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1-13 17:38
[1]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756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Ⅰ. 서      론


  1.연구의 동기와 목적

  성령을 다루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우리는 모두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필요하며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요,신앙 생활에서도 큰 유익을 줄 뿐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데 유익을 준다.즉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령은 신자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고 지속이기 때문에 오늘날 신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주나 정확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므로 피상적인 지식 가운데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게다가 20세기에 밀어닥친 최대의 충격파인 오순절 운동 으로 인해서 한국교회는 기형적 이해와 논쟁과 혼란의 와중으로 들어가버렸다.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신자들은 많은 혼란에 부딪히고 있다.
  이런 성령에 대한 여러 해석은 무엇보다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기에 거기에 관해서 연구해 보고자 한다.

  2.연구의 방법 및 범위

  연구의 방법은 성경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연구하여 살펴보고자 한다.먼저 성경에 대한 이해를 한 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특히 오순절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의 상반된 견해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범위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으로 한정하며,성령의 사역이나 은사의 부분은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Ⅱ. 성령의 본질

  1.성령의 어의

  구약에서 성령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루아하'이다.뜻은 '공기의 움직임'인데 쓰임에 따라 바람,호흡,생명력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루아하'는 389회가 나오는데 그 중 113회 이상이 바람을 가리킨다. '루아하'가 바람의 뜻으로 사용될 때도 공기 자체가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쓰여지지 않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활동의 한 도구로서 쓰인다는 것이 구약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이 바람으로써 '루아하'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자기 임의성을 암시하며 하나님의 신비한 뜻과 목적에 의해서 움직이는 변혁하는 힘 또는 권세를 의미한다. 때로 '루아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도 표현됐다.이 때에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우상에게는 129회 그리고 하나님께 관련되어 사용된 횟수는 136회이다.
  종합해보면 하나님은 뛰어나게 '루아하'를 가지고 계신다.그는 숨을 쉬며,살아계시며,행동하는 하나님이다.하나님이 역사하는 곳에는 바람이 일어나며 '루아하'가 운동한다.
  신약에서 성경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프뉴마'이다.이것은 바람이 불어서 공기가 흐르는 것과 같이 숨을 흡입하고 내뿜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프뉴마'는 삶의 다이나믹한 원리,그리고 생명력과  활동의 중심으로서 인간의 역동적인 원리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조물에게 생명력을 수여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며 인간의 루아하나 프뉴마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2.성령의 속성

  (1) 성령의 인격성
  성령은 누구이신가? 우리가 사도행전 1:8의 귀절만 생각하면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으로서의 능력이요,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으로만 생각하게 된다.그렇지만 성령은 그 이상의 살아계신 인격자이시다.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이 많으시고 지혜로우시며 온유하시고 굳세시며 신실하셔서 우리가 참으로 신뢰하고 사랑할 만한 참 인격자이시다.
  성경에서 성령님을 말할 때 지시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인칭대명사를 썼으며 또한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하셨다.
  성령님을 인격으로 알고 믿어야 할 중요한 이유를 살펴보면,첫째 예배에 있어서 중요하다.둘째 성령의 바른 능력을 알기 위해서다.세째 인격자만이 인간의 사정을 알고 도와 줄 수 있다. 성령님을 인격으로 인식하는 것은 성령충만의 삶의 근윈이 된다.

  (2)성령의 신성
  성경은 성령의 인격성을 강조하는데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다.그와 동시에 성경은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의 신성을 확인하였다.
  먼저 하나님의 영은 창조와 섭리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잉태와 부활과 각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선물을 베푸는 일들을 감당하신다.
  그리고 성령은 신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면 그는 하나님의 신,주의 성령,주 여호와의 신,예수그리스도의 성령,주의 영 등으로 불리워졌다. 이 명칭들은 삼위일체와의 계시하고 있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한위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다.성령의 속성인 전지성,편재,전능,진리성이 그의 신성을 증거한다.

                      Ⅲ. 성 령 세 례

  1.성령 세례의 본질

  (1)성령세례의 언어적 의미
  성령세례란 무엇일까? 성경가운데 '성령세례'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한국어로 성령세례라는 말은 영어의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번역한 말이다.성령세례라 함은 성령에 의한 세례라는 뜻이 있는 동시에 성령안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어느 쪽을 택해도 큰 차이는 없으나 이 말의 요점은 신자가 성령에 의해서 영적으로 세례를 받는다 라는 의미이다.
  올바른 성령세례의 의미는 언약에 참가함을 말한다.고전12:13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했는데,이를 보면 성령의 세례는 불신자로서 회개하고 믿어 계약 백성의 단체,즉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말한다.

