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17 11:21
[13]반드시 읽어야 할 설교학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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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644  
2.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 분석 
대한예수교장로회 역대 총회장 설교 집에 수록된 설교 중에 교리적인 
설교는 극소수이다. 다만 한석진 목사의 "죄인을 선대하시는 예수" 이인 
식 목사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3가지 목적", 이자익 목사의 "인자 되 
신 예수" 등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딱딱한 교리보다 생활면에 치 
중하며 당시 유교적 영향을 받은 국민에게 기독교의 윤리를 내세워서 대 
중의 호응을 받아 복음전파에 적응을 꾀하고자 하며, 둘째는 당시의 설 
교자들이 신학적 기초보다는 실제적인 면에 적응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본다. 초기 한국교회는 아직 어린 교회로서 신학을 논하고 교리를 설명 
하는 설교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에 비 
추어진 신학적인 문제를 간략하게 지적해 보고자 한다. 
a. 설교에 나타난 신관 
< 한국기독교 100주년 대설교 전집(1)> (1884-1919)에 나타난 설교 
의 목차를 보면 141편의 설교 중에 하나님에 대한 설교는 고작 4편에 불 
과하다. 
길선주 목사의 설교 중에 신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로마서 8:26-30 
을 읽고 "상제(하나님)의 직조 기계"란 제목에서 하나님의 무소부재 불능 
하심을 전제한 것인데 전개의 방법은 풍유적(Allegorical)이었다. 
즉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직조기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다. 흥미롭게 했지 
만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과 예정과 섭리, 그리고 구원의 서정을찾 
아볼 수 없고 지나친 풍유적 해석으로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다. 
또한 평양신학교 4회 졸업 (1911) 한 이기범 목사는 창세기 1:1-19을 중 
심해서 "하나님의 신이 물위에 운동하심"이라는 제목 하에 
(1) 하나님의 신은 물위에 창조의 운동이시라 
(2) 물위에 중생의 운동이시라. 
(3) 물위에 생명의 운동이시라 
(4) 물위에 구원의 운동이시라 
(5) 하나님의 신은 물위에 연합적 운동이시라는 대지로 설명했으나 여기 
서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다. 
이에 반해서 감리교의 방훈 목사의 설교를 보면 상당히 체계적인 교리가 
나타난 있다. 즉, 요한복음 3:6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면서 다 
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를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하 
나님의 창조로 인해 이 세계는 그의 보호아래 지배를 받아 오는 까닭입니 
다, 하나님의 애호 아래 우리의 지구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 
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냐 하면 그는 독생자를 보내 주실 만 
치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성서는 밝혀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즉, 하나님 
의 세계 창조와 통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밝힌 셈이다. 

b. 설교에 나타난 기독관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 중에 기독관을 언급한 설교는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구속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과 인격을 따라야 할 것을 강조했댜. 
당시 장로교회 목사인 김관식은 그의 설교 요한복음 15:13에 대한 "철저 
한 애"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고아의 사 
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현명한 사랑으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생명을 바치실 것을 1년 전부터 각오하시고 태연히 동하 
지 않는 태도로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철저한 
사랑을 행하려 할 때에 부지불식간에 너무 정이 적다. 너무 동정이 결핍하 
다는 말을 듣게 될런지 모릅니다. 
당시의 설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님이란 표현을 많이 쓰고 있 
다는 것이 특색이다. 당시 원산남 감리교회의 신석구 목사는 "기독교와 사 
명"(마16:16-20)이란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첫째가 무엇이냐 하 
면 그리스도 올시다. 그리스도가 토대가 된 그리스도 교회의 둘째가 무엇 
이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믿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 하 
는 넷째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서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이가 있습 
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동생이 도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형제가 된다는 말인 모양인데 그렇게 자연스럽 
지는 못한 것 같다. 이는 기독론을 바로 취급하는 논법이 아니다. 예수님 
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와 우리는 
한 형제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이명직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이미 1920년대에 신학이나 설교 
에 있어서 잘못된 기독관을 설교하는 자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 
히 예수를 사회 복음주의자와 같이 취급한 사람들의 설교도 많았다는 것 
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명직 목사의 설교는 바른 기독관을 제시한 설교 
라 본다. 
