재다.

 

5) 성령론 - 오리겐은 성령을 성부 하나님이 성자로 말미암아 지은 최초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성부와 성령의 관계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큼 밀접하지 않다. 성령은 피조세계 전체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성도들 속에서만 활동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성령은 온 우주에 역사한다고 본다. 일반은총으로. 성령은 본성상 선을 소유하고 있고 죄인들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다.

 

6)오리겐의 인간론 - 그는 인간의 선재론을 가르친다. 인간의 현재 상태는 인간이 선재의 때에 거룩함에서 죄로 떨어져 타락한 사건을 전제하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의 물질 세계가 창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들은 이제 혼들이 되었고 몸을 입게 되었다. 물질은 타락한 영들의 거처가 되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화시키는 수단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되었다고 한다.

 

7) 성육신론 - 클레멘스는 로고스가 성육신을 통해서 몸과 영혼을 다 취하여 신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음식을 먹은 것은 음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성을 부정하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라고 했고, 그리스도는 기쁨이나 슬픔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영혼은 다른 모든 영혼들과 마찬가지로 선재했고, 선재했을 때도 로고스와 연합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즉 성육신 이전 때도 로고스와 이 영혼은 상호 침투가 일어났었다고 했다. 로고스로 충만한 영혼은 몸을 입었고 몸은 로고스가 침부하여 신적인 것이 되었다. 부활하여 영광을 받았을 때에 그리스도는 편재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루터의 속성교류와 유사하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서로 뒤섞여서 육신조차 편재한다는 것이다.

 

8)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가르침 - 클레멘스는 그리스도가 대속물로서 자신을 내어주었다고 말하지만 인류의 죄를 위한 화목제였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입법자이자 교사, 영생에 이르는 길로서의 그리스도에 훨씬 더 강조점을 둔다. 구속은 인간을 타락 이전보다 더 높은 상태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오리겐은 그리스도가 죄인을 고치는 의사, 깨끗하게 된 자들의 교사,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법을 주신 입법자, 제자들에게 덕있는 삶의 완전한 모범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이 신의 본성에 참여하게 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사탄을 보기 좋게 속임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사탄에게 바치고 사탄은 자기가 죄 없으신 분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아 둘 수 없을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대속물을 받는다. 이것을 사탄 배상설이라고 부른다. 로고스에 의한 구속의 효력은 현세를 너머서 과거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리겐은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 만이 아니라 모든 타락한 영들, 사탄과 그의 악령들조차도 구속의 효력아래 있고 만물도 다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을 만유회복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리겐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9) 구원론 - 클레멘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이 자유의지로 선을 지향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알미니우스와 웨슬리는 이런 견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오리겐은 믿음을 인간의 행위라고 설명하면서도 믿음이 은혜의 결과라고도 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최초의 행위일 뿐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깨달음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선행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믿음은 선한 행위를 낳는 믿음이다. 이 견해는 성경적이다. 오리겐은 두 가지 구원의 길을 말했는데 하나는 믿음에 의한 구원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에 의한 구원이다. 믿음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이다. 오리겐은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는 것은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한 전도의 핵심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10) 교회론 - 오리겐은 교회를 신자들의 회중이라고 보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다. 본래의 교회와 경험상의 교회를 구별한다.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별개의 사제단이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오리겐과 클레멘스는 둘 다 세례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죄사함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클레멘스는 그리스도인의 낮은 삶에서 인간은 두려움과 소망으로 인해서 거룩함에 도달하지만, 높은 단계에서는 두려움은 완전한 사랑에 의해서 쫓겨난다. 후자는 신비들을 계시받은 자가 누리는 참된 지식의 삶이다. 성찬은 신자들을 영생에 참여하게 해준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성령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리겐은 성례들은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들을 나타내는 것이며 신적인 감화력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11) 종말론 - 오리겐과 클레멘스는 죄인의 삶 속에서 정화의 과정은 죽음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보았다. 오리겐은 죽어서 선한자들은 낙원에서 추가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악인들은 심판의 불을 경험한다고 가르친다. 클레멘스는 불신자들은 음부에서 회개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들에 대한 시험은 심판의 날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소수의 신자들만 죽어서 곧장 하나님을 뵙는 지복의 삶으로 들어가고 대다수의 신자들은 죽은 후에도 정화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은 후에 연옥교리의 기반이 된다. 두 교부는 천년왕국설을 반대했다. 오리겐은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몸의 부활을 믿었다. 영혼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몸을 갖게 된다.

