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8-15 22:03
[1]사탄은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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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216  

사탄은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

 

성경은 사탄이 실제로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사탄은 신,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백성을 속이는 영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나타난다또한, 마지막 날에 영원한 심판을 받아 멸망할 존재로 그려진다.

우리는 사탄을 육체를 가진 존재나 실체가 없는 철학 개념이나 상징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예나 지금이나, 온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려는 악한 뜻을 이루려고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모든 세상 사람을 시험하고 유혹한다. 그의 악한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는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탄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소, 나라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더욱이, 사탄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더욱 집요하게 속이고 공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들이 구원받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성도의 거룩함을 더럽히고 짓밟는 일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성경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를 넘어뜨리고 시험에 들게 하는 사탄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탄의 사악하고 무모한 활동을 완전히 통제하신다. 다시 말해, 영원 전에 그분께서 세우신 거룩한 뜻과 계획 안에는 사탄의 악행이 포함되어 있다. 결코 사탄의 악한 꾀에 넘어가시거나 이용당하시는 법이 없다. 오히려 영광스러운 구속 계획을 이루는 일에 그의 악행을 사용하신다.

교회와 성도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악한 일(전쟁과 범죄, 무질서와 혼란함)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사탄의 거짓말에 넘어가 큰 해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온갖 일에 깔려 있는 사탄의 궤계를 잘 분별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복음을 끝까지 잘 지켜야 한다.

사탄은 이 세상에 악의 제국을 세우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그런 사탄의 악한 궤계를 무너뜨리고 저지하신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과 복음으로 그의 거짓말을 드러내셔서, 온 세상이 죄와 악으로 급격히 치닫는 일을 막으신다.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며 복음을 지키는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빠르게 악의 제국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탄의 궤계를 저지하고 무너뜨리는 이러한 소명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힘껏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그 일을 훌륭하게 잘 감당해야 한다.

사탄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

 

현대 교회는 영적인 암흑으로 뒤덮여 있다. 진리의 빛을 비추어 어둠을 밝혀야 할 교회가 어둠의 세력에 거의 잠식되다시피 했다. 그러한 일의 배후에는 사탄의 역사가 있다. 많은 사람이 ‘과연 사탄이 거룩한 교회 안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사탄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공격해 넘어뜨리려고 한다.

사탄의 모든 활동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 교회 안으로 침투해 활동하는 악령의 실체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의 영적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 사탄의 궤계와 술책에 넘어가 영적으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고 봐야 한다.

교회는 마귀의 역사를 물리치고 진리를 지키는 튼튼한 성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가 튼튼한 성이 되기는커녕, 마귀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악령의 역사와 가르침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속여서 수많은 영혼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 교회가 진리의 울타리를 쳐서 양 떼들을 지키지 못한 결과, 악령이 득실대고 세상의 영으로 넘쳐나는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렸다(마 21:13). 그렇게 진리를 저버리고 세상과 손잡은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말한다. 그는 거짓을 참으로 위장하는 데 전문가이다. 그러므로 진리로 거짓을 드러내는 사역을 하는 교회는 사탄의 최우선 공격 대상이 된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진리의 기둥과 터’를 무너뜨려서 자기의 거짓말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딤전 3:15). 거무스름한 연막을 피워서 자기 존재와 활동을 철저하게 숨긴다. 악령을 단지 우화 속의 존재로 여기게 하거나, 악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철학적 개념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 작전은 현대 교회 안에서 효력을 특히 크게 발휘했다. 현대 교인들은 사탄의 정체와 역사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원색적이고 구시대적인 유물처럼 취급한다. 오늘날, 교계에서 사탄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면, 기독교 지성인들(?)은 코웃음을 친다. 인문학과 세속 철학이 지배하는 현대 교회는 사탄과 영적인 싸움을 하는 일을 거의 포기해버렸다.

결국, 현대 교회는 고상하고 세련된 종교인을 얻는 대신 교회의 생명과 능력을 내주었다. 혈과 육이라는 단순한 차원에 매여 영혼의 약탈자인 사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마귀는 교회가 온갖 헛된 일에 영적인 힘을 사용하도록 해서 정작 중요한 일에는 힘을 쏟지 못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불과 19세기까지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때의 교회는 사탄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했다. 전투하던 지난날의 교회는 이런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심판 날과 멸망의 날 네가 섰는 눈앞에 곧 다가오리라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고함치는 무리들은 흉한 적군 아닌가
무섭고도 더러운 죄 모두 떨쳐버리고 주 예수 붙들라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크신 팔을 벌리고
너를 도와주시려고 서서 기다리시니 너 어서 나오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 찬송가 38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

 

