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17 11:18
[11]반드시 읽어야 할 설교학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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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752  
a. 루터의 설교 
1) 상징과 미사로 드리던 예배를 설교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2)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많이 이용하였다 
3) 믿음 중심의 설교를 하였다. 
4) 성령과 성경을 강조하였다. 
5) 설교의 원칙 
① 문법적 지식을 따라 해석하며. 
② 책의 시대와 환경을 고려하고 
③ 문맥에 조심하며 
④ 신앙과 조명이 있어야 한다. 
⑤ 신앙과 조화가 있어야 한다. 
⑥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6) 설교자의 이상적 태도 
① 발음이 좋아야 한다. 
② 학자인체 하지 말 것 
③ 웅변적이어야 한다. 
④ 처녀들이 반할 만큼 외모가 아름다울 것 
⑤ 돈 받는 것은 조심할 것(신경 쓰지 말라) 
⑥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이야기하라 

b. 칼빈의 설교 
1) 성서에 충실한 설교자였다 
(루터는 로마서를 말구유의 아기로, 야고보서를 짚으로 봄 
칼빈은 축자 영감설에 의거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 
2) 학자라기 보다는 민중적 설교자였다. 
3) 성령의 감화를 강조 (설교준비를 하지만 원고는 강단에 안 가지고 올라감) 
4) 예배의 중심을 설교에 두었다. 
5)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였다. 
6) 구약을 신약화 해서 보았다. 
7) 실생활에 까지 파고 들었다.( 가정.경제, 정치,왕의 모든 문제까지 
취급) 
4. 청교도들과 복음주의자들의 설교 
초기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설교에 주어진 강조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에 청교도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졌다. 
청교도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그들이 다른 어떤 존재들이기 
전에 설교자들이며 또한 그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들을 다른 설교자들과 구별하여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단합하고 투쟁하고 살아남 
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은 그들 자신이 복음을 설교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의식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 는 것이 그들의 영감이며 의로움이었다 
17세기의 청교도들 가운데 참 목자상의 저자인 리차드 박스터는 청교도 전통과 그 자신의 책이 보여주고 있는 전형들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서 유명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를 가르쳐야 한다. 참으로 이 두 가지야말로 목회자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얼마나 위대하고 탁월하며 놀랍고 신비로운 일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학생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학교이며 우리는 그의 안내인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문법책이다 우리가 매일 그들을 가르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라고 그는 썼다 
대서양저편에서 미국의 청교도 인인 커튼 마더는 보스턴에서 양쪽 대양 해변에 그 영향력을 미치는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학생과 설교자라는 그의 책 속에서 목회자 후보생을 위한 지침서라는 것을 마련하였다. 그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독교 사역자의 직무는 세상에 있는 누구라도 승인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중요한 일이다. 어째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이 이 직무를 불완전하고 죄지은 인간에게 맡기셨는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사의한 일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설교자의 직무에 대한 위대한 계획과 목적은 사람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의 놀라운 완전하심과 그의 임무와 은혜를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며, 가장 명백한 언어로 선포하는 일이며, 또한 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와 영원한 교제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는 것으로서 천사가 흠모할 만한 일이다고 적고 있다. 
죠지아에서의 2년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존 웨슬리는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경험을 가졌다 그의 경험 속에서 그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였다 그의 죄들이 사라졌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를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즉시 그가 받은 자유케 하는 구원을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교회와 교회 마당에서 마을 잔디밭에서 들과 야외 극장에서 그는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의 설교를 들으러 모인 수많은 군중들에게 그리스도를 권하였다 1757년 8월 28일자 그의 잡지에서 그는 사실 나는 설교 때문에 산다 고 말하였다 그의 교과서는 언제나 성경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며 독자들에게 구원을 깨우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 
죠지 휫필드는 분명코 더 능력 있는 설교자였다. 그는 영국과 미국을 돌아 
다니며 34년 동안 일주일에 평균20번 가량의 설교를 하였다 능변에다가 열심있고 교리적이며 열정적인 그는 생생한 은유들과 평범한 예화들, 극적인 제스처로써 그의 설교에 생기를 더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의 권위를 철저하게 확신하였으며 그의 메시지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5. 19세기의 설교 
챨스 시므온 은 캠브리지 대학부 시절에 개심 하였다. 그때 그는 거기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열망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 
를 들어주셨다. 1782년에 그의 그 교회의 교구 목사가 되었다. 그는 54년 
동안 홀리트리니티 교회의 강단을 지켰으며 성경을 조직적으로 가르쳤다 설 
교에 대한 시므온의 고귀한 식별은 목회자를 대사로 생각하는 개념으로부터 
나왔다. 
