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8-08 20:05
신구약 중간 시대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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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837  

신구약 중간 시대의 역사와 문화.

 

 

 

1. 신구약 중간 시대의 역사

 

 

 

 1.1. 헬라 시대(기원전 332-63)

 

 

 

  1.1.1.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2-323)

 

구약성서는 알렉산더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11:3), 그의 출현은 이후 수세기 동안 유다 지역을 포함한 고대 근동지역에 헬라문화의 영향을 끼치는 출발점이 되었다.

 

헬라어는 공용어로 개발되어 이후 수세기 동안 알렉산더 제국에서 통용되었고, 알렉산더를 비롯한 헬라인들의 이름을 딴 헬라식 도시가 정복지 곳곳에서 건설되어 정치체제, 생활방식, 극장, 체육관, 경기장, 종교 등을 통한 헬라문화가 지역 토착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

 

또한 알렉산더 자신이 모범을 보이면서 장려한 헬라인과 토착민의 결혼, 그리고 피정복민에 대한 유화정책 등은 헬라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유대인들이 헬라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1.1.2. 프톨레미 왕조(기원전 301-198)

 

알렉산더가 후계자가 없이 죽자 그의 부하 장군들은 그의 제국을 분할하여 통치했다.

 

기원전 30년에 체결 된 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셀류키드에게 할당되었으나 프톨레미가 무력으로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이후 100년 동안 이 지역은 5차례의 전쟁과 평화협정을 반복했다. 이 전쟁에 대한 묘사를 한 것이 단11이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프톨레미 1세는 많은 유대인을 알렉산드리아로 이주시켰다.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유대인 독립구역을 할당받을 만큼 커졌고, 1세기 초에는 신구약 중간 시대에 가장 큰 디아스포라 유대인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헬라주의적 유대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프톨레미 2세는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도서관에 유대인들의 정경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소장하기를 원하였고 이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LXX이다.

 

이 때 유대지역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비교적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였으며, 이 때 제사장 가문은 오니아스 가문이었다.

 

 

 

 

 

신약의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은 주로 70인 역이었다.

 

그렇기에 70인역은 사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출처 : https://www.google.co.kr/search?hl=ko&;biw=1024&bih=768&tbm=isch&sa=1&ei=mHvjWMezBony8QWFzbXoBQ&q=Via+Maris&oq=Via+Maris&gs_l=mobile-gws-img.3..0i19k1l5.7617.12851.0.13246.16.12.0.2.2.0.196.1865.0j11.11.0....0...1c.1.64.mobile-gws-img..5.11.1719.3..0j41j0i30k1.79rakBHjxho#hl=ko&tbm=isch&q=70%EC%9D%B8%EC%97%AD&imgrc=XW0SxBBgeFcmnM:)

 

 

 

  1.1.3. 셀류키드 왕조(기원전 198-142)

 

5차 시리아 전쟁(기원전 202-198)에서 안티오쿠스 3(기원전 223-187)가 승리하자 팔레스타인은 셀류키드 왕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전쟁은 유대인들의 도움으로 이긴 전쟁이었으며, 안티오쿠스 3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에게 전통적 관습과 종교를 유지하도록 허용했고, 세금 감면, 예루살렘 성전 수리비 지원 등을 약속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가 세력 확장을 추구하면서 기원전 190년에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막대한 보상금을 배상하게 되자 셀류키드 왕조는 유대인들을 착취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안티오쿠스 4(기원전 175-164)는 세금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을 유대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고, 그렇게 선별된 사람은 오니아스 가문의 야손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헬라식 체육관을 건설하고 유대인들에게 헬라식 생활방식을 장려했다.

 

이 때 야손의 동생 메넬라오스가 안티오쿠스 4세에게 자신이 더 많은 세금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고, 이를 통해 형 야손의 자리를 빼앗았다.

 

이에 야손은 포톨레미 왕조의 영토로 도망갔고, 안티오쿠스 4세는 이것을 계기로 이집트를 침공하려 했으나, 로마가 이를 제지하여 회군하였고, 이 회군길에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과 돈을 약탈하였다.(11:25-27)

 

이후 시간이 흘러 야손은 안티오쿠스 4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무력으로 진압하여 다시 대제사장 자리에 올랐고 메넬라오스는 마사다 요새에 숨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티오쿠스 4세는 국내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 약탈하고 모든 유대 제의를 금지시켰다.

 

예루살렘 성전이 제우스의 성전으로 변하게 되자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에 대항하기로 하였고 이 중심에 하스몬 가문의 제사장 맛다디아가 있었다.

 

그와 그의 아들(특히 유다)은 혁명을 일으켰고(기원전 167) 기원전 164년 결국 유다(별명: 마카베오)가 성전을 재봉헌하였다.(이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하누카이다.)

