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2 21:09
[2]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하시는가?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8,159  
3) 작정과 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작정하셨다고 할 때에, 흔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몇 가지 궁금한 문제가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작정하셨다면, 죄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일까? 하나님이 죄를 작정하시지 않았다면, 이 땅에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시지 않은 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은 단지 로봇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하는 것 등이다. 그 중에 가장 우선되는 것이 죄의 문제이다.
 
  역사에는 하나님이 죄를 생겨나게 만드신 원인자라고 주장을 한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을 만휼히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불의나 죄와 상관이 없으시기 때문이다(롬 9:14).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요일 1:5). 하나님의 생각과 활동은 항상 선하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선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악한 수단을 동원하시지 않는다.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반드시 선한 방법을 사용하시고 악에 대해서는 호리라도 남김없이 그 책임을 물으신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한다. 선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선이라야 참된 선이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에게서 나왔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이, 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바로 죄이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우주 안에 온갖 악이 뒤따랐다. 그러면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이 잘못인가?
 
 본래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최대의 영광을 돌려 드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필연적이고 기계적인 찬양보다는 자발적인 찬양이 훨씬 더 영광스럽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에게는 오직 선한 의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되어졌다. 이것이 죄이다. 그러므로 죄의 원인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완전하심과 관계없이, 피조물에게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제자로 부르셨다. 예수님은 그를 특별히 신임하여 훈련시키셨고 금전관리까지 맡기셨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신임을 저버리고 오히려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팔아넘겼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하였던 그의 결과는 예수님의 부르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악한 행위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자유의지가 악용되는 것을 막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전능하시다고 하여 죄도 범하실 수가 있다거나, 스스로의 모순을 범하실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의 자유로운 사용을 강제로 막는 것은, 자유의지를 주신 의도와 모순이 된다. 자유의지는 그것의 자유로운 사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예 자유의지를 주시지 않았더라면, 죄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자유의지는 피조물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에 앞서서, 피조물의 창조가 먼저 고려될 필요가 있다.
 
  왜 하나님은 창조를 계획하셨는가? 이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사 60:21)이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창조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목적의 가장 효과적인 달성을 위한 수단은, 바로 자유로운 의지로 자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려고 작정하신 이상, 그 창조 목적에 적합하도록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허용하신 죄를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방법으로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죄악된 피조물은 그러한 하나님의 선하심마저도 악용하여 죄를 범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 작정과 인간의 책임 

리에게는 때때로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작정이 다른 곳에 있으면, 내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수고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작정이라면 당연히 얻어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기 도취에 빠지거나, 책임 전가에 급급할 우려가 없지 않다. 하나님의 작정이 세밀한 모든 부분까지를 포함한다는 사실이, 과연 인간의 나태함과 책임회피의 구실로 이용될 수 있는가?
 
 모든 일은 궁극적인 원인, 즉 제1 원인이신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은 제2 원인들의 활용을 포함한다. 여기서 제2 원인이란, 주로 자연법칙이나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의 노력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이나 인간의 노력을 수단으로 사용하여서, 자신의 계획이 달성되어지도록 작정을 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이나 인간의 노력을 초월하거나, 거스려서 일하시도록 작정하신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우리 편에서 볼 때,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그래서 작정은, 체념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숙명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의 작정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음식과 영양을 섭취하는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음식은 수고하여 일하는 자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 독을 마시면 죽는다. 여기서 음식이나 음식을 위한 수고나 독을 마시는 것은 제2 원인에 해당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2 원인이 되는 땀흘려 일하기를 게을리 하는 자에게는 먹지도 말라고 하셨다(살후 3: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쓸 것을 미리 알고 계신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그것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얻게 하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도록 하신다(마 7:7). 제2 원인을 활용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주시려고 작정하신 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로, 믿음과 천국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선물을 제공하심에서, 힘써 침노하는 자(마 11:12), 그리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가, 천국을 차지하도록 제2 원인을 활용하신다(딤후 4:7).
 
  또 그 선물의 전달과정에 있어서도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힘써 외치는 전도자의 수고와, 그 복음에 대한 진지한 들음이라는 제2 원인의 활용을 통해서 믿음이 생겨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에게 최선의 노력을 요구한다.
 
 로마로 향하던 사도 바울의 예를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폭풍으로 파선을 당한 276명 모두를 구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사도에게 보이셨다(행 27:24). 그러나 그 목적은 배불리 먹고, 안심을 하고, 밀을 버려 배를 가볍게 하고, 선원들의 경험을 동원하여 의논을 하고, 닻을 끊고, 키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해안까지 헤엄을 치는 등의 온갖 제2 원인으로서의 수단들이 동원됨으로써 이루어졌다(행 27:36∼44).
 
  또 민족의 위기를 앞에 두었던 모르드개의 경우를 보자.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리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는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는 말로 에스더의 역할을 촉구했다. 그리고 에스더는 밤낮 삼일의 금식과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감과 지혜로 왕을 접대하는 등 제2 원인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민족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우리는 대부분 매사에 주도면밀하게 작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작정을 별 어려움이 없이 인정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작정을 확인하고 더욱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그러나 죄나 사람의 책임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거나 오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하나님되시게 해야 한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소망 중에 전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겸손함으로 힘써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475 [4]목회자가 알아야 할 신학의 역사 요약 웹섬김이 10-22 10107
2474 [5]목회자가 알아야 할 신학의 역사 요약 웹섬김이 10-22 9986
2473 [6]목회자가 알아야 할 신학의 역사 요약 웹섬김이 10-22 6876
2472 [1]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하시는가? 웹섬김이 10-22 7073
2471 [2]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하시는가? 웹섬김이 10-22 8160
2470 다니엘 시대의 왕들 웹섬김이 10-28 10574
2469 [1]성령=은사(Gift)=성령의 은사=영적 은사(Spirit… 웹섬김이 10-28 9591
2468 [2]성령=은사(Gift)=성령의 은사=영적 은사(Spirit… 웹섬김이 10-28 6477
2467 카톨릭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포함시킨 이유 웹섬김이 10-28 12271
2466 예언이란--? 웹섬김이 10-31 8072
2465 [1]유대인들의 9가지 힘 웹섬김이 11-04 7683
2464 [2]유대인들의 9가지 힘 웹섬김이 11-04 7649
2463 [3]유대인들의 9가지 힘 웹섬김이 11-04 7558
2462 [4]유대인들의 9가지 힘 웹섬김이 11-04 6978
2461 [5]유대인들의 9가지 힘 웹섬김이 11-04 6618
2460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해 웹섬김이 11-04 7809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