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17 11:20
[12]반드시 읽어야 할 설교학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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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136  
Ⅱ 한국교회 설교사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축복 받은 배후에는 비판의 여지도 많겠지만 한국교회의 지난날에 주의 사역 자들이 눈물과 땀과 피를 바친 흔적과 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선교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것은 1885년 4월 5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H.C.Appenzeller) 부부가 인천에 상륙함으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선교의 초기 선교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설교하였을까?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으로 만족할 만한 설교를 할 수 없었겠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퍽 단순하고 복음적 이었음을 후일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감리교 <신학세계>(1916), 장로교의 평양 신학교에서 출판된 <신학지남>(1918), 그리고 성결교회<활천> (1924) 등에 설교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특히 1929년대에는 한국교회의 최초의 설교집이 출판 되었는데 이 설교집은 당시 대영성서 공회의 사찰이었던 양익환에 의해 편집되었다. 

(1) 설교의 특징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의 특징은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제목설교(Topical Sermon)의 방법을 그대로 도입하였다. 오히 
려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본문 설교에 가까운 것에 반해서 선교사 
들이 제목 설교를 한 이유는 그들이 언어를 충분히 구사하지 못해서 이 
해를 쉽게 하는 방법과 너무 딱딱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예화를 많이 도입하였다. 
이런 제목 설교의 방향은 한국교회 강단 100년 역사에 끼친 영향이 실로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제목 설교의 경향은 설교에 많은 예화를 사용하게 됨으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예화를 많이 권장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제시한 예화 내용들은 역사적 사건들로서 당시 미국교회의 강단 
에 흔히 쓰여지는 내용이었으며 초기 선교사들이 들여온 예화들은 한국 
교회 강단 100년 역사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2) 선교사들의 설교관 
초기 선교사로 평양 신학교 교수였던 곽안련 선교사는 신학자로서 한국 장로교회의 설교의 실제적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다. 또한 당시 평 
양 신학교 교수였던 부두일 선교사 등의 논문 "흥미 있는 강도"와"실효 있 
는 강도의 요소"에서 당시 선교사들의 설교 신학을 엿볼 수 있다. 즉, 설교는 기독교의 특성인 동시에 설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하고 그 말씀을 바로 해석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 얻는 복된 유익한 방법은 설교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 외 논문이나 심방이나 성례로 복음 증거하는 것은 설교에 보조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1918년에 <신학지남>에 발표한 "취미 있는 강도"에서 설교의 준비를 다 
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 성경을 연구할 것 
b. 신학을 연구할 것 
c. 시대를 이용할 것 
d. 각 개인의 정황을 잘 살펴볼 것 
e. 우리가 생활하는 시대 형편을 잘 알 것. 
f. 자기를 잘 알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그는 성경 연구 방법을 말하지 않았으나 성경 연구 태도에 "강도 
하는 자는 성경을 해석할 때에 이상하게 상상적으로 하지 말고 묵시의 뜻 
을 정확히 해석할 것이요..." 라고 했다. 곽안련 박사가 <신학지남>에서 
특기할 만한 내용을 발표했는데 당시 한국 교회의 부흥회와 설교 문제를 
열거하면서 부흥 시에 은혜를 받는 것도 귀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흥의 이 
후로 부흥회 사후처리 문제의 방향이 한국교회의 참된 부흥의 열쇠라고 
말하였다. 
(3) 선교사들의 설교의 실제 
a. 언더우드 (H.G. Underwood 1859,7.19-1916,10.12) 
언더우드 목사는 실로 한국교회의 아버지이며 한국기독교 교육 운동의 선각자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말을 익히자 곧 거리나 마을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과 함께 성경을 펴서 읽으면서 성경의 진리를 설교했다. 얼마 후에는 큰 거리나 마을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과 함께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러면 언더우드 목사가 1912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1회 총회 총회장시의 설교를 보자. 그는 빌립보서 3:8-10을 읽고 제목을 "모든 것을 해로 여김" 이라고 했다. 요점은 세 가지로 다음과 같다. 
(1) 속죄해주시는 예수님 
(2) 부활하신 예수님 
(3) 예수님과 같이 고생하면 즐거워진다. 등 세 대지로 나누었으나 본문 
과 제목과 대지와 내용이 서로 연결이 없고 논리성이 부족해서 무엇을 말 
하려고 했는지 얼른 파악하기 곤란하다. 
