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0-23 16:45
[3]성령론에 관한 간추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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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774  

5. 종교개혁시대

 

⦿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강의>(1516)에서 외적 말씀과 내적 말씀으로 구분하면서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외적인 문자적인 말씀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문자적인 율법 조문의 묵은 것과 영의 새로운 것을 예리하게 구분하는 성경해석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외적 사람과 내적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성령의 임재 여부에 있는 것으로 삼았다.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 사람은 육의 사람, 육신, 겉 사람일 뿐이다. 성령이 임재한 사람이 속사람이다. 속사람에게만 신적 속성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은 영과 육의 분리된 두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상처와 육체가 하나인 것 같이 하나이다.” "동일한 한 사람이 영인 동시에 육이다“. 루터는 인간을 언제나 죄인이고 늘 회개하면서 항상 의롭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가 회개케 하는 영의 사람으로 회복시키신다. ,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한다. 이 말씀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포함한다. 

루터가 서방교회의 전승을 따라 성령의 사역이 성부와 성자의 사역에 종속된 것이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강조점은 성력의 사역을 성부와 성자의 사역을 연결시키는데 두고 있다. 

  

⦿ 칼뱅

칼뱅은 성령의 신학자로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성령의 비인격적 힘이 아닌 고유한 인격성을 지닌 분으로 보고 있다. 성령은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을 통하여 그 자신의 신성을 입증한다. 성령 없이는 신적인 어떤 것도 실현되지 않는다. 그는 성령론은 구원론의 서론처럼 다루고 있다. 

종교개혁의 원동력은 성경의 자명성의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칼뱅은 교회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고 본 그는 성경의 권위의 토대 중에서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internum Spiritus Sancti)"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만 신적 권위를 지닌다. 성경은 성령의 학교가 된다. 이렇게 말씀과 성령이 결합되어 있다.

칼뱅은 그리스도 중심의 성령론과 성령론적 기독론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담지자가 되신다. 칼뱅신학의 중심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기류도 이 성령론과 밀착되어 있다. 인간 밖에서(갈보리) 이루어진 구속이 인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는 신비적 연합으로 나가야 한다. 이신칭의를 통한 구원의 확실성을 구원의 도덕성을 지향케 하는 역동적 성화의 주체로서 성령의 성화사역을 강조한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단계적 문제로 이해하지 않고 동시성으로 보았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성을 강조한 것이다. 칭의가 우리를 위해서 행한 것이라면, 성화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신다. 성령은 연합의 끈이 된다. 

  

종교개혁자들의 성령관은 청교도 신앙으로 이어졌다.

  

⦿ 토마스 뮌처(Thomas Műntzer)

토마스 뮌처는 종교개혁 시대에 독일의 급진 종교 개혁가, 묵시적 설교자로 활동했다. 그는 재침례파 지도자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으로 반 기독교적 권력에 압제 당하는 민중을 해방시켜 신정 정치를 구현하려고 농민 봉기를 이끌었다. 그는 성령을 말씀 위에 두었다. 성령운동을 중심으로 기독교 국가 건설을 추진했다.

  

⦿ 존 웨슬리(John Wesley)

웨슬리의 신학은 성령을 중심으로 하는 성령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성령체험의 믿음은 18세기의 영국을 개혁하고, 나아가서는 미국의 영적 대 각성운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1738 5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가에서 극적인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올더스가에 있는 신도회에 갔다. 그 곳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 45분 경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이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 한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내 것도 제거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들었다.”

웨슬리는 이 경험을 성령의 두 번째 축복이라고 불렀다. 이 두 번째 부여는 사역을 위한 능력 부여와 성화의 완전성에 이르는 길로 인식하였다. 

웨슬리는 성화를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보았다. 성령은 믿음과 성화의 근원, 구원의 실행자 또는 성취자로 보았다. 성령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의 신격성과 인격성을 신봉하였다. 그는 성령의 증거에 강조점을 두었다. 성령은 인간 안에서 직접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거하고, 그의 열매로 나타나게 하는 간접적 증거를 하신다. 이 두 증거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녔다. 웨슬리는 성령에 의한 내적 변화와 생활의 변화, 더 나가서는 완전을 강조하였다.

  

7. 20세기 오순절 운동

  

19세기 성결운동은 20세기 오순절 운동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찰스 팔함(Charles Parham)과 윌리암 시모아(William Seymour)의 주도로 제1파인 고전적 오순절주의가 발전되었다. 고전적 오순절주의 운동은 아주사 거리(Azusa Street)를 중심으로 한 방언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시무어는 성령세례를 중생 이후에 봉사와 증거를 위한 능력을 부여하는 결정적 체험으로 보았다. 이것은 웨슬리 운동의 연속성으로 보인다. 성령세례가 두 번째 경험이냐 아니면 중생과 성화 이후의 세 번째 단계로 보느냐에 관한 시각 차이가 있다. 포스퀘어 복음(Foursquare Gospel) 측은 성화를 칭의와 더불어 예수의 십자가 사역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면서도 그 점진성을 인정하며 성령세례를 두 번째 단계로 받아들인다. 이들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령세례와 중생을 구분하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포스퀘어의 기본적인 교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분”(Baptizer with the Holy Spirit), “의사이며 치료자”(Physician and Healer), “다시 오시는 왕”(Second Coming King)이시다으로 본다

오순절 운동의 제2파는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 또는 신 오순절주의이다. 성령세례의 증거를 방언으로 보는 제1파의 한계점을 넘어 초교파적으로 일너난 영적인 삶에 대한 관심과 활력을 불어 넣는 운동으로 다양한 은사들을 강조한다. 이 은사 운동에서는 방언, 신유(기적) 및 예언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 은사운동에서는 사도 시대 이후 단회적 오순절을 강조한 전통적인 은사 중단론 기류를 배격하고 은사 게속론을 펼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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