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8-01 11:08
[1]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의미와 해석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689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의미와 해석

 

 

 

 I. 서론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관련된 여러 가지 표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 표현은 성서 전체에서 20회 정도 사용이 되었는데, 모세 오경에서 15회,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5회 사용되었다.

 


"젖"과 "꿀"을 근동지방의 신화와 연결시켜 신의 특별 선물(special gifts of god)이나 신의 기호 식품들(favorite diet of gods)로 해석하려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주석가들은 그동안 일관되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표현은 땅의 비옥함을 함축적으로 나타난 것으로서, 가나안 땅을 다소 과장시켜 생산성이 넘치는 땅으로 나타난 독특한 표현이라고 해석하였다.

 

 

 

특별히 사막의 유목민들이나 애굽에 종살이하였던 히브리 민족에게는 그러한 표현이 먹을 음식이 풍부한 땅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2) 그러한 해석을 가능케 한 것은 성경 자체가 젖과 꿀, 혹은 그러한 것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성경에서 젖과 꿀은 대표적인 고단백질 음식으로 여겼다. 그래서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광야에서 숨어 지내던 다윗과 그의 신하들에게 제공된 중요한 음식물 중에는 젖과 꿀로 만든 것이 포함되었다(삼하 17:28).

 

 

 

그것들은 또한 고대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교역 물품들이었으며(겔 27:17)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봉헌되는 물건이기도 하였다(대하 31:5). 창세기에서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들들에게 야곱이 함께 보내는 선물에 포함된 물품이기도 하였다(창 43:11).

 

 

 

"무엇이 꿀보다 달겠느냐?"라는 성경의 수사적 질문(삿 14:18)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꿀은 단 것을 대표하는 식물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달콤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비교적 표현에 꿀을 사용하였다. 잠언에서 꿀은 즐거움과 건강함을 주는 선한 말에 비유되고 있다(잠 16:24).

 

 

 

그런가 하면, 꿀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시 19:11; 119:103), 지혜(잠 24:13; 16:24) 혹은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감정(아 4:11; 5:1) 등과 같이 다양한 즐거움과 유익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명히 젖과 꿀은 고대 사회에서 높이 평가되는 값진 물건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양식으로 주셨던 만나는 그 맛이 꿀 섞은 과자 맛 같다고 하였다(출 16:31). 그런가 하면, 부정적인 측면에서 죄인들에게는 젖과 꿀이 정녕 허락될 수 없는 양식이기도 하였다(욥 20:17).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해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이스라엘의 실제 지리적 상황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따라서 그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극히 힘들다는 점에서 이 표현에 대한 해석상의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일 년 중 거의 절반 이상이 계속되는 고온 건조한 기후의 자연환경과 개발의 조건마저 그 가능성이 희박한 땅이 이스라엘이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주변지역은 사막 내지는 준 사막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심무대로 삼았었던 산간지방은 석회질 바위로 뒤덮여 있는 척박한 지역이고 보면 과연 성서에서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만큼 기름진 땅이었으나 험난한 역사를 겪으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은 파괴가 되고 지금과 같이 황폐한 현실이 된 것일까? 아니면 성서의 표현은 이스라엘 땅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이상적인 땅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일까? 이러한 해석상의 난제는 성서학자들 사이에서 연구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주제이었다.

 

 

 

이런 해석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으로서, 학자들 중에는 이 표현이 실제적인 땅의 비옥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상징적 표현으로 보기도 했고, 혹은 유목민족들이 신화에서 연유된 축복과 이상의 땅을 소망하는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관한 대표적 표현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느 한 측면으로 치우쳐 이해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실제 현실과 더불어 이스라엘민족의 다양한 역사 경험과 신앙 속에서 종합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주제라고 여겨진다.