현대 교회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엡 6:12). 이 악한 영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대가 바로 교회이다. 다시 말해, 교회는 마귀와 싸우는 영적인 군영(軍營)이요, 진리를 지키기 위한 요새이자 성벽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탄의 전술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교회 안에서 복음을 왜곡하고 타락시키는 것이다. 온전한 복음이 선포되지 못하게 해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사를 살펴보면 사람의 공로와 행위가 구원의 조건에 포함된다는 사상이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 교회를 계속 어지럽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종교개혁이 영광스럽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인 이유는, 바로 타락한 본성에 호소하는 사탄의 거짓말을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사탄의 거짓말에 또 넘어가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복음의 핵심을 버리고, 옛 흑암 속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사탄은 그중에서 특히 거짓 목사와 신학자 같은 하수인을 앞세우는 작전을 즐겨 사용한다. 그들을 통해 복음의 내용을 시대정신에 맞게 새로 규정하고, 교리와 신학 용어의 뜻이 달라지게 한다. 타락한 신학교에서 자란 마귀의 신학자들은 옛 신앙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이단 사설들을 전파한다.

그 사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그 구원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능력으로 영원히 지켜진다는 사실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기독교 진리의 독특성을 포기하게 하여 이방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종교로 전락시키려는 사탄의 궤계가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탄은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도 즐겨 사용한다. 수준 낮고 잡다한 이단은 쥐 잡듯 하게 하면서, 가장 큰 이단이자 구원의 진리를 파괴하는 사탄의 걸작품인 로마 카톨릭과는 하나 되게 한다. 현대 교회는 사랑, 화해, 통합이라는 사탄의 궤변에 속아 넘어가서, 그리스도를 팔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모독하는 초특급 이단인 천주교와 손을 잡았다. 조금 뒤에는 적그리스도인 교황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다녀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은 외면한 채 뿌듯해하고 있다. 사탄은 사랑과 관용의 의미를 비틀어, 교회가 버젓이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는 영적 재앙의 길로 치닫게 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과 철학을 기준으로 성경을 재단하게 하는 전술도 잘 구사한다. 본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설명한 해석 대신, 사변과 철학과 망상으로 버무려진 왜곡된 성경 해석을 더 높게 여기는 풍조가 교회 안에 자리 잡게 한다.

그렇게 해서 성경을 시대와 진영 논리에 따라 어떠한 의미로든지 해석할 수 있는 책처럼 되게 만든다. 오늘날, 교인들은 성경의 절대 진리를 고수하는 일이 폭력적이고 독선적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현대 시대에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고하게 믿고 따르는 일이 미덕이 아니다.

성경의 교훈은 이제 교회 안에서만 진리로 받아들여질 뿐, 일반 학문과 가치관의 영역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게 되었다. 신자가 세상의 정신을 그대로 따라가고, 신자의 실생활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현상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사탄은 성경의 진리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원리가 되지 못하게 하는 일에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렇게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속였던 것처럼, 기독교 핵심 진리를 비틀고 뒤흔들어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의심하게 하는 공작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성경에 대한 의심을 불어넣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참뜻을 뒤바꾸어 성도들이 혼란해하며 방황하게 한다. 확신 있는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걸림돌을 놓는다. 회의하는 지성인, 끝없이 탐구하는 구도자, 세속 성자라는 고상한 허상을 미끼 삼아 영혼을 낚아 지옥에 던져 넣고 있다.

 

두 번째로사탄은 예배 타락시키기를 좋아한다. 예배를 타락시켜 교회를 자아 만족과 정욕 분출에 힘쓰는 우상의 신전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부두교 의식이나 굿판에 버금갈 정도로 타락한 ‘찬양 집회’는 악령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끝없이 성령을 부르짖으면서도 방언, 넘어짐, 실신, 이유 없이 몸을 흐느적거리는 등의 비정상적인 현상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거룩하신 성령을 모독하는 온갖 해괴망측한 일을 벌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처럼, 사탄은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가장하여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예배하고 따르게 한다.

사탄이 이 모든 일을 벌이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는 6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다양하고 치밀한 책략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공작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사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고 은밀하게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공작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탄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깨어 경계하고 있는가?

사탄은 지금 교회를 이리저리 굴리며 가지고 놀고 있다. 현대 교회는 사탄의 공작으로 심하게 무너져내려 온전한 교회를 찾기가 좀처럼 힘든 시대가 되었다. 거듭나지 않은 목회자와 교인이 교회를 육적인 방향으로 이끌다 보니, 영적인 생명력은 쇠퇴하고 육신적인 열매만 가득한 사탄의 회당으로 전락해버린 교회가 넘쳐나는 것이다.

