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4-26 09:18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두번째 이야기) -블레인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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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668  
언젠가 내가 가르치는 강좌에 한 여성이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녀의 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좋지 않은 법령이 하나 있어, 그로 인해 거주자들이 임차권을 잃고 살던 집에서 쫓겨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 전부터 케리(그녀의 이름)는 다른 거주자들과 연대해 이 정책의 철회를 위해 로비 활동을 벌여왔다. 케리는 나에게 시의회에 편지를 보내 정책 변경에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청했다. 나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곧장 편지를 발송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다음 주간에 나는 독감에 걸렸다. 그리고 여러 책무에 시달리다가 그 약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약 6주가 지난 후 케리가 나를 찾아와 다시 그 문제를 꺼내 놓았다. 나는 크게 당황한 나머지 그 일을 처리하지 못했노라고 고백하며 그녀가 실망할까 두려워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케리는 나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이 선생님의 손을 멈추셨습니다.” 그녀는 그 때가 편지 보내기에 시기상으로 적합하지 않았음을 나중에 깨달았다고 했다. 내가 그 일을 깜빡 잊은 것에 대해 그녀는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았다.
케리의 반응은 우아하고 마음 씀씀이도 놀랄 만큼 넓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주님이 선생님의 손을 멈추셨다’는 말은 그녀가 믿는 주님의 손길이 그녀의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분명한 인식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이 나의 실수로 인해 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유익을 주셨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에서 분명히 누군가로 인해 실망하는 날이 있다. 전화를 주겠다던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웃 사람이 빌려간 물건을 되돌려 주지 않는다. 직장 동료가 당신과의 점심 약속을 잊어버릴 때도 있다. 약속된 배달물이 끝까지 도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누군가 당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삶을 보여줄 때도 있다. 자녀가 형편없는 성적표를 가져올 수도 있다. 평소에 영적으로 충만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갑자기 성경 공부 모임을 그만둘 수도 있다. 배우자가 바라는 만큼 자주 당신을 격려해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퇴짜’ 당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입학 신청을 거부할 수도 있다. 소중한 취직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인간 관계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부당한 행위로 인해 이유 없이 고통 받을 수도 있다. 직장 상사가 당신의 잘못이 아닌 어떤 일로 인해 당신을 책망할 수도 있다. 본인이 하지도 않은 작업에 대해 수리공이 부당하게 요금을 청구할 수도 있다. 어떤 차가 당신의 차를 긁어 놓고 뺑소니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실망할 때 흔히 아픔을 느낄 뿐 아니라,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돌아와야 할 유익을 빼앗기지 않았는지 염려하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을 하나님은 다르게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르라

