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22 20:18
[5]목회자가 알아야 할 신학의 역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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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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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현대(1750 - 현재)

1. 유럽에서 발생한 종교적 무관성

종교전쟁이 끝나면서 유럽은 루터교회, 가톨릭교회, 정교회, 개신교회로 분할 되었다. 로크는 종교란 공적인 것과 무관한 사적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접근방식은 동시에 종교적 관용을 천명했고, 그것은 종교가 순수하게 사적인 것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는 계몽주의로 인해 고무되었는데, 계몽주의는 동일한 궁극적 실체를 상이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이 이성을 통해 알려질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2. 북미의 기독교 : 대각성과 미국혁명

기독교 신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1730년대 메시추세츠 주 노샘프턴시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발흥한 “대부흥”운동에서 유래했다. 이 부흥은 미국 기독교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정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순회설교가들의 역할이 정립되었고, 기성교회의 성직자의 권위를 잠식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혁명의 뿌리가 미국의 새로운 민중적 종교화 영국의 기성종교간의 점증하는 종교적 소외현상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각성의 세대 중에 식민지는 반란에 휩싸이게 된다.

 

3. 유럽의 분수령 : 프랑스 혁명

프랑스 혁명은 유럽의 종교적 반감의 정점으로 꼽히곤 한다. 프랑스 사회의 전통적 두 기둥(왕정과 교회)에 개혁이 필요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혁명의 종교정책은 이웃나라에도 확산되었다. 이로서 기독교 신앙과 제도는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치하에 교황과의 관계는 정립되었고, 비록 19세기 내내 교회와 국가간의 실제적 갈등은 경감되지 않았지만, 교회는 적어도 잃어버린 영향력과 명성과 성직권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4. 계몽운동(Enlightenment)

계몽운동은 서유럽과 북미의 기독교에 심각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초래했다. 계몽운동은 기독교의 지적 신빙성 그 자체가 여러 전선에서 큰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계몽운동에서 개방적 입장을 취한 것은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아니라 신교신학이었다는 것이 유의할 점이다.

1) 기독교 신학에 대한 계몽주의의 비판 : 개관

전통적 기독교에 대한 계몽운동의 비판은 인간 이성 만능이라는 원리에 의지한다. 본래 계몽운동은 유럽과 미국의 현상이었고 숫자적으로 가장 중요한 형태의 종교인 기독교 문화 안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전례 없이 강한 비판적 검증에 시달렸던 것은 이슬람이나 힌두교 경전이 아니라 기독교 경전이었다.

2) 기독교 신학에 대한 계몽주의의 비판 : 개별 주제

(1) 기적의 가능성 - 우주의 기계적 규칙성과 질서가 새로이 강조됨으로써(뉴턴) 신약의 이적사건 보도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적적 증거를 주장하는 다른 종교도 똑같이 회의적인 계몽주의적 비판의 대사이 되었다. 우연히 기독교는 계몽운동이 전개된 문화적 환경의 주도적 종교라는 이유로 각별히 주목을 받은 것뿐이었다.

(2) 계시개념 - 계몽주의는 초자연적 계시라는 개념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3) 원죄교리 - 볼테르나 루소는 원죄 교리를 인간의 사회적 점차적 발전을 저해하고 방임적 태도를 유발하는 것으로 비판했다.

(4) 악의 문제 - 악의 존재는 기독교 신앙 자체의 신빙성과 전일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5) 경전의 위상과 해석 - 이신론 안에서 경전의 비판은 시작되었고, 독일의 계몽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여타 문학작품과 같이 본문 분석과 본문 해석방식에서 개방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전개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과 의미 - 이신론이나 독일의 계몽주의는 모두 역사적 예수와 그에 대한 신약의 해석 사이에 심각한 편차가 있는 명제를 전개했다. 특히 “대속이론”은 점차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의 죽음을 제한했고, 부활을 부정했다.

 

5.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신학운동

1)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전통적 기독교 교리와 계몽주의의 진부한 합리적 도덕 모두를 혐오했다. 합리주의는 경험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결핍된 것으로 보았다. 슐라이어마허는 합리주의에 대한 환상이 점차 깨어지고 인간의 “느낌”을 새로 인식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그는 이러한 느낌에 대한 관심을 고양했다. 그는 기독교는 느낌 혹은 “자의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2) 마르크스주의(Marxism)- 유물론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이다. 인간존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물질생산과 더불어 시작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종교 일반은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라는 사상을 전개했다. 즉 경제적 소외가 제거된다면 종교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종교가 소외된 인민들의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 존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은 적당하게 수정된 상태로 현대 기독교 신학에 유입되었다. 남미 해방신학은 이를 적당하게 수용한다.

