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9-27 23:09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837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마 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1.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예수님께서 베푸신 다양한 기적들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들 중 하나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불신자들은 아예 그 기적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코 상식적이지 않는 그 사실을 일반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사건을 믿는 교인들 가운데서도 그 의미에 대해 오해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기적을 통해 수천 명을 먹인 사건을 마치 굶주린 자들을 위한 구제의 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구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만일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배고픈 백성들의 되풀이되는 요구에 응답했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도리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과 원수가 되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음식이란 한번 먹어두면 배부른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먹지 않으면 또다시 배고파지게 된다. 배고파 허기진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풍족한 음식을 제공하셨을 때 그들이 매우 고맙게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예수님을 다시 찾아 음식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음식을 무한정으로 공급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예수님이 많은 돈을 들여 음식을 샀다면 다음에 그 음식을 제공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주머니에 돈이 다 떨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그를 원망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돈을 들이지 않고 기적적인 특별한 방법으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돈 한 푼들이지 않고 배고픈 사람들을 풍족히 먹일 수 있는 분이다. 그런 그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냉정함으로 인해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며 급기야는 원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돈을 들이지 않고 말씀만으로 음식을 무한정 제공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유가 단순히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적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요6:14). 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저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왕으로 옹립하고자 했다. 예수님이 저들의 왕이 되면 더 이상 양식이 없어 배고픈 일은 없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월절 절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육체적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신령한 음식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이 주는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기 위해 이에 관한 분명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예수님을 따르던 큰 무리(13,14)

 

예수님 당시 일반 백성들은 전반적으로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로마제국의 압제와 배도에 빠진 유대인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태는 백성들의 일반 생활뿐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관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나아가 열악한 생활형편 가운데서 먹고 살아가는 생존문제 자체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또한 다양한 질병 문제와 실업난을 비롯한 사회적 신뢰에도 엄청난 문제가 있었다.

 

그럴 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기득권층의 유대인들은 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 가운데는 그에게 호기심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에 따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로 믿었던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짓눌린 삶의 탈출구를 찾게 되기를 바랐다.

 

다양한 기적과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가시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가 한적한 곳으로 가시게 되자 여러 고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그들 가운데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언약의 민족에 속한 자들이면서도 진정한 가치관을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메시아에 대한 간절한 소망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타개책을 얻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들 중에는 메시아를 진정으로 기대했던 자들이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거기 몰려든 백성들 가운데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린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치유해 주시기도 했다. 그것은 물론 병자를 고칠 뿐 아니라 메시아인 자신을 백성들에게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수님과 가까이 있던 제자들은 그의 모든 사역을 직접 목격하는 증인이 되었다.

 

3. 유월절을 앞둔 예수님의 특별한 메시지(15,16)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천 명의 군중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하며 우왕좌왕했을 따름이다. 그러던 중 날이 저물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그들은 집에 돌아가도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가정의 따뜻함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으로 돌아가서 특별한 일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것 같으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뒤섞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하등의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도리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형편 가운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시기를 원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제 날도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음식을 사먹게 하소서’(마14:15)라고 말한 것은 저들을 이제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의미였다. 즉 그 사람들이 음식을 사먹은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뜻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문제는 그들에게 음식을 사먹을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주변 마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사먹을 만큼 식당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렇게 말했던 것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는 곁에 서계시던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음식을 사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요6:5)고 물어보셨다. 이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빌립은 거기 있는 각 사람들에게 약간씩의 음식을 나누어 준다고 해도 200데나리온은 족히 들것이라 답변했다. 당시 건장한 청년의 하루 노동의 임금이 1데나리온 정도였음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말을 들으신 후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음식을 사먹도록 하기 위해 그 사람들을 마을로 내려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14:16)고 명령하셨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작정하고 계셨다. 당시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요6:4). 유월절은 하나님께 바쳐질 어린 양과 연관하여 특별한 음식인 양고기를 먹는 절기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유월절의 의미와 더불어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시는 메시아에 관한 교훈을 주시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오병이어 사건이 유월절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각별히 주목해야 한다(요6:4). 마태복음 14장과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월절을 앞두고 행하신 메시아 이적으로서 특별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는 단순히 배고픈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구제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 오병이어의 기적(17-21)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수천 명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 나아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그만한 돈이나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먹을 음식조차 없었다.

 

그에 대해서는 모든 제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드레가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저들 가운데 먹을 음식은 옆에 있는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라는 것이었다(요6:8.9).

 

안드레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 아이가 도시락으로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을 무리지어 여기저기 앉히도록 요구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그 아이가 자기의 음식을 순순히 예수님께 내어놓았다는 사실을 눈여겨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자기의 모든 음식을 내놓게 되는 그 아이에게는 일종의 모험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아직 예수님께서 자기의 음식을 가지시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만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마련하게 되시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일 그 음식에 어떤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아이는 자기만 손해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자기의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내어 놓았다. 그런데 만일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 같았으면 어떠했을까? 어쩌면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남모르게 도시락을 준비해 가지고 있던 자들이 간혹 있었을지 모른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혼자 자기의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음식을 소중하게 보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이 가진 음식을 볼 수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중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게 되시면 그 음식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기적인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음식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다.

