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부터 전도에 집중하며 사역 펼쳐 어린이 도서관·브살렐 카페로 주민과 소통 “하나님! 제가 버스나 전철을 타고가면서 그저 앉아서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개척하기 어렵다면 노방전도를 목회로 생각하고 오직 복음만 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천안소망교회 이성원 목사가 신학생일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는 무모할 정도로 순수했다. 실제 삶도 그랬다. 지금도 가난이면 떠올리기조차 싫을 정도로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고향은 충남 부여. 할머니는 기우제까지 지내는 마을에서 온갖 핍박을 이겨내며 오직 복음만 전하는 열성 신앙인이었다. 장날이면 시장 한복판에서 예수를 외쳤던 분이다. 이 목사는 할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전수받아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전도를 마음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 믿는 집으로 마을에 정평이 나 있던 가정이지만, 상처가 될 정도로 집안은 가난했다. “우리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 이성원 목사는 여름성경학교 때 동네 뒷산에서 교회학교 선생님에게 목사가 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주일에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잊을뻔 했던 꿈은 청년시절 서울에 올라와 나간 교회에서 다시 찾아왔다. 교회에서 만난 청년이 방배동에 있는 신학교에 다닐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질 때가 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신학을 공부하게 됐고, 학비 마련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빴음에도 전도는 일상이었다. “저희 때는 신학교를 졸업하면 개척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천안으로 내려와 교회 문을 열었고, 누비지 않은 골목이 없고 만나지 않은 주민이 없을 정도로 전도했습니다. 교회에 십자가를 세운 날부터 지금까지 저와 우리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 멈추지 않았습니다.” 천안소망교회는 전도하는 교회다. 교인들도 전도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교회들이 전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교회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마스크를 쓰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예수를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전도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전도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시대에 맞는 전도방법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지만 저희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노방전도도 계속 실천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도서관과 카페 사역 천안소망교회가 쌍용동 현재 위치로 이전해 온 지도 20년이 지났다. 건축업자 대신 직영을 하면서 교회 건축도 훌륭하게 잘 마쳤다. 그런데 예배당 옆으로 교회 주차장이 꽤 길게 들어서 있고, 뒤편에는 꿈꾸는 작은 도서관이라는 팻말이 걸린 조립식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차장 끝 편에는 멋들어진 ‘브살렐’ 카페가 맞닿아 있다. 모두 교회가 하는 사역이다. “제과제빵,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싶은 분은 오시라고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주민교육을 위해 교인들이 먼저 전문 과정을 배울 수 있도록 준비했고요.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카페를 교회 밖에 둔 것도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수익금은 역시 선교를 위해 사용합니다.” 브살렐 카페를 열게 된 사연도 있다. 한번은 이 목사가 교회 옥상에서 마을을 보는데 카페 자리를 철거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신는 듯 마는 듯 슬리퍼를 끌고 달려가서는 인부들에게 인건비를 줄 테니 멈춰달라고 말렸습니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건물 명의가 넘어갔고 새 건물주가 철거를 하고 있었던 거죠. 어렵게 수소문 끝에 건물주와 연락이 닿았고 새 건물 설계도까지 나왔지만 설득했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손색없는 설교 한편이 하고 싶어” 천안소망교회 앞문에는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개혁주의생명신학’ 판넬이 붙어 있다. 이 목사가 노회 교회 중 가장 먼저 부착했던 이유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이다. “신앙의 실천은 없고 사변화 되어버린 신학을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것이라면 알리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공부한 백석학원이 우리 교단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참 좋고 든든합니다.” 이제 65세 나이에 접어든 이성원 목사는 목회 후반기를 맞이하며 다시 한 번 복음 전파를 위한 사명을 다잡고 있다. 특별히 한 가지 바람은 앞으로 남은 목회 10년 동안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설교 한편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것. 그래서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 부족함을 덮어주신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30년 동안 설교했지만 항상 아쉽습니다. 설교를 한 후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다른 설교도 많이 보면서 현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에겐 교회가 목회지고 삶의 전부다. 좀처럼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흔한 골프도 취미로 즐기지 않는다. 오직 목회를 위해 교회를 지키고 규칙적인 생활의 습관을 유지할 뿐이다. “새벽기도를 마치면 몇 가지 기구를 준비해서 개인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습니다. 성지순례와 동남아 선교는 다녀왔지만 아직 외국관광을 못해봤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대신 월요일이면 둘레길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목회에 부담이 없어서 좋고, 노회 목사님들과 성도님들과 다녀오면 참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