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19 15:37
칭의(稱義)와 성화(聖化) 차이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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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587  

칭의(稱義)와 성화(聖化) 차이와 시기   

 


글 /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조직신학)

 

 

 

이 땅에는 온전히 의롭다 할 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은 다 죄와 허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에로 불러내신 삶,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칭의(稱義)라고 부른다. 이제 칭의가 무엇인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자.

 

 

 

칭의의 근거

 

 

 

사람은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죄를 범한다. 고의적으로 뻔뻔스러운 죄를 노골적으로 범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실수나 연약함에 의한 죄는 범하고 산다. 또 전에는 죄된 것인지를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 죄임을 발견하고는 더 많은 회개를 한다.

 

 

 

그래서 사실상 오히려 믿기 전보다 더 많은 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롬 3:26). 실제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볼 때, 아직도 많은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여겨 주신다.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의인을 악하다고 하거나 악인을 의롭다고 하는 자를 미워하시는 분이시다(잠 17:15). 그러므로 악한 자를 의롭다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오직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을 보시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의가 전가되어진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여김을 받아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과 같다(롬 5:12). 예수님은 흠없는 어린양이셨다. 의로우신 분이셨다. 유대인도, 빌라도도 그에게서 아무런 흠을 찾지 못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의가 전가되어진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의의 흰 예복을 입은 사람으로 여김을 받는다. 그러므로 칭의의 근거는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이처럼 칭의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 자가 되었느니라"(롬 3:24)고 하였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께서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했다(약 2:24). 얼핏 보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는 믿음과 행함을 나누거나, 믿음에다 행함을 추가하는 말씀이 아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음을 강조하여 가르치는 말씀일 뿐이다. 즉 반드시 행함이 수반되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은 칭의의 구체적인 증거가 되는 인물이다. 그는 실수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약 2:23). 노아도 욥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창 6:9), 그리고 동방의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았다(욥 1:8).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동일하게 베풀어주신다.

 

 

 

칭의의 시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해주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롬 4:25).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에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 모두를 의롭다 해주기 위한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 능력을 각 개인 안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것은 그를 믿을 때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은 믿음이 칭의의 수단이 되어짐을 의미한다. 믿음은 칭의의 조건이나 근거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믿음도 역시 의롭다 함을 받을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만일 믿음이 칭의의 조건이 된다면, 칭의는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공로가 되어 얻어낸 당연한 결과에 불과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믿음은 구원에로 부르심을 받아 중생한 사람에게서 나타나지는 첫 번째 현상인 회심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중생은 성령께서 사람 속에서 단회적으로 일으키시는 변화이다. 그리고 그 효력은 영원토록 지속하게 하신다. 따라서 믿음을 도구로 하여 주시는 칭의도 단회적이다. 칭의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단번에 주어진다. 그러나 그 효력은 영구적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을 다시 정죄하시는 일이 없다(롬 8:1).

 

 

 

칭의의 요소

 


칭의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사죄(赦罪)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죄의 결과로 주어졌던 죽음에서부터 해방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의롭다 함이란 죄가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죄가 없다는 것은 죄가 용서받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다. 작고 사소한 죄 뿐만 아니라, 제아무리 크고 주홍 같은 죄까지도 다 용서해 주신다. 사람에게 대한 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죄도 용서해 주신다. 시간적인 제약도 두지 않고 다 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멀리 옮기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시 103:12). 그러므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죄에 관한 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온전케 여김을 받게 되어진다(히 10:14).

 

 

 

칭의는 죄의 용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엡 2:3). 그리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부여받는다(롬 8:15). 하나님의 거룩한 기업도 얻게 된다(행 26:18).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도 한다(롬 8:17). 그리고 현재의 고난 이후에 올 영광에 이르게 된다(롬 8:30).

 

 

 

칭의와 고난

 

 

 

의롭다 함이 용서를 의미한다면,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죄로 인한 책임을 더 이상 짊어질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는 의인이 많다. 오히려 의롭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많은 고난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이러한 일 때문에 낙심을 하는 일 마저도 생겨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었다. 그는 죄인과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매우 다르게 여긴다. 죄인이 당하는 고난은 죄의 대가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벌이다. 그러나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내리는 징계이다. 당하는 고난이 겉으로는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심판주와 죄인,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자녀라 하고도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로 여겨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히 12:8). 잠언의 말씀도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고 했다(잠 3:12).

 

 

 

아버지가 내리는 징계의 채찍은 매우 가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들어있다.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선한 의도가 들어 있다. 그러기에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징계는 더욱 가혹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에 오히려 감사를 하게 된다. 형통할 때나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생활, 그래서 모든 일에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것이 의인의 생활이다(빌 4:14).

 

 

 

의인에게는 징계 이외에 연단으로 주어지는 고난이 있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더욱 정금같이 단련하시기 위해서 때때로 불같은 시험을 주기도 하신다(벧전 4:12). 의인은 이러한 연단의 고난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즐거움으로 그 고난에 참예하여 인내하고, 이것을 통해서 소망을 이루어야한다(롬 5:4). 욥이 보여 주었던 좋은 본을 따라야 한다.

