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0-22 21:36
[5]시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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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856  

 2. 저주의 시편에 대한 고찰

 

   '저주의 시편'이라 불리는 시는 시 35, 69, 109, 137 의 네 편이다. 이들 시는 모두 악인과 죄인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 받게 되기를 격한 어조로 저주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저주의 시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말하면서 저주의 시들에 대한 의문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저주의 시'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와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시적인 표현으로서의 저주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시 68:21, 23)라는 표현과 같이 어떤 저주들은 실제적인 저주가 아닌 그 당시의 문장 습관이나 과장 어형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은 저주의 표현이 얼마든지 시편에 삽입될 수 있음을 증거하는데 시의 구성상 그러한 표현이 사용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문형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의 시적인 표현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어색한 논리요, 억지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2) 죄에 대한 혐오로서의 저주

 

   성경의 저주는 아무에게나 분명한 이유도 없이 행해지지 않는다. 성경의 저주는 분명한 대상이 있고 이유가 있다. 구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저주의 대상은 선인이나 의인이 아니다. 구약의 저주는 사탄을 그 궁극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참조, 나 3:19), 그를 따르는 악인과 그들이 저지른 행악이다. 시 50:21 은 이러한 시편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준다. 그러므로 시편의 저주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저주가 아니라 도리어 죄인과 악한 자, 사탄의 추종자들에게만 임하는 그리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3)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형태의 저주

 

   시편의 저주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시 58:11과 시 104:34, 35과 같이 저주의 주관자를 하나님으로 믿고 그분의 공의에 의지하였다는 데 있다. 이것은 다윗이 저주를 내리며, 그 저주를 행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모든 저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과 인간은 그분의 결정과 뜻을 따르고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이러한 신앙하의 저주이므로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4) 개인적 목적을 초월한 적극적 목적으로서의 저주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을 미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악행을 흔쾌히 용서했다. 시 109:2-5에서도 그는 개인적인 복수심을 쾌히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원수 갚는 것과 복수를 아무런 미련 없이 포기했던 그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거스르고 거역하는 죄에는 어떠한 자비심도 베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개인적인 감정과 복수심은 자제해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공적인 죄에는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시편의 저주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지 시편의 저주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모욕이나 저주뿐만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에 대한 압제 역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압제로 여기고 저주하였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개념이 정당화되는 것은 '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고 간계를 꾀하며…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라는 시 137:8의 말씀에서 잘 입증된다.

 

   5) 사후의 벌에 대한 무지로 인한 저주

 

   시편이 기록될 당시는 악한 자가 사후에 심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사상이 극히도 미약했다. 당시에는 악인의 받을 벌이 이생에서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였고 따라서 이생에서 받을 극악한 형벌을 저주했던 것이다. 사실 악한 자가 받을 벌이 사후에 매우 클 것으로 생각한 것은 신약 시대에 와서 발전된 개념이었다(참조, 막 9:44, 46, 48; 계 20:15). 그러므로 그 당시의 상황에서 내려진 저주는 그 당시의 상황에 적합한 저주였다고 보아야 한다.

 

   6) 신약의 사상과 조화되는 구약의 저주

 

   구약은 주로 이생에서의 고난과 고통에 대한 저주가 상세하게 기술된 반면에 신약은 이생에서 원수를 사랑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위에서 밝힌 대로 그 당시에는 사후의 삶에 대한 무지와 신약보다는 낮은 도덕 수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약에서의 저주가 구약보다 못한 것은 아니다. 이생에서의 저주에 대해서는 극히 적은 부분만을 다른 신약성경은 도리어 사후에 당할 죄인의 고통과 고난을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기록하였는데(참조, 마 3:7; 11:20-24; 23:13-33; 요 3:36; 계 6:16, 17) 이러한 사실은 신약의 저주가 구약의 저주보다 결코 가벼운 저주가 아니며, 구약은 율법과 저주, 신약은 사랑과 복음이라는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좋은 증거인 것이다.

 

   3. 메시아적인 시편에 나타난 메시아관

 

   시편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는 예언하고 있지 않다. 시편이 집중적으로 예언한 그리스도의 생애는 주로 그이 수난과 부활의 영광이며, 메시아의 왕적 통치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메시아의 예언에 관한 본 서론의 고찰은 시편이 그려낸 그리스도의 통치권과 수난, 그리고 그의 영광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로 들어가기 이전에 먼저 구분해 놓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시편이 그리스도를 1인칭과 2인칭, 그리고 3인칭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먼저 그것을 구분해 보는 일이다.

 

   1) 메시아에 대한 세 가지 호칭

 

   (1) 3인칭적인 서술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언급은 시 2편의 결문에 있는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는 3인칭적인 서술이다(그러나 시 2편의 전체적인 호칭은 1인칭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3인칭적 서술은 그가 다윗의 아들임을 강조함으로써 약속된 메시아, 예언되고 언약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올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3인칭적 서술을 명확하게 구별해 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2) 2인칭적인 서술

 

   그리스도는 때로 2인칭적인 호칭으로 불릴 때도 있었다. 그 직접적인 예가 시 45:6의 '하나님이여 주의(직역하면 '당신의') 보좌가 영영하도다'라는 구절이다. 이러한 2인칭적 사용은 메시아와 인생간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듯하며, 우리의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함인 듯하다. 일단의 학자들에 의해 2인칭적인 표현이 메시아가 아닌 그 당시의 왕이나 하나님이라고 주장되기도 하였으나 현재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메시아의 2인칭적인 사용을 본문의 증거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3) 1인칭적인 서술