 

7. 군주신론

 

이 이론은 주후 3세기의 두드러진 이단이다.

 

1) 역동적 군주신론 - 에비온주의나 유니테리언주의와 전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이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로마의 감독인 빅토르에 의해 출교되었던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주장은 안디옥의 감독 사모사타의 바울에 의해서 부활했다. 그는 로고스는 성부하나님과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지만 신격 안에서 하나의 구별되는 위격은 아니다.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일시될 수 있었다. 로고스는 단지 모든 사람들 속에 현존하고 특히 인간 예수 안에서 활동했던 비인격적인 힘이다. 로고스는 예수와 관련해서는 점차 그 인성에 침부하였고 인성을 점차 신적인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인간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공경을 받을 자격이 생겼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아니다. 로고스와 성령은 하나님의 비인격적인 속성들일 뿐이다. 즉 로고스는 하나님의 이성이고,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영향력으로 보았다. 참 하나님은 본성과 위격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뿐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일 뿐이다.

 

2) 양태론적 군주신론

 

a. 사벨리우스주의 - 사벨리우스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전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 위격을 하나님이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양태적 군주신론이라고 불렸다. 성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당하셨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성부수난설로 알려졌고, 동방에서는 사벨리우스주의로 지칭되었다.

 

b. 프락세아스와 노이투스 - 프락세아스는 성부 하나님이 고난을 당하였다고 단언하는 것을 피하였지만 노이투스는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이고 성부 하나님이 태어나서 고난을 받고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성부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양태를 바꿔서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했다. 성부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성부라고 부르는 것은 옳다. 그러나 성부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그는 성자, 곧 자기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

 

c. 사벨리우스 - 그는 위격이라는 말을 드라마에서 배우가 맡은 역할 또는 현현의 양태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하나님의 한 본질이 나타난 세 가지 서로 다른 양태를 가리키는 명칭일 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와 율법을 주실 때에는 성부로서 자신을 계시하였고, 성육신에서는 성자로, 중생과 성화에서는 성령으로 계시하셨다.

 

제 3장 삼위일체론

1. 삼위일체 논쟁

 

1) 배경

 

a. 삼위일체 논쟁의 출현 - 아리우스와 나타나시우스의 싸움으로 전면에 대두된 삼위일체 논쟁은 사실 그 이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터툴리안이 하나님의 세 위격을 분명하게 말했고 이 세 위격이 본성상으로 단일하다고 최초로 주장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단일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군주신론이 등장했다.

 

b. 오리겐의 삼위일체론

 

그는 영원한 발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었지만 본질과 관련해서 제 2위가 제 1위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성부는 성자에게 ‘호 데오스’(유일신)이 아니라 ‘데오스’(일반적인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열등한 신성을 주었다. 그래서 성자는 이류신으로 불렸다. 또 다른 결함은 성자의 발생이 성부의 필연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부의 주권적인 의지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이다. 성령은 성자에게 종속된 존재며 심지어 성자에 의해서 지음 받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성령의 신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2) 논쟁의 성격

 

a. 아리우스와 아리우스주의 -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다. 아리우스는 나지도 않았고 유래하지도 않았으며 존재의 시작도 없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했다. 하나님 안에 내재해 있는 신적인 에너지에 불과한 로고스와 마침내 성육신한 로고스를 구별했다. 성자에게는 시작이 있었다. 성자는 성부에 의해서 발생되었다. 이 말은 성자가 성부의 피조물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성자는 세계 창조 전에 무로부터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영원하지도 않고 신적 본질도 없다. 성자는 모든 피조 된 존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고 최초로 피조 된 존재다. 세계는 이 성자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성자는 장차 보여줄 공로들로 인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그가 장차 얻게 될 영광에 비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다. 성자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잠 8:22; 마 28:18; 막13:32; 눅 18:19; 요 5:19; 14:28; 고전15:28이다.