  (2)성령세례의 성경적 이해
  성령세례는 신구약을 통털어서 성렬셀케와 연관지을 수 있는 말이 7회 나타나고 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성구는 모두 세례요한의 예언적 언급이고(마3:11;막1:8;눅3:16;요1:33),한번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의 예언이며(행1:5),또 한 번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쓴 것이고(행11:16),마지막은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주었던 교훈에 포함되어 있다(고전12:13).
  ①복음서의 성령세례
  성령세례에 관한 연구는 세례요한의 말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왜냐하면 성령세례에 대하여 마3:11에 세례 요한이 최초로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막1:8,눅3:16,요1:33에 나타나 있다.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이말은 예수님의 사역이 세례의 사역이 될 것을 증거하며 오순절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문제되는 것은 불과 성령의 세례가 한세례인가 두세례인가 하는 것이다.본문을 자세히 관찰할 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는 말씀은 두 세례를 가리키기 보다는 한 세례의 두 국면을 가리키는 것이다.그 이유는 첫째,전치사가 성령과 불 둘 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둘째,세례를 받는 사람들인 '너희들'이 요한의 세례의 대상도 되고 예수님의 세례의 대상도 되는 같은 그룹의 사람들이다.그러므로 본문의 뜻은 두 세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세례의 두 국면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그것은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그 받은  자의 죄악이 그것은  불로써 무엇을 태워서 깨끗하게 함과 갔다.
  ②사도행전의 성령세례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성령 부어주심과 교회를 통하여 계속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누가복음은 예수의 지상사역면을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천상에서 계속 일하심을 보이고 있다.사도행전에서는 교회의 머리와 인도자이신 예수님의 새로운 시작을 뜻하고 있다.바로 성령세례의 사역인 것이다.
  먼저 행1:5을 보면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4-8의 강조점은 개인의 믿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점진적인 구원역사에 있음이 분명하다.오순절의 성령세례를 신자의 개인적인 여사의 한 부분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교회가 새로운 한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두번째는 행11:16에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고 했는데,사도행전 11장은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일어났던 일을 예루살렘 교회의 할례자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이다.그는 15절에서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성령이 고넬료 가정에 임하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여기에 처음 일어난 사건은 오순절 성령세례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다.
  ③고린도 전서에 나타난 성령세례
  고전12:13은 연구해 볼 때 이것은 단순한 오순절에 관한 언급일리는 없다.왜냐하면 바울도 고린도 사람들도 그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바울과 고린도 사람들은 다같이 그사건으로 말미암아 오는 축복에는 참여하게 되었다.그들은 성령을 받았다.
  고린도에 나타난 바울의 메세지의 의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되게 한는 것이다.바울은 이 한 절에서 "하나"라는 말을 세번씩이나 사용함으로써 고린도인들이 하나되어야 함을 좀더 깊이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한 성령으로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성령은 둘이 아니며 그의 직임도 두 가지가 아니다.
  둘째로,모든 크리스챤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세째로,이 구절에 나오는 성령세례는 큰 결합요소이지 결코 분리요소가 아니다.바울이 쓴 목적은 분리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성령의 세례는 몇몇 기독교인들이 누리는 부차적이고 결과적인 체험이 아니라,모든 사람이 누리는 최초적인 체험이라는 결론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근거들을 통해서 성경의 세례는 선물이며 또한 최초적인 축복이며 주를 믿는 자에게 보편적으로 임하는 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었다.