이자익 목사도 "선한 목자 예수님"에서 
(1) 양을 잘 인도하심 
(2) 양을 잘 보호하심 
(3) 양을 지극히 사랑하심이라고 설교했다. 
평양신학교 10회 졸업생(1917) 이인식 목사의 "예수님이 땅에 오신 세가 
지 목적"(막10:35-45)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1) 환전한 사람을 보이실려고 (45절) 
(2) 섬기려고 (45절중반) 
(3) 속죄하여 주려고 (45절 하반)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당시 설교에 있어서 기독관은 비교적 건전했으나 일부에서는 예수를 도덕 
적 표적으로 이해하고 설교하기도 했다. 

c.설교에 타나나 성령관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에 나타난 성령관 1907년에 일어난 대부흥 운동 
과 무관하지 않다. 
1) 1903년 겨울에 감리교 선교사들이 원산에서 한 주간 기도회와 성경공 
부를 가졌다. 여기에 참석한 하이디(R.A.Hardie)목사는 기도하는 중에 성 
령을 체험하고 동료선교사들에게 자신의 실패와 그 원인을 고백하고 간증 
하기를 "나는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한 증거를 가지고서 나의 게으름과 교만 
과 마음의 완악함을 자복한바 강한 죄 의식과 회개의 체험을 비로소 깨닫 
게 되었다.고 하였다. 
2) 1904년 봄에 원산에는 장. 감. 침의 모든 선교사들이 창전교회에 모여 
연합 사경회를 열었다. 그 집회에서 특히 로브(A.F.Robb) 선교사가 큰 체 
험을 얻게 되었다. 
3) 1906년 여름에 하이디 (R.A.Hardie)목사가 체험을 얻게 되었다. 
4) 1906년에는 뉴욕의 죤슨(Howard Agnew Johnson)목사가 한국을 방문 
하여 모두 성령 받기를 더욱 갈망하였다. 죤슨 목사가 청중을 향해서 성 
령받기를 원하는 자는 일어서라고 설교하자 길선주가 벌떡 일어나 단번에 
응답했다. 
5) 1907년 1월 6일부터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하여 선교사들과 평양 
시내 온 신도들이 함께 모이는 대 사경회가 열렸다. 10일간 계속되는 대 
사경회에서 수 천명에게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다. 온 회중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했다. 
6) 1907년 대부흥 이후 장감 연합 부흥회의 강사였던 김상준 목사는 야 
고보 2:7을 읽고 "추수의 비를 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옛날 교회 창 
립시 곧 오순절에 성신 강림하심은 농사 시작할 때에 춘우같고, 금일 시 
대 종말에 성신을 부어 주심은 농사를 마칠 때에 내리는 추우와 같습니다. 
이 말일을 당한 오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고대할 것은 이 추우올시다"라 
고 했는데 퍽 흥미 있는 비유이다. 오순절의 성령을 봄비로 오늘의 성령을 
가을 비로 마지막 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신성학교 창설자이며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인 양전백 목사는 " 늘 
계시는 보혜사"(요14:15-17)에서 '보혜사'를 헬라 방언의 원의 대로 " 겉 
으로 부른자"(Parakletos)라 하니 변호사란 말에서 왔다는 뜻을 지적하고 
설교한 것은 깊은 연구가 있었다. 당시에 아직도 성령관에 대한 신학적인 
깊은 설명이 없던 때에 이런 설교는 매우 드문 것이며 보혜사 성령의 역 
할과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도 김익두 목사의 경우 사도행전 1:1-5에서 "성령의 세례"란 설교에서 불 
의 성령, 비둘기의 성령, 물의 성령, 바람의 성령, 기름의 성령이라 하여 
성령의 역할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설교 결론부에는 그의 성령관의 중 
요한 것을 제시해 주었다. 
d. 설교에 나타난 교회관 
1900년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가졌던 교회관은 그들의 설교에서 발 
견할 수 있다. 성결교의 이명직 목사의 설교 중 "전투의 교회"에서 혹 이 
교회를 오해하며 일종의 정신 수양의 장소로 여기나니 이것은 큰 잘못이 
다. 교회는 한 개인의 정신수양이나 나무아미타불이나 부르는 사원이 아 
니다. 죄악에서 실제로 구원받은 무리 곧 그리스도의 정병이 모여 싸움을 
준비한 곳이다. 당시에 정신 수양의 장소로서 또는 독립 운동의 장소로만 
생각하는 자들이 많던 때에 그는 전투적 교회로서의 모습을 설교했다. 