사탄은 교인이 서로 치고 받으며, 목회자가 돈과 여자를 탐하는 일을 기뻐한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받고 교회가 경멸당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하나님과 갓OO, OO여신도 함께 섬기게 하고, 세상을 향한 강한 애착을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뛰는 타락한 찬양을 통해 분출하게 한다. 수많은 이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들의 신앙은 실체가 없고 공허하다. 성경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여전히 이 세상의 신인 마귀를 섬기고 있다.

 

교회는 지금 심각한 영적 암흑에 빠져 있다.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싸우지 않고 다른 엉뚱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 모두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하는 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로 부르셨다. 고상한 영성주의자가 되라고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것이 아니다. 교회가 스스로 진리를 고수하고 마귀와 대적하는 일을 주요 사명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토록 짙은 어둠이 교회를 집어삼킨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 시대는 소망이 없다. 교회 스스로 잘못을 교정할 능력도, 잘못을 인지할 토대도 모두 상실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블레셋을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참하게 패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긍휼과 역사하심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불 같은 진리의 사역자를 보내주셔서, 교회가 복음의 깃발을 다시 높이 들고 마귀의 결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끊어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워 그분의 교회를 굳게 세우시는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사탄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면 많은 반대와 방해를 받게 된다. 비난, 멸시, 경제적 손해, 급한 일, 의심, 게으름, 탐심 등이 나타나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면서 물러서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이러한 일은 세상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세상은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세상은 왜 이런 특징을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사탄의 존재와 활동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금부터 그 점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1. 사탄의 전략과 전술

본래,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지으셨고, 지으신 세상을 보면서 참으로 즐거워하셨다(창 1:31).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행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은 온 세상에 충만했다(롬 1:20).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과 같이 될 마음을 품으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사 14:13, 14). 사탄은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가장 뛰어난 천사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취하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높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다.

사탄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질투하고 대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이 세상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 영광을 짓밟고 파괴하여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은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사탄은 그 일을 사람을 통해 이루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죄에 빠져 스스로 파멸하게 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탄은 그런 마음을 품고 하와에게 접근했기에 외적인 힘이나 압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스스로 죄를 짓게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닮은 존귀한 사람이 자기 손으로 그의 인격과 삶을 짓밟고 망가뜨리게 해야만, 같은 방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도 싸워볼 만하겠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에게 지극히 인격적으로 다가왔다. 자기 능력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권리를 빼앗고 억압하시려고 선악과를 금하신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창 3:1). 그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한 다음,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려고 선악과를 못 먹게 하신 것이라는 ‘아주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창 3:4, 5).

하와는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다시 바라봤다. 원래, 하와에게 선악과란 만지는 것조차 피해야 할 아주 위험한 열매(창 3:3)였기에, 그 먹음직스러움과 탐스러움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탄의 말을 듣고 ‘다시 바라본’ 선악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선악과의 탁월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열매를 따먹었다(창 3:6).

이처럼,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을 스스로 미워하고 대적하게 하지, 마음에도 없는 반역을 억지로 저지르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을 지극히 단편적으로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왜 불합리하고 해로운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 곧 죄가 사람에게 참 생명과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그의 ‘참신한 생각’에 동의하게 한다. 그런 다음, 양심에 거리낌없이 용감하게 죄를 짓게 해서 멸망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것이라는 헛된 확신에 사로잡힌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더구나 사탄은 아담의 후손이 이미 그의 ‘새로운 생각과 관점’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의 귀에는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자기 완성이라는 사탄의 소리는 송이꿀보다도 더 감미롭게 다가온다. 저항도, 거절도 할 수 없다. 그저 자기를 완성하여 하나님처럼 되는 소망을 품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게 된다.

 

이처럼, 사탄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 곧 그의 세계관을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중심으로 바꾸도록 부추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용하는 전략과 전술의 핵심이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점들을 분명히 보게 하면서, 사람이 이런 식으로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리고 그 헛된 꿈속에서 헤매다 스스로 파멸하게 한다.

사탄은 이 일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척시킨다. 

하나는 부귀, 영화, 성공, 출세, 건강 등의 육신적이고 현세적인 가치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대개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적이고 물질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게 된다.

그들은 리처드 도킨스 같은 신(新)무신론자의 주장에 깊이 감명을 받는다. 진화론을 가설이 아닌 확립된 자연법칙과 같이 받아들이며, 기독교를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원시 신화처럼 여긴다. 그들의 신조는 “하나님은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라.”가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고행, 명상, 몰아(沒我) 등의 초월적인 가치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사람이 곧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사람이라는 범신론(汎神論)이나, 만유는 초월하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내재신론(內在神論)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에는 토마스 머튼이나 달라이 라마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 그들은 세상을 말 그대로 덧없고 무의미한 곳으로 여기며, 빨리 이 의미없는 세상을 벗어나 하나님, 또는 일자(一者)와 존재론적으로 합일(合一)하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극단적인 금욕이나 극단적인 방종에 빠져들곤 한다.