3) 프로테스탄트 자유주의(Liberal Protestantism)- 현대에 기독교가 지성적 선택권을 유지하려면 신앙의 재구성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신교 자유주의가 가장 진보적으로 영향력 있게 전개된 곳은 폴 틸리히의 저술이다. 그는 “상호연계”라는 용어로 현대신학의 과제를 인간문화와 기독교 신앙 간의 대화를 수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보편적인 종교경험이라는 개념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일시적인 문화적 발전을 과다하게 강조하는 면이 있으며, 당대의 문화에 수용적 자세를 취하려고 기독교 교리의 독특한 면모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4) 모더니즘(Modernism)- 이는 전통적 기독교 교리, 기독론과 구속론에 관련된 교리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과격한 성서비평에 긍정적인 입장을 옹호하며 신앙의 신학적 측면보다는 윤리적 측면을 강조한다.

5) 신정통주의(Neo-Orthodoxy)- 일차대전은 슐라이어마허와 관련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환멸을 경험했다. 이에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몰락한 인간 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교회 교의학) 그의 가장 독특한 면모는 “하나님 말씀의 신학”인데, 신학이란 인간상황이나 인간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그 내적 본성상 대답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다. 신정통주의는 1930년대 북미 신학계를 풍미했는데 특히 당대의 신교 자유주의의 낙관적 전제에 의거한 사회상을 비판하는 라이놀드 니버 등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6) 로마 가톨릭주의 - 로마 가톨리의 주요한 갱신은 이차대전 이후에 그 징후를 보였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부와 중세의 가톨릭 유산을 되찾는 것이었다.

7) 동방 정교회주의(Eastern Orthodoxy)-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인해 러시아 정교회의 다양한 신학과 영성을 재구축하는 길이 본토에서 열리긴 했지만, 러시아 디아스포라는 이 분야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남으로 정교회 내의 신학적 전통을 갱신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8) 페미니즘(여권신장주의 : Feminism)-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위해 매진하는 범세계적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기성종교가 여성을 2등급 인간으로 취급한다고 인식한다는 점 때문에 기독교와 마찰을 빚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기독교 사상에 기여한 공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신학도식에 도전했다는 점일 것이다.

(1) 남성적 신개념(The maleness of God) - 기독교 전통에서 하나님을 가리킬 때 시종 남성형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페미니즘 작가들의 비판 표적이 되었다. 여성형 인칭대명사의 사용은 남성적 하나님 역할 상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얼마간 교정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2) 죄의 본성(The nature of sin) - 죄의 개념은 본질상 남성지향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개념은 죄를 긍지의 결핍, 야망의 결핍, 자기사랑의 결핍으로 체험하는 여성들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3) 그리스도의 위격(The persons of Christ) - 기독론은 기독교 안의 만연한 성차별의 최종근거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즘 작가들은 그리스도가 남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처럼 그의 본성상 부수적인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9)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 포스트모더니즘은 확고한 토대없이 어떤 문화적 감각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다원성과 다양성을 선호하며 모든 인간적 사유의 근원적인 “상황성”을 통해 사고하려고 한다.

(1) 성경해석 - 1980년대에 해롤드 블룸이나 프랭크 커모드 같은 주도적 문학비평가들은 성경해석 영역에 돌입해 “제도적으로 합법화 되거나” “학적으로 존중된” 성경해석이라는 생각에 도전했다.

(2) 조직신학 - 포스트모더니즘은 태생적으로 “체계화”라는 개념에 적대적이며, “의미”를 파악했다는 주장에 반감을 보인다.

10) 흑인신학(Black Theology) - 흑인신학은 특히 1960,70년대 미국에서 맹위를 떨친 운동으로서 검은 경험의 실체가 신학적 레벨로 대변되었다는 것을 확증하려는 것이었다. 이 운동의 기원은 미국 역사 특유의 흑인의식의 고조에 소급된다. 제임스H.콘은 해방을 위한 흑인의 투쟁에 관여한 하나님이라는 핵심개념에 호소했다.

11) 후기자유주의(Postliberalism)- 이 운동의 토대는 한스 프라이어가 개발한 설화적 접근방식과 경험과 사유를 산출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문화와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해석학파에 있다.