한편 길선주 목사는 "참교회"(엡1:21-23) 란 설교에서 세상에 교회가 많 
다. 그러나 거짓 교회이다. 참 교회가 오직 하나 있으니 곧 예수 교회이다. 
(1) 교회의 위치 -어디든지 
(2) 주장자 - 그리스도의 예수 
(3) 교회의 책임자 - 그리스도의 지체 
(4) 얼마나 왕성할까 - 우주에 충만이라고 했다. 
그의 교회관은 정통 교회의 그것과 다름없다. 특히 교회의 보편성과 통일 
성을 지적한 것이 눈에 띤다. 특히 "신령한 교회"설교에서 신령한 교회를 
조직하는 5대 요소로서 성신, 권능, 땀, 눈물, 피를 들었다. 신령 교회의 
직분으로서 기도와 전도 세상에 충만할 것을 들었다. 
3. 수난기 한국교회의 설교 

a. 길선주 (1869,3.15-1935.11.26) 
길선주 목사의 성격을 살펴보면 얼른 베드로를 연상할 수 있을 만 
치 급격한 성격이면서 쾌활하고 용감하여 요한처럼 심오하고 자애한 면 
이 있다고 한다. 그는 성경 중에서 요한복음, 요한1서 요한계시록을 가 
장 많이 애독하였다. 길목사는 한국교회의 오순절이라 할 수 있는 1907 
년 대 부흥 운동의 주역이었다. 그에게 신학교는 하나님과 만남의 도장 
이었다. 매일 한시간 이상의 기도와 매주 3일간 금식기도와 매년 1주일 
간의 금식 기도를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의 설교로 2,200명 결 
신자를 얻고, 성령의 충만한 기도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이상한 주인과 괴이한 주인"의 제목으로 부흥설교에서 온 회중은 통 
회자복과 죄인임을 회개하자 3일째에 방은덕이란 순포(경찰)가 음흉한 생 
각으로 범죄자를 잡으려고 참석했다가 자신의 얼굴을 들 수 없고 다른 사 
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장내는 고요하고 강단에는 이상한 빛이 
비치었다. 이때 길목사의 설교 내용은 지옥을 취하랴, 천당을 택하랴? 
물질을 도둑한 사람은 잡을 수 있지만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죄는 다스 
릴 수 없다고 했다. 이 설교를 들은 방은덕은 그의 마음이 터질 것 같았 
고 마음의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아이고 하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하고 딩굴었다. 이때 방은 일어서면서 선생 
님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길목사는 통회하는 사람들의 심령 
을 향해서 새로운 소망과 안위를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은 
총의 진리를 성신의 감화로 가르치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적인 설 
교가 된다는 것을 설교의 신조로 하였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의 설교를 매개로 하여 일어난 성령 
의 불길은 전국 각처에 번져 나갔다. 길선주 목사의 설교 방법론은 (1) 
본문 선택 (2) 인도 (3) 제목 (4) 설교의 본론 (5) 결론이다. 
첫째 - 말할 제목이 본문을 택할 것 
둘째 - 뜻이 명백한 본문을 택할 것 
셋째 - 간단한 본문을 택할 것 
넷째 - 교회의 형편에 적합한 본문을 택할 것 
당시 장대현 교회의 장로였던 고영수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길목사 
님은 특히 설교에 능하셔서 모든 신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설교 
때면 우선 자신이 열렬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여 분위기를 이끌어 가곤했 
디. 그 설교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신앙적이어서 얼마 전 <강대보감>이 
란 설교 집을 출판한 일도 있다. '강도의 뜻'을 강도라 하는 것은 경우와 
형편을 따라 하나님의 신령한 이치를 가지고 성경 말씀으로 기초를 세우 
고 구속하는 뜻으로 인심을 감동하도록 권면하는 유법적 강설"이라 했다. 
강도주의를 죄의 더러움과 마귀의 권세 가운데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하 
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로 인도함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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