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0-06 08:22
진화론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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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730  


1. 진화론의 허구: 중간 형태가 없다  

진화론의 연속성과 변질은 지구의 모든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진화론이 학계에 미친 영향은 가히 엄청나다. 그러나 진화론은 한 마디로, 억측과 추측으로 ‘세월’의 길이와 우연성만을 남긴 채 벌써 사라졌어야 할, 수많은 학문 중에 썩 와닿지 않는 한 가지 유형의 속설과 같은 이론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기본값으로 정하고 항거 없는 학문의 도약을 지속하고 있는가? 왜 학자들은 진화론을 기본값으로 학문을 추구해 왔는가? 그리고 아무런 부정과 대립적 비판도 하지 않고, 학문의 장을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 진화론의 허구 위에다가 또 다른 새로운 학문을 이어나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진화론은, 왜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것일까?

진화론을 대체할 만한 이론의 부재도 원인이겠지만, 수많은 석학들이 지금도 진화론의 허구적 가설을 실제인 양, 진화론의 가설의 토대 위에 새로운 학설들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진화론의 허구의 지속 원인을 ‘지식적인 기반’에 두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발견하게 된다. 진화론의 허구적 지속성은, 단순한 학문적 접근으로 허물어지는 학설이 아니라는 추정을 ‘하나님의 창조론’에 근거하여 증명해야 한다.

성경의 창조론으로 근거하여 볼 때, 진화론이라는 가설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악의적 의도에서 시작되었으며, 진화론의 허구적 모순이 산재한 가운데 막무가내식으로 진화론이 정설처럼 유지되어야만 버틸 수 있는, 악행의 도전이 인간의 뇌리를 세뇌시키고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진화론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력을, 보이는 세력이 이길 수는 없다. 마치 투명인간과의 싸움처럼, 모습이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 앞에 지극히 무능력하고 조종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적 상황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진화론은 한 마디로 ‘허구’이다. 허구라는 전제 하에 진화론적 시각을 가져보는 것은 학자적 관찰로 지극히 당연한 통찰이며, 이러한 부정을 학문적 중심에 두고 연구되고 추정되어야만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단순하게 진화론의 가설 그대로를 기본값으로 정하고 학문을 토대하는 것은 학자적 게으름에서 비롯된 관철일 수 있다. 진화론의 허구적 기본값이 영향을 미친 학문의 범위는 실로 광대하기까지 하다. 인류학, 지질학, 인문학, 유전학, 철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문적 영역에서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처럼 표준화되어 교육의 밑바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공(時空)의 제한 속에 있는 인간의 한정된 지혜로는, 하나님의 신비의 창조 섭리를 알 수 없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6-58)”.

육신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아득히 먼 옛날 사람이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시간 속에 아브라함은 그저 피조물 중 한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출현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신 창조주이시다. 인간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이러한 창조 섭리를, 시공의 제한을 받는 인간이 학문으로 논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증명하고 있음이다.

진화론은 ‘중간 형태의 발견 없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진화론이 한 인간이 내뱉은 속설이라는 증명은, 진화의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진화 과정의 중간 형태가 없다’는 사실 한 가지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의 참 진리를 깨달은 믿음의 사람들은 더 많은 증거들을 기록하고 진화론의 허구를 폭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허구적 가설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을 교육의 굴레에서 세뇌시키듯 가르쳐 온 교육적 기반과, 그러한 허구를 바탕으로 교육 되어진 세계적 고정관념을 무너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구를 얼마나 파헤쳐 보았는가. 지구의 전반을 다 파헤쳐 본 21세기의 지금, 더 이상 파헤쳐 볼 지구는 없다. 지구를 들여다 본 수치적 기록인 ‘화석률’은 거의 98% 수준을 육박한다. 한 마디로 진화론을 입증할 수 있는 진화의 중간 형태 발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증명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진화론을 뒷받침할 진화의 중간 형태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쥐도 있고 박쥐도 있는데 중간 형태는 없다. 원숭이와 인간은 존재하는데 중간 형태는 없다. 알다시피 도저히 연관성 없는 수천 가지의 다른 유전인자를 가진 침팬지나 고릴라는, 개와 인간의 유전인자 차이보다 인간과의 거리가 더 멀다. 진화론이 속설인 것이 사실이듯, 중간 형태는 원래부터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막연한 가상의 시간들을 ‘오래 전’이라고 가정하고, 심지어 파충류가 인간의 조상이었다는 설정은 쓴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와 처음부터 다른 종이다. 진화 과정의 중간 형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진화론이 허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이다.

바닷물을 허공에 거구로 매달아 놓으시고, 지금도 흔들림도 없이, 소리도 없이 지구를 시속 5,600km 이상의 속도로 자전시키시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인간들의 인생이 자신들의 것이면, 몇 날 몇 시에 자신이 죽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 모두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살아간다. 인간들의 일생은, 자신들의 인생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진화론은, 인류와 대자연의 탄생을 궁금해 하던 한 인간의 가설로 이제 흘려보내야 한다. 이러한 속설도 있었다는, 한 줄 과거로 돌려놓아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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