12) 복음주의(evangelicalism) - 복음주의는 성경의 권위와 자족성,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속의 유일성, 개별적 회심의 필요성, 복음주의의 필요성, 정당성, 긴박성 등으로 요약된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복음주의의 중요성이 대중에게 새로이 부각되었다. 1976년 미국은 복음주의 진영에서 조직적 정치활동에 점차 깊이 관여하는 양상을 띠었다.

13) 오순절 카리스마 운동(Pentecostal and Charismatic Movements)- 이들은 현대 기독교가 신약, 특히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의 능력을 재발견,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에 영적은사를 재발견하는 일은 “오순절 운동”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분명 카리스마적 성향을 보이는 첫 번째 현대적 운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성령의 임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나 경험은 성령세례의 본질에 관한 일련의 논쟁을 야기시켰으며, 다양한 “영적은사” 중 어느 것이 개인적 신앙과 영성, 전체 교회의 건덕상 더 중요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6. 개발도상국의 기독교 성장

1) 라틴 아메리카 :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 - 이 용어는 압제적 상황과 관련된 신학이라면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실상 이 용어는 1960, 70년대의 남미라는 토양에서 유래한 아주 독특한 형태의 신학을 지칭하는데 쓰인다. 페루의 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해방신학」에서 이 운동을 이끌게 될 독특한 주제를 도입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와 피압박자를 지향한다. 또한 실천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한다. 이 점에서 해방신학이 마르크스 이론에 의지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해방신학은 구원의 본질에도 깊이 관여한다. 해방신학은 종종 구원을 해방과 동일시하는 듯이 보이며 구원의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다.

2) 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발전 중 가장 흥미 있는 것이 바로 중국과 한국의 경우일 것이다. 1865년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륙선교회를 설립했다. 1911년 중화민국의 건립은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주었지만, 1949년 인민공화국 이후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선교사들은 이 땅을 떠나야 했다. 1979년 문화혁명이 종식되고 삼자애국운동의(자조, 자율, 자전) “공식”교회가 출현했다.

한국의 상황은 이 지역의 기독교 이래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1883년 이전의 기독교 인구는 극소수였다. 이차대전 이후 해방과 더불어 기독교는 양적으로 큰 성장을 누리게 되었다. 현재 전 인구의 30퍼센트가 기독교도이며 장로교회가 쥬류를 이룬다.

3) 아프리카- 기독교는 기원 첫 세기에 북아프리카에 정착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의 생각과 삶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7세기 아랍의 침략으로 기독교는 대부분 소멸했다. 16세기 이후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지로서 중요하게 되었다. 현재 아프리카 독립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배경 하에 전통적 유산을 간직하려는 입장의 교회를 폭넓게 규정한 것이다. 이들 교회는 때때로 카리스마적 취향을 보이는데, 영적치유, 축귀술, 꿈해석, 예언적 지도 등을 강조하는 특색이 있다.

4) 남태평양 -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은 복음화를 수행할 믿음직한 수단, 즉 선교기지 건립을 확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선교단은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었는데, 결국 이 지역의 선교사역의 대부분을 책임진 선교기지가 되었다.

5) 인도- 전통적으로 사도 도마가 첫 세기에 인도의 마르토마 교회를 창건했다고 믿는다. 18세기 영국의 선교회나 개인들은 저항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초기단계에는 기독교를 자기 고유의 세계관에 동화시키는 힌두교도를 통한 신학도 등장했다.(라모훈 로이) 20세기 후반에 들어 점차 국가적 주체성을 강조하게 된다. 독립 후 기독교는 다른 이념들과 경쟁하게 되었다.(간디와 마르크스주의)

최근 인도에선 다른 현안이 부각되었는데, 그 중 특기할 것이 기독교 복음과 가난한 자들과의 관계였다. 1947년 10월 27일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몇몇 기독교 대교파가 “남인도교회”로 알려진 한 단체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7. 사례 연구

1) 역사적 예수 연구

(1)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원적 탐구 -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와 교회가 예수를 해석하고 있는 것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를 전제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는 단순히 종교적 교사이며, “신앙의 그리스도”는 이 단순한 인물에 대한 초대교회 저자들의 오해였다는 것이다.

(2) 1890 - 1910년에 제기되었던 탐구에 대한 비평

① 묵시문학적 비평(The apocalyptic critique) - 요한네스 바이스와 슈바이처가 주장한 이 비평은 종말론으로 크게 경도된 예수의 신국선포가 그 개념에 대한 칸트식 자유주의적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나사렛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에 대한 이러한 철저 종말론적 해석은 예수상을 아주 낯설게 묵시문학적이며 비세계적인 인물로 묘사하며 그의 희망이나 기대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낳았다.