 

사탄의 기쁨과 즐거움은 이런 사람을 세상에 최대한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사탄은 그들이 세상에 나가 영원을 바라보지 말고 지금을 즐기라는 교훈을 담은 드라마와 영화를 계속 만들어낼 때, 아주 흐뭇해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광고가 끝없이 방영될 때,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자기 감정을 분출하면서 기존 질서와 정서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반항을 부추기는 록과 메탈 음악 축제가 열릴 때, 환호성을 터뜨린다.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보람을 느낀다.

동시에 사탄은, 자기 힘으로 초월적인 가치를 구현하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고상한 말에 사로잡히는 이들이 크게 늘어날 때 만세를 부른다. 그들의 외적인 선함을 기독교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재갈로 사용한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고 진리를 상대화하여 자기가 보기 좋은 대로 다듬어 재통합하는 것을 볼 때, 승리감에 젖는다. 세상이 기독교의 참된 평안과 자유를 이방 종교의 참선과 고요함과 똑같은 고귀한 종교 체험으로 볼 때,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유일하고 참된 기독교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주 편협하고 독선적이고 교만하며, 자기 종교밖에 모르는 속 좁은 사람으로 대우받을 때, 잔치를 벌이면서 기뻐한다.

이처럼, 사탄은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확립한 사람들을 크게 늘림으로써 성도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악한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을 계속 성도 주변에 보내어, 끊임없이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게 한다. 성도가 그런 충돌과 마찰에 지쳐 넘어지거나 낙심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사탄은 인류 역사 내내 그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심지어, 노아 시대 때는 노아와 그의 가족 8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확고한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로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지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지옥에 가야 한다는 자세로 오늘도 거짓의 검을 새파랗게 갈고 있다.

이 세상은 그런 사탄의 참소와 궤계가 펼쳐지도록 허용된 저주받은 곳이다. 우리의 죄악이 그러한 무서운 저주를 이 세상에 불러들인 것이다. 성경은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묘사한다(고후 4:4; 엡 2:2).

사탄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는 저주받은 이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과 비길 수 있다는 자기 생각이 이루어졌다고 느낀다. 스스로 타락하게 하는 자기의 지혜로움을 하나님도 이기지 못하리라고 확신한다. 사탄은 그런 확신으로 계속 완악한 사람들을 배출해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성도를 넘어뜨리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한 무기

성도는 이러한 사탄의 전략과 전술을 알고 믿음으로 대항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13~16). 또한, 그들을 보호해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요 17:14, 15).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시류를 따라 이 세상을 살지 말고, 말씀과 기도로 세상을 거스르면서 항상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대 교인들은 어떻게 말씀과 기도로 이 세상과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심하게 세속화되어 불신자와 거의 똑같이 살아가거나, 극단적인 경건주의나 은사주의 신앙에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사탄의 궤계에 대항하기를 아예 포기하거나, 골방에서 성경만 보고 기도하면서 관조한다. 또는, 땅 밟기 등의 능력 대결을 통해 특정한 지역에 머무는 사탄의 권세를 결박하고 무너뜨려야 한다는 길로 나아간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탄에 맞서서 이겨내셨는지가 잘 나와있다(마 4장).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사탄의 궤계를 대항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길을 잃어 버리고 포로로 잡히게 된다. 머리카락이 잘리고 눈 뽑힌 삼손이 온갖 조롱과 모욕을 받으며 거대한 맷돌을 돌렸던 것과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을 잘 살펴보면,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우선 굶주림을 통해,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려고 했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아들이 아닌, 고귀한 피조물 가운데 하나라는 ‘새로운 시각’을 품게 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와처럼 사탄의 거짓말에 넘어가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기록하였으되”라는 말로 대응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사탄이 계획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셨다(마 4:4).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쏜 의심과 불신앙의 불화살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방패로 막고 꺾어버리셨던 것이다(엡 6:16).

이처럼,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하게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성경 구절 하나를 좌우명으로 삼고 어려울 때마다 감상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성경의 전체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핵심 교리를 대표하는 성경 구절 몇 개는 외워서 생각과 마음속에 새겨놔야 한다.

아무리 성도라고 해도 이러한 교리 학습과 성경 암송을 충분하게 해놓지 않으면, 사탄이 의심의 불화살을 날릴 때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게 되고, 사탄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 참으로 합리적으로 보여지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정통 개혁주의 교리를 꾸준히 학습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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