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8-22 16:17
[2]목회비전을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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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853  

 

셀 그룹리더의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셀 그룹 리더나 부 리더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분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를 사역에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소명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리더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조건에 합당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자주 간단하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 특별히 자기와 뜻이 맞지 않는 사람 밑에서 봉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겸손하게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가장 좋은 셀 리더는 셀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섬기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1. 구원의 확신

리더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구원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은사나 치유의 경험도 당신의 확신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리더들은 또한 현재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지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현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는 생생한 관계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믿음의 사람

셀 그룹 리더는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여 믿음을 나타내 보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그런 은사를 활용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도록 도와 줄 수 있는가?

리더가 성령의 은사를 확신하고 있지 않으면 그 제자들도 성령의 은사를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3. 인격적이고 가까이 하기 쉬운 사람

셀 그룹 리더는 사람 지형적인 것을 배워야 한다. 훌륭한 리더는 나는 성경을 가르치고 모임을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문제에 얽매여서 일주일을 망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리더의 셀 그룹은 망하게 되어 있다. 리더는 항상 다음과 같은 태도를 지녀야 한다. “나는 여러분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4. 열정적인 사람

당신의 셀 그룹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보살피고 그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힘있게 인도해 주는 사람을 따르고 싶어한다. 열정은 전염되는 것이다. 당신이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할 때 사람들은 당신으로부터 하나님의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열정 있는 리더는 열정 있는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낸다.

 

5. 책임감

책임이란 무엇인가? 책임이라는 말은 문자 적으로 회계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헌신적으로 살았는지에 대해 주님과 회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한다. 개인적 책임이란 말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른 사람이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개인적 책임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주님으로부터 찾아내고, 그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을 회계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셀 그룹의 리더들은 지역교회의 지도자들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리더들은 자신의 사역 영역과 셀 그룹 안의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그 위에 세우신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의논하고 기도해야 한다.

 

셀 그룹 리더나 부 리더로서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일에 부르심을 받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다.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을 주님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주님의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어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셀 그룹 사역에로의 부르심은 거룩한 소명이고 결코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상의 셀 교회의 정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확신, 그리고 리더로써의 자질들을 갖추고 사랑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 사역해 나아간다면 셀 교회에 분명한 목회비전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

 

교육 목회의 비전

목회 비전에 있어서 무엇보다 더 중요한 부문은 교육 분야일 것이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지만 교육의 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약한 것을 볼 수 있다. 학교 교실의 붕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많이 무너졌다는 사실과 가장 정직하고 공정해야 할 학교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나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며 충격을 준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세상 속의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교회라는 이름하에 숨겨진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 어쩌면 학교보다 더 부정부패가 많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을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고 말하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과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처럼 몇몇 사람들과 공동체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묵과되어 넘어간다면 결국 태산이 무너지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은 문화의 의식 수준과 결부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 속에 숨겨진 윤리적인 사고가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찾아 낼 때, 피교육자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문화는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표출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 구조와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정신 구조와 사고방식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지배하는 의식과 사상, 그리고 철학적 사조를 알아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교회 역시 이것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해야 될 때가 되었다. 또 한 가지 덧붙여야 할 사실은 이 모든 정신의 움직임이 역사와 함께 흘러 왔음을 알아야 한다.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 속에서는 역사의 큰 테두리에서 세워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나온 시대의 사조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시대, 곧 현재의 정신적 움직임을 바르게 인식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현 시대의 교회 교육에 있어서 현재의 정신적 움직임의 영향으로 인해 복잡한 생각을 접고 편의를 따라 정신적인 면까지 고정시키려 하는 것이 눈에 띄게 된다. 그것 때문인지 교회에서 성인을 교육하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매우 심각하게도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시대에 배겨있는 정신을 간과한 채 눈에 보이는 표상만을 좇아가는 것에 집중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많은 교회들은 각 사람들에 있어서 내면적인 문제가 어떠한지도 전혀 모른 채, 그 내면이 안정되어 있는지, 썩어져 있는지도 모른 채 방법적인 해결에만 치중해 있다는 것이 현재 교회 교육의 문제이다.