② 회의주의적 비평(skeptical critique) - 브레데에 의하면 마가복음 기자는 역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 창조적으로 역사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③ 교리적 비평(dogmatic critique) - 마틴 켈러는 “역사적 예수”는 신앙과는 무관하고 “신앙의 그리스도”가 신앙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캘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신자들을 위해서 곧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는 설교된 그리스도”이다.

(3) 역사로부터의 후퇴 :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 불트만에게 있어서 십자가와 부활은 실제로 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앙에 의해서 성스러운 사건들로 구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케리그마”는 역사적인 사실의 문제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 청중들의 결단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4)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탐구 - 에벨링은 불트만의 그리스도론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1953년 10월에 케제만의 강연으로 시작된다. 이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옛 탐구”가 신약성서에 표현된 그리스도상을 의심하는데 집중되어 있다면, 새로운 탐구는 예수 그 자신의 선포와 예수에 대한 교회의 선포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함으서, 그것을 통합하여 정리하고 있다.

(5) 제 3의 탐구 - “제 3의 탐구”는 예수의 치유와 축귀에 초점을 두고서 예수의 선교가 지니고 있는 특징과 예수의 목표를 이해하는데 치중했다.

2) 구원의 근거와 성격

(1) 기독론과 속죄론의 관계 - 현대에 이르러 신학적 주제가 기독론과 구속론으로 첨예하게 나누어졌지만, 기독론과 구속론은 점차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해석

① 희생(Sacrifice) - 희생의 이미지에 대한 사용은 1945년 이후로 눈에 띄게 약하게 퍼져나가게 되었는데, 특히 독일 신학에서 아주 미미했다. 아돌프 히틀러 이후로 희생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연상과 더불어서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가르침과 선포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② 승리하신 그리스도(Christus Victor) - 계몽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승리의 주제는 신학적인 지지를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점차적으로 구시대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여겨졌다.

(3) 합법적 접근(legal approaches)

① 대표성(representation) - 십자가에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는 그의 언약의 백성들을 대표했고, 그들에게서 대표성을 갖게 되었다.

② 참여(participation) - 신앙을 통해서 신자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에게 참여한다.

③ 대속(substitution) - 죄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야 마땅하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

(4) 모범적 접근들 - 십자가의 의미에 관한 신약성서적 이해의 중심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남이 분명하게 서있다.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등장과 함께 점차 비평적 접근들이 초월적인 요소들을 통합한 속죄의 이론들에 합쳐지게 되었다.

(5) 십자가 : 본질적인가 예증적인가?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지를 보여주는가? 또한 십자가는 처음으로 구원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계몽주의는 십자가를 시간을 초월한 진리의 역사적 상징으로 취급했다.

(6) 구원의 특성

① 신성화(Deification) - 현대 동방정교회 신학에서 일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② 하나님 앞에서 의(Rightousness before God) - 18세기 루터 정통주의

③ 그리스도와의 합일(Union with God) - 그리스도와의 합일은 개혁시기의 루터와 칼뱅에 의해 발전되었다.

④ 도덕적 완전(Moral perfection) - 칸트는 “도덕적 완전의 이상”과 관련하여 예수의 역할에 대해 토론했고, 이것을 윤리적 가치의 영역으로 이해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개념에 연결지었다.

⑤ 하나님에 대한 자각(Consciousness of God) -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의 순수한 이성적이거나 도덕적인 개념에 반대하면서, 인간 구원은 신 의식의 지배라는 관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⑥ 진정한 인간성(Genuine humanity) - 많은 학자들이 구원은 진정한 인간성의 재발견과 회복의 조건이라는 용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⑦ 정치적 해방(Political liberation) -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구원개념의 정치적 관점을 강조했고, 그 주제에 대한 성서적(특히 구약) 접근방식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3) 부활에 대한 논쟁