 

 

 

칭의의 결과로서의 성화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진 사람은 이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의롭고 거룩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성도가 거룩해야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레 11:44). 우리는 이것을 성화(聖化)라고 한다. 그러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거룩하다는 말은 본래 구별 또는 분리되어짐을 가리킨다. 즉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세속적인 것들과 구별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거룩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생각이나 행동이나 상태가 죄와 구별이 되어 있는 것을 거룩하다고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 즉 세속적인 사람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것이 되어진 거룩한 사람이다. 이것은 칭의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성화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생각이나 행동이나 상태에서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화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젖을 먹던 어린아이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어른으로 성장을 하는 것처럼, 일평생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완성은 죽음 이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거룩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누구나가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사탄의 활동이 허용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예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아무리 성자라고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 할찌라도 온전히 거룩한 신이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남달리 거룩하다고 하여, 또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고 하여, 사람을 높이려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단호히 이단으로 정죄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지난 날보다 더 거룩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노력을 해야 한다. 성화의 과정은 우리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속도가 더딤을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다. 넘어지는 아픔을 맛보는 때도 있다. 뒷걸음질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전능하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진행이 된다. 따라서 결코 실패함이 없다.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성령께서는 기필코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 되도록 이루시고야 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빌 1:6).

 

 

 

성화의 과정은 옛 사람을 벗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옛 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믿기 이전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습관이나 취미나 관심 등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 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다(갈 2:20)는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옛사람을 벗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는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항상 쓴뿌리로 남아서 다시금 부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벗은 이후에는 새사람을 입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때에 새사람의 목표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칭의와 성화의 비교

 

 

 

성화는 많은 면에서 칭의와 대조가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의미에서, 몇 가지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칭의는 단회적이고 순간적이지만, 성화는 반복적이고 점진적이다. 칭의는 현재에 완전히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한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기초로 하지만, 성화는 그리스도를 목표로 한다. 칭의는 성부께서 법적으로 선언을 하시는 것이지만, 성화는 성령께서 실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키시는 것이다. 칭의는 믿는 자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믿는 자 안에서 이루어진다. 칭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주어지지만, 성화는 믿는 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칭의는 사죄와 영생으로 구성되지만, 성화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으로 구성된다.

 

 

 

성화의 수단

 

 

 

성령께서는 믿는 자의 성화를 위하여 효과적인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와 섭리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성화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색다른 음성이나 환상으로 나타나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그리고 그 기록된 말씀을 해석하거나 전파하는 말씀을 말한다. 믿는 자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 많이 들어야 한다. 많이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믿음에 굳게 설 수 없다. 또 믿음에 서지 않고는 거룩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의 거룩함을 위하여 세 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그리고 사람과 세상을 바로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죄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그 죄를 멀리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아가게 해준다. 셋째는 믿는 자가 이루어야 할 거룩한 삶의 대한 표준을 제시해준다.

 

 

 

성례도 성화의 효과적인 도구이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눈에 보이는 상징으로 표하고 인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한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결심을 새롭게 다짐한다. 하지만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할 때에라야 성화의 수단이 된다. 성례의 의식 그 자체만으로는 성화를 위한 성령의 역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성화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믿는 자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수단은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외식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성화는 기도생활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거룩의 정도가 더할수록 일용할 것을 구하기 보다, 더욱 거룩해지기를 간구한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맛본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더 찾게 되는 것과 같다. 맛을 모르는 사람은 먹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거룩해진 사람일수록 더욱 거룩해지기를 사모한다.

 

 

 

기도는 묵상도 포함한다. 묵상은 간절한 간구와 다르다. 묵상은 하나님 말씀의 뜻을 새겨 보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다. 자기의 지난 발자취와 장래의 나아갈 길을 하나님 안에서 그려보는 것일 수도 있다. 믿는 자는 이러한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옛모습을 발견하여 벗어버릴 수 있다. 새사람에 대한 설계를 그려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달려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많은 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야로 많이 묵상을 하는 사람은 참을 복이 있는 사람이다(시 1:6).

 

 

 

믿는 자의 성화를 위해서는 일반적이거나 특별한 섭리가 그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성 침공에 실패를 경험하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도들에게 역경을 만나게 하여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다. 또 날마다 여호와와 동행을 했던 애녹처럼, 형통함을 통하여서 더욱 의를 위해 살게도 하신다.  같이 길을 걷다가 벼락에 죽은 친구를 보고 주의 종이 되었던 루터처럼, 갑작스런 재난을 만나게 하여서 새 길을 걷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풀 한 포기를 보고도 거룩해질 수가 있다. 역사의 흥망성쇄를 보면서 거룩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전도자는 사람의 모든 경험들을 열거한 후에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기를 "일의 결국울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하였다(전 12:13).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서 담력을 가져야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기 때문이다. 다시는 정죄함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영생하며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닮아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답게 걸구한 삶이 ? 위한 푯대를 정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달음박질을 하여야 한다.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푯대를 정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달음박질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준비된 부르심의 상급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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