 


본 논고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다음의 세 가지 입장, 즉 (1)고대 근동아시아의 지리적 차원, (2)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차원, 그리고 (3)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분석하여 그 해석적 시도를 하려고 한다. 그러한 해석적 시도에 앞서서 가나안 땅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먼저 살펴봄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관한 보다 더 큰 신학적 문맥(context)을 찾아보려고 한다.

 

 

 


II. 성서에 나타난 땅 개념의 신학적 의미

 

  

 


A. 땅과 관련된 용어들    

 


구약에서 땅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아다마'와 `에레츠'가 있다. `아다마'는 `붉다'(red)라는 뜻의 `아돔'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붉은 색을 띈 비옥한 땅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산지에서 흘러내려 주변의 골짜기에 쌓인 충적토가 유명한데, 지중해 연안지역에서는 이러한 토양을 `테라로사'(terra rosa) 즉 `붉은 땅'이라고 부른다. `

 

 

 

아다마'로서의 땅은 경작이 가능한 땅, 소유지로서의 객관적 가치가 있는 땅, 인간의 거주에 적합한 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2) 그러므로 `아다마'의 반대적 개념은 인간이나 생물의 생존이 불가능한 사막이나 광야 등이다.

 


땅에 대한 또 다른 용어는 `에레츠'이다. 이 용어는 비옥한 땅인 `아다마'와는 달리 땅의 외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창조와 우주적 관점에서 본 땅의 개념이다. 즉 `에레츠'는 하늘 혹은 바다와 반대적 개념으로서의 땅이다.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우주는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거나, 혹은 하늘과 바다와 땅으로 삼등분 된다. 이런 우주의 구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에레츠' 땅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에레츠'의 땅은 정치적 개념을 내포한 땅으로서 인간의 역사와 신앙, 그리고 사회조직 등으로 의미화 내지는 역사화 되어 있는 땅을 의미한다.2)

 

 

 

그런 면에서 성서신학의 주제가 되는 땅 개념은 `아다마'이기보다는 보다 더 포괄적 개념인 `에레츠'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이루어진 계시의 현장으로서의 땅이기도 하다.

 


성서에서 땅을 `에레츠'와 `아다마'로 구분하는 것과 유사하게 땅을 공간(space)과 장소(place)로 구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공간이란 외부의 어떠한 압력도 없는 완전 자유의 상태로서의 땅이며, 그렇기 때문에 책임성 자체도 없는 공백 상태의 땅이다.

 

 

 

반면에 장소로서의 땅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땅,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었고, 그 사건이 기억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거쳐서 연속성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땅이다.2)  따라서 공간(space)의 추구는 역사로부터의 회피이지만, 장소(place)의 추구는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는 결단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추구하였던 땅은 비옥성과 더불어 풍요를 보장하는 `아다마'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통치가 기다리고 있는 `에레츠'이었으며, 역사의 부름을 외면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강조된 `장소'로서의 땅이었다.

 

 

 


B. 에덴으로부터의 추방과 가나안으로의 부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에게 적합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은 단순한 땅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적 목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의미의 땅이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직접 창설(창2:8)하신 땅이었으며,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벽한 조화를 누릴 수 있는 땅이었다.2) 그러한 조화로운 삶은 에덴에서 발원하여 네 방향으로 흐르는 풍부한 물 근원에서 찾을 수 있다. 창세기 2장 8절-27절 사이에 묘사되어 있는 내용에 의하면, 에덴은 물이 풍부한 땅이었다.

 

 

 

에덴의 중앙 부분에서 발원하는 수원은 동산 전체를 적실 뿐 만 아니라 네 방향으로 흘러 네 강의 근원이 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풍부한 수원과 흘러 내려가는 강의 이미지는 단순한 물이기보다는 영적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 것으로서, 에덴 안에서 누리는 완벽한 조화와 풍요로운 삶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가 단절되었고 동시에 땅으로부터의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은 곧 에덴의 풍요로운 근원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원천적 삶의 시작은 창조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진 하나님의 땅인 에덴으로의 도입이었다고 한다면, 인간의 실패는 그러한 본질적 삶의 땅으로부터의 추방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인류를 사방으로 흩으신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새로운 구속역사를 시작하셨다. 새로운 역사는 갈데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땅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창12:2-7). 여기에서의 새로운 땅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살게 될 땅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는 신학적 차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름이 인류 구속사를 향한 부름 곧 에덴동산에서 범죄 하여 추방당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부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 전체를 향한 부름의 초청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축복의 땅이면서 동시에 인간 전체에게 회복 될 에덴동산의 원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2)

