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2-23 18:20
[2]시간 순서로 재구성한 예수님의 33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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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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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고민의 날, 비애의 날

(마 26:17-35, 막 14:12-31, 눅 22:7-38, 요 13:1-17:26)

 


목요일은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고민하신 날이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될 정도로 기도하시며 십자가를 예비하셨다.

이날 저녁을 가리켜 성경은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마 26:17, 막 14:12, 눅 22:7). 본래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칠일을 지키게 되는데 ‘무교절의 첫날’은 유월절을 포함하여 무교절 전(全) 기간의 첫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런데 주후 29년의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은 하루 앞당겨져야 했다. 주후 29년의 안식일은 ‘큰 날’이이기 때문이다(요 19:31). 여기 ‘큰 날’(μεγάληἡἡμέρα ἐκείνουτοῦ σαββάτο)은 안식일 이면서 유월절이 겹치는 날으로, ‘큰 날’에는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서 전 날 지키고 다음 날을 안식일로 지켰다. 즉 본래 유월절인 1월 14일은 토요일로 ‘큰 날인 안식일’로 지키고,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 13일

금요일에 지킨 것이다. 따라서 12일 목요일은 유월절을 예비하기 위해 집에 누룩을 제거하고 유월절 만찬으로 무교병과 어린 양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셨다(눅 22:14-15). 그러나 마태복음 26:26, 누가복음 22:19를 볼 때 제자들은 무교 병(헬라어:ἄζυμος아쥐모스)을 전혀 준비하지 않 았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대신 유교병(헬라어:ἄρτος아르토스)을 드셔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요 13:1-11).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수난이 있을 것을 가르치시면서, 서로 섬길 것을 종용하셨다(요 13:12-20). 이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심령에 민망하여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판다” 말씀하시며 “떡 한 조각을 찍어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자”라고 하셨다(요 13:21).이것은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무지하여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가룟 유다 자신만큼은 그 떡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때라도 가룟 유다가 그 떡을 받지 않고 눈물로 회개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파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곧 사단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갔고(요 13:27), 유다는 그 떡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가고 말았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나누어지고 잔을 사례하고 주시면서 최후의 성만찬을 행하셨다(마 26:26-30, 막 14:22-26, 눅 22:14-23, 요 13:21-30).

성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최후의 고별설교를 하셨다. 이 설교는 요한복음 13:31-16:33에 걸쳐 길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새 계명으로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을 때 ‘다른 보혜사’를 주셔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전에 가르쳤던 모든 일을 기억하여 생각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가룟 유다만이 예수를 팔러 떠나 이 마지막 설교의 자리에서 빠져있었다.

식사와 고별설교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나아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시던 중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다(마 26:31-35, 막 14:27-31, 눅 22-31-34). 특별히 누가복음 22:31-32을 볼 때,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제자들을 청구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주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약 오후 11시 정도에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하셨다. 감람산 중턱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던 곳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여덟 제자에게는 산 아래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동산으로 올라가셨다. 동산에 이르신 후 세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는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기름을 짜 는 기계’라는 뜻의 아람어 ‘가트셰마네’(ַגת ְשָמֵני)에 서 유래)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의 의미처럼 예수님께서는 육체와 마음, 몸과 영혼까지 참기름 짜듯이 인류의 죄를 위해서 쥐어짜내며 ‘하나님께 바싹 붙어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는 기도’(막 14:32-44, 눅 22:44)를 드리셨다. 누가복음 22:44에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4중으로 강조하면서, 그 결과 예수님의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6:39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얼굴을 땅에 비벼가면서 이마 가죽이 다 벗겨져 피가 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런 눈물 어린 기도 속에서, 주님과 함께 기도의 방벽을 세워야 할 세 제자는 잠들어 있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자정쯤 기도를 마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느니 인자가 죄인의 팔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에게 붙잡히셨다.

 

금요일: 수난의 날

(마 26:36-27:61, 막 14:32-15:47, 눅 22:39-23:56, 요 18:1-40)

 


고난주간 금요일은 영원한 우리의 구주이시며 창조자 되시는 영광의 주님께서 제자들뿐 아니라 만인간에게 외면당하시고 버림 당하시며 수난 당하신 날이다.