 

유다 이후 그의 동생 요나단이 그 뒤를 이었고 기원전 152년에 대제사장이 되었지만 10년 뒤인 기원전 142년에 정적에게 살해당했다.(메넬라오스는 이미 이전에 죽었기에 요나단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

 

 

 

 1.2. 하스몬 왕조(기원전 142-63)

 

요나단의 뒤를 이어 그의 형 시몬이 마카베오 군사 지휘권과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하스몬 왕조가 시작되었다.(기원전 142)

 

이후 시몬의 뒤를 이어 힐카누스(기원전 134-104)가 뒤를 이었고 또 그 뒤를 이어 아리스토블루스가 그 뒤를 이었지만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후 이리스토불르스의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시동생 알렉산더 안네우스(기원전103-76)와 결혼을 하였고(원래 그는 아리스토불르스에 의해 감옥에 감금 된 상태였다.) 얀세우스는 제위 기간 동안 많은 영토를 확보하였지만, 계속해서 바리세파와 대립하였다.

 

얀센우스가 죽자 왕위는 알렉산드라가 계승하였고(기원전76-67), 그녀는 장자인 할카누스 2세에게 대제사장직을 부여하고, 차자인 아리스토불르스 2세에게는 군사권을 주었다.

 

그녀는 또한 얀세우스와 대립관계에 있던 바리세파들과 화해를 하였다.

 

하지만 이런 친 바리세파적인 모습은 사두개파의 불만을 샀고 알렉산드라가 죽자 사두개파는 아리스토불르스 2세와 손을 잡고 형인 힐카누스 2세를 공격하였다.

 

이에 힐카누스 2세는 이두메 사람 안티파터와 같이 대항하였다.

 

또한 아리스토불르스 2세와 힐카누스 2세는 각각 로마의 장군 폼페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폼페이가 답을 내리지 않자 아리스토불르스 2세는 군사를 모아 폼페이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폼페이에게 들켜 공격이 무산 되었고, 폼페이는 힐카누스 2세의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후 마카베오 왕국은 기원전 63년을 끝으로 로마에 편입 되었다.

 

 

 

 1.3. 로마시대(기원전 63년 이후)

 

 

 

  1.3.1. 초기시대(기원전 63 - 기원후 6)

 

로마는 유대 지역을 다섯 구약으로 분할하여 시리아에 있는 로마 총독에 의해 다스리게 했다.

 

힐카누스 2세는 군사력 없이 대제사장직만을 유지하며 하스몬 가문의 종교적 전통을 이어갔다.

 

이후 폼페이가 살해당하자 힐카누스 2세의 친구였던 인티파터는 재빨리 시저의 편에 서서 그의 이집트 원정을 도왔고(기원전 48) 이로 인하여 그는 유대 행정관 지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그의 장남 파사엘은 예루살렘 지역의 통치자로, 차남인 헤롯(대 헤롯)은 갈릴리 지역의 통치자로 각각 임명했다.

 

특히 헤롯은 페르시아 북쪽의 파르티아인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올 때 로마로 피신하여 유대의 왕으로 임명받고 예루살렘을 회복하였다.(기원전 40-37)

 

이후 그는 힐카누스 2세를 대제상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스몬 가문과 연관된 다른 이들을 죽였다.

 

또한 그는 건축 애호가였기에 가이사랴 빌립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도 하였다.(예루살렘 성전의 경우 기원후 62-64년에 완성되었다.)

 

기원전 4년 헤롯은 죽기 전 유언을 통해 자기의 왕국을 세 아들에게 나눠줬다.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은 안티파스(기원전 4 - 기원후 39 ; 14:6-11, 6:21-28, 9:9, 13:31, 23:7-12), 유대지역은 아킬레오(기원전 4 - 기원후 6), 그리고 나머지 지역은 빌립(기원전 4 - 기원 후 33-34)에게 분할 해주었다.

 

이 중 유대 지역은 아킬레오의 통치로 인한 불만이 폭주하자 로마는 그를 유배 보내고 총독을 보내 직접 통치를 하였다.

 

 

 

  1.3.2. 로마의 직접 통치(6-66)

 

로마의 유대 통치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기간은 6-41년인데, 로마에서 파견 온 총독들이 가이사랴에 거주하며 다스리던 시기로 이 시기의 유대 총독들은 약 6-7명이었다.

 

이 기간 동안 로마는 징세를 위하여 인구조사를 실시했고(기원 후 6) 이로 인하여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두 번째 기간은 41-44년인데 아그립바 1세가 로망황제로부터 대 해롯 대왕이 다스리던 영토의 왕으로 임명받아 통치하던 기간으로 그는 성경에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인 인물로 나온다.

 

세 번째 기간은 44-66년인데 이 기간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로마 총독들이 다스리던 시기이다.(첫 번째 시기는 유대지역만)

 

 

 

  1.3.3. 유대 독립전쟁(66-74)과 그 이후

 

로마 행정관들과 로마에 대한 백성들의 증오심이 더해갈 때 유대 독립주의자들은 로마에 대항한 독립전쟁을 일으킨다.(66)

 

이 전쟁에 에세네파까지도 가담했다는 것은 이 전쟁에 대부분의 민중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에 로마 당국은 베스파시안과 그의 아들 티투스를 유대지역에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다.

 

그리고 70년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살라버렸고 마지막 남은 요새인 마사다에서 저항하는 유대인들을 73(혹은 74)년에 함락시켰다.

