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4-17 20:33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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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874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들

 

어떤이에게 아무리 전도해도 씨가 먹히지 않는데 그가 드는 이유는 한 마디로 '예수 믿는 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데 질렸다'는 것이다. 실컷 기도해놓고 기도한 대로 응답이 안 되고 결과가 정 반대의 나쁜 모양으로 나타나도 하나님의 뜻, 또 전혀 기도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치 카지노에서 대박 터지는 모습으로 행운이 나타나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고 너무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더 분통터지는 일은 불신자도 하지 않는 분명히 잘못된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밀어붙이고 강요하는 꼴은 정말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한 예로 자기 동네의 아주 큰 교회에 주일 예배를 보기 위해 몰려오는 차들을 대로상에 버젓이 불법 주차해 바쁜 사람들의 교통을 방해하면서도, 도대체 미안한 눈치도 보이지 않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주일마다 그러고 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인가라고 반발하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자기 생각과 계획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신자와 교회들이 의외로 많으며, 그런 잘못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순종하려면 최소한 회교도들이 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들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라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순종한다. 단적인 예로 운전을 하다 차가 고장이 나면, 그 차가 아무리 벤츠 600이라도 알라신의 뜻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버려 둔 채 걷거나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간다. 기독교 신자가 이 정도도 되지 않으면서 입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면'을 달고 다니면서 자기 편리대로 매사를 적용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신자가 이런 잘못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전혀 다르다면 그 원인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았다는 말이다. 성령의 열매는 반드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는 거의 전부가 여러 대체 방안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국한시킨다. 선교사라면 몽고로 갈까요 북한으로 갈까요, 기독 실업가라면 무역회사를 차릴까요, 아직 내수에 치중할까요, 청년부 학생이라면 이번에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까요, 아니면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지방대학으로 갈까요, 중에 고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의 전부로 착각한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신자가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신자는 하나님에게 어느 길을 갈까요, 혹은 무엇을 할까요(Which way should I go? or What should I do?)에 관해 먼저 물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어떤 일(what kind of work or act)을 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사람(what kind of person or being)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목전에 항상 서 있는 자의 자각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일차적으로 갖고 있는 뜻이지, 우리더러 무슨 거창하고 구체적인 일을 하게 하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변화되었다면 비로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하나님이 결정하여 책임져 주실 뿐 아니라 신자가 그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깨닫게까지 해주신다.

선교사가 진정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혀 생명까지 바치기로 헌신했다면, 몽고로 가든 북한으로 가든 선교의 열매는 맺힐 것이고 또 그곳에서의 모든 형편도 하나님이 주관해 주신다. 사업가도 정직과 신용과 성실로 청지기적 소명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면 수출을 하든 내수에 초점을 주든 하나님은 그 사업을 융성케 해주며, 학생도 학생으로 먼 장래의 소명을 붙들고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대학을 가도 우등생이 되어 졸업 후에도 자신의 소명을 이룰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신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면 그가 우리 갈 길을 지도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선교사이든 사업가이든 학생이든,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바뀌어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목사 편, 장로 편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런 하나님의 뜻에 관해 심지어 목사나 장로마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전을 신축해야 하는가, 선교사업을 먼저 해야 하는가로 싸운다. 양쪽 다 기도해보니 서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싸운다. 대개의 경우, 이런 문제에 관해 하나님은 직접적인 응답을 주시지 않는다.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선 반드시 최선을 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일을 해야 한다고 집착하니까 이런 문제들이 생긴다. 성전을 지어 현재 교인들을 더 잘 양육시키고 새 성전으로 인해 교인이 늘어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과,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불쌍한 민족을 위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둘 다 하나님 뜻이다. 그러나 아무런 가시적 일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고 심지어 더 큰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만약에 이런 문제로 싸운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겠는가? 그 답은 당연히 "일 가지고 서로 싸우지 말고 먼저 바른 신자가 되어라"일 것이다.

신자가 물어야 할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한 가지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지니게 될까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더 풍성한 교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주고 인도하시는 것은 그 다음에 하실 하나님만의 몫이다. 하나님의 뜻은 신자가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께 순종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 외에 없다.

그럼에도 자꾸 '하나님, 어느 길로 갈까요, 무슨 일을 할까요?' 하고 묻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핑계로, 어느 길이 위험부담이 적고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지, 그것을 가르쳐 달라는 뜻일 수 있다. 물론 이미 모든 위험부담을 각오하고 떠나는 선교사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열매가 더 많이 나타나는 곳을 가르쳐 달라는 순수하고 좋은 뜻이지만, 혹시라도 열매를 더 많이 맺어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자기 욕심이 없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선교사가 어디로 갈 것인가는 자기의 적성과 은사와 그 동안 훈련받은 언어와 마음의 소원 등을 종합하여 잘 판단하면 된다. 선교사의 경우에도 개인적 욕심이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평신도가 일상생활의 문제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갈까를 묻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자칫 점쟁이 수준으로 격하시킬 수 있다. 물론 기도해서 마음의 평강이 있고 확신을 심어 주는 응답조차 부인하거나 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며 무엇이든 기도해야 한다.

자꾸 가시적인 어떤 일의 형태로 드러나야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니까 자기 마음의 선한 뜻과 부합되고 교회가 확장될 수 있는 방향이라는 판단만 서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밀어붙이고, 그런 와중에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뜻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 예를 든 대로 주일 날 교회 앞 노상에 주차하는 것을 교인 수가 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며, 처음 오는 사람도 있는데 주차 문제로 골치 아프면 다음 주부터 안 나올지 모르고, 영혼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일이 먼저이므로 하나님도 이해해주실 것이고, 순경마저 교회 일이라 단속하지 않는데 괜찮아 식으로 밀어붙이는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아야 할 하나님의 뜻을 전도와 교회부흥이라는 일에만 초점을 둔 것이다. 교회가 일만 앞세우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 즉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는 잊게 된다. 새로 오는 사람에게도 저희 교회에 안 나오셔도 좋으니 노상 불법 주차는 하지 말아 달라고 하면, 그 사람도 이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먼저 가르치는구나 알 것이며 이웃에 사는 불신자들도 교회와 신자는 역시 다르다고 생각해 더 전도가 잘 될 것조차 모르고 있다.

신자가 고의적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동원하는 것은 신자라고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과 하나님만은 숨은 의도를 알 텐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신자이기를 거부한 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꼭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거나, 둘째는 어떤 일을 하는데 무엇이 더 실패의 가능성이 낮는가 불안해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자더러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성령의 도우심을 매일 간구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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