오전 1시경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의 집으로 결박 당해 끌려가셨다. 안나스는 본래 주후 6년부터 9년간 대제사장직을 맡았다가 주후 15년에 임기를 마쳤지만(59대)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사위 요셉 가야바(63대)의 임기 동안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제사장이라고 불리웠다. 이때 체포의 현장에서 도망갔다가 멀찌감치 뒤를 따라 온 베드로는 첫 번째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했다(요 18:15-18).

약 한 시간 가량 지나 오전 2시경 예수님께서는 대 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다. 다시 멀찌감치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는 가야바의 집에서 두 번째로 욕하며 예수님을 부인하였고(눅 22:58, 요 18:25), 약 한 시간이 지나서는 세 번째로 욕하고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하였다(눅 22:59-62, 요 18:26-27). 그런데 세 번째 부인할 때 닭이 두 번 우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기도하지 않고 있다가 주님을 부인한 자신을 보고는 대성통곡했다(막 14:72, 눅 22:61). 베드로의 부인(否認)은 사단이 청구한 것이었다(참고-욥1:9-12). 그러나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에 베드로는 지난 날을 회개하고 주 앞에 돌아올 수 있었다(눅 22:31-32). 오전 3시경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다. 누가복음 22:66에서는 산헤드린 공회가 시작된 상황을 ‘날이 새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시간개념으로 새벽이 시작되는 오전 3시를 가리킨다. 당시 유다는 로마의 속주였으나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와 무관한 종교적 분쟁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라는 공회의 질문에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대답하셨고(눅 22:66-71), 산헤드린 공회는 오전 4시 40분경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다(마 27:1, 막 15:1, 눅 22:66, 71).

오전 5시경,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1차 심문을 받으셨다(마 27:11-14 막 15:1-5, 눅 23:1-5, 요 18:28-38).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가 없음을 알고는 종교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자 오전 5시 30분경에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 왕에게 예수님을 보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의 이적을 마치 요술처럼 생각하며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예수님께서 거절하시자 오전 6시경 군병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고 빛나는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눅 23:8-11). 이때 로마 군병들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질하며 누가 때렸는지를 맞춰보라고 희롱하고는(눅 22:64), 수건을 벗겨 수염을 붙잡고 흔들어댔다(사 50:6-9).

새벽 6시 30분경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부과하지 않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오!”라는 군중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은 빌라도는 결국 유대인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했고(마 27:26, 막 15:15, 눅 23:24-25, 요 19:12-16),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 선고 전에 쇠붙이가 붙어 있는 채찍으로 예수님의 온몸을 때렸다(마 27:26). 예수님의 등에는 골이 패여 이미 죽을 지경이 되셨다(시 129:3).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부터 골고다 언덕까지는 약 800m 정도의 길이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골고다를 오르시면서 14번이나 넘어지셨다. 오늘날 그 길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전 9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골고다 십자가 위에 달리셨다(마 27:33-38, 막 15:20-27, 눅 23:33, 요 19:17-29). 십자가 나무를 적신 피가 지구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골고다 언덕을 적셨다. 바로 그 순간 그 핏속에 들어 있는 참 생명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사망으로 사망을 삼키고 승리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세 말씀(눅 23:34, 43, 26-27)을 하셨으며, 정오에 해가 빛을 잃어버린 뒤 오후 3시 직전에 다시 네 말씀을 하셨다(마 27:46, 15:34, 요 19:28, 30, 눅 23:46).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은 실로 예수님 전 생애의 압축이요, 인류 구속을 완성시키는 말씀이었다.

구약에 예언된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두 저녁의 사 이’(출 12:6 – ‘해질 때’: 벤 하아르바임, ), ֵבין ָהַעְרָבִי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셨다(마 27:57-61, 막 15:42-43, 눅 23:50-54, 요 19:38).