  2.중생과 성령세례와의 관계

  (1)중생과 성령세례를 다르게 보는 견해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려운 일중의 하나이다.특히 날카롭게 신학적 대립을 하고 있는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성령세례에 관한 학설들은 먼저 중생시기를 기점으로 양분됨을 알 수 있다.오순절주의자들과 일부 개혁주의자들이 중생과 성령세례를 다르게 보는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 오순절 전에 예수를 믿고 중생한 후 그 다음 단계로 성령세례를 받았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자.
  토레이는 가장 최초로 성령세례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정립한 학자이자 목회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에서 무엇보다 이 성령의 세례라는 한 개의 사실에 대하여 여러가지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되는 사실은 이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그 받는 자 스스로가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 수 잇는 뚜렷한 체험을 가진 것이다.이른바 중생과는 명확히 구분되고 분리되는 성령의 역사중의 하나이다.성령의 세례는 언제나 복음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과 항상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우리가 성령의 세례가 무엇을 위함인지 주목해 본다면 성령의 세례는 능력과 봉사의 능력을 부여해 준다"고 했다.
  영국의 오순절주의자 바삼은 "오순절 성령세례의 결과 방언이 나타나 여러 세대에서 기독교 부흥을 일으켰다"고 강조하면서 "성령세례는 중생회심에 따라오는 두번째 은혜의 역사"라고 했다.
  D.M.로이드 죤스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다.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고 하며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있다.그는 "성령세례가 중생할 때에 모든 사람에게 발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약성경을 부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또한 분명히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 되고 만다.중생은 무의식적이며 비체험적이다.그러나 성령세례는 근본적으로 체험적이다.사도행전 2장을 보라.그것은 체험적일 뿐만 아니라 너무 체험적이어서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그들에게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 오순절 계통의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도 "중생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체험이 아니라 분며히 다른 체험이다.중생과 성령세례의 체험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일정한 기간을 두고 분명히 체험할 수  있는 개별의 체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 주장하였다.
  성령세례에 대한 웨슬레안의 견해도 중생후 2차적 체험을 말하는 점에서 오순절 주의의 주장과 동일하다.웨슬레는 이차적인 성결의 체험을 성령세례라 부르는 것을 간접적으로 승인하였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오순절주의자들과 웨슬레안들은 예수님 제자들이 오순절 전에 이미 중생했다고 믿는 점과 사도행전 3장과 19장,그리고 중생과 성령세례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성령세례를 중생후 이차적으로 받는 어떤 특별한 체험으로 이해하고 성령세례의 영속성을 주장했다.
  이들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에는 장단점이 있다.장점으로서 그들은 현재 실현된 실재로서의 성령의 임재를 강조한다.성령의 실재가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서 큰 역할을 감당하며,성도들은 바로 성령안에 있으며 항상 성령에 의해 조종된다는 것이다. 단점으로는 첫째,성령의 세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과 동일시 생각한다.이 성령의 능력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체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둘째,성령세례를 받은 체험이 방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오순절주의자들의 성령세례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모든 성도들을 위한 것이고 성령의 세례는 두번째 축복으로써 회개 이후에 경험한다는 것이다.
  결국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의 문제점은 전체 성경보다 어떤 특별한 성구에 집착하는 것이다.또한 성령세례를 받는 조건을 제시함으로 성령을 예수믿는 것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노력으로 받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2)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하게 보는 견해
  중생과 성령세례를 다르게 보는 견해도 일리는 있다.하지만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견해가 전통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성경을 통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스토트는 성령의 세례를 성도가 거듭남에 있어서 최초적 은사요 보편적 은혜라고 하면서 물세례는 [구원의 상징]으로 그리고 성령의 세례는 그 [실체]라고 하였다.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을 터인데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은 성령세례의 최초성에 맞지 않는 예외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
  달라스 신학교 학장이며 조직신학 교수인 죤 월부어드 박사는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뚜렷한 특징이다.중생과 성령의 세례는 순간적이고 동시적인 역사이며 세례는 가끔 성령의 충만과 동일시되고 있으나 이것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
  박윤선 박사는 "사도행전 주석"에서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할 때에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성령세례라고 정의하였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요3:5의 말씀을 보면 중생시키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에 중생고 성령세례는 같은 사역이다. 고전12:3을 보면 이 말씀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이다.마태복음16장으 베드로의 고백도 마찬가지이다.이로 보건대 어떤 별스러운 은사가 없다 하더라도 '예수를 주시라' 믿는 믿음은 성령을 받은 가장 좋은 증거이다.
  중생과 성령세례를 다르게 보는 자들은 오순절의 성령체험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바르지 못하다.왜냐하면 이렇게 먼저 구원받고 나중에 성령세례 받은 것은 오순절 전후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이지 신약시대에 계속되는 일반적인 규범이 되는 사건은 아니기 때문이다.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중생 후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문제를 신약시대와 그 다음에 온 시대와를 구분해서 생각함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이 문제는 다음의 오순절 사건을 다룰 때 더 깊이 이야기하겠다.결론적으로 오순절 이전에 이미 중생한 제자들에 있어서는 중생과 성령세례가 단계적으로 구분될 수 있으나 오순절 이후 오늘의 우리에게는 구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즉 오순절 이후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중생한 신자는 모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475 교회성장 10대지침 세미나 요약[1] -명성훈- 웹섬김이 05-29 6774
2474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웹섬김이 10-25 6773
2473 교회의 직분 웹섬김이 09-05 6772
2472 (7)성경적 상담학(요약) 웹섬김이 12-14 6771
2471 목사에게 필요한 10가지 웹섬김이 02-24 6770
2470 [1]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이유 웹섬김이 06-04 6770
2469 교회개척의 실례[2] 웹섬김이 12-08 6767
2468 기독교 인성교육의 접근 웹섬김이 03-03 6767
2467 예배학 [2] 웹섬김이 05-03 6763
2466 예배학 소고 <박광현> 웹섬김이 02-19 6762
2465 비신자를 끌어들이는 교회의 10대 특징 웹섬김이 07-04 6762
2464 성경으로 살펴 본 유대인의 기원 웹섬김이 06-22 6761
2463 기독교 강요 1-3 웹섬김이 11-25 6757
2462 [1]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웹섬김이 01-13 6757
2461 한국교회 교인의 신앙현주소 웹섬김이 08-08 6751
2460 부흥하는 개척교회 10가지 특징 웹섬김이 08-16 6751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