 

   시편에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1인칭적인 표현이 나타난다. 이러한 1인칭적인 표현은 구속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주는 동시에 구원에 대한 메시아의 절대적 주권을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한편 시 22편 같은 시는 '다윗'이 자신을 1인칭으로 표현하여 기록한 시인데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저작을 그리스도의 1인칭적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윗의 노래 자체가 곧 그리스도의 예언과 마찬가지의 내용을 노래했다는 점과 구약의 여러 곳에서 다윗을 영적인 의미로 그리스도에 대한 비유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겔 34:24; 37:24, 25)

 

   2) 그리스도에 대한 세 가지 예언

 

   (1) 제왕시

 

   시편에서 메시아의 왕적 통치를 예언한 시편은 시 2, 8, 45, 72, 89, 110, 112 등 모두 일곱 편이다. 이들 시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권은 다음과 같다.

 

① 시 2편: 시 2편은 먼저 메시아의 왕적 통치권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인간들, 특히 세상 군왕들의 헛된 노력을 보여 준다(2절; 행 4:27). 그 후 시편 기자는 그러한 노력의 무익함과 함께 모든 것을 초월한 절대 권력의 소유자이신 메시아의 주권을 소개하고(4-6), 모든 사람에게 주께 복종하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종결짓는다.

 

② 시 8편: 시 8편의 주제는 '마지막 아담'이다. 즉 8편은 궁극적 구원자로서의 예수와 모든 것의 완성자이신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③ 시 45편: 시 45편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에서의 메시아 개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6, 7절). 그리고 '동류보다 승한 왕의 주권'(7절)과 그 왕의 성품과 그의 바람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④시 72편: 시 72편은 그리스도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는데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8절)라는 표현은 전 우주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의미한다.

 

⑤ 시 89편: 시 89 편은 메시아의 신실함에 대한 신실함과 함께 극명하게 드러남을 증거한 것이다.

 

⑥ 시 132편: 시 132편은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메시아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기록이다.

 

⑦ 시 110편: 시 110편은 왕의 통치권에 대한 예언 중 가장 의미심장하다. 즉 시 110편은 신약성경에서 16번 인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리스도의 승천,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의 통치에 대하여 말하였으며, 끝으로 4절에서 그를 왕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2) 수난의 시

 

   시편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기록한 시는 16, 22, 40, 69, 102, 109 편 등 모두 6편이다. 이들 시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예언은 다음과 같다.

 

① 시 40편: 시 40:6-8은 히 10:5-9에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성부 하나님과 함께(참조, 요 4:34; 6:38; 17:4) 기꺼이 구속의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한 내용이다.

 

② 시 102편: 시 102편은 제한된 피조물과 대조되어 영원성을 소유한 메시아의 무한적인 특성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종들을 위한 구속의 의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③ 시 69편과 109편: 이들 두 시편은 다윗의 적들에 대한 일반적인 저주(참조, 시 69:4, 10-12, 18-24, 26-28; 109:2-5, 20, 25, 28, 29)를 기록하고 있다. 특이하게 주목할 점은 이들 시편에 두 개의 특수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여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행 1:16) '유다의 배반'이었다.

 

④ 시 16편: 시 16편은 '음부'로부터의 개선이 예언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음부'는 '지옥'을 의미하기보다는 '무덤'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인 동시에 '무덤'이 그리스도의 파멸이 아니라 승리의 과정이 됨을 증거하는 것이다.

 

⑤ 시 22편: 이 시는 수난시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 시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수난당하신 일과(1절: 참조, 마 27:46), 조롱받으신 일(7절; 참조, 마 27:39),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신 일(8절; 참조, 마 27:43)과 갈증을 느끼신 일(15절; 참조, 요 19:23), 그리고 그의 속옷과 겉옷이 제비 뽑혀 분배된 것(18절; 참조, 마 19:24) 등이 예언되어 있다.

 

   (3) 영광의 시

 

   메시아의 영광에 대한 시편의 예언은 시 16:10과 시 49:15에 기록된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시 68:18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기록이다. 이 외에도 시편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참조, 시편 도표5).

 

   Ⅷ. 시편 연구의 유익

 

   시편은 그것을 연구하는 자에게 많은 유익을 제공하는데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시편은 다양한 헌신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다른 모든 성경이 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들을 기록한 성경인 반면에 시편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애원, 바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편은 인간이 여러 가지의 상황과 여건 하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편은 저자들의 다양한 삶의 체험을 배경으로 쓰여진 말씀이다. 한 예로 시편의 반 이상을 저술한 다윗은 비천한 목동에서부터 왕의 궁중에서 시종 드는 사람으로, 그리고 승리한 전사요 망명자이며 위대한 왕으로까지 많은 체험을 한 자였다. 또한 그는 가난하기도 했고 부하기도 했으며, 미움을 받았는가 하면 사랑도 받았고, 박해와 영광을 받기도 했으며, 방탕한 자인 동시에 참회하는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다양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은 채 그의 모든 생각과 느낌들을 하나님께 아뢰었고 시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은 그것을 읽는 자로 하여금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상황에 처할 때에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고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을 연구하는 자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시편은 인생이 어려운 시기에 처하였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실제적인 길을 제시한다. 시편은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체득한 진리로도 가득 차 있다. 다윗은 자신의 엄청난 죄를 깊이 깨닫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를 느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진리를 체험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대적으로부터 보호받음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이고도 무한한 진리를 깨달았으며, 자신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실제적인 체험들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믿음과 교훈이 아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진리들을 제공해 주며, 실제적인 헌신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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