(1) 계몽주의 : 부활은 없었던 사건 - 계몽주의는 18세기의 부활에 대한 강한 회의적인 태도에 엄청난 발전을 주도했다. 레싱은 자신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해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부활을 있지도 않았던 사건을 오해한 것으로, 예수의 도덕적 의미에 큰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2) 슈트라우스 : 부활은 신화이다 - 신화는 복음서 기자들의 사회적 상황과 문화적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이다. 이는 그들의 신실성의 시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복음서 기록 당시의 전근대적 관점을 인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3) 루돌프 불트만 : 부활은 제자들이 경험한 사건이다 - 불트만은 과학시대에 기적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슈트라우스의 기본적인 확신을 공감했다. 그는 부활을 “아주 순수하고 단순한 신화적 사건”으로 간주했다. 부활은 제자들의 주관적인 경험 속에서 일어났던 어떤 것이지, 역사의 공적 무대에서 일어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부활절 신앙은 “케리그마” 속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4) 칼 바르트(Karl Bart, 1886-1968) : 부활은 비평적 접근을 넘어선 역사적 사건이다 바르트는 부활을 역사적 탐구에 문을 열어놓는 것으로 간주하여 처음 신자들의 사적인 내적 경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의 공적인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바르트는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잘 보존된 역사적 보도를 전수”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신앙에 대한 결단”에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5)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928년 출생) : 부활은 비평적 탐구에 개방된 역사적 사건이다 - 역사의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선취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신약성서의 계시적 요소들을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해석할 해석학적 규준이나 그 틀로서 취급했다.

4) 20세기 사상에 나타나 있는 삼위일체론

(1) 칼 바르트 -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을 계시의 “정합적 설명”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계시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통해서 그 자신을 계시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의 형식을 이끌고 있는 계시적 틀을 세우고 있다.

(2)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 - "경륜적인“ 삼위일체론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계시하는 방식을 우리가 경험함으로서 알 수 있고, ”내재적인“ 삼위일체론은 신성 속에 있는 하나님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우리가 경험함으로써 알 수 있다. 즉 삼위일체로 나타난 그 하나님은 삼위일체이다. 하나님이 자기계시 속에 알려진 방식은 하나님이 내적으로 존재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3) 로버트 젠슨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자들이 알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적당한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젠슨은 형이상학적 사고에서 하나님의 인격적 개념을 회복했다.

5) 교회론에 대한 20세기 토론

(1) 주제에 대한 다양성 :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또한 공교회가 있다.

① 그리스도는 성만찬 속에 현존한다 - 이 기억될 만한 경구는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해 교회론을 숙고하는데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드 뤼박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라너는 교회는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하며, 쉴레비크는 그리스도가 원시적 성체로서 간주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②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서 현존한다 - 교회의 성향에 대한 개신교적 이해의 주된 주제는 말씀과 설교와 성만찬으로부터 초래되는 그리스도의 현현에 초점을 맞춘다. 칼뱅에게 있어서 말씀의 선포와 올바른 성만찬의 집행은 그리스도의 현존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교회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③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현존한다 - 보프는 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구조적인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실체에 의거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식”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결과인데, 이 점을 확증하면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의 성령의 발현이라는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지울라스의 경우에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지지만 성령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2) 교회에 대한 제2 바티칸 공의회의 견해

① 교제로서의 교회 - 교제의 규제적 강화는 이제 신자와 하나님간의 교제라는 더 근본적인 관념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었고, 교회의 삶속에서 살아남았다.

②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 교회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이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강력한 성서적인 사고방식이다.

③ 카리스마적인 공동체로서의 교회 - Lumen Genyium(이방의 빛)이란 슬로건은 교회적 삶에서 카리스마적인 은사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인식시켰다.

6) 과정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속성- 과정신학의 사상은 세상의 모든 과정 안에서 설득이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신의 전능을 재정의 하고자 한다. 과정신학을 비평하는 학자들은, 신의 초월성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포기한 것으로 보았고, 신의 초월성도 과정 속에 있는 존재로 간조하여 영속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이해했다.

주목할만한 내용은 신의 전능에 대한 고전적인 교리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정신학은 전통적인 신의 능력을 제한하고, 세상 속에서 고통과 악의 기원문제를 밝힌다. 신은 지배할 능력을 버리고 설득할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악에 대한 책임이 없다. 하나님에게 부여된 형이상학적 제약 때문에 하나님은 사물의 자연적 질서에 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7)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 대한 페니니스트의 비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왜냐하면 성이란 창조질서의 특징이기 때문이며, 창조질서는 창조자 되신 하나님 자신의 양극성과 직접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남성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깨우려고 노력하면서 학자들은, “어머니” 혹은 “친구”로서의 하나님 개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하나님의 “남성성”에 대한 문제를 넘어섰다.

(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용어는 성의 구별이 없는 “창조자, 구원자, 유지자”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나사렛 예수는 남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성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고 생각되어, 여성에 대한 잠재적 성향에 대해 논쟁되고 있다.

(3) 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은 특별히 남성들에 의해 지지를 받은 권력과 통치라는 범위 안에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견해는 최소한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 대해서 숙고할만한 중요한 사항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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