그러나 사망은 절대로 예수님을 잡아둘 수 없다. 3일 뒤 주일 새벽 미명 영광의 시간에 주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 후의 행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다. 그리고 피범벅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시신을 정성스레 내리고 세마포로감싸 자신을 위해 예비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다(마 27:57-61, 막 15:42-47, 눅23:50-54, 요 19:38-42, 참고-사 53:9). 니고데모 역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장사에 함께했다(요19:39).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 차례에 걸쳐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낙담한 채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제사장 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빌라도를 찾아가 3일간 무덤을 굳게 지켜달라고 부탁했다(마 27:62-66).

예수님의 무덤에서의 3일은 결코 사람들처럼 쉬는 기간이 아니었다. 도리어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계셨던 3일 동안에도 쉬지 않으시고 노아때 수장되었던 영혼들에게 영으로 찾아가셔서 전도하시며 일하셨다(벧전 3:18-20).

 

1)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막 16:9, 요 20:11-18)

주일 새벽, 예루살렘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이른 시간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다른 한 여인은(눅 24:10)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은 굴러 옮겨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으며, 갈릴리에 계실 때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 만에 부활하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일렀다(눅 24:5-7). 이에 여인들은 사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다.

여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가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요 20:1-2, 눅 24:9-10). 다른 제자들은 여자들의 말을 허탄하게 여겨서 믿지 않았지만(눅 24:11),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가 무덤 문이 열리고 세마포가 개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기이한 일로 여길 뿐,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눅 24:12, 요 20:9).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여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우느냐” 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오해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며 그녀를 부르셨고, 그때서야 예수님인 줄 알아본 마리아는 “랍오니여”라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말씀하셨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전했으나 제자들은 믿지 못했다.

 ‘랍오니’는 히브리어 ‘라부니’로 ‘나의 주인, 나의 선생님’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10:51에서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선생님이여’라고 부를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2) 세 여인들에게 나타나심(마 28:8-10)

주일 아침, 예루살렘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다른 한 여인은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지 못했던 무서움과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큰 기쁨 가운데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달려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평안하뇨” 인사하시자, 여자들은 그분이 바로 주님임을 깨닫고 그 발을 붙잡고 경배를 올렸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라고 전할 것을 말씀하셨다.

새벽 미명에 큰 지진과 함께 천사가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리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갔던 파수꾼들은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다(마 28:11). 이에 종교지도자들은 회의를 열어 파수꾼들에게 큰 돈을 주면서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도적질한 것이다”라고 거짓말할 것을 가르쳤다(마 28:12-15).

 

3)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심(눅 24:34, 고전 15:5)

주일 오전, 예루살렘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까지 달려와 무덤 문이 열리고 세마포만 남아있는 것을 보았지만, 부활을 믿지 못하고 집에 돌아갔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친히 찾아가셔서 부활하심을 가르치시고 앞으로 될 일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4)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눅 24:13-35, 막 16:12-13)

주일 오후 - 저녁, 엠마오 도상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예수 일당으로 몰려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여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두 제자는 여인들의 증거를 받았지만 믿지 못하고 안식일이 끝나자 무교절을 지키지 않고 엠마오로 향했다. 이때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모세로부터 선지자의 모든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쓴 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자세히 밝혀주셨다. 두 제자는 처음에는 ‘저분이 말씀을 참 은혜롭게 하는구나’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음식 잡수시며 떡에 축사하여 주실 때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을 깨달았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느꼈다. 이들은 그 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다른 제자들에게 고하였지만, 나머지 제자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5) 도마를 제외한 열 사도와 따르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눅24:36-49;요20:19-25)

주일 저녁, 예루살렘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언들을 믿지 않고 공포에 사로잡혀 한 곳에 모여 숨어 있었다(요 20:19). 이에 예수님께서는 닫힌 문을 열고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금 나타나신 주님은 영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생각하자, 예수님께서는 친히못 자국 난 손과 발, 창에 찔린 옆구리를 여주시며 부활은 영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육간에 온전한 부활임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큰 기쁨 앞에서 ‘이건 꿈이다’ 생각하며 오히려 믿지 못했다(눅 24:4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시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이 영육간의 온전한 부활임을 보여주시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가르치시며 성경을 깨닫게 하셨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주시며 죄 사함의 권세를 주셨다.