실망스러운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도움의 손길을 막으셨다고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응답이 있기를 바라고 기도했는데, 예상했던 응답이 아닐 때 위와 같이 느끼게 된다. 실망을 안겨준 개인뿐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만일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면, 그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의 만사를 다스리시고 모든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장기적이고 넓은 관점에서 우리의 행복을 보살피신다고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장기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단기적으로 우리를 실망시키실 때가 있다는 뜻이다.
남이 나를 실망시키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아준다는 약속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설령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실망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어떤 사람의 태도가 변하도록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그 사람의 자유 의지를 짓밟아서 금방 변하도록 하실 것이라는 암시도 성경에는 없다.
진정한 행동 변화는 시간을 요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형제들이 좋은 예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찾아가 간청했던 애굽의 바로 왕도 그렇다.
그리고 생각해 보라. 예수님은 지상 사역 기간 중에 개인의 병 고침에 대해 일관되게 응하셨지만, 급히 타인의 행동을 바꾸어 달라는 간청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거절하셨다. 자신의 형을 설득해 유산을 나누게 해 달라는 사람의 간청(눅 12:13∼14), 마리아를 권해 자신을 돕게 해달라는 마르다의 부탁(눅 10:38∼42)을 거절하신 것 등이 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려고 우리를 향한 누군가의 행동에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이러한 간구를 담대히 올리며, 하나님께서 최선의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실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도한 대로 우리를 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등을 돌리셨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간구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는 우리의 기대가 비현실적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누군가 우리에게 대하는 악하거나 선한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서 최선의 뜻을 이루신다는 분명하고 확고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가장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재난조차 선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런 면에서 요셉의 사례는 참으로 교훈적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서 자신의 가족에게 가장 크게 분노할 이유를 가진 사람이 요셉이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다. 노예 상인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끌고 가서 되팔았다. 수 년 간 감옥에서 지내며 일련의 특이한 사건들을 통과한 후 요셉은 바로 왕 다음 제2 통치자가 되어, 기근 때에 구제 사업의 완벽한 지휘자 역할을 한다. 극심한 식량 부족이 중동 지방을 강타하여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온다. 노예로 판 지 20여 년이 지나 형들은 그가 혈육임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그 앞에 얌전히 엎드려 도움을 구한다.
우리의 상상대로라면 이 때가 요셉이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진심으로 용서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모두 애굽으로 이주해 오라고 권했다. 그는 일생 동안 애굽에서 그들을 후대하였다.
냉혹한 혈육을 용서할 수 있었던 요셉의 놀라운 아량은, 하나님께서 삶을 주관하시고 재난조차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신다는 깊은 신뢰에서 발생한 것이다. 보복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순간에도 요셉은 온갖 과거를 일소에 부치고 형들에게 선언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8).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혹시 요셉에게 억눌려 있던 복수심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한층 더 힘주어 역설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요셉의 태도가 그토록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에 대한 보상이 컸기 때문이다. 우선 요셉 자신에게 돌아온 혜택이 상당했다. 그가 종살이하는 동안 그의 삶이 쓰라린 분노로 부식당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분노가 있었다면 그의 창조적 에너지가 다량 소비되었을 텐데 그는 사회적이고 실용적인 기술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간수와 왕의 신하들 그리고 바로 왕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요셉이 종살이하는 긴 세월 동안 꿋꿋하게 낙관적으로 살았음을 암시한다.
또 요셉으로 인해 애굽과 주변의 백성들에게 광범위한 혜택이 돌아가 수많은 목숨이 구조된다.
마지막으로 요셉의 가족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화해하였고 형들은 놀랍도록 성숙해졌으며 많은 혈육들이 기근에서 구원받았다.

경건의 시간에서 내면의 좌절감을 맛보아야

요셉의 메시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용기를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우 불리한 타인들의 행동조차 최선의 유익이 되도록 바꾸시는 사실을 성경에서 엿볼 수 있다. 요셉처럼 이런 믿음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토대이다.
남이 나를 실망시킬 때 거기에 어떤 은총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도 좋다. 때가 되면 생각지 못했던 유익이 나타나면서 그 은총은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할 때 우리의 기쁨은 깊어지고,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사역도 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태도로 많은 사람들이 도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은, 이런 시각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도전적인 믿음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매일 갖는 경건의 시간에서 내면의 좌절감에 직면하는 것이다. 타인들에 대한 우리의 실망과 갈등을 기도로 성찰하다보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실망시킨다면 하나님이 그 사건을 이용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안겨 주시는지 힘써 구해야 한다.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최선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장애물로 여기는 것을 하나님은 달리 보실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인내와 충만한 지혜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들의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싫어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들의 개인 약점이나 어떤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더라도 그들이 언제나 이런 감정을 품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이다. 요셉 형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듯이 말이다. 우리가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최선의 유익이 있기를 기도한다면 이런 변화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누군가에게 실망이나 분노를 절대로 표현해선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정서적 건강과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서로 대면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사랑은 때로 강인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에게나 마냥 좋게 대하기만을 기대하시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을 때도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적절하게 자기 견해와 느낌을 주장하며 굳게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임을 자주 상기하자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무한한 관심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올바른 시각을 가질 때 타인을 향한 우리의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고 진정한 용서가 가능해진다. 또한 어떤 문제로 누군가와 대면을 필요로 할 때, 보다 편안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자주 상기할수록 좋다. 요셉의 예가 충분한 납득을 주지 못한다면,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약속을 기억하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점을 좀더 확실하게 밝히기 위해 바울은 세 구절 뒤에 이를 다른 말로 되풀이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우정은 우리 삶의 모든 인간 관계와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관계들 속에 그의 손을 얹고 계신다.

블레인 스미스(Blaine Smith) 느헤미야 미니스트리(Nehemiah Ministries : www.nehemiahministries.com) 대표로 크리스천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일깨우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저서로 Knowing God’s Will 외 7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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