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12 15:50
[3]천년왕국 연구(소논문, 안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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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433  

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

 

‘세대주의’란 19세기에 출현한 (종말론적) 신학의 경향으로서 흔히 ‘세대주의 신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아일랜드계 영국인 존 넬슨 다비(J.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 주창되었다. 그는 변호사였으나 회심이후에 그의 직업을 포기하고 영국국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목회의 길에 접어든지 일 년 만에 수백 명의 가톨릭교회 신자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킬 만큼 유능한 목사였으나, 대주교의 교령에 반발하여 국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플리머스 형단’(Portsmouth Brethren)이라는 신령주의적 성경 연구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신앙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플리머스 교단의 대표로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의 예언에 기초한 독창적인 성경해석법을 완성시켜 나가던 중, 스코틀랜드에서 10세의 어린 성령 운동 지도라는 맥도날드 양의 예언(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되는 환상)을 전해 듣고서, 그녀의 휴거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대주의적 성경해석방식을 구체화하였다.

 

 

 

다비의 대환난 이전의 휴거설과 7년 대환난과 이후에 전개되는 천년왕국 사상이 주장될 때만해도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국의 스코필드(C.IScofield) 박사의 손질을 거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무디 성서신학교 출신으로 회중 교회 목사였는데, 다비의 세대주의적 종말 사상에 심취되어, 자신의 스코필드 관주성경(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1917)의 주석에 그 내용을 포함시켰다. 스코필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던 다비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스코필드의 주석 성경의 유명세와 더불어 삽시간에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어느듯 세대주의 종말론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성경적인 종말론 사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여기에 무디 성서학원의 아이언싸이드(Ironside)를 비롯해서, 달라스 신학교, 그레이스 신학교, 탈봇 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이론화 작업과 D.L 무디와 R.A. 토레이 같은 유명 기독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세기 이후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확고하고 보편적인 기독교 종말론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의 세계 선교화의 추세에 따라 한국에 들어 온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 출신의 선교사들이, 당시 기독교 종말론의 정설로 인식되던 세대주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자연스런 결과이었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초대교회 시절부터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깊이 관련되게 되었다. 초창기 한국 교회 지도자들 대부분이 세대주의 종말론 신봉론자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을 많이 강해한 길선주 목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초기 신학자들도 세대주의 종말론의 여자적 논리성에 매료되었는데, 한국 정통 보수주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박형룡 박사와 성서침례신학교 장두만 교수 같은 분들은, 세대주의 종말론주의에 확신을 가졌던 대표적인 신학자들이다. 그러나 해방이후 세대주의 신학(특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사상)은 불안한 사회 현실과 맞물리면서 보다 극단적인 종말론 형태로 변형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오용과 변질의 중심에서, 가장 큰(나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은 조용기 목사이다. 조 목사는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에 기초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기록된 순서대로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서 말세에 될 일의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다. 1992년에 한국은 물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일파의 극단적 종말론 운동은, 조 목사의 세대주의적 종말론 해석의 완곡한 적용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조 목사는 단일교회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산하 집단을 통해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한국적 토착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그 결과 다미선교회의 환상이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의 환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세대주의 신학의 강조점(특징)

 

세대주의 신학의 세계화가 있었던 만큼 세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해석이 있지만, 다비와 스코필드를 이 이론의 창시자로 볼 때, 두 사람이 주장한 범위 안에서 세대주의 신학의 포괄적인 신학적, 교리적 요점들을 찾을 수 있다. 이것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자적인 구약과 신약 해석에 근거하여 미래를 연속적인 시대의 도 식으로 묘사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계시록 4장은 교회의 휴거를 예언하며, 계6-10장까지는 전환난 3년 반을, 계 11-19장은 후환난 3년 반을 예언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후환난 시대의 마지막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며, 그리스도는 지상에 강림(둘째 강림)하여 천 년간 사단을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왕국을 건설한다. 그 후 사단은 잠시 놓였다가 백보좌 심판이 있으며, 신천신지(새 하늘과 새 땅)가 건설된다고 말한다. 특히 조 목사는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이러한 계시록의 문자적 성취 과정을 세대주의 종말론에 기초해서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스코필드의 일곱 세대 구분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스코필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7세대로 구분하였다 -- ① 낙원의 무죄세대 ② 홍수까지의 양심세대 ③ 인류 통치세대 ④ 아브라함의 소명으로 시작하는 약속세대 ⑤ 시내산에서 골고다까지의 율법세대 ⑥ 은혜세대(교회) ⑦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세대 이다. 세대주의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이 작용하며, 각 시대는 자연인에 대한 새로운 시험(test) 기간으로 생각될 수 있으며, 그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고 주장한다.