 

6) 도마를 포함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막 16:14-18, 요 20:26-29)

부활 후 8일째, 예루살렘

 

열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았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요 20:24). 그는 다른 제자들의 증거를 믿지 않고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며 장담했다.

요한복음 20:26의 ‘여드레를 지나서’는 무교절 기간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제자들이 모인 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날 도마는 열 제자와 함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의심 많은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손을 만져보고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라고 가르치셨다.

 

7)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에게 보이심(요 21:1-14)

새벽, 갈릴리 호수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났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예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던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을 억하지도 못했다. 이에금새 목표를 상실해버린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은 본업인 어부로 돌아갔고, 도마와 나다나엘, 다른 제자 둘이 동참했다.

이들은 다 같이 고기를 잡기 위해 밤에 배를 타고 나갔다. 당시 갈릴리의 어부들이 배를 타고 사용했던 그물은 세마포를 엮어 만들었기에, 물고기가 그물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야지만 어업 활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날이 새어가기 시작하기까지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을 수 없었다. 이때 바닷가에 서 있던 한 분이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말씀했고,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요한은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 이야기했고, 베드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제자들이 뭍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숯불을 피우시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두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생선과 떡을 먹으면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이적을 회상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하며 깨달았을 것이다.

 여기 ‘153’이라는 숫자는 7번째소수인 17의 9배수이다. 17은 성경에서 ‘충만’을 의미하는 만수(滿數) ‘10’과 ‘완전함’을 의미하는 ‘7’이 더해진 수로서 완전한 최후 승리를 상징하는 수로 나타난다. 자세한 내용은 참평안 2014년 2월호 바이블 다큐 “성도의 승리의 수 17”을 참고.

 


8) 갈릴리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마 28:16-20, 막 16:15-17)

갈릴리의 한 산

 


아마 예수님을 만난 일곱 제자는 나머지 네 제자를 찾아 불러모았을 것이다. 열한 제자는 드디어 이전에 명령하셨던 갈릴리의 한 산으로 모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경배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여전히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며 사명을 주셨다.

 

9)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심(고전 15:6)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여러 사람에게 보이시고 표적도 보이셨다. 그리고 오백여 형제가 모여있을 때 그 자리에 찾아가셨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태반이나(공동번역, 바른번역, 표준새번역에서는 ‘대다수는’으로 번역) 살아 있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수많은 증인들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인 진실임을 논증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오순절에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것은120명이었다는 것이다(행 1:12-15). 아마도 나머지는 끝까지 믿음에 서지 못하고 의심하거나 박해가 두려워서 자리를 떠나고 말았을것이다. 그들은 부활 사건의 역사적인 증인은 되었지만, 그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되지 못한 것이다.

 

10)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심(고전 15:7)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유대주의자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개종하여 제자가 되었고(행 1:14),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그 후 야고보는 율법에 충실한 생활, 행함 있는 믿음을 행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가르쳤다.

 

11) 40일 후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승천(행 1:4-11, 눅 24:50)

안식일, 베다니 앞(감람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따르는 무리에게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4:46-49, 행 1:4-5).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가까운 베다니 앞까지 무리들을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하신 후, 무리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우셨다.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살기등등하게 잡아가던 사울에게 열두 번째로 보이셨다(행 9:1-9).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12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수많은 사람이 목격한 역사적인 진실이며 성경대로 죽으시고 살아나신 사건임을 선포한다. 주님의 부활은 거짓과 악은 지고 의롭고 선한 것이 이긴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사셨기에 오늘날 그를 믿는 성도들도 부활에 동참한다(요 14:19, 롬 8:11). 부활의 진리는 실로 명확하고 확실하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요, 교회의 근거로서 사망의 무덤을 철폐하고 무덤이 없는 생명의 세계를 여는 언약 성취의 순간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다(롬 14:9). 예수 믿고 무덤에서 잠자는 자들에게나, 오늘 살아 있는 우리에게나 예수님만이 오직 주가 되신다.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천군 천사와 함께 이 땅에 오실 때, 죽은 자는 주 안에서 부활하고 산 자는 변화 승천하여 구속사가 완성되고 주와 재회하는 영광의 날이 올 것이다(살전 4:16-17, 고전 15: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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