우선 설교만을 두고 볼 때 대개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의 경향은 본문과는 
무관한 설교가 많았으며 논리성이 희박해서 설교학적으로 미숙했던 점도 
없지 않다. 그것은 피선교지로 오기 전에 목회에 대한 경험 부족도 문제 
됐을 것이다. 
<윈도우 강도 취집> 에서 그 설교에 나타난 사상적 측면을 생각하면 그의 설교 집의 첫 제목이 "예수교회의 사기 와 저희 위하여 하나님께 일하 
시려고 함" 이란 긴 제목이다. 영문 표기는 "History of the Church" 이 
다. 본문은 고린도후서 6:17-18였다. 이 설교도 본문 제목 그리고 내용이 서로 연결되지도 않고 논리성이 부족함을 보게 된다. 
b. 곽안련 목사 (C.A.Clark) 
1920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한국에 온 곽안련 목사는 평양신 
학교의 교수로서 실천 신학에 대한 여러 가지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 그의 
설교학과 목회학은 오늘까지 신학교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그는 
<신학지남>을 통하여 매회 "기술적 강도"또는 요약설교인 "강도 도형" 예 
화를 모아서 설교 자료를 제공하는 "강도에 사용할 비사" 그리고 설교의 
아이디어와 힌트를 제공하는 "가용적 제목과 본문"이란 난에 매회 걸쳐서 
수 편의 글을 썼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은 한국교회 강 
단에 방향을 잡아 주었고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의 설교 내용과 틀을 만들 
어 주었다. 
1918년 <신학지남>의 창간호에 실린 "예수의 평안과 사단의 평안을 비교 
함"이란 설교에서 요한복음 14:27을 택했는데 서론에서 이 세상을 사단과 
동일시하는 등 식을 만들어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다. 차라리 
성경 그대로 예수의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을 해설했다면 좋을 뻔했다. 
그는 요한복음 14:30에 '세상 임금'을 사단으로 보고 이 세상은 결국 사 
단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삶의 현장인 세상을 어떻게 해 
석하는 가에 따라서 설교의 방향은 퍽 달라지게 된다. 
그는 예수와 사단이 평안을 주는 방법을 비교하면서 "사단은 진리를 결 
함으로 평안을 주고 예수는 진리를 밝히 나타냄으로 평안함을 주시는 것 
이외다."고 한 것이다. 
다음 곽박사의 초기 설교를 몇 개 더 보면, 요한복음 1:42-43을 본문으로 
택하고 "토기쟁이 되신 예수시라"는 제목을 택하였다. 그는 이 내용에서 
진흙 같은 시몬을 택해서 토기를 넣어서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옛 사람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러한 제목을 쓴 듯하다. 그러나 설 
교 내용의 전개는 본문의 내용과는 관계없고 베드로의 생애를 추적하여 베 
드로의 생애의 변화를 취급하고 있다. 또 부활주일 요약설교 중에 본문을 
요한복음 11:14을 읽고 "나사로를 기생하심"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대지로 구분했다. 
(1) 예수께서 사역하시는 중에 신자의 도움을 받으심이오 (돌을 옮겨 놓 
으라의 이해에서 교우와 교역자의 할 사역이라). 
(2) 예수께서 무리들의 신앙이 미약함을 책망하심이오 (교훈을 받고도 망 
각함으로 다시 권유하심). 
(3) 제반 육신 상 예비가 된 후에 예수께서 오신 일을 천부께서 맡기심이 
오(이적을 보는 자가 이 권능은 하나님의 권세로 이를 줄 알았다) 
(4) 예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신 것은 장차 재림하실 때에 크게 외치실 장 
본인이 됨(살전4:12). 
결말은 지금 예수의 음성을 들으면 그날에 또 들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 
께서 사역하실 때 신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고 돌을 
옮기고 수족을 묶었던 끈을 푸는 것을 교우와 교역자의 할 일이라고 단언 
한 것은 Alegorical 한 방법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흥미있는 설교는 본문 이사야 53:12와 빌립보서 2:9-11을 읽고 "예수를 대 
적함과 예수를 대접함"이란 설교이다. 이런 유의 대조적인 제목 설정은 곽 
목사의 설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그의 설교에서 당시에 고난받는 한국 민족에게 어떤 결정적인 메시지 보 
다는 순수한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할 것을 가르쳤다. 