 

   

 


C. 땅의 신학적 의미    

 


성서에 나타난 땅 개념에 관한 신학적 연구는 최근까지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한 주제이었다. 그러나 땅(land)이라는 단어가 성서에서 쓰인 빈도수를 본다면 그것은 놀랄 만큼 자주 사용이 되었다. 땅을 구원의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 축복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한 마르텐스(Elmer A.  Martens)교수는 `땅'이란 단어가 구약에서 만도 2,504번이나 나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성서에서 네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이며, 통계적인 수치만으로는 계약사상 보다도 더 중심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2)

 


성서에 나타난 땅의 의미를 연구하는 분야로서는 여러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땅의 외형적 형태를 다루는 지형지리, 국경문제 혹은 지파별 땅 분배 등을 다루는 정치지리, 혹은 땅의 비옥함, 경제성, 종교-문화의 관련성 등을 주제로 삼는 분야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땅을 단순한 인간 삶의 공간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신앙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나님과 땅과 이스라엘 백성은 상호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신학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땅의 신학적 이해를 위하여 성서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땅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사상이다. 그러한 성서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창조신앙이 그러한 하나님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멜기세덱의 축복에 화답하는 아브라함의 고백 속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자"라고 표현되었다(창 14:19). 이스라엘의 선택과 언약의 상대자임을 강조하는 출애굽기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출 19:5).

 

 

 

여기에서의 `세계'는 히브리어 `에레츠'를 번역한 것으로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땅을 의미한다.2)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심을 보다 명백히 밝힌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레 25:23)는 이유 때문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못한다는 희년 규정과 관련하여 나오고 있다.

 


성경에서 땅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님의 소유권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근거를 제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땅에 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라는 주장 다음에 제시된 이스라엘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신 대로 그의 후손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땅을 선물로 받았을 뿐이지 땅의 실제적 주인은 아니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오히려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는 신분으로서 그 땅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 (‘게르’와 ‘토샤브’)라는 신분은 완전한 시민권을 갖지 못한 장기 체류자를 의미하는데, 그런 신분으로서는 합법적으로 토지와 같은 재산권을 소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록 가나안 땅을 소유하여 살고 있지만 그것은 정식 주민으로서의 재산을 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땅을 소유할 능력이나 권리조차도 없었다. 다만 궁극적인 소유주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분배받아 관리할 뿐이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에게 영영히 주어진 것이다.

 


땅이 하나님의 축복된 선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점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신학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1)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은 선조들에게 약속된 것이 성취되었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러한 사실은 여러 가지 법전이나 종교의식을 통하여 인정되고 있다; (3)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삶의 형태가 요구된다.2) 히브리어에는 `약속'이라는 단어가 없다. 단지 `말하다'라는 동사를 문맥에 따라 `약속하다'라고 번역할 뿐이다. 그러나 땅과 관련된 언급에서는 특별히 `맹세하다'(샤바아)라는 동사가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부름은 땅에 관한 약속(창 12:7; 13:14-16; 15:18-21; 17:8)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약속은 그의 자손들에게 계속적으로 확인되었으며(창 26:3-4, 24; 28:13; 35:9-12) 출애굽을 주도한 모세에게도 확인되고 있다(출 6:8).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들은 약속이기보다는 맹세이었다.