 

 

 

(3) 이스라엘과 교회는 다르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지연되었기에, 하나님이 교회의 우회로를 택했다. 교회세대는 결국 과거의 이스라엘과 미래의 이스라엘 사이에 놓인 중간단계이다. 그러나 주의 재림으로 교회 세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7년 대환난이 끝난 이후에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종말의 7년 대환난 이전에 ‘하늘로 들림’ 즉 ‘휴거’가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임하는 7년 대환난을 겪지 않게 된다고 한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중재림이다.

 

세대주의는 주님의 첫 번째 공중 재림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첫 번째 부활을 경험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휴거라고 한다. 주님의 첫째 공중재림은 심판의 재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데리러 오시는 재림이다.이후에 지상에서의 7년 대환난과 아마겟돈 전쟁이 있은 이후에, 주께서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7년 공중혼인잔치를 마치고 지상 강림하시는데, 이것이 둘째 재림이요, 마지막 ‘지상 재림’이라고 한다. 이때 비로소 주님은 모든 원수, 마귀를 멸하시고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심으로서 성도들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천년왕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한다. 이 지상재림은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궁극적인 심판과 구원의 재림이라고 말한다.

 

 

 

(5) 문자적 해석에 집착한다.

 

세대주의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부분의 숫자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계 7장과 14장에 언급된 ‘144,000’이라는 숫자 역시 주님의 첫 번째 공중 재림과 더불어 부활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혼인 잔치를 즐길 때, 지상에 남겨진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숫자이며, 이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하게 된다고 본다. 계 20장의 천년왕국도 문자적 해석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이후에 땅위에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천년왕국을 건설해서, 직접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외에도 7년 대환난의 7년과 심지어 계 21장의 새 예루살렘의 보석으로 묘사된 모습까지 문자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4)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세대주의 종말론 비판

 

세대주의 종말론에 대해 세부적으로 말씀드린다면, 한도 끝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몇 편의 논문으로도 모자를만큼 세대주의 신학은 복잡, 다양한 양상으로 진화(?)되어 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특징을 보더라도 세대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고 치명적인 신학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제 언급한 내용을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학적 견지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을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세대주의 종말론의 해석법의 문제

 

보통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① 문자적 해석 방법 ② 영해적(spiritualizing) 방법 ③ 문자적 - 영해적 방법이다. 이 세 가지 범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을 무조건 적용할 수 없지만, 대체로 개혁주의자들은 세 번째 해석 방법을 존중한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어떤 문학 형태로 고정할 수 없을 만큼, 저술 원인과 방식에서 그 어느 성경보다도 독특하다. 계시록은 요한이 하늘의 환상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탁을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천상적 경험이 지상의 문자적 형식으로서 기술된 것이다. 계시록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적 초월성을 함유한 동시에 세상에 내재된 관념으로 실제로 추론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계시록에 나타난 모든 진술을 한쪽 방향에서 고정된 채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예를 들어, 계시록 21 장에 언급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소위 천국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내가 본 천국“ 간증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는데, 과연 환상가운데 요한에게 보여 진 새 예루살렘이 진귀한 보석으로 치장된 새로운 문명 세계를 나타내는 것일까? 또한 계시록의 ’144,00‘ 명이라는 숫자는 새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특정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천년’은 과연 인류가 경험할 10세기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 관점에서의 초월성과 상징성과 묵시성을 지극히 인간적인 상식과 이성의 차원으로 끌어내린 억지스런 시도가 바로 세대주의 종말론의 특징인 동시에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계시록의 환상과 상징은, 구약과 신약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라는 구도 속에서 성경의 유기적 진술에 근거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2)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 해석하는 문제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 관계를 대립 혹은 단절로 설명하려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언약적 통일성 안에서 보는 개혁신학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옛 언약(출 20:1-17, 24장)은 이스라엘과만 맺은 것이 아니다. 이방인 개종자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언약이었다. 또한 새언약 역시 교회와만 맺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새 언약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것이지만, 이스라엘과 이방인과 구분 없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와 맺은 언약이다(히 8:10-11). 새 언약은 또한 옛 언약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옛 언약의 성취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유대인에게, 교회를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은 성도로 적용하는 이분법적 도식은, 언약의 통일성적 유효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오류이다.