목사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사이며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말하는 자이다. 그가 성경에 근거한 것을 설교한다면 그의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의 말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19세기 전반에 있어서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의 공격들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도 불구하고 강단은 영국에서 그 명성을 지켰다. 사람들은 그 당시의 위대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으려 몰려들었고 인쇄된 그의 설교를 열심히 읽었다. 그 설교자들 중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교회의 존 헨리 뉴멘, 성 바울 대성당의 케논 리든 브리튼의 로버트슨 그리고 모든 설교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런던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의 스펄젼이었다 
1812년에 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첫 번째 교수직을 맡았던 아키볼드 알렉산더의 아들인 제임스 알렉산더는 설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 가운데 설교의 중요성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염려한다. 오늘의 젊은 사람들은 설교에 임할 때 대 전투를 하루 앞둔 자의 각오로 임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강력한 열정의 원천을 찾아 인간 감정의 대양의 깊은 곳까지 충격을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설교 준비를 하지 않는다. 설교는 하나님 자신의 방법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개혁자들은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다 
후에 알렉산더는 설교를 단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또한 설교자 자신을 위한 참된 성취라고 주장하였다. 설교에는 기쁨이 있다 . 설교 듣는 사람에게 지루한 만큼 설교자 자신에게도 지루하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설교가 훌륭하게 행해질 때 그 설교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고귀한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한 설교에는 기쁨이 있다. 
설교의 이러한 능력과 기쁨 때문에 금세기에 이르러 에딘버러의 알렉산더 
화이트가 낙담해 있는 한 감리교 목사에게 설교 포기할 생각일랑 하지 마시 
오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서 있는 천사들이 당신의 그 위대한 일 때문에 당신을 부러워하고 있오! 라고 충고할 수 있었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말은 1908년에 있었던 일이다. 또한 1907년에는 회중교회 신학자 포사이 
드의 저서 긍정적인 설교와 현대 지성이 출판되었다 그 책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모한 시작일지 모르나, 나는 
감히 기독교는 설교와 함께 흥하거나 설교와 함께 망한다고 생각한다. 
6. 20세기의 설교 
금세기는 행복감에 도취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에 동조하였다. 
20세기 초의 위대한 설교자 찰스 실베스타 혼 목사는 1914년 예일대학에서 
설교의 로멘스 라는 제목으로 설교에 대한 비쳐 강좌를 인도하였다 혼은 회 
중교회의 목사이며 영국의 하원이었다. 그는 하원에서는 능변가로, 설교에 
있어서는 열정가로 평판이 높았다 정치가이자 설교자이었던 그는 자신의 개 
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어느 것이 더 영향력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자인 설교자는 사회의 참된 스승이다. 즉 통치자가 되도록 집단에 의하여 뽑힌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이상을 형성하기 위해, 그 이상을 통해서 사회 생활을 인도하고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뽑힌 사회의 스승이다. 