 

 

 

그래서 데이비스(W. D. Davies)같은 학자는 `맹세의 땅'이라는 표현이 `약속의 땅'이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2)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약속과 성취의 역사적 실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실제적으로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음은 지파 간에 분배된 토지가 양도 불가능한 성격이라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자기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땅을 판 경우가 없다는 사실과 고고학적으로 이스라엘에서 토지 매매에 관한 문서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침묵에 의한 논증이다.2)

 

 

 

역사적인 증거로서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들 수 있다(왕상 21장). 나봇이 왕명을 거역하여 결국 목숨을 잃게 되면서 까지도 자신의 땅을 아합 왕에게 내어놓지 않은 것은 재산의 양도 불가능성을 잘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7) 라는 율법 조항 역시 토지의 부동성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토지의 양도의 불가능성은 이스라엘이 땅을 상실하였을 때에도 여전히 적용되었다. 비록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하여 땅을 상실하였지만, 포로기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땅이 양도될 수 없다는 근거에 의하여 포로귀환의 소망을 선포하였다(렘 12:14-16; 16:14-15; 겔 36:8-15).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땅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땅 소유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특별한 삶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요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있었다.

 

 

 

신명기에 제시된 규례들은 그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사항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신 12:1) 땅은 약속의 선물일 뿐만이 아니라 책임을 요구하는 땅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요구를 성실히 실행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거주를 계속적으로 유지할 뿐만이 아니라 땅으로 인한 풍요와 번성을 더불어 누릴 수가 있었다(신 8:1).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은 땅에서의 저주와 축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무서운 경고가 주어졌다. 토지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위들이 땅을 더럽힌다는 것이다(레 19:29; 민 35:29-34; 신 21:23).

 

 

 

이것은 여호와 자신이 더럽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불가능함으로 오히려 땅이 더럽혀진다는 것으로 그 표현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땅은 여호와를 대신하는 유형적 상징이 되고 있다. 땅이 더럽혀진다는 사고는 결과적으로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낸다(레 18:25, 28; 20:22)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서에서의 땅 개념은 단순한 외형적인 지리 형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경험과 신앙고백을 통해서 오히려 이해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구원을 하나님의 역사개입의 행위 자체(deliverance)와 축복(blessing)으로 양분시키고, 이 축복의 내용 속에서 땅의 약속과 성취를 본 베스터만의 논리는 의미 있는 것이라 하겠다.2)

 

 

 

축복 자체가 구원행위에서 시작된 하나님 활동의 결과이자 지속적 연장인 것처럼, 이스라엘의 땅 문제는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라는 신학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을 차지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적합한 삶을 유지하도록 성서는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III.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해석적 입장    

 


위에서 살펴본 가나안 땅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기초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해석적 입장을 다음 세 가지 관점-고대 근동의 지리적 측면, 가나안 땅의 생활 경제적 측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427 (2)이스라엘 역사 웹섬김이 02-08 6681
2426 (8)성경적 상담학(요약) 웹섬김이 12-14 6679
2425 이슬람교 웹섬김이 01-11 6677
2424 거짓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특징 웹섬김이 08-01 6677
2423 (4)성경적 상담학(요약) 웹섬김이 12-14 6674
2422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은 미래교회 4 웹섬김이 05-12 6673
2421 [2]참 크리스천인 어떻게 아는가? 웹섬김이 03-17 6672
2420 상담예시-배우자가 동성연애자라면 이혼해야… 웹섬김이 12-16 6671
2419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두번째 이야기) -블… 웹섬김이 04-26 6668
2418 상담예시-완전한 짝이 있는가? 웹섬김이 12-16 6667
2417 사차원의 영적기도(5) 웹섬김이 07-06 6666
2416 왜 헬라어로 신약성경을 기록하였는가? 웹섬김이 10-25 6666
2415 영적싸움과 기도(3) 웹섬김이 07-05 6656
2414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기 웹섬김이 07-06 6656
2413 상담예시-부모와 자녀관계 웹섬김이 12-16 6656
2412 우울증의 유형 웹섬김이 09-02 6655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