 

 

 

 

(3) 이중 재림설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는 7년 환난을 전후로 있을 그리스도의 이중 예정을 기정사실로 여긴다. 그러니까 환난 전에 첫 번째 (공중) 재림이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교회와 성도들이 들림(휴거)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휴거되지 못하고 지구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불신 세계의 심판을 위해 대환난을 겪게 되고, 그 후에야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중 재림에 대해 말하는 곳을 찾을 수 없다존 T. 샤프트라는 사람은 그의 책 『세상을 진동시키는 종말사건』을 통해 교회와 성도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성경 구절을 단 한 구절이라도 찾는 사람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약 4만 명의 목회자들에게 통지를 했으나 상금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단회적 재림은 정통 교부들과 어거스틴으로부터 칼빈과 루터,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에게 공히 지지받고 있는 성경적인 견해이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적어도 19세기 세대주의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중 재림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7년 대환난을 전후로 각각의 다른 대상을 전제한 첫 휴거와 재림에 대한 견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는 말씀대로, 인격적이며, 육체적이며, 가시적이며, 갑작스러우며, 영광스러운 승리의 단 한 번의 재림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시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상의 종말, 죽은 자의 육신의 부활, 그리고 모든 악의 세력의 파멸과 마지막 심판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4)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 문제

 

계시록 20:1-3에 나와 있는 ‘천년동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셋 또는 네 가지 해석의 입장을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천년이 앞에 오면 전천년설이요, 뒤에 오면 후천년설이다.이 두 가지 견해는 천년의 위치는 정반대이지만, 천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 한편 무천년설은 형식상 후천년설에 속하지만 천년을 문자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중 전천년설은 두 가지로 구분되어지는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이다. 후자는 전자의 지나친 주장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자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재림을 단일 사건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진술을 문자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서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개의 천년설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또한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지하는 입장에 따라 다소 견해차가 있다.

 

 

 

기독교 3세기의 이레니우스, 저스틴, 터툴리안, 락탄티우스와 같은 정통 교부들은 전천년설을 지지하였다그러나 4세기에 들어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교회 시대를 천년왕국으로 보는 무천년설이 유행하였다어거스틴의 지지가운데 무천년설은 중세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날 즘, 로마 교회에 반대하는 신령주의적 급진적 개혁세력들에 의해 현세적 천년왕국 사상이 번성하였다. 칼빈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 대부분은 신학적으로는 어거스틴의 무천년설에 머물면서도 재세례파와 같은 극단적인 세력의 전천년주의 운동의 폐해를 지켜보면서, 천년왕국설을 개진하는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다가 17세기 청교들의 신대륙 이주 이후, 기독교 복음의 번성과 함께 낙관적인 후천년주의 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해서 프린스톤 3인의 핫지, 댑니, 워필드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던 신학자들에 의해 후천년설이 정통교회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와서 프랑스 혁명 시대 이후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전천년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사상과 천국에 대한 열정적인 기대가 맞물려 예언 집회가 유행하던 때에,다비와 플리머스 형제단을 통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나타났다. 불과 몇 십년만에 이 사상은 20세기의 복음주의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 있는 기독교적 종말론으로 자리 잡히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천년왕국설은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네 가지 입장 모두 나름대로의 성경과 현실에 대한 주장과 근거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배제하고, 세 가지 주장 중에 어느 것 하나가 유일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이전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왕성하게 이루어진 천년왕국에 대한 논의 과정을 지켜볼 때, 문자적-영해적 해석을 근간으로 한 무천년설이 가장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천년은 문자적 의미에서의 천년이 아니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순서들 역시 문자적인 예언이 역사적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천년왕국은 문자적 지상의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상과 천상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축복 상태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시간을 집약적으로 상징화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천년 동안 왕노릇하다’는 계 20:4 말씀 역시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재적 사건인 동시에, 현재의 성도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천상의 미래적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은 지상과 하늘에서 메시아 왕권이 발휘되는 이중적 개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지상과 천상을 통(通)하는 메시야의 ‘천년왕국’은 사단과 그의 대행자인 악의 세력들이 받을 아마겟돈 최후 전쟁과 더불어 임하게 될 주의 재림과 마지막 대심판으 끝이나고,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새 예루살렘’의 영원한 축복 상태가 완성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5) 144,000과 짐승의 표(666),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 문제

 

세대주의자들은 계 7장과 14장에 언급된 숫자 ‘144,000’을 민족적, 혈통적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함께 교회와 성도들이 휴거된 이후, 지상의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살아남은 자의 이스라엘(유대인)의 숫자가 144,000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전에 땅 위에 남아 있는 성도들 중에서 구원의 기회를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무리(유대인들)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요한계시록 말씀을 문자적으로 과도하게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144,000’은 하나님의 백성의 완전한 총수를 상징화한 숫자로 볼 수 있다. 즉 이 숫자는 12×12×1000으로서 약속시대의 구약의 백성(구약의 12지파)과 그 성취로서의 신약의 백성(신약의 12사도)에다 완전성과 무한성을 나타내는 숫자인 1000을 곱하여 나온 숫자로 말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딤후 2:19). 계시록 7장에서는 이들이 마지막 때의 환난과 사단의 시험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14장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 받을 최종적인 운명(영벌과 영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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