 

b. 아리우스에 대한 반박 -성부와 성자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견해 - 성부와 성자는 신적인 동일본질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 안에는 나뉨이나 분리가 존재하지 않고, 하급신을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단일성 안에 세 구별된 위격이 있다. 성자의 독립적이고 영원히 인격적인 실존을 주장하였다. 세 위격은 어떤 식으로는 분리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삼신론이 되기 때문이다. 성자가 발생에 의해서 성부로부터 낳음을 입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내적인 행위, 따라서 하나님의 필연적이고 영원한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입장은 구원론적인 확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인데 이 일을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중보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본질이다. 즉 하나님이신 로고스가 인성을 입어서 신인이 될 때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서 구원이 성취된다.

 

3) 니케아 공의회(A.D. 325)

 

a. 쟁점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

 

영원한 발생이란 개념을 거부했고 아타나시우스는 인정함. 아리우스는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피조되었음.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가 성부의 동일본질로부터 발생했음.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 아님.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임.

 

b. 공의회의 결정 - 대다수가 중도파였는데 중도파의 대표는 유세비우스였다. 이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오모우시오스)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했다. 대신 유사본질이라는 말 ‘호모이우시오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결국 황제가 개임해서 아타나시우스파의 손을 ?어주었다. 지음받지 않고 나셨으며 성부와 한 본질에 속하는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다.

 

4) 회의결정이 가져온 결과

 

a. 불만족스러운 결정 - 설득이 아니라 황제의 힘으로 결정이 되어서 앞으로 황제의 변덕이나 황제가 바뀌면 결정이 바뀔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음.

 

b. 동방 교회에서 준 아리우스주의의 일시적인 득세

 

가. 공의회의 결정을 반대한 자들 - 대담하고 정직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다른 본질이라고 했고, 일부는 성자가 성부와 같지 않다고 했고, 준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유사본질이라고 했다. 주로 동방교회에서 그랬고, 서방교회는 터툴리안의 전통을 이어서 아타나시우스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나. 앙키라의 마르켈루스 - 이 사람은 발생이라는 용어를 선재한 로고스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성육신한 로고스에 국한시켰으며, 부활 후에는 성부에 대한 세계 창조 이전의 관계로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을 더 넓혔다.

 

다. 화해의 시도들 - 안디옥 공의회는 유사본질과 성부의 의지적 행위를 통한 성자의 발생을 강력히 주장했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가 되어 서방교회 감독들이 아를과 밀라노 교회회의에서 서방교회 감독들이 유세비우스파에 동조하도록 하였다.

 

c. 반전된 흐름

 

가. 반대파의 붕괴 - 아리우스파와 준아리우스파는 서로 견해가 달랐고 후자도 통일되지 않았다. 시르미움 공의회(357)에서는 우시아(본질),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의),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의) 같은 용어를 배제함으로써 분파들을 결합시키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정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준아리우스주의자들을 친 니케아진영으로 내몰았다.

 

나.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 -이들은 대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 나지안의 그레고리다. 이들은 휘포스타시스(위격)을 ‘우시아’(본질) 및 ‘프로소폰’(인격)의 동의어로 사용하는데서 오해의 소지가 발생했다고 보고서, 휘포스타시스를 성부와 성자의 위격적 실존을가리키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그 용법을 제한 하였다. 이들은 신격 안에 있는 세 휘포스타시스(위격)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이 위격들을 신적인 우시아라는 개념아래 통합하고자 하였다. 그레고리우스 두 명은 신격 안에 있는 위격의 관계를 공통의 인성에 대한 세 명의 사람들의 관계에 비유하였다. 이로써 양태론은 완전히 극복되었으나 자칫 삼신론의 오해를 살 수 있다. 단지 로고스가 가진 인격성은 충분히 보호된 것이다.

 

d. 성령에 관한 논쟁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아다나시우스의 견해를 따라서 성령의 동일본질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인 마케도니우스는 성령이 성자에게 종속된 피조물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성령이단론자들이라고 불렸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우리는 성부로부터 나와서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시게 되어 있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 주, 생명을 주시는 이를 믿는다.”