요즘 한국 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이 셀 목회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도 많이 있으나 대형 교회의 체제가 그렇게 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기존의 교육 방법 가운데 구역을 설정하고 각 구역마다 장을 임명하여 예배를 인도하게 하고 소그룹 형식을 취하는 것에서 현재 취하는 셀 제도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어쩌면 목회자들의 성도들을 향한 눈속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정신과 사조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들이 성경의 본질에서 볼 때에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지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글은 현재의 인간들의 행동하게 했던 사조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적 구조가 무엇인지를 밝혀 성경의 진리와 비교하여 셀 목회가 되었든 어떤 다른 방법의 목회가 되었든 그 중심에 세워져야 할 정신의 본질을 제시하고자 한다.



계몽주의

계몽주의를 설명하기에 앞서 계몽주의 이전의 르네상스의 영향력을 살펴야 하겠다. 르네상스 이후 신 중심 사상에서 인간 중심 사상으로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때마침 로마 카톨릭의 부패로 인한 종교개혁이 르네상스 정신의 영향을 받았으며, 거의 동시에 과학 혁명도 일어나게 되었다. 종교개혁과 과학 혁명은 인간의 생각을 인간 자체에 두게 되었고 스스로가 문제해결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가 눈치 cowl 못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은 기독교 신앙과 반대되는 것이며, 기독교 신앙은 반드시 진리가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이끌어 왔다.

과학에서 세계관으로의 전이는 대부분 철학자들의 작업이었다. 그 일에는백과사전의 편집자들인 볼테드, elem, 달랑베르와 몽테스키외, 루소와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함께 힘을 모아 이성주의 세계관을 발달시켰으며, 그 세계관은 그들의 시대까지 편만해 있었던 성경적 계시에 대한 믿음을 중립화해 버리고 무시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18세기 중순까지 계몽주의의 개념은 일반 의식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중세 후기에 그들의 조상이 믿었던 것이 대부분 미신이었으며, 이제는 이성주의를 통해서 이해되는 것이 신뢰할 만한 사실이라고 믿었다.

 

계몽주의가 교육에 미친 영향

계몽주의 사고가 미친 효과 중 가장 파괴적인 것은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이러한 사상에 젖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교회의 관점으로 전환한다면 정신적인 움직임을 간과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방법적인 면에 치중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목적이 선하면 그에 따르는 정신적 혼란과 윤리의 거스림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한참 윤리적 기준으로 매를 맞는 것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복제이다. 이는 불치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었고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획기적인 과학으로 등장했지만 곧 바로 윤리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것을 놓고 보았을 때에 우리는 교회 교육에 있어서도 필요를 채우는 일에만 급급하다면 보면 기독교적인 본질을 놓치고 가버릴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잘못된 교회가 되어질 것이다. 이에 따르는 결과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교육적 측면에서 정신적 상황을 모르고서 교회성장에만 목적을 두고, 그리고 그에 따른 방법에만 치중하게 된다면 결국 영혼 없는 죽은 몸이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교육에 끼치는 영향

포스트모더니즘은 계몽주의가 교과서와 교실에서 기독교를 축출한 것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제공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이 종교를 무의하게 만들어 왔다는 이성주의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재를 설명하려는 모든 세계관을 거부한다. 어떤 면에서 진리의 단일원천으로 과학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대중의식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변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조망은 좋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주의 세계관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동시에 유일하고 진실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그리스도인의 주장에는 격렬하게 반대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절대적 진리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하나의 진실된 세계관은 없다고 주장한다.

 

결론

월터 브루지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언자적 목회의 과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배 문화의 의식과 지각에 대안이 되는 의식과

지각을 기르고 자양분을 공급하고 고취시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계몽주의의 여파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은 지금 이 시대를 강력하게 붙잡고 있는 정신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정신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번져가고 강하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사상이 결국 진리를 진리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상적인 기반으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성인들은 직장에서나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있기에 교회 안에서의 정신적 기반을 닦는데 주력함이 결코 뒤로 밀려나야 할 문제가 못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우선 말씀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과 동시에 우리가 현재 지배받고 정신이 무엇인지를 숨김없이 분명하게 전해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정신의 흐름을 철학적으로 나타내는 일에 있어서 딱딱하고 의미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지금 이 시대를 말씀에 비추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 목회의 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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