역사의 진정한 로맨스는 이러한 설교자들의 로맨스다 . 이 사람은 무력의 
충돌과 어리석은 힘의 각축들 속에서 오직 진리라는 이름의 칼과 의의 갑옷과 평화의 영을 구하면서 평온하게 서있다. 이 사람은 세상이 정복할 수 없고 저항할 수 도 없는 영웅이다 . 세상의 가장 영속적인 승리는 모두 그의 것이다. 회중교회 목사로서 , 설교를 정치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생각했던 또 한 사람은 조운즈 박사였다 그는 거의 40년간을 본머드에 있는 리치몬드 힐 회중교회 목사로 있었다. 한 정당의 지도자로부터 의회의 후보자로 출마하도록 
권고 받았을 때 그는 그 권고를 사양하면서 그 이유로서 산발랏과 도비야에 
게 보낸 느헤미야의 답변을 인용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느6:3) 조운즈 박사는 두 마디를 강조하며 선언했다. 나는 의회 
가 인간의 조건을 좀더 개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상처를 궁극적으로 치료 할 수 있는 것은 입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구속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부름 받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금세기 초에 유행했던 낙관주의는 먼저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다음에는 참호 속의 진흙과 피의 참사로 산산이 부서졌다 실로 전쟁을 경험한 후 이전의 자유로운 낙관주의를 버리고 인류에 대한 새로운 현실주의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신앙을 표명하는 설교가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보다 현실 상황에 더 적절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긴박하며 더 유용하며, 더 구속적이고, 더 유익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아주 자명한 이치이다 
또 다른 예는 에딘버러의 제임스 블렉의 경우이다. 그는 1923년 스코틀랜드 
에서의 워랙 강좌와 미국의 프린스톤 강좌에서 학생들에게 그들의 설교 사역을 진지하게 수행하라는 고무적인 충고를 하였다. 우리의 봉사는 위대하고 
장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을 바칠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일찍부터 여러분의 설교 사역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주기를 부탁한다. 우리의 일은 필요한 모든 준비와 그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재능을 모두 사용해야 할만큼 중대한 일이다. 여러분의 일은 영혼들을 보살피고 기르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일에 여러분 자신의 값진 삶의 열심과 열정을 쏟으라고 한 것이다.. 
비록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 속에서의 세속화 과정이 가속화되었다할지라도 그 2차대전 조차도 설교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웨스트민스 
터 샌드럴홀의 월 생스터는 18세때 감리교 지방 설교자가 되었고 1950년에는 영국 감리교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잘 알려진 저서인 설교의 기술에서 그는 설교자의 임무와 특권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설교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았다! 위대하신 왕의 사자! 영원한 복음의 증인 ! 다른 어떤 일이 그보다 더 높고 더 거룩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이 전념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거룩한 활동이다 그러므로 그 일은 어쩌면 천사들조차 부러워서 그 일을 하고자 하늘의 궁정을 버릴만한 일인 것이다." 
앤드류 블랙우드도 그와 비슷하게 설교는 지상에서 가장 고상한 일로서 그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논평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이르게된다. 불행 
히도 설교의 조수는 점점 쇠하였고 그 간조는 여전히 오늘날도 낮은 채로 있다.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의 설교의 쇠퇴는 교회 쇠퇴의 징후이다. 회의론의 시대적인 분위기는 확신 있는 선포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설교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단언하며 설교의 부활을 요구하는 소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켄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도날드 코건보다 더 영국교회에서의 설교의 회복에 자극을 준 사람은 없다. 설교자 대학이 영국에서 세워진 것은 주로 그의 발의에 의해서였다. 설교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은혜의 청지기들에서 그는 이러한 말로써 설교의 절대 필요성에 대한 그의 확신을 표현하였다 
"여기에 하나님의 경륜의 기적이 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죄 사이에 
서있는 설교자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준비와 인간의 필요 사이에 서 있 
는 자가 곧 설교자이다. 인간의 죄를 용서에,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의 전능 
에, 인간의 탐구를 하나님의 계시에 연결시키는 것이 그의 과업이다." 
자유 교회에서의 예는 1938년부터 1968년까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교회당 
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목회를 해온 마틴 로이드 존즈 목사의 경우이다. 그는 주일날에 자신의 강단을 떠난 일이 결코 없지만 그의 메시지는 지구의 가장 먼 구석구석까지 미쳤다. 그의 의학적인 훈련과 내과 의사로서의 초기 경험, 성경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흔들릴 수 없는 신념, 그의 예리하고 분석적인 지성,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그의 통찰력, 그리고 그의 열정적인 웨일즈인의 기질로 인하여 그는 50년대와 60년대의 영국의 가장 힘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내게 있어서 설교의 사역은 이제까지 부름 받을 수 있었던 누구에게나 가장 귀하고 위대하며 가장 영광스런 소명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감격스럽고 가장 흥분시키며 가장 보람되고 가장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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