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0-26 16:11
기독교 윤리의 목적과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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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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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윤리의 목적

기독교 윤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무슨 목적에서인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얻기 위해서나 구원의 어떤 공로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윤리 생활은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주의적 차원의 행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다(10:4).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법적으로 이루신 의를 실제로 삶 속에서 적용하고 나타내는 것뿐이다. 즉 의의 실천이다. 도덕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에 근거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영속적이며 신약 아래서도 지켜져야 한다.

믿음과 행위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을 행함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지만(3:28),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죄를 버려야 하고(3:8; 13:3; 고전 6:9)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요일 3:10).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2:17, 26). 또 그 믿음이 죽은 것이라면 그의 구원 확신도 헛될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지만, 선행은 구원의 증거이며 열매이다.

물론 구원받은 자의 행위는 하나님의 도덕적 표준이나 그리스도의 이루신 완전한 의에 비교하면 보잘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에 무엇을 첨가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 의는 우리가 무엇을 첨가할 것이 없는 완전한 의이다. 우리의 거룩하고 선한 생활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완전한 의에 합당하게 살아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삶을 요구하신다. 또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성을 증거하는 것이 되며 죄악되고 부도덕한 세상에 빛이 될 것이다.

 

기독교 윤리의 원동력

기독교 윤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혹시 기독교 윤리는 불가능한 이상(理想)이 아닌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거역한 역사나 신약교회의 부패의 역사, 특히 현대 교회의 배교적 현실을 볼 때, 성경적 윤리가 불가능한 이상(理想)이 아닌가 하고 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불가능한 이상(理想)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윤리적 생활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의롭게 만드셨고 의로운 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에 근거한 계명이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사람, 특히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을 본받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11:45; 5:48).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그 의로운 법을 지키지 못하였다. 구약의 전 역사는 사람의 전적인 부패성과 무능력을 보여준다. 어찌할 수 없는 죄인! 그것이 구약성경의 결론이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은 윤리적 원동력이 되는 새로운 원리들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실제로 가능케 하는 원리들이다. 그것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새 생명이며, 둘째로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이다. 오늘날 교회의 배교(背敎)는 성경에 예언된 바이다. 그러나 신약 교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생활을 실천하는 수많은 진실한 성도들이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생활의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새 생명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3:24). 이 의는 우리로 율법의 정죄와 공포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된다. 죄는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6:14). 우리는 율법의 체계에서 벗어났다(7:6; 3:24-25; 5:1).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새 삶의 동기가 있다(12:1; 고후 5:15; 4:1).

의는 또한 생명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또한 새 생명을 얻은 자이다. 새 생명은 곧 새 생활의 씨앗이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새 생명의 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의 성향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구원받기 전에는 죄만 즐거워하던 그가 구원받은 후에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소원하는 자가 되었다.

옛 죄악성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옛 죄악성이 이 새로워진 성향을 거슬러 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옛 죄악성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인이 완전한 의와 영원한 새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받은 그 의와 새 생명 때문에 항상 새 힘을 얻는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이 의와 새 생명 때문이다(7:24-25).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도록 구원함을 얻었다(8:28-30).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생활의 원동력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의롭다고 하시고 그 속에 새 생명을 심어주실 뿐 아니라, 그 의와 생명이 열매를 맺도록 성령으로 그 속에 거하셔서 도우신다.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은 신약 성도들이 누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복과 특권이며 은혜이다.

이 복은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에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 예언대로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셨고 성도들 속에 보혜사 곧 위로자와 격려자로 오셔서 영원히 거하신다(14:16).

성도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들의 윤리적 생활, 곧 육신의 죄성을 이기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사는 삶을 지도하시고 도우신다. 로마서 8:4, 13-1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물론, 성도들의 윤리적인 삶에는 그들 자신의 성실한 노력이 요구된다(살전 4:1; 벧후 1:5-7, 10).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덕적으로 온전케 하시려고 성경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온전함을 위해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시편 119:9, 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디모데후서 3: 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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