다만 그의 설교의 내용 중에는 당시의 사회상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거기서 
뛰어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것을 권고하는 말들을 볼 수 있다 
c. 마포삼열(S.A.Moffett 1864-1939) 
마포 삼열 박사 전기의 서문에는 "한국의 예루살렘을 이룩한 마포삼열 
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잊을 수 없는 한국의 은인이요, 개척자요, 선각자요, 
비단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 근대사에서도 위대한 공 
헌을 장식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 과연 그는 한국교회의 창설자요, 공로자 
요, 한국민족의 역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의 개혁자이다. 
그가 1889년 12월 정든 모국을 떠나 1890년 1월 25일 한국 땅에 도착한 26세부터 1936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46년간 일하면서 한국 땅에서 20여만의 성도 1500교회가 선 것을 볼 때 그는 한국인 영혼의 개척자이고 한국교회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도자일 뿐만 아니라 교육 사업자로서 평양신학교, 숭실전문학교, 경신학교 등을 세웠다. 평안도에만 교회가 세운 학교가 800이었으며 그 중에 마목사가 100여개 학교의 교장과 이사장으로 그 동안 배출한 목사만도 365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선교방법으로 
(1) 사경회를 열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요 
(2) 자선 사업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3) 각급 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으로 지도자를 배출하고 간접 전도에 주력했다. 
그의 선교 또는 설교의 현장은 사랑방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접촉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고 날마다 종일토록 그들과 만나며 그들과 생활 
하며 그들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오는 것을 소원해 왔다." 
마박사와 다른 선교사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과 한국인을 동일시하 
는 동일화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설교 중에는 골로새서 2:8을 
본문으로 한 "조선 교회에 기함"이란 제목의 설교로 이 설교는 제8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설교에서 우리는 설교학적 
인 입장에서의 평가에 앞서 그가 눈물과 땀과 피를 바친 한국 교회를 향한 
불같이 뜨거운 정열을 듣고 보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를 참 교회 되게 해 보겠다는 굳은 신념, 그리고 전국 교회에 일 
하는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을 향한 그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그가 택한 본문과 제목을 보면 그가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 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마치 골로새 교회처럼 한국 교회가 사상적으로 흔들림이 있었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를 보고 안타까이 발을 구르며 이 땅에서의 선교 활동을 통한 체험적인 신앙 고백을 그의 설교에서 털어놓았다. 
설교에 나타난 주요 사상은 "나는 조선에 와서 복음 전도하기 전에 황주 
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심한바 있었다. 결심은 내가 이 나라에 십자 
가의 도 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죽든지 살든지 구원 
의 복음만을 전하기로 굳세게 결심하였다. 그 다음 해에 평양에 왔는데 그 
때 평양에 신자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다음 해에 의주로 가서 한 청년을 만나서 산에 올라가 산보도 하고 봉천에서 받은 한국 신약을 주고 예수를 믿으라 전하였는데 그 청년이 믿기 작정하였다. 그가 곧 한석진 목사이다. 그는 "우리의 처음 결심은 바울의 결심과 똑 같은 결심을 하였다.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 
라고 결심한 것 같이 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이외는 다른 것을 전하 
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려 하였다. 
실로 한국교회의 전통 신앙을 사수하기 위한 불같은 외침이었다. 그는 바 
울이 청년목사 디모데에게 부탁함과 같이 나도 조선 청년 교역자에게 말한 
다면 "원로 선교사와 원로 목사의 전한 그대로 전하라 이 복음 내 것이 아 
니오 우리가 옛적부터 전한 복음이다. 이는 모든 백성에게 십자가의 도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바란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딴 
복음을 전하지 말기를 바란다." 고 하였다. 
그는 예언자적인 투시력과 꿈을 가지고 한국의 장래를 환히 내다보고 있 
었다. 그는 미국인이었으나 한국인의 문화와 사상과 생활 속에 들어와 동질 
화되기를 원했다. 그가 한국을 보는 눈은 한국인들보다도 더 정확한 판단 
이었다. 새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수단이나 외부적조 
건보다 정신적인 각성과 무장을 더 우선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구습을 버리고 정의를 위하여 청렴한 생활 혁명이 필요하다 
는 것이다. 특히 한 민족의 장래와 축복은 정치나 군사적 시위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정신적 무장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람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가진 메시지를 전 
해주었다. 1920년에 방황과 좌절과 낙심 중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적시타 메시지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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