 

이후 유대교는 성전과 희생제사가 없는 상황에서 토라 중심의 유대교를 발전시켰고 90년 경 예루살렘에 건설 된 얌니아라는 아카데미에서 유대교의 성서를 확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2. 신구약 중간신대의 문학

 

 

 

 2.1. 외경

 

외경이란 '감추어진 것들'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확정된 구약성서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에는 포함되어 있는 15권을 말한다.

 

개신교 전통에서는 이 15권의 외경을 뺐지만, 루터나 칼빈은 외경을 읽는 것에 많은 긍정을 하였다.

 

구약 외경은 대부분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경에 쓰였으며 분류를 하면 아래와 같다.

 

 

 

단편소설 : 토비트, 유딧, 에스더 첨가서, 벨과 뱀, 수산나

 

지혜문서 : 솔로몬의 지혜서, 집회서(혹은 벤 시라의 지혜)

 

역사서 : 마카베오 일서, 마카베오 이서, 에스드라스 일서

 

기도서 ; 므나셋의 기도, 세 청년의 노래(혹은 아지리아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묵시문학 : 에스드라스 이서

 

훈계서 : 바룩, 예레미야의 편지

 

 

 

이 책들 중 므낫세의 기도와 에스드라스 이서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LXX에 포함 되어 있다.

 

 

 

 2.2. 위경

 

위경이란 영어로 Pseudepigrapha(수테피그라파)인데 이는 원래의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위인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저자인 것처럼 쓴 책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신구약에서의 위경은 찰스워스(R.H CharlesWorth)가 두 권으로 편집한 65권의 위경을 말한다.

 

 

 

묵시문서 :

 

에녹 일서, 에녹 이서, 에녹 삼서, 에스라의 질문서, 에스라의 계시록 세드락의 묵시록, 시빌의 신탁, 셈의 보고서, 바룩 이서, 바록 삼서, 에스겔의 외경, 아브라함의 묵시록, 스바냐의 묵시록, 아담의 묵시록, 에스라의 희랍어 묵시록, 엘리야의 묵시록, 에스라의 환상, 다니엘의 묵시록

 

유언문서 :

 

열 두 족장의 유언서, 모세의 유언서, 욥의 유언서, 솔로몬의 유언서, 세 족장의 유언서, 아담의 유언서

 

구약성서의 전설 :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야곱의 사닥다리, 희년서, 바룩 사서,이사야의 순교와 승천, 얀네스와 얌브레스, 요셉과 아세넷,레갑족의 역사서, 아담과 이브의 생애, 엘닷과 모닷, 성서의 고대사요셉의 역사서, 예언자들의 생애 지혜 문서 아히카, 포실리드의 위서, 마카베오 삼서, 마카베오 사서, 시리아에 메난더

 

기도, 시편 :

 

다윗의 시편(151-155 포함), 요셉의 기도서, 솔로몬의 시편, 야곱의 시편 솔로몬의 송시, 헬라주의적 회당 기도서

 

단편들 :

 

서사시인 필로, 데오도투스, 오르피카, 비극작가 에스겔, 희랍시인들의 위서 단편서,아리스토불루스, 시시간기록가 데미트리우스, 주석가 아리스테아스, 유롤레무스 유롤레무스의 위서, 클레오데무스 말쿠스, 아리타파누스, 헤카데우스의 위서

 

 

 

 2.3. 요세푸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하스몬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유대식 교육을 받으며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등 유대교의 여러 종파들을 공부하였다.

 

이후 유대 전쟁이 일어나자 갈릴리 지역 사령관이 되어 로마에 대항하였으나 다시 로마편에 서서 유대인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함과 동시에 로마인들의 통역의 역할을 했다.

 

이후 티투스와 함께 로마로 가 로마 시민권을 부여 받았으며 연금을 받으며 여러 저작들을 남겼다.

 

요세푸스의 저작 중 현재까지 내려오는 저작은 크게 4권이 있다.

 

 

 

유대 전쟁사 : 87-81년경에 쓰인 이 책은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스파시안과 티누스에게 헌정되었는데 66-74년에 일어난 유대 독립전쟁이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이 책에서 요세푸스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와 싸울 것을 주저했지만 일부 극단적 유대인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유대 고대사 : 94년에 쓰인 이 책은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10권까지는 구약 성서의 내용을, 11-20권까지는 제2 성전 시대를 다루는데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 까지의 이야기를 한다.주로 위경을 많이 참고하였다.

 

생애 : 유대 고대사의 부록으로 쓰인 이 책은 94-95년경에 완성 되었으며 자신의 자서전이다.

 

아피온 반박문 : 알렉산드리아의 헬라인 아피온이 반 유대적인 글을 쓴 것에 대한 반박한 형식으로 쓰였다.

 

 

 

 2.4. 필로(20-50)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헬라주의적 유대교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겨지며,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그는 부유한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헬라식 교육과 유대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고, 39-40년에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를 대표해서 로마 황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필로의 저서들은 크게 두 분류할 수 있는데 오경 해석에 치중한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인데 그의 해석의 특징은 알레고리적 성서 해석과 로고스론 등이 있는데 이러한 그의 해석은 초기 기독교 신학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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