 

e. 삼위일체론의 완결

 

가. 성령이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문제-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두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첫째, 호모우시우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아서 성령이 성부와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단언되지 않았다. 둘째, 다른 두 위격에 대한 성령의 관계가 정의되지 않았다.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온다는 진술은 있지만 성령이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부정되지도 긍정되지도 않았다. 성령이 오직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면 성자와 성부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성령이 성자로부터도 나온다고 말하면 성령을 성자보다 더 의존적인 지위에 두어서 성령의 신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다나시우스,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성령이 성자로부터도 나온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성부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단언했다. 서방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주후 589년에 톨레도 회의에서 필리오케(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말이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첨가되었다. 동방에서는 다메섹의 요한이 오직 하나의 신적본질이 존재하지만 세 위격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세 위격은 신적인 존재 안에 있는 실체들로 여겨져야 하지만 서로에 대해 세 명의 사람의 관계 같은 그런 관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위격은 존재 양태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하나다. 성부는 비발생, 성자는 발생, 성령은 발출이 그 특징이다. 위격간의 상호관계는 혼합됨이 없는 상호내재다. 동방교회는 결코 필리오케를 채택하지 않았다. 성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원천이고 성령은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나.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에서 세 위격은 각각 본질 전체를 소유하고 그런 한에서 본질 자체와 동일하고, 다른 위격과 동일하다. 세 위격은 세 사람의 인격과 같지 않은데, 이 경우 각 사람이 인간 본성의 총체 중 일부만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세 위격은 다른 위격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세 위격간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성부는 발생시키고 성자는 발생되고, 성령은 영감을 통해서 존재한다. 세 위격 간에는 상호침투와 상호내주가 있다.

 2. 후대의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1) 라틴 신학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a. 로스켈리누스의 삼위일체론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위격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세 개의 개체들로서 오직 발생론적으로 보거나 이름에 있어서만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세 위격의 단일성은 의지와 권능의 단일성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삼신론으로 귀결된다.

 

b. 프아티에의 길버르의 삼위일체론- 신적본질과 하나님을 구별하고, 이 둘의 관계를 인성과 구체적인 사람들의 관계에 비유했다. 신적 본질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나 하나님의 형체다. 이 것을 포르마라고 하는데 포르마가 세 위격에 공통적이기에 세 위격은 하나라고 하였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세 사람들은 사람이란 면에서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삼신론 혹은 신적본질과 세명의 신이 존재하게 되므로 사신론을 가르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c. 아벨라르의 삼위일체론 -세 위격을 능력, 지혜, 선이라는 속성들과 동일시한다. 성부는 능력이고 성자는 지혜며 성령은 선을 나타낸다.

 

d.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 당시의 교회에서 통용되던 지배적인 견해였다.

 

2) 종교개혁시대의 삼위일체론

 

a.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은 신격 안에서 세 위격의 절대적인 동등성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성부로부터 발생된 것은 성자의 본질이 아니라 성자의 위격적 실재라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다. 칼빈은 세 위격이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여 왔는데 지속적인 발생의 행위를 상정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b. 소시니안들과 알미니안들의 삼위일체론 -16세기에 소시니안들은 세 위격이 공통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교리가 이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성자는 선재하지 않았으며, 성령의 특별한 충만과 하나님을 아는 특별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승천할 때에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수여받기는 하였지만 본성에 있어서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사람들에게로 흘러가는 미덕 혹은 에너지라고 하였다. 소시니안들은 유니테리언들과 현대주의자들의 선구자들이었다.

 

3)종교개혁시대 이후의 삼위일체론

 

a. 클라크의 삼위일체론 -그는 성부를 최고신이자 유일신으로 보았고, 성부와 나란히 태초부터 성자라 불린 두 번째의 신적 위격이 존재했는데 성자는 성부의 임의적인 의지의 행위를 통해서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성부 및 성자와 나란히 제 3위가 존재하는데 그의 본질은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로부터 나온다. 성령은 본성적으로 성부의 뜻에 의해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b. 뉴 잉글랜드 신학자들 -에몬스는 영원한 발생론을 영원한 넌센스라고 했다. 스튜어트도 명백한 모순이라고 했다. 성부,성자,성령느 구속의 경륜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구별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이고 하나님 자신 속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한 관게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니다.

 

c. 오늘날의 삼위일체론 - 스웨덴보리는 성부,성자,성령은 단지 성자 안에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령을 통하여 활동한 영원한 신인 안에서의 구별일 뿐이라고 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만물의 근저에 있는 미지의 통일성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이 성부이고, 예수 안에서 의식적인 인격을 지니게 된 하나님이 성자이며, 교회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인 하나님이 성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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