 

하지만 어린아이로부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든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 이는 그 자리에 천상의 능력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천상에 속하신 자로서 하늘의 능력이 그와 백성들에게 임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축사하신 후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은 무리에게 떡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음식을 받아먹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배를 불려주는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커다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음식이었다. 그 음식은 풍성해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 이는 열두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가 다시 거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여기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떡과 물고기가 제자들의 손을 거쳐 백성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순서와 연관된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즉 예수님께서 축사하신 떡은 그가 열 두 제자들에게 주셨으며 저들의 손을 거쳐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복음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그의 제자들을 통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파된다는 사실에 연관되어 있다.

 

5.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

 

(1) 사람들의 관심(요6:14,15)

 

마태복음 14장에 기록된 오병이어 기적은 요한복음 6장에도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에는 몇몇 제자들의 이름과 더불어 오병이어의 기적사건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분명한 영적인 해석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부름을 맛본 사람들의 육적인 반응이 잘 기록되어 나타난다. 당시의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메시아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배부르게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저들의 왕으로 옹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백성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메시아를 통한 영원한 천국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면 백성들이 먹고 살아가는 식량문제를 해결해 배고픔을 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시 음식이 절대 부족하던 시기에 그 문제만 해결된다고 해도 엄청난 짐을 덜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목적은 그런 것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천상의 능력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영원한 나라를 소망했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의 배부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다.

 

(2) 시내광야의 양식과 신령한 생명의 양식(요6:22-59)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그 이튿날 사람들이 다시금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저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해석해 주셨다. 그가 전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인 것을 통해 그와 연관된 본질적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출애굽한 후 시내광야에 머물고 있을 때 사십 년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사건을 언급하셨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늘로부터 내려왔으되 그것들은 인간의 입으로 먹고 살아가는 육신의 양식이었다(요6:31).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한 음식 역시 육신을 위한 양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공급하시고자 한 것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표적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했다(요6:30). 저들의 요청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역을 통해 자신의 몸을 영원한 음식으로 주시겠다는 사실을 시사 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48-51)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자신이 곧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의 몸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를 언급하셨던 것이다. 그것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특별한 음식이었지만 그것을 먹은 사람들의 육신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갈릴리 호수 근방에 모인 무리 가운데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이 축사하심으로써 하늘로 말미암아 제공된 음식이었지만 그것을 먹은 사람들의 육신 역시 죽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3) 교회와 성찬예식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후에 설립될 교회의 성찬에 연관되어 있다. 세상에서 먹는 보통 음식은 인간의 육신이 생존하는 기초가 된다. 이에 반해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셔야만 한다. 주님의 몸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혼을 위한 참된 음식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53-5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의 피와 살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이는 단순한 상징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이 말씀의 교회론적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제공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게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에 속한 참된 성도들은 그 신령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먹게 되면 그 다음에는 먹지 않아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성찬으로써 그 신령한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인 그 신령한 음식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에서 특별한 이적을 일으켰던 보리떡과 물고기와 전혀 다른 영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

 

모세 당시에 시내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은 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보리떡과 물고기를 먹은 자들의 육신도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주는 진정한 교훈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들은 영원한 삶을 공급받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메시아를 믿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섭취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지속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신령한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궁극적인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은 저들이 ‘신령한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는 가운데 올바른 성찬에 참여해야만 한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38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23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와 차이점 웹섬김이 01-11 6854
2522 [2]목회비전을 제시하라 웹섬김이 08-22 6853
2521 기독교인의 자살 어떻게 볼 것인가 웹섬김이 09-18 6852
2520 (4)비교종교학 웹섬김이 01-10 6852
2519 [5]노아의 홍수 사실인가? 웹섬김이 12-29 6851
2518 [11]청교도 신학과 설교 웹섬김이 09-25 6849
2517 야베스의 기도 본래의 의미 웹섬김이 04-19 6849
2516 (2)우울증과 자살 웹섬김이 09-18 6848
2515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URL 웹섬김이 12-21 6847
2514 선교와 문화인류학(폴 히버트)[4] 웹섬김이 03-16 6838
2513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웹섬김이 09-27 6838
2512 [3]사도신경의 모든 것 웹섬김이 01-29 6834
2511 윤리적인 말 웹섬김이 10-26 6833
2510 사차원의 영적기도(2) 웹섬김이 07-06 6831
2509 사차원의 영적기도(8) 웹섬김이 07-06 6831
2508 성경에 나오는 화폐와 무게 단위 